
▲맑은누리타워. 소각장에 세워진 관람 시설이다. ⓒ 김대홍
우리 동네는 한 지붕 두 가족이다. 예천군 절반, 안동시 절반으로 이뤄진 신도시다. 이름은 '경북도청신도시'다. 이게 이름이라고? 맞다. 이게 이름이다. 신기한 동네에 살면서 여기저기 탐방을 다녔다. 아이들과 놀 곳을 찾기 위해서다.
맑은 개울이 흐르는 곳을 찾았다. 개구리 소리가 들렸다. 아이들과 종종 거기서 산책했다. 옆에 거대한 굴뚝이 보였다. 소각장이었다. 경북 북부권 시·군에서 생긴 쓰레기를 처리하는 광역소각장이었다. 11개 시·군에서 생긴 생활·음식물 쓰레기가 여기로 모였다.
마을에서 이렇게 가까운 곳에 쓰레기 소각장이 있는 곳이 있었던가 싶었지만 크게 신경 쓰이진 않았다. 쓰레기를 만드는 곳에서 쓰레기를 처리하는 게 맞다 생각했다. 광역 쓰레기장이라는 게 살짝 갸우뚱했지만 '이타적이군'이라고 받아들였다.
맞은편은 장사시설이었다. 현대식 장사시설로 화장로 5개가 설치돼 있었다. 서울에 살 때 주로 찾던 화장장은 '서울시립승화원'이었다. 위치는 경기도 고양시. 2012년 서울추모공원이 문을 열기 까지 서울에서 누군가 세상을 떠나면 대부분 경기도 고양시까지 멀고 먼 길을 움직였다.
지금까지 살던 경험에 따르면 소각장과 장사시설은 도시에서 보이지 않는 먼 외곽에 있었다. 서울에서 생긴 쓰레기는 오랫동안 난지도(지금 상암동)를 이용하다 인천으로 떠났다.
그런 경험에 비춰보면 동네에서 5~10분 거리에 있는 소각장과 화장장은 신선했다. 게다가 그 동네엔 놀랄 만한 시설이 하나 더 있었다. 바로 대마밭. 한국에서 대마밭? 정식 이름은 '산업용 헴프 규제자유특구'였다. 의료용 대마를 '헴프'라고 한다.
덕분에 우리 동네에선 '헴프'와 관련된 상품이 흔하다. 대마(헴프) 부산물과 헴프씨드 사료로 키운 돼지 고기와 소고기를 마트에서 팔고, 전문 식당이 운영 중이다.
소각장이 동네 옆, 괜찮을까

▲인천매립지. 쓰레기를 버리는 곳은 오랫동안 사람들에게 기피 시설로 인식됐다. ⓒ 김대홍
경험에 비춰보면 소각장이 있는 곳엔 항상 주민 명의로 플래카드가 나부꼈다. 주로 '이전하라' '보상하라'와 같은 내용이었다. 2019년까지 여기 신도시 주민들은 '악취 극심' '교통 혼잡' '먼지 문제' 등을 내걸며 즉각 폐쇄를 외쳤다. 그 목소리들은 이제 사라졌다.
시대는 흘러 어느 순간부터 소각장은 과거처럼 기피 시설이 아니다. 소각장은 꼭 필요하고 주민 설득이 필수다. 주민들이 친근하게 다가가도록 노력을 많이 기울인다.
하남유니온타워와 유니온파크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성공한 소각장 현대화 사례다. 폐기물 처리 시설은 모두 지하 50m 아래다. 지상은 여가시설로 꾸몄다. 테니스장, 배드민턴장, 게이트볼장, 농구장, 실내 다목적체육관을 만들었고, 여름엔 대형 물놀이장으로 변신한다. 105m 타워가 랜드마크 역할이다. 방문객이 연 40만 명 이상일 정도로 인기다.
아산환경과학공원도 방문객이 연 40만 명 이상이다. 소각시설 옆에 곤충박물관을 세웠다. 전망대를 세우는 건 일종의 '국룰'이 됐다. 150m 전망대에선 레스토랑과 카페를 운영 중이다. 소각 과정에서 나오는 폐열을 이용해 찜질방과 사우나를 운영 중이다.
구리타워나 익산문화체육센터, 평택 에코센터 어울림도 지역민들이 즐겨 찾는 소각장 시설이다.
우리 동네 소각장 또한 이들 사례를 참고했다. 이름을 '맑은누리파크'로 정했다. 다른 곳들처럼 전망대를 세웠다. 전망대 안에 미니도서관을 만들었다. 소각장 부지엔 실내 수영장과 실내스크린골프연습장, 찜질방이 들어섰다. 우리 가족들은 여기 실내 수영장을 애용한다. 전망대에 올라 종종 동네가 달라지는 과정을 살펴본다.
동네 옆 죽음의 공간, 어떻게 받아들일까

