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학교 현장에는 AI라는 말이 빠르게 들어오고 있다. 수업 도구, 행정 지원, 맞춤형 학습, 디지털 역량 같은 표현도 함께 따라온다. 그러나 도구의 도입 속도만큼 교육의 방향에 대한 질문이 충분히 오가고 있는지는 돌아봐야 한다.
인공지능이 질문에 답하고, 글을 요약하고, 그림을 만들고, 과제의 초안까지 써주는 시대가 되었다. 그렇다면 학교에서 말하는 '학력'은 여전히 같은 의미일까. 더 많이 외우고 더 빨리 풀어내는 힘만으로 공부를 설명할 수 있을까.
6월 11일 충청남도교육청교육연수원 대강당에서 열린 '2026 상반기 충남교육정책마당'은 이 질문을 정면으로 다뤘다. 이날 주제는 'AI 시대에 학력, 공부란 무엇인가'였다. 김영민 서울대학교 정치외교학부 교수의 기조 발제와 현장 교사들의 질문은 AI 활용법을 넘어, 공부와 성장, 교사의 역할을 다시 묻는 자리로 이어졌다.
AI가 글을 고치는 장면 앞에서, 교사의 역할을 다시 묻다

▲2026 상반기 충남교육정책마당 행사장 입구와 등록대에 놓인 안내 포스터와 도서. ⓒ 송민규
강연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장면은 AI와 인간의 글쓰기 첨삭을 비교한 부분이었다. 김 교수는 한 편의 글을 두고 AI가 제시한 첨삭과 자신이 직접 한 첨삭을 차례로 보여주었다. AI는 문장의 위치, 감정 전달, 소재 배치까지 꽤 정교하게 짚어냈다. "좋은 문장은 좋은 위치에 있어야 한다"는 식의 코멘트는 글의 구조를 제법 정확히 파악하고 있었다.
그 장면은 불편할 만큼 선명했다. AI가 학생의 글을 고쳐줄 수 있다면, 교사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 김 교수는 이 문제를 피하지 않았다. 그는 "교육 패러다임이 완전히 바뀌고 있다. 문제는 벌어졌는데, 현재로서는 답이 없다"고 말했다. 이 말은 AI 시대 교육 논의의 출발점처럼 들렸다. 이미 변화는 시작되었고, 학교는 그 한가운데 서 있다.
글을 고치는 일과 사람을 성장시키는 일
그럼에도 AI와 인간 교사의 첨삭은 같지 않았다. AI의 첨삭이 글의 문제점을 빠르게 짚는 데 강점을 보였다면, 김 교수의 첨삭은 글의 구조와 리듬, 앞으로 글쓴이가 성장할 방향까지 함께 바라보고 있었다. 그는 한 편의 글을 두고 결과물을 더 낫게 만들 것인지, 아니면 글을 쓰는 사람이 앞으로 더 잘 쓰도록 도울 것인지 고민해야 한다고 했다.
이 대목에서 교사의 역할은 더 분명해졌다. 교사는 학생이 어디에서 멈춰 있는지, 어떤 방식으로 자기 생각을 만들어가고 있는지를 관계 속에서 살핀다. 정답과 피드백을 제공하는 일을 넘어, 학생이 자기 생각을 조직하고 다음 질문으로 나아가도록 돕는 일이 교육의 핵심에 놓여 있다.
김 교수는 춘향전과 한시의 전통도 예로 들었다. 과거의 글쓰기는 표현 기술을 넘어 신분과 교양, 인간형을 드러내는 방식이었다. 시대마다 좋은 글쓰기의 기준은 달라졌고, 그 기준 속에는 그 사회가 바라는 인간상이 담겨 있었다. 그래서 그는 "어떤 글쓰기를 가르칠 것인가는 어떤 인간을 기르고, 어떤 사회를 만들 것인가와 연결된다"고 말했다. 이 말은 AI 시대 글쓰기 교육에도 이어진다. 필요한 것은 사용 여부를 가르는 규칙만이 아니라, AI 시대 글쓰기 교육이 무엇을 목표로 삼을 것인가에 대한 교육과정의 철학이다. 글쓰기는 자기 생각을 조직하고 타인의 세계를 이해하며 자기 세계를 형성하는 공부가 되어야 한다.
