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장자마을과 능선으로 연결된 점등 (호수 수위가 높아지면 이 연결 능선이 수몰됨) ⓒ 이완우
지난 10일, 망종 절기가 여러 날 지난 시기였다. 옛날 초여름 이때의 산촌 풍경은 보리를 베어 낸 빈 밭에 새끼 꿩들이 종종 걸음으로 나타났고, 가득 물이 찬 논에는 청개구리와 맹꽁이 울음소리가 이어졌다. 지역 주민들이 기억하는 수몰 되기 전 옛 운암강의 풍경이었다.
진안고원에서 출발하여 남남서 방향으로 흐르는 섬진강이 남쪽으로 방향을 바꾸는 지점. 섬진강을 건너서 호남정맥의 묵방산(538m)과 성옥산(388m)을 넘는 안부에 가는정이 고개가 있다. 이 고개에서 약 1km 거리, 성옥산 자락이 섬진강으로 길게 뻗은 '점등(임실군 운암면 운정리)'이 자리한다.
점등은 옥정호의 관광 명소인 '자라섬'으로 알려진 곳이다. 남북 400m, 동서 200m 크기의 이 작은 섬은 원래 장자마을 방향에서 능선으로 연결된 '물돌이동(강물이 휘감아 도는 지형)' 산이었다. 점등은 섬진강댐으로 조성된 옥정호에 능선이 수몰되면서 섬이 되었으나, 호수의 수위가 낮아질 때면 물속에 잠겼던 능선이 모습을 드러낸다. 답사 날, 점등으로 연결된 능선이 오랜만에 제법 높이 노출되어 있었다.

▲장자마을에서 호수 건너로 보이는 운암리와 금기리 원경 ⓒ 이완우

▲장자마을에서 본 호수 건너의 범어리 원경 ⓒ 이완우
장자마을에서 옥정호 호수가에 설치된 둘레길을 따라 점등으로 향했다. 호숫가 절벽 위에서 호수 건너편의 운암리와 금기리, 범어리 일대가 한눈에 들어왔다.
호남정맥 가는정이와 운암강(섬진강)의 물돌이동 점등 일대는 지형적으로 선사시대부터 서해안 동진강 유역과 지리산 방면 섬진강 유역을 잇는 문물 교류의 통로 역할을 했던 지역이다.

