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임실 운암면 학암리 마을 앞 운암강 수몰부지, 사진 상단에 운암강 높은 제방은 신평면으로 향하는 도로가 되었다. ⓒ 이완우
섬진강 상류 임실 운암면 학암리의 시루바위 아래는 옛날부터 이름난 낚시터였다. 지난 6월 중순, 수십 년 전 댐 건설 이전 자연스럽게 흐르던 강물의 초여름 풍경을 주민들은 기억하고 있었다. 기자는 강변 마을 학암리의 옛 이장이었던 이준환(81세)씨의 안내로 섬진강댐 수몰 지역의 여러 마을을 찾아 임도와 산길을 걸으며 역사문화 탐방을 하였다.
섬진강댐이 조성되기 이전 시기, 섬진강 상류인 이 지역 운암강은 강 건너 마을과 왕래가 어렵지 않은 가까운 거리였다. 학암리 마을 뒤 산쪽으로 애기업은재 옛길이 남아 있다. 이 고갯마루 날망(마루턱)에 지석묘로 마을 사람들이 알고 있는 큰 바위가 있다. 지면에 놓인 바위(가로 1.5m, 세로 2m) 위에 그보다 조금 작은 바위가 얹혀 있었다.
손완주(91세, 임실 운암면 학암리)씨에 의하면, 예전에 이 마을 학암리와 강 건너편 선거리 사람들이 이 지석묘 위에 얹힌 작은 바위를 자기 마을 방향으로 서로 돌려 놓기를 반복했다고. 작은 바위가 자기 마을 쪽을 향하면 재물이 모여들어 풍요로워진다고 믿었다고 한다.

▲임실 운암면 학암리 마을 뒤, 옛날 도로 옆 날망에 남아 있는 지석묘 ⓒ 이완우
학암리 동네 앞 도로는 원래 섬진강의 제방이었다. 이 제방을 따라 넓은 도로가 개설되고, 마을 앞에 삼거리 로터리가 들어섰다. 이웃 마을 선거리 강변 둔치에서 <YMCA 야구단> 영화를 촬영하던 때인 2002년 무렵에 도로 개설되었다고 기억한다(관련 기사 :
말 달리고 산천 헤매고, 전설 같은 '촬영지' 이야기).
학암리 마을과 도로 사이의 넓은 섬진강댐 수몰 부지에는 나무와 풀이 무성한 초원이 되었다. 예전에는 논이었던 지역인데 홍수가 지면 이 초원은 옥정호 호수가 된다고 한다. 손완주씨가 마을 앞 낮은 초원을 가리키며 말했다.
"예전에 홍수 질 때 이 마을 들녘에도 강물이 넘쳐서 들어찼어. 그때는 댐이 먹보(멍청이보)여서 물 조절이 제대로 안 됐지. 아, 저 위에 신평면 가덕리까지도 강물이 넘쳤으니까. 이제는 댐에 여수로를 만들어서 괜찮다고 하데."

▲선거리의 운암강 둔치 (옥정호 수몰부지) ⓒ 이완우
이준환씨는 학암리 마을 앞의 새로 낸 도로와 로터리 지역도 모두 하천 변 푸른 들녘의 논이었다고 했다. 홍수가 지면 논들은 모두 강물(옥정호)에 잠겼다. 2000년대 섬진강댐 정상화 사업 이전까지는 이곳 수몰 부지에 농사를 지었다.
학암리와 선거리 사이 섬진강에 선거교가 놓여 있다. 섬진강댐에서 이 선거교까지는 옥정호 감입곡류 호수 물길로 약 30km의 거리이다. 1965년 섬진강댐 완공으로 운암면 일대가 옥정호로 수몰된 이후, 학암리와 선거리를 오가던 옛 도로는 물에 잠기거나 하천 수위에 따라 통행이 빈번하게 차단되었다.
이준환씨에 의하면, 선거교가 놓이기 전에 섬진강 수위가 높아질 때 선거리 주민들이 운암면에 일을 보러 갈 때 뱃길이 아니면 멀리 돌아갔다고 한다. 선거리 마을에서 청웅면을 거쳐서 임실읍 관촌면 신평면 신덕면을 돌아서 운암면으로 갔다.
손을 뻗으면 닿을 듯 마주 보고 있는 선거리와 학암리였지만, 만수위의 강물은 두 마을을 서로 섬으로 만들었다. 지척의 학암리로 가기 위해 선거리 주민들은 면사무소로 갈 때와 마찬가지로 먼 길을 돌아가야 했다. 바로 앞의 이웃 마을이 면사무소 만큼 멀어졌던 시절이었다.
선거리에서 운암면 소재지인 상운암까지 직선거리로는 약 6km인데, 5개 면을 돌아서 가는 길은 수십 킬로미터의 길이었다. 선거교가 놓이고 학암리를 거쳐 죽치(대치)를 넘어가면 12km 길은 수십 년의 우회로를 다녔던 선거리 주민들에게 단절과 고립의 세월을 잊게 한 길이었다.
선거리 옛 선거초등학교 터에 태양광 발전 시설이 자리하고 있었다. 이 지역에서는 옥정호 붕어섬 앞의 입석리 잿말에 자리한 운암국민학교로 다녔다. 운암강을 건너 학암리 시루바위 아래의 강변 길을 따라 지천리 간좌터 마을에서 옥녀동천을 건너면 입석리 잿말의 학교였다.
1965년에 섬진강댐 완공을 앞두고, 1965년 3월에 선거리에 운암국민학교 선거분교가 문을 연 뒤 선거국민학교로 승격하였다. 이곳 어르신들은 '관립학교'라고 불렀다. 1994년 2월 말에 폐교하였고, 이후 소수의 학생들은 임실초등학교로 통학하게 되었다.
지천리의 수몰된 마을 터를 찾아가 보았다. 운암강변에 대나무숲이 남아 있었다. 이 마을의 집에 물이 마루까지 들어와서, 가까운 위쪽 높은 곳으로 마을이 옮겨갔다. 지천리 수몰된 강변의 산골 마을터에서 옥정호 붕어섬 출렁다리 주탑이 멀리서 보였다.