▲일본은 무덤이 동네에 자연스럽게 들어와 있다. 삶의 공간과 죽음의 공간이 함께 있다는 건 우리 시각에서 참 남다르다. ⓒ 김대홍
장사시설이 근처에 있다는 건 참 바람직하다 느꼈다. 살면서 죽음을 억지로 분리하는 문화가 자연스럽지 않다고 봤다. 집에서 생을 마감하고, 동네 뒷산에 묻히는 건 이미 옛날 일이 돼버렸다. 그때로 돌아갈 수 없고, 그 시절을 바라지도 않는다. 단, 죽음이 삶과 가까이 있는 게 맞는 게 아닌가 옛날부터 생각했다.
일본에 처음 갔을 때 신선했던 게 동네 묘지였다. 주택가나 번화가 한가운데 자연스레 섞여 있었다. 죽음과 삶이 공존하는 문화였다.
우리나라는 죽음을 떼놓았다. 평소엔 죽음을 전혀 생각지 않다가 죽음이 생기면 가장 먼 곳에 가서 죽음을 처리(?)한다.
소각장이 공원이나 주민친화시설이 된 것처럼 죽음의 공간도 그럴 수 있을까. 스톡홀름 우드랜드 공동묘지(Skogskyrkogården)는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묘지로 불린다. 울창한 소나무 숲 사이 무덤과 예배당이 흩어져 있다. 전 세계 건축가와 관광객들이 방문하는 곳이다.
일본 신주쿠 루리코인 뵤쿠렌은 도심 한복판에 있는 첨단 빌딩형 납골당이다. 내부가 갤러리나 고급 호텔 로비 느낌이다. 접근성이 좋고, 내부 시설이 근사해 퇴근길에 잠깐 들러서 차 한 잔 마시며 시간을 보내는 곳이다.
우리 동네 장사시설을 보아하니 그런 명소가 될 가능성은 적어 보인다. 거리만 가까울 뿐 전혀 친근하게 다가오지 않는다. 단 접근성 측면에서 볼 땐 언제든지 쉽게 오고갈 수 있는 시설이었다.
'산업용 헴프 규제자유특구'는 2020년 시작된 사업이다. CBD(칸나비디올) 추출이 주목적이었다. CBD는 환각성분(THC)이 거의 없는 대마에서 추출한 물질로 항염 및 뇌전증 치료 등에 쓰인다. 물론 이 또한 마약류로 분류돼 일반 제품 유통 및 개인 사용은 전면 금지다.
정부는 경북도청신도시 외곽에 스마트팜 재배단지를 만들어 CBD 제조시설을 만들고 마약류 유출 방지용 블록체인 기반 안전관리 시스템을 개발할 계획이었다. 2027년까지 운영할 예정이지만 아직 눈에 띄는 성과는 없다. 그린바이오 7개 핵심 분야 중 하나인데다 국내에서는 유일해 '재미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나라는 마약과 대마에 대한 거부감이 강하지만 외국에선 헴프를 이용한 관광지들이 여럿 있다. 에스토니아 카네피(kanepi)가 대표적이다. 카네피는 에스토니아어로 대마를 뜻한다. 이 곳의 대표 명소는 헴프 미로(Hemp Maze). 미로처럼 대마를 빽빽하게 심어 사람들이 즐기는 장소가 됐다. 축제 기간이 되면 관광객들이 많이 방문한다.
미국 캘리포니아 에메랄드 트라이앵글 지역도 헴프 투어로 유명하다. 전문 가이드와 함께 스마트팜 내부를 돌며 재배 기술을 배우고 CBD 추출 과정을 살펴본다. 헴프 씨앗(Hemp Seed)을 이용한 요리 클래스, 헴프 추출물을 넣은 음료 시음도 이뤄진다.
프랑스는 세계적인 산업용 헴프 생산국이다. 프랑스 대마 협회 및 교육기관인 에콜 나쇼날 뒤 샹브르(Ecole Nationale du Chanvre)엔 친환경 건축 자재인 헴프크리트(Hempcrete) 시공 워크숍을 정기적으로 개최한다.
프랑스 파리 근교 크루아지-보부르(Croissy-Beaubourg)에 만들어진 피에르 슈베 체육관 (Pierre Chevet Sports Centre)은 프랑스 최초로 헴프크리트 블록을 사용해 지은 공공 건물이다.
기피 시설과 공존, 재미있는 실험

▲맑은누리타워에서 바라본 경북도청신도시. 이 도시에선 앞으로 전통적인 의미의 '기피시설'과 '친근시설'이 어떻게 공존할까. ⓒ 김대홍
기피 시설에 대한 인식이 달라지는 중이고 앞으론 더 그럴 것이라 믿는다. 과거 사람들에게 큰 피해를 줬기에 기피 시설이 됐고, 여러 노력을 피해 주민 피해를 없앴기에 지금은 주민 친화 시설이 돼가는 중이다. 어떻게 다루느냐에 따라 기피 시설은 친화 시설로 변신 가능하다.
전통적인 의미의 기피 시설을 경북도청신도시는 품고 있다. 소각장, 화장장, 대마밭. 달리 보면 재미난 숙제다. 잘 활용하면 다른 곳에선 볼 수 없는 개성 넘치는 공간이 될 수 있는 곳이다.
공원, 대형 마트, 종합병원은 누구나 들어오길 바라는 시설이다. 이들 시설들과 소각장, 화장장, 대마밭이 공존하는 동네는 잘 상상이 되지 않는다. 우리 동네는 참 재미있는 곳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