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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교진 교육부장관
최교진 교육부장관 ⓒ 연합뉴스

교육부 등 15개 부처가 합동으로 '10대 청소년 자살예방 범정부 추진 대책'을 내놓았다. 청소년의 죽음을 한 학교, 한 가정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 전체의 구조적 문제로 다루겠다는 방향 자체는 분명 환영할 일이다. 그러나 발표문을 읽고 나서 남은 것은 기대가 아니라 익숙한 기시감이다.

이번 대책에서 정부는 청소년 정신건강 위기의 근원에 학업 스트레스와 경쟁 압박이라는 외재적 요인이 있다고 진단했다. 문제의 뿌리가 아이 바깥의 구조에 있음을 정부 스스로 인정한 것이다. 반가운 진단이다.

그런데 정작 핵심 처방은 사회정서교육 차시를 6시간에서 17시간으로 늘려 학생의 '마음근육'을 키우겠다는 것이다. 이는 한때 유행했던, 사회를 바꿀 책임이 있는 '지식인'을 자처했던 이들의 무책임한 힐링팔이를 공교육에서 반복하라는 명령에 지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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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순도 뚜렷하다. 원인이 경쟁이라면 경쟁의 구조를 건드려야 하는데, 처방은 그 경쟁을 견뎌낼 책임을 다시 아이 개인의 심리로 되돌린다. 구조적 압력은 그대로 둔 채, 무너지지 않을 의무만 가장 약한 당사자에게 부과하는 것이다. 원인에 맞지 않는 처방을 내리니 실패할 수밖에 없다.

목표 설정을 보면 이 실패의 누적이 더 또렷해진다. 정부는 2024년 인구 10만 명당 8.0명인 청소년 자살률을 2030년까지 '2020년 수준'인 6.5명으로, 2035년까지 '2015년 수준'인 4.2명으로 낮추겠다고 했다. 목표가 과거로 되돌아가는 것이다.

그러나 청소년 자살 사망자는 2016년 273명에서 2025년 396명까지 늘었다. 그 사이에도 대책은 매년 쌓였다. 그러니 '과거 수준으로 회복'을 목표로 내건다는 것은, 곧 그동안의 대책이 결과적으로 실패했음을 자인하는 일과 다르지 않다.

그렇다면 새 대책의 첫 장에는 '무엇이, 왜 실패했는가'에 대한 정직한 복기가 있어야 마땅하다. 그러나 이번 발표 어디에도 그 복기는 없다. 실패를 진단하지 않은 대책이 같은 실패를 피해 갈 재간은 없다.

'범부처'라는 간판, 그러나 빠진 것들

정책의 통합적 관점도 전혀 찾아볼 수 없다. 모처럼 '범부처'라는 이름을 내걸었음에도, 정작 한 부처의 힘으로는 결코 풀 수 없어 바로 범부처가 손대야 할 것들이 빠져 있다.

첫째, 극단적 입시경쟁의 뿌리, 즉 학벌질서와 노동시장 양극화다. 어느 대학을 나왔느냐가 평생의 처우를 가르고,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격차가 벼랑처럼 깊은 사회에서, 아이들은 그 한 줄 세우기의 맨 앞을 향해 떠밀린다.

SNS 비교문화와 숏폼 중독, 과잉간섭 양육이 키운 회복탄력성의 약화도, 영 케어러의 고립도, 이주배경·성소수자 학생이 겪는 정체성 혼란도, 결국 이 경쟁의 압력 위에 겹겹이 얹힌다. 이미 익숙해진 이 원인들에 대해, 범부처 대책은 방향조차 제시하지 못했다.

둘째, 교사가 아이 한 명 한 명을 더 보고 돌볼 수 있는 가장 기초적 조건, 곧 과밀학급 해소와 학급당 학생수 감축이다. 하지만 교육부는 저출생을 핑계로 오히려 더욱 빠르게 교사 정원을 축소하며, 각 지역은 소멸을 걱정하면서도 정작 학급은 콩나물 교실을 벗어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이 둘의 공통점은 어렵고, 더디고, 돈이 많이 들며, 임기 안에 통계로 환산되지 않아 '일한 티'가 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정작 죽음을 줄일 수 있는 일일수록 치적이 되지 못해 뒤로 밀린다.

그 빈자리를 채우는 것은 측정하기 좋은 지표들이다. 수업 차시 수, 상담 건수, 도입한 기기 수, 그리고 잘 모아둔 미담 사례. 학교와 교사는 청소년들을 실제로 돌보는 대신, 실패 없이 무언가를 한 것처럼 보이기 위한 서류를 생산하는 데 동원된다. 서류는 결코 실패하지 않기 때문이다.

'범부처'라는 간판이 실질을 담보하지 못하는 것도 같은 이유에서다. 위클래스·위센터 고도화, 전문상담교사 배치, 마음바우처처럼 이번에 열거된 사업의 상당수는 이미 진행 중이거나 진로·학교폭력·신체건강 같은 다른 목적의 계획에 반복 동원돼 온 항목이다.

진로상담은 여기서는 자살예방의 수단이지만 고교학점제에서는 그 자체가 목표가 된다. 부처마다 기존 사업을 '자살예방'이라는 새 표지 아래 한데 모아 합산했을 뿐, 공유된 인과 모형도, 통합 성과지표도, 어느 부처의 무엇이 효과가 있었는지에 대한 분석도 없다. 칸막이는 그대로 둔 채 표지만 바꾼 것이다.

청소년 자살은 개인의 나약함이나 한 가정의 불행이 아니라, 한국 사회가 만들어 낸 조건의 산물이다. 책임을 물어야 할 곳도 개인의 마음이 아니라 그 조건이고, 투자해야 할 곳도 보여주기 좋은 통계가 아니라 실제로 숨 쉬는 일상이어야 한다.

경쟁 구조를 완화하고, 교사와 부모, 지역사회에 아이들을 살필 시간을 돌려주고, 실패를 정직하게 복기하는 것. 더디고 티는 안 나지만, 죽음의 곡선을 꺾는 일은 거기서부터 시작된다. 적어도, 아이에게 더 단단한 마음근육을 가지라고 주문하는 것에서 시작되지는 않는다.



#교육부#자살예방#관료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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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제와 혐오의 논리를 넘어서 개인의 입장이 모두 존중받는 세상을 꿈꾸고 있습니다. 현직교사로서 교사노조연맹, 부산교사노조, 중등교사노조의 일원으로서 공교육정상화를 위해서도 노력하고 있습니다. -교사노동조합연맹 대의원 -중등교사노동조합 수석부위원장 -부산교사노동조합 대변인 겸 부위원장 -부산 기장고등학교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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