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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순한 동물 소개를 넘어 현장에서 동물을 마주하는 수의사의 시각으로 멸종의 원인과 생태계의 유기적 관계를 분석합니다. 이미 사라진 동물의 '부재'를 통해 현재 위기종을 향한 '보호 의지'를 되돌아보고 성공적인 종 보전 프로젝트 사례와 일상 속 실천법을 공유합니다.
 1938년 네덜란드 자연학자 안드리스 후거베르프가 인도네시아 자바섬 서쪽 끝에 있는 우중쿨론국립공원에서 촬영한 자바호랑이.
1938년 네덜란드 자연학자 안드리스 후거베르프가 인도네시아 자바섬 서쪽 끝에 있는 우중쿨론국립공원에서 촬영한 자바호랑이. ⓒ 위키미디어 공용

1980년대 인도네시아 자바섬. 숨을 거둔 호랑이 한 마리의 사체가 발견되었다. 밀림을 호령하던 맹수의 마지막 모습이라고는 믿기지 않을 만큼 앙상하고 비참했다. 학자들이 굶어 죽은 이 호랑이의 사체를 해부했을 때, 사람들은 참담함을 금치 못했다. 제왕의 텅 빈 뱃속에서 나온 것이라곤 고작 뱀 한 마리와 딱정벌레 두 마리가 전부였기 때문이다. 이 비극적인 죽음은 단순한 자연의 도태가 아니었다. 인간의 끝없는 탐욕이 빚어낸 대학살의 결과이자, 수백만 년을 이어온 한 종(種)의 완전한 소멸을 의미했다.

자바호랑이는 인도네시아 자바섬에만 서식하던 고유 아종이었다. 발리호랑이 다음으로 덩치가 작았던 이들은 따뜻한 지방에 살거나 섬에 고립될수록 덩치가 작아지는 '섬 왜소증'의 대표적인 사례였다. 수컷의 무게는 100~140kg 남짓으로 보통 180~200kg 가 나가는 다른 호랑이에 비해 작았지만, 초식동물의 뼈를 가볍게 부러뜨릴 만큼 강력한 힘을 지닌 생태계의 절대 강자였다. 뺨과 귀 안쪽에 난 긴 털, 유난히 촘촘하고 얇은 줄무늬는 자바호랑이만의 아름다운 상징이었다.

하지만 이 아름다운 맹수의 불행은 서구열강의 침략과 함께 시작되었다. 네덜란드 지배 시기 커피와 고무를 얻기 위해 거대한 플랜테이션 농장을 세웠고, 숲에서 쫓겨난 원주민들은 더 깊은 밀림으로 들어가 화전을 일궈야 했다. 20세기 초 2800만 명이던 자바섬 인구가 1970년대 8500만 명으로 폭발적으로 증가하면서 울창했던 원시림은 무참히 베어져 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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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이 파괴되자 호랑이의 주식이었던 루사사슴과 반텡(야생 들소), 공작들이 먼저 자취를 감췄다. 설상가상으로 인간들의 무분별한 맹수 수렵까지 이어지며 자바호랑이의 씨가 말랐다. 제2차 세계대전과 인도네시아 독립전쟁이라는 인간들의 핏빛 다툼 속에서 동물원에 남은 개체들마저 굶어 죽거나 군인들의 총탄에 쓰러졌다. 결국 먹이도 잃고 집도 잃은 최후의 호랑이들은 밀림의 바닥을 기어다니는 딱정벌레로 허기를 달래다 서서히 굶어 죽고 말았다.

공식적으로 자바호랑이는 1980년대에 멸종된 것으로 선언되었다. 그러나 40여 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자바섬 일대에서는 맹수의 흔적이나 발자국을 봤다는 목격담이 끊이지 않는다. 2017년에는 국립공원에서 촬영된 표범 사진이 자바호랑이로 오인되어 세상을 떠들썩하게 했고, 최근에는 채취된 체모의 DNA를 둘러싼 학계의 진실 공방까지 벌어졌다.

왜 사람들은 이토록 멸종된 호랑이의 환영을 좇는 것일까. 그것은 인간의 이기심으로 한 생명을 지구상에서 지워버렸다는 무의식적인 죄책감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이미 서식지의 70%가 파괴되어 버린 자바섬에 설령 호랑이가 살아있다 한들, 제2의 '딱정벌레를 먹는 호랑이'를 만들어내는 비극의 반복일 뿐이다.

시베리아호랑이의 슬픈 생존 방식

열대 밀림에서 한 종이 쓸쓸히 스러져갔다면, 유라시아 대륙 북방의 매서운 눈보라 속에서는 또 다른 제왕이 인간과의 처절한 사투를 벌이고 있다. 바로 우리에게 '백두산호랑이' 혹은 '한국호랑이'로 친숙한 시베리아호랑이다. 추운 지방일수록 몸집이 커진다는 '베르그만의 법칙'에 따라 수컷의 체중이 평균 200kg, 최대 350kg에 육박하는 현존 고양잇과 최대 맹수다.

이들은 혹한에 적응하기 위해 배와 옆구리에 두터운 지방층을 지녔고, 타 아종에 비해 옅은 털빛과 넓은 간격의 줄무늬를 가졌다. 시베리아호랑이는 멧돼지나 사슴 같은 발굽동물을 사냥하기 위해 수컷 한 마리당 최대 1000㎢(서울 면적의 약 1.6배)에 달하는 광활한 영역을 홀로 지배해야만 생존할 수 있다.

