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고양 '경청투어' 현장안민석 경기도교육감 당선인이 10일 고양시 소재의 한 카페에서 학부모, 학교운영위원회 관계자들과 마주 앉아 간담회를 진행하고 있다. ⓒ 고양e뉴스
"우리 교육이 잘 되고 있는가. 긍정적으로 대답하는 분들은 거의 없을 겁니다."
10일 오후, 고양시의 한 카페에서 마이크를 잡은 안민석 경기도교육감 당선인의 첫 인사였다. 그는 "저는 이 판을 바꿔야 되겠다는 생각으로 교육감에 도전했다"며 현장 학부모들과의 본격적인 소통을 시작했다.
이날 행사는 일방적인 정책 발표가 아닌, 철저히 현장 학부모들의 애로사항을 듣는 '경청'에 초점이 맞춰졌다. 현장에 모인 고양 지역 학부모와 운영위원들은 그간 교육 행정에서 소외되었던 경험과 제도적 문제점들을 날카롭게 지적했다.
AI 교과서 부작용부터 통학로 안전까지... 쏟아진 '비상식'의 현장

▲현장의 목소리를 듣는 당선인안민석 당선인이 노란 수첩을 들고 선 채로 고양 지역 학부모들의 질문과 건의 사항에 답변하고 있다. ⓒ 고양e뉴스
현장의 가장 큰 화두 중 하나는 '행정 편의주의'로 인한 학생들의 피해였다.
능곡초등학교 학부모라고 밝힌 한 참석자는 "능곡 지역 일대가 재개발되면서 아이들 통학로에 덤프트럭이 다니고 노출되어 있다"며 "학교와 현장 관리자가 협의를 해도 시간 내에 철거해야 하니 유리창을 깨버리는 등 학생 안전과 학습권이 침해받고 있다"고 호소했다.
신도시 특유의 과밀 및 학군 문제도 도마 위에 올랐다. 행신고 운영위원장은 "비평준화 지역인 파주에서 평준화 지역인 고양으로 넘어오는 학생들을 포함해 고양시 학생들이 대중교통으로 1시간 반씩 걸려 등교하는 상황이 발생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지축·덕은 지구의 고등학교 부족 문제와 최근 신설된 고양 통학버스가 모의고사 당일 갑작스럽게 운행을 하지 않아 큰 혼란을 겪었다는 증언도 이어졌다.
특히, 최근 도입된 AI 디지털 교과서의 부작용에 대한 우려도 강하게 제기됐다. 한 초등학교 학부모는 "연구학교 지정으로 태블릿 수업을 하루 종일 하던 아이가 두통과 어지럼증을 호소해 병원까지 다녔다"며 "담임 교사나 교장 선생님에게 문의해도 재량권이 없다며 교육청 탓만 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이 밖에도 전임 교육감 시절 중단된 학부모 네트워크의 부활 요구 , 일선 학교들의 운동장 개방 거부 및 폐쇄적 운영 , 사소한 갈등에도 남발되는 학교폭력위원회 심의 문제 등이 쏟아졌다.
안민석 "인사권 학부모에게 주겠다... 교장 최소 4년 임기 보장"

