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철원역사문화공원과 거리 풍경 ⓒ 이혁진
조선노동당사 앞에 들어선 '철원역사문화공원'
지난 주말 10년 만에 강원도 철원을 찾았다. 그런데 웬걸 철원의 예전 모습이 아니었다. 조선노동당 당사는 그대로지만 건물 앞에 드넓은 '철원역사문화공원'이 들어섰다.
먼저 조선노동당 당사를 한 바퀴 돌았다. 벌판에 우뚝 선 3층 당사는 크게 변한 게 없었다. 당사 지킴이에게 물어보니 러시아풍 콘크리트 건물이 무너지지 않도록 5년에 한 번 보존과 수리작업을 한 덕분이다. 탱크 바퀴로 부서진 당사 앞 계단과 건물 벽 포탄 자국이 전쟁 당시 그대로 선명하게 살아있다.

▲조선노동당사 앞 계단에 탱크 바퀴 자국이 선명하다. ⓒ 이혁진
해방 후 지어진 조선노동당 당사는 철원의 규모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일제 강점기부터 한반도 중심 교통요충지로서 경제적으로 발전을 거듭한 곳이다. 당시 철원은 북한에 속했다가 6.25 전쟁으로 수복됐다. 이를 두고 북한 김일성은 매우 아쉬워했다고 전해진다. 부친 고향인 개성과 개풍이 전쟁으로 북에 넘어가며 '미수복지역'으로 남은 것과 반대다. 실향민으로서 필자는 미수복 고향을 밟지 못하는 대신 철원에서 귀향의 한을 달래는 셈이다.
철원은 6.25 전쟁을 맞아 전환을 맞는다. '백마고지'를 탈환함으로써 수복했지만 대부분 지역이 군사분계선과 민통선 안에 있어 발전에 한계가 있었다. 철원역사문화공원은 철원의 근현대사를 재조명하는 시설로 분단과 전쟁의 상흔과 기억에만 머물 수 없다는 의지의 산물이다.

▲1930년대 철원에 있던 일본식 여관을 재현했다. ⓒ 이혁진

▲1930년대 금강산 관광객이 묵었던 철원 여관 내부, 온천을 갖췄다. ⓒ 이혁진
철원역은 공원에서 가장 규모가 크다. 해방 이전까지 경원선 구간의 중심역이고 금강산전기열차의 기착점이었다. 서울 사람들에게 금강산이 널리 알려지게 된 배경이다. 재현한 여관 안으로 들어갔다. 일본식 다다미방은 단출하면서 휴식을 취하기 안성맞춤이었다. 온천도 있어 지금으로 말하면 일류 호텔이다. 여관의 손님들은 서울의 돈 많은 사람들과 금강산 가는 학생 단체객들이었다.
1930년대 화려한 철원 시가의 각종 건물과 상점들이 옹기종기 자리한 역사공원은 어느 한 곳이라도 그냥 지나칠 수 없었다. 철원양장점은 서울 멋쟁이 못지않은 사람이 당시 철원에도 많았다는 걸 증거하고 있었다. 지난 추억들이어서 공원을 나오면서도 자꾸 뒤돌아보았다.
이제 철원에 가면 '궁예왕'을 참배해야 한다
한 발짝 더 나가 철원은 철원역사문화공원 옆에 '태봉국궁예왕역사공원'을 지난해 10월 개장했다. 승자의 기록 속에 묻힌 궁예의 서사를 통해 전통과 역사의 가치를 철원의 미래 자산으로 삼은 것이다. 따라서 철원은 멀리는 태봉국에서 가까이는 1930년대 철원의 번영을 재현하고 새로운 철원으로 재도약하고 있다.
신분증을 맡기고 민통선 넘어가 2시간 태봉국 역사공원을 관람했다. 남방한계선을 따라 철원 평야를 달리는 '태봉열차'는 과거 경원선 열차 같다. 북쪽으로 백마고지가 보인다. 열차에서 내려 궁예역사체험관을 둘러보고 궁예왕 영정 봉안관을 참배했다. 공원에 조성한 미니어처 태봉국과 철원도성만으로도 궁예왕의 꿈과 야망이 가늠됐다. 실제 철원도성 위치는 DMZ안에 있다.

▲태봉국궁예왕역사공원 ⓒ 이혁진

▲철원 민통선 안의 일제 강점기 농산물검사소 건물 ⓒ 이혁진

▲민통선 안 태봉국궁예왕역사공원을 운행하는 태봉열차 ⓒ 이혁진
궁예가 추구했던 태봉국은 당시로서는 개혁적인 사상에 그쳤지만 신분제약을 떠나 누구나 평등하다는 궁예 사상은 지금도 유효한 대목이다. 궁예왕 영정을 보며 아쉬움과 안타까움이 묻어났다.
태봉열차 귀로 중 근대문화유적센터에서 일제 강점 시 건물과 시설 흔적을 살폈다. 개인적으로 민통선에서 이렇게 긴 시간 머문 적은 처음이다. 탐방구역이 넓다 보니 관람객들은 위치추적기를 달았다. 하지만 탐방객들은 다른 관광지와 달리 차분하고 의미 있는 시간을 즐겼다.
철원의 주요 관광지는 매주 화요일 개방하지 않는다. 여행객들은 사전에 개방일을 확인하는 것이 좋겠다. 실향민으로서 오래전에 안보관광차 철원을 여러 번 찾았지만 지금의 변화를 감안하면 철원은 역사와 문화로 천지개벽 중이다. 조선노동당사 건물을 포함해 민통선까지 철원의 과거와 미래가 담겨있다.
동송에 사는 친구도 "이제 철원에 한탄강주상절리길 같은 자연유산만 있는 것이 아니다 "라고 강조했다. 친구말마따나 철원은 내 눈을 의심할 정도로 바뀌었다. 분단과 전쟁의 도시 철원은 민통선을 통제만 하던 시대를 탈피해 과감히 개방하고 여기에 역사와 문화를 입혀 새로운 도전과 성장을 모색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