▲지천리 수몰 마을 터, 대나무 숲이 남아 있다. ⓒ 이완우

▲지천리 운암강변에서 옥정호 붕어섬 출렁다리 주탑이 보인다. ⓒ 이완우
임실군 운암면 지천리(지천마을)에서 청운리(거둔마을)를 연결하는 옥정호 순환 구간은 지난 2024년 11월 중순, 3.43km 길이의 간선임도 형태로 개통되었다. 1965년 섬진강댐이 준공되면서 두 마을은 인접해 있음에도 길이 끊겼던 곳이다. 그동안 주민들은 수십 킬로미터가 넘는 거리를 우회하거나 나룻배를 타고 호수를 왕래해야 했다.
지천리 산길에서 한영태(1878~1919) 3.1독립운동 열사의 옛 묘소터를 찾아보려 했으나, 안내하는 이준환씨가 나무와 풀이 너무 우거져 끝내 정확한 위치를 찾지 못했다. 이준환씨는 "이 부근에 큰 벚나무가 있어 봄이면 마을에서 가장 먼저 벚꽃이 피던 자리"라고 말했다.
한영태 열사는 젊은 시절 동학운동에 참여했고, 임실 지역의 3.1독립운동을 실질적으로 준비하고 주도한 천도교계 인물이다. 1919년 3월 9일에 옥중에서 순국한 것으로 알려진 임실의 대표적인 독립지사다.
길 위에서 옥정호 둘레길을 탐방 중이던 정미현(임실 신평면)씨와 최미라(임실 관촌면)씨를 만났다. 이준환씨는 둘레길 한편에서 이들과 함께 과거 한영태 열사의 제사를 지내던 옛 이야기를 나누었다.
"지천리 마을에서 묘소에 제사 지낼 제기와 제물을 지게에 지고 산을 기어올라 왔었지요. 상운암에서 운암면 면장과 이장단이 배를 타고 호수를 건너왔고요."
정미현씨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을 보탰다.
"이곳에 홀로 있던 한영태 열사의 묘역은 10여 년 전쯤 쌍암리 운암초등학교 앞으로 옮겼지요. 초등학교와 중학교 학생들이 학교에 오가며 늘 바라보는 곳이에요."

▲지천리 옥정호 둘레길에서 만난 최미라(임실 관촌면) 씨, 정미현(임실 신평면) 씨와 탐방 안내 이준환 씨 ⓒ 이완우
임실 운암면의 학암리를 출발하여 선거리와 지천리의 강변 마을을 찾아보고, 학암리로 돌아왔다. 운암강을 건너는 선거교에서 강변 풍경으로 시루바위가 눈에 들어왔다. 이준환씨가 다리 위에서 시루바위를 가리키며 말했다.
"떡을 찌는 '시루'를 엎어놓은 것 같다고 하여 시루바위(실바우)라 불렀다고 해요. 저 실바우 아래 길로 학생들이 학교에 다녔대요. 외지 사람들이 많이 찾는 낚시터였어요."
이곳 바위의 암벽은 경사도가 대략 80도에서 100도에 이른다. 45m의 깎아지른 절벽면에서 운암강의 수려한 강변 풍경을 바라보며 암벽을 오를 수 있는 장소이다. <월간 산> 등의 보도에 의하면, 1990년대에 임실 학암리 시루바위는 진안 마이산과 전주 삼천바위와 함께 전북 지역의 대표적인 자연 암벽 등반 훈련장으로 알려졌다.

▲임실 운암면 학암리 운암강변의 시루바위(실바우) 원경 ⓒ 이완우
학암리 시루바위와 선거리, 지천리의 강변 마을에는 물길이 바뀌기 전의 생활 흔적이 남아 있었다. 주민들의 기억과 현장에 남은 흔적은 수몰 이전 운암강변 마을의 모습을 전하고 있었다.
덧붙이는 글 | 섬진강은 이 강물이 흐르는 지역에 따라 부르는 백마강, 오원강, 운암강, 적성강과 순자강 등의 이름이 남아 있습니다. 섬진강댐이 축조된 임실군 옥정호 일대는 운암강이 흐르고 옥년동천과 추령천이 이 호수로 흘러들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