하지만 이 위대한 영혼들 역시 밀렵과 서식지 파괴로 심각한 멸종 위기에 처해 있다. 흥미롭고도 비극적인 사실은, 수십 년간 인간의 무자비한 밀렵을 경험하며 살아남은 시베리아호랑이가 동남아시아의 호랑이와는 전혀 다른 슬픈 생존 방식을 터득했다는 점이다.

이들은 살기 위해 사람과 인공 구조물을 극도로 회피한다. 시베리아호랑이는 총의 쇠붙이 냄새를 맡고 숲을 걷는 일반인과 자신을 노리는 사냥꾼을 구별해 낸다. 심지어 팽팽한 줄을 건드리면 발사되는 무인총이나 카메라 트랩을 발견하면, 그 앞을 지나가지 않고 기계 뒤로 조용히 돌아가 금속 냄새가 나지 않는 플라스틱 센서나 렌즈를 앞발로 박살 내버린다고 한다.

이들을 지키기 위한 인간의 숭고한 희생과 눈물겨운 노력도 있었다. 1940년대 러시아의 동물학자 레프 게오르기예비치 카플라노프는 호랑이의 흔적이 사라지고 늑대만 늘어나는 생태계의 불균형을 감지했다. 그는 직접 눈밭을 뒤지며 우수리 지역의 호랑이가 30마리도 남지 않았음을 밝혀내고 멸종을 경고하다 32세의 젊은 나이에 밀렵꾼의 총에 맞아 숨졌다. 그의 피 묻은 희생 이후 소련은 밀렵 금지법을 제정했고, 그 덕분에 오늘날 러시아와 중국 접경 지역에 야생 시베리아호랑이가 300~500여 마리나마 명맥을 유지하게 되었다.

최근 러시아에서는 동상에 걸려 꼬리가 잘린 채 탈진 상태로 구조된 새끼 호랑이 '신데렐라'가 재활 센터의 훈련을 거쳐 야생으로 돌아간 뒤, 성공적으로 새끼를 낳아 기르는 모습이 확인되었다. 이는 서식지 보존과 야생 방사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증명하는 벅찬 기적이다.

가장 처절하고도 생생한 고발장

 서울동물원의 아기 시베리아호랑이
서울동물원의 아기 시베리아호랑이 ⓒ 이하늬

그렇다면 대한민국의 현실은 어떠한가. 야생 상태의 시베리아호랑이는 남한에서 이미 1996년에 공식적으로 멸절되었다. 이후 산림청이 '한반도 호랑이 복원'을 명분으로 1990년대부터 중국에서 호랑이들을 들여왔지만, 이는 생태계 복원과는 거리가 먼 행정 편의주의적 전시 행정에 불과했다. 제대로 된 사육 환경조차 갖추지 못한 채 이리저리 옮겨지던 호랑이 '금강이'는 백두대간수목원으로 이송된 지 9일 만에 스트레스와 질병으로 폐사하는 참사를 겪었다.

우리가 호랑이를 들여온 중국의 국영 시설 '동북호림원'의 실태는 더욱 참담하다. 종 보전이라는 거창한 명분 뒤에 1000마리 넘는 호랑이를 좁은 구역에 밀집 사육하며, 관람객을 위한 동물 공연을 벌이고 있다. 심지어 벵골호랑이와 인위적으로 교잡해 백호를 생산하거나, 과거 호랑이 뼈를 밀거래하여 자금을 조달하려 했던 정황까지 드러나 국제 동물보호단체의 거센 지탄을 받고 있다.

이처럼 혈통이 섞인 개체들을 철창 안에 가두고 인위적으로 숫자만 늘려 인간의 구경거리로 전락시키는 것은 결코 '보전'이나 '복원'이 아니다. 진정한 생태계 복원은 야생동물이 스스로 사냥하며 광활한 영토를 거닐 수 있는 서식지, 즉 자연 생태계 그 자체를 온전히 지켜주는 것에서 출발해야 한다.

호랑이와 같은 최상위 포식자는 생태계의 균형을 유지하는 '우산종(Umbrella species)'이다. 호랑이가 살 수 있는 넓은 숲과 다양한 먹잇감이 보장되어야만, 그 아래에 있는 수많은 동식물과 곤충, 토양의 미생물까지 안전하게 살아갈 수 있다. 우산이 찢어지면 그 아래에서 모두 비를 맞듯, 호랑이가 사라진 숲은 결국 도미노처럼 무너져 내린다.

딱정벌레로 주린 배를 채우다 죽어간 자바호랑이의 텅 빈 위장, 그리고 쇠붙이 냄새만 맡아도 기계를 부수고 숨어버리는 시베리아호랑이의 본능적인 공포. 이 두 가지 뼈아픈 현실은 인간의 브레이크 없는 탐욕과 개발 지상주의를 향한 가장 처절하고도 생생한 고발장이다. 자연은 인간의 무한한 경제 성장과 확장을 위해 언제든 밀어버리고 착취할 수 있는 존재가 아니다. 한 번 일어난 멸종은 과학기술로도 결코 되돌릴 수 없다.

우리가 자바호랑이의 비극을 뼈저리게 반성하고, 지금 우리 곁에 간신히 살아 숨 쉬는 시베리아호랑이의 숲을 끝내 지켜내지 못한다면 어떻게 될까. 생태계의 정점이 무너진 지구에서, 언젠가 자연이라는 거대한 생태계로부터 완전히 고립되어 가장 끔찍하고 차가운 최후를 맞이할 다음 멸종 대상은 바로 우리 인간 자신이 될지도 모른다.

#멸종위기동물#동물보호#환경보호#호랑이#야생동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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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하늬의 멸종위기동물

이하늬 (hany0806) 내방

멸종위기 야생동물을 진료하는 수의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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