▲장자마을 성옥산 자락에서 점등으로 연결된 능선 (호수 수위가 낮아지면 이 능선이 드러남) ⓒ 이완우

▲성옥산 자락이 점등으로 연결된 능선 (호수 수위가 낮아지면 이 지형이 드러남) ⓒ 이완우
점등으로 연결된 능선을 걸었다. 수몰 되기 전에는 무성한 숲길이었을 공간이다. 그러나 반복된 수몰과 노출로 지표면의 토양은 모두 씻겨 내려갔고, 지금은 거친 돌부스러기와 모래만이 앙상하게 능선을 덮고 있다.
이곳의 옛 풍경은 김여화 작가의 소설 <운암강>(2015)에 묘사되어 있다.
"가는정이 장자골 범어리를 구름 밑에 샘 같은 형국으로 운정리인데 장자골에서 범어리 사이의 여울에 운암강으로 물을 빼 내가는 취수구가 있어 저 옛시절에는 발매산 앞 범어리 앞에 닷새장이 섰다고 했다. 김제 정읍의 사람들이 장자골앞 들에서 거두어들인 쌀을 사러 오기도 하던 곳이라." (소설 <운암강> 중에서)
임실문화원이 2013년에 발간한 <운암의 역사문화>에 따르면, 이곳 점등을 바라산이라고 하였다. 바리산, 발산(鉢山) 또는 발매산으로도 불렸다. 산의 모양이 밥그릇(바리)을 엎어놓은 형상을 닮았다는 데서 유래한 지명이다. 풍수지리적으로는 '바리에 음식이 가득 차 있는 형국'이라하여 재물이 모이는 명당으로 알려졌다.
지역 주민 송순문씨는 '점등(店등)'이라는 이름 역시 예로부터 사기점 등 점방(가게)들이 있던 산등성이에서 연유 한다고 전했다. 가는정이를 넘어온 정읍 방향 사람들이 점등의 가게와 범어리 앞 향시(시골 장터)에서 "가는 정이 고와야 오는 정도 곱다"며 곡식과 물건을 주고받았다고 한다. 돌 부스러기 가득한 능선 마루를 따라 걷다 보면, 과거 수몰된 마을의 주거지 공간으로 보이는 곳이 눈에 띈다.
임실군과 전주역사박물관이 2007년 발행한 <문화유적분포지도>를 보면, 점등과 인접한 운암강 구역 일대에 구석기부터 삼국 시대에 이르는 유물과 유적이 대거 수몰 되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지도상 점등 서쪽 수몰된 비탈에 고분군 1개소, 남동쪽 수몰된 비탈에 고분군 1개소와 유물산포지 1개소가 존재한다. 또한 장자골에서 점등으로 이어지는 능선 마루에 고분군 1개소와 운암강 바라보는 수몰된 비탈에 고분군 1개소와 유물산포지 2개소가 기록되어 있다. 호수 너머로 마주 보이는 금기리 서쪽 수몰된 비탈에 고분군 2개소와 유물산포지 2개소가 밀집해 있다.
고고학 문헌 조사에 따르면 동진강 유역인 김제·정읍 일대의 평야 지대 선사 유적과 임실 운암면, 진안, 남원 일대의 섬진강 유역 청동기·철기 시대 유적(고인돌, 돌널무덤, 마한 분묘 등)은 유물의 형태와 양식에서 밀접한 연관성을 보인다. 강가 산등성이를 따라 밀집한 청동기 시대의 고인돌 무덤군은 과거 이곳 운암강 유역을 거점으로 가는정이 고갯길을 통한 동서 교역을 관장했던 집단이 존재했을 가능성을 보여준다.

▲점등 동편의 단애 지형, 옛 운암강이 점등의 동편을 가깝게 돌아흐르며 침식작용으로 단애를 형성함) ⓒ 이완우

▲점등 기슭에서 본 장자마을과 성옥산 줄기에서 이어진 능선 ⓒ 이완우
점등의 동쪽 면에는 단애(斷崖, 절벽)가 연속된다. 옛 운암강이 점등의 동편을 바짝 끼고 휘감아 흐르며 거센 강물로 깎아 만든 침식 지형의 흔적이다. 강물이 나른 모래 구릉은 점등의 숲 초입까지 이어져 있었다. 그러나 섬진강댐 축조 이후 60여 년을 수몰된 점등의 깊은 숲 안쪽으로는 현재 더 이상 진입할 수 있는 길이 없어진 상태이다.
임실 운암면에서도 운정리 일대는 1928년 운암댐의 준공 때부터 동진강을 거쳐 호남평야로 물이 흘러나가는 굴등 '물구멍'의 지형적 상징성을 가진 곳이며, 이곳의 일부 주민들은 옥정호를 '운암호'라는 옛 이름으로 기억한다.

▲장자마을 전망대에서 본 점등, 멀리 수암마을과 고재마을 원경 (2026.05.06.) ⓒ 이완우
지난 5월 초, 장자마을 높은 전망대에서 이곳을 바라보았다. 그때는 장자마을과 점등을 잇는 이곳 능선이 물에 잠겨 있었다. 불과 한 달 사이에 호수의 수위가 낮아지면서 수십 년 전 물 아래로 사라졌던 지형이 다시 지표 위로 드러났다.
운암댐(1928년)과 섬진강댐(1965년)의 축조 이래 수몰의 역사 속에서, 이곳 선사 시대 이래의 유적지들은 물속에 잠겨왔다. 호수의 수위 변화에 따라 잠깐씩 모습을 드러내는 점등의 능선 모래밭에는 앞서간 누군가의 발자국이 머물러 있고, 고라니의 두 갈래 발톱 자국이 이제는 갈 수 없는 깊은 숲을 향해 나란히 이어져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