▲정책 방향을 설명하는 안민석 당선인안 당선인이 학부모들을 향해 교육청 중심의 행정을 학생과 현장 중심으로 대전환하겠다는 의지를 밝히고 있다. ⓒ 고양e뉴스
학부모들의 호소를 묵묵히 메모하며 듣던 안 당선인은 "이런 일이 왜 바뀌지 않고 반복되느냐. 학생 중심, 수요자 중심이 아니라 공급자 중심의 행정이기 때문"이라고진단했다.
그는 학교 현장의 변화를 이끌 핵심 카드로 '인사권 위임'이라는 파격적인 카드를 꺼내 들었다. 안 당선인은 "고양 교육장에 누가 적임자일지 여러분들이 뽑는 것이다"라며 "교육감은 고양 교육장에게 제가 가지고 있는 인사권을 다 주는 것"이라고 선언했다. 학부모와 시민들이 면접 등 민주적 절차를 통해 지역 사령관 격인 교육장을 직접 선출하게 하겠다는 구상이다.
일선 학교 교장의 잦은 교체 문제에 대해서도 강도 높게 비판했다. 그는 "정년 2년 앞두고 해서 교장을 (발령내는) 그런 경우는 외국 가면 (없다)"며 "선진국은 1학년부터 6학년까지 한 담임이 계속한다"고 꼬집었다. 이어 "좋은 교장이 4년 동안 있을 때 그 학교가 얼마나 달라지는지 보셨지 않느냐"며, 향후 능력 있는 교장을 발탁해 최소 4년간 임기를 보장하겠다고 약속했다.
"실리콘밸리도 통제해... 학교 내 스마트폰 전면 금지 추진"

▲답변하는 안민석 당선인마이크를 잡은 안 당선인이 교내 스마트폰 문제와 관련해 '폰 프리 스쿨' 정책의 필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 고양e뉴스
디지털 기기 노출 부작용에 대해서는 '폰 프리 스쿨(Phone Free School)'이라는 강력한 대책을 내놓았다.
안 당선인은 "실리콘 밸리에 있는 학교들은 스마트폰을 고등학교까지 못 쓰게 한다"며, 첨단 기술의 본고장에서도 교육적 목적으로 기기 사용을 엄격히 통제하고 있음을 강조했다. 그는 2014년 국가인권위원회가 스마트폰 수거를 학생 인권 침해로 판단했던 것이 학교 현장의 무방비 상태를 초래했다고 지적했다.
이에 안 당선인은 "스마트폰을 강제하면 안 되고 폰 프리스쿨을 만든다. 초등학교부터 고등학교까지 스마트폰 사용하지 않는 학교를 만든다"고 명확히 밝혔다. 당장 강제하기보다는 2학기 동안 학부모와 교사, 학생들을 대상으로 스마트폰의 유해성에 대한 사회적 공론화 과정을 거친 뒤, 학생 자치회의 자율적 결의를 통해 내년 1학기부터 본격 시행하겠다는 구체적인 로드맵도 제시했다.

▲'쓰리 백' 공약을 설명하는 당선인자기주도학습센터, 수영장, 오케스트라를 각각 100개씩 조성하겠다는 구상을 설명하고 있다. ⓒ 고양e뉴스
더불어 안 당선인은 방과 후 체육관 개방을 7월부터 전면 실시하겠다고 약속했다. 또한, 학부모 단체의 활동 보장과 관련해 "학부모들은 동원 대상이 아니다"라며 "학부모 단체는 지원은 하되 간섭은 하지 말아야 된다"고 강조, 학부모를 교육의 진정한 동반자로 대우하겠다는 철학을 밝혔다.
이날 안 당선인은 고양시에 이어 파주 지역에서도 경청투어를 진행했으며, 향후 취합된 현장의 의견들은 '경기교육대전환'을 위한 세부 정책 수립에 반영될 예정이다.
덧붙이는 글 | 기자가 현장에서 지켜본 100분 남짓의 시간 동안, 학부모들의 질문은 정제되어 있었고 절실했다. 교육 행정의 '공급자 중심' 관행이 현장에서 얼마나 많은 비상식과 불편을 만들어내고 있는지 적나라하게 드러난 자리였다. "교육감의 기득권을 내려놓겠다"며 인사권 이양과 스마트폰 금지 등 예민한 이슈를 정면 돌파하겠다는 당선인의 약속은 무척 파격적이었다. 그 파격이 선언에 그치지 않고, 얽히고설킨 교육 현장의 규제와 갈등을 풀어내는 실질적인 제도로 안착할 수 있을지 언론과 시민의 지속적인 감시가 필요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