김 교수는 공부를 취업이나 시험 준비와 분리해 말하지 않았다. 먹고사는 문제와 연결된 공부의 현실을 인정하면서도, 공부의 의미를 거기에만 가두지 않았다. 그는 교육을 통해 사람이 조금이라도 바뀔 수 있다는 믿음을 강조했다. 강연 후반부에는 클로즈업된 이미지가 점점 뒤로 물러나며 더 큰 풍경의 일부로 드러나는 장면을 보여주었다. 처음에는 닭처럼 보였던 대상이 장난감, 화보, 광고, TV 화면의 일부로 이어졌다. 성장은 눈앞의 일부에서 벗어나 더 큰 맥락을 보는 일이고, 공부도 결국 자신이 보는 세계를 넓혀가는 과정이다.

▲김영민 서울대 교수가 ‘AI 시대의 공부’를 주제로 기조 발제를 하고 있다. ⓒ 송민규
현장의 질문, AI 시대 학력을 다시 세우다
강연 후 이어진 질문에서도 현장의 고민은 분명했다. 한 교사는 학교에 AI가 등장하면서 과제를 낼 때 AI 사용을 금지해야 하는지, 어떻게 활용하게 해야 하는지 혼란이 크다고 말했다. 또 AI가 하지 못하는 것은 생각의 단계를 뛰어넘게 하는 지도이며, 학생이 어떤 일을 '도와주는 일'이 아니라 '내 일'로 받아들이게 하는 마음의 변화가 중요하다고 짚었다.
이 질문은 AI 시대 학교의 실제 고민을 잘 보여준다. 문제는 AI 사용을 금지할 것인가 허용할 것인가에만 있지 않다. 학생이 AI를 통해 공부를 쉽게 빠져나가는지, 아니면 더 깊이 생각하게 되는지가 핵심이다. 기술은 이미 교실 문턱을 넘어왔다. 이제 학교는 기술을 막는 방식이 아니라, 기술과 함께 공부가 일어나게 하는 조건을 고민해야 한다.
김 교수는 앞으로의 교육을 퍼스널 트레이닝에 비유했다. 혼자 운동할 수도 있지만, 몸을 제대로 바꾸려면 자신의 상태를 보고 자세를 교정해주는 사람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공부도 마찬가지다. AI는 정보를 제공할 수 있지만 의지력을 주지는 못한다. 학생의 상태를 살피고, 다시 시도하게 만들고, 함께 버티게 하는 일은 여전히 사람과 사람 사이의 상호작용 속에서 일어난다.
AI 시대의 학력은 인공지능 활용 능력을 강조하는 것만으로 충분하지 않다. 많이 아는 힘도 여전히 필요하지만 그 지식을 바탕으로 정보를 읽고, 의심하고, 맥락을 파악하고, 자기 언어로 다시 구성하며, 타인과 함께 생각을 넓히는 힘이 학력의 중요한 내용이 되어야 한다. AI 교육이 도구 사용법에 머문다면, 학교는 새로운 기술을 들여놓고도 오래된 학력관을 반복하게 된다.
AI가 답을 주는 시대일수록 학교는 답을 다루는 태도를 가르쳐야 한다. 아이들은 답을 의심하고, 다시 묻고, 자기 세계를 만들어가는 경험을 해야 한다. 어쩌면 AI 시대의 공부는 더 많은 정답을 갖는 일보다, 더 나은 질문을 품고 끝까지 생각해보는 일에서 시작된다.
덧붙이는 글 | 현직 교사로서 학생들이 생성형 인공지능을 매우 익숙하고 빈번하게 활용하는 모습을 교실에서 직접 보고 있습니다. 필자는 충남융합과학연구회 회장으로 활동하며 STEAM 수업, 실생활 융합형 수업, 인공지능 활용 수업을 꾸준히 실천해왔고, 이 글은 그 경험과 고민을 바탕으로 기사를 작성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