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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민화 회원은 <오마이뉴스> 10만인클럽이 생긴 2009년부터 꾸준히 후원을 이어오고 있다. 그가 15년 넘게 후원을 하는 이유가 궁금해 인터뷰를 요청했다.

맨 처음 인터뷰를 제안했을 때 그는 약간 주저했지만, 막상 만나자 다양한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본인이 살아오면서 겪은 일부터 요즘 정치상황과 후세대에 대한 걱정까지. 김민화 회원을 지난 8일 경기도 분당 율동공원 인근 찻집에서 만났다.

 10만인클럽 김민화회원을 분당 율동공원 근처에서 만났다.
10만인클럽 김민화회원을 분당 율동공원 근처에서 만났다. ⓒ 이용신

- 본인 소개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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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1년생 김민화입니다. 70학번이고 75년도에 대학교 졸업 후에 회사 홍보과, 은행 직원, 학교 교사 등을 경험했습니다. 결혼 후에는 계속 전업주부로 있었습니다. 지금 아이들 둘을 다 키우고 남편과 둘이 잘 살고 있습니다."

- 10만인클럽 가입하시게 된 동기가 궁금합니다.

"예전에 주간 오마이뉴스 종이신문이 있었어요. 그 주간지를 보다가 정확하게는 기억이 나지는 않는데 꽤 인상적인 기사를 보았습니다. 그때부터 오마이뉴스 보게 됐습니다. 지인들에게 정론직필 하는 언론으로 소개도 해주었습니다. 제가 심심하면 책 보는 버릇이 있고, 활자 보는 것을 좋아해서 오마이뉴스도 자주 봤습니다. 지금도 공감하면서 보고 있습니다."

- 최근에 읽으신 책이 있으시면 소개부탁드립니다.

"한강 작가의 책 <채식주의자>, <작별하지 않는다>, <소년이 온다>를 봤어요. 글이 어렵고 난해한 부분이 많아 한 번에 이해는 가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책을 다 읽고 덮으니까 눈물이 났습니다. 한 문장, 한 문장이 모두 시라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김봉렬 교수 책 <한국건축 이야기 2: 앎과 삶의 공간>을 보고 소쇄원에도 가 봤고요. 책 읽고 돌아다니는 것을 좋아합니다."

- 2009년부터 오마이뉴스에 오랜 기간 후원하고 계신데 그 이유가 궁금합니다.

"인터뷰 요청을 받고, 제가 후원하는 곳을 찾아봤습니다. 환경운동연합, 유니세프, 국경없는의사회, 노무현 재단 등을 후원하고 있습니다. 환경운동연합은 30년 넘게 후원을 했더라고요. '내가 생각한 거랑 다르네' 라는 특별한 생각이 들지 않으면 계속 후원하는 게 좋다고 생각합니다. 오래 인연을 맺는 것을 좋아합니다."

"박종철이 죽은 후 집회 가던 날, 초등생 딸은 엄마가 비장했다고 하더라"

 서울 중구 정동 대한성공회 주교좌성당 사제관 앞에 세워진 유월민주항쟁지원지 기념비
서울 중구 정동 대한성공회 주교좌성당 사제관 앞에 세워진 유월민주항쟁지원지 기념비 ⓒ 이희훈

- 51년생이신데요, 혹시 1970~1980년대 있었던 여러 사건에 대한 기억을 가지고 계신지 궁금합니다. 현대사의 굴직한 사건과 관련한 기억이 있다면 소개 부탁드립니다.

"먼저 생각나는 게 4.19혁명 이후네요. 초등학교 때였는데, 4.19 후에 학교가 휴교를 한 적이 있습니다. 휴교할 때 엄마가 사촌 언니가 사는 서오릉으로 우리를 보냈는데요. 사촌 언니가 서오릉에서 < Fenesta che lucive(페네스타 케 루치베)> 노래를 불렀던 게 기억이 납니다. 이탈리아 나폴리 민요로 알고 있어요. 우리말로 '불 밝던 창'이란 노래입니다. 언니가 노래를 잘 불렀던 기억이 납니다.

세상은 시끌벅적했지만 감성은 있었던 시절입니다. 그 다음 기억은 1987년입니다. 경찰에 의해 박종철 사망 사건이 있었습니다. 그때 제 아이가 초등학교 1학년이었어요. 안양에 살았는데, 아랫집 가까운 엄마에게 아이를 맡기고 서울 집회에 참여했습니다. 나중에 아이가 서울로 가는 엄마에게 '비장함'을 느꼈다고 하면서, 당시에는 엄마가 서울에 안 갔으면 했다고 고백을 하더군요.

1987년 당시에 시청역에 있는 대한성공회 주교좌성당 교인이었습니다. 교회에서 데모하다 도망친 학생이나 시민을 신부님이 보호해주던 시기였어요. 그런데 어느 날 청커버(일명 백골단)들이 교회로 들어와서 신부님을 끌고나와 내동댕이쳤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그들도 양심은 있었는지 주일에는 들어오지 않고 토요일에 들어온 겁니다. 주일에 그 사건을 알았습니다. 당시 교회 안에서도 해당 신부가 학생들을 감싸는 행동을 비판하는 일부 교인이 있었는데, 그 사람들과 싸웠던 기억이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이번 윤석열 내란과 계엄 사건인데요. 처음에는 계엄을 믿지 않았습니다. 윤석열이 헛짓거리 하겠지, 유언비어겠지 생각을 했습니다. '내가 살다 살다, 이 딴 꼴을 보는구나' 했습니다. 그날 밤을 홀딱 셌습니다. 뭔 일이야? 이런 일을 또 당해? 이런 일이 또 생기겠다고? 그 이후로 불면증이 생겨서 가끔 잠을 못 자고 있어요. 자려고 하면 불안해지고. 아이들도 덩달아 불안해하고. 그래서 이번 지방선거 결과가 아주 불만족스럽습니다. 남편이랑 이야기합니다. 이번 선거 진 거라고.

선거 결과를 보면서 세상이 참 이기적이고 야박해진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비정규직이 정규직이 되는 것에 일부 정규직들이 반대를 한다고 들었습니다. 자기는 어려운 시험에 통과해서 들어온 거고 비정규직은 그렇지 않다면서. 오히려 이런 사회 풍조가 공정하지 않은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 오랫동안 10만인으로 후원을 하셨는데, 오마이뉴스나 10만인클럽에 바라는 점이 있다면 어떤 게 있을까요.

"오마이뉴스에만 특별히 바라는 것보다도 전체 언론에 이야기하고 싶은 게 있어요. 언론사마다 세상의 변화를 위한 생각을 가지고 있을 거라고 봅니다. 그게 언론사가 추구하는 본질일 텐데, 실제로 보면 본질에 충실한 언론보다는 곁가지의 내용에만 연연한 것 아닌가라는 생각이 들 때가 많습니다. 미세한 흠결이나 논란을 키워 근본 줄기에 영향을 주는 모습을 보게 됩니다. 언론이 세상의 중심을 잡아줘야 한다고 봅니다. "

- 좌우명이 있다면 소개부탁드립니다.

"중학교 때 배운 문장인데, 아직도 잊히지 않는 글입니다. '따사롭고 씩씩하게'...이렇게 살아왔고 살아가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419혁명#610항쟁#10만인클럽#김민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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