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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영국 : 산은 내 안에 있다> 서울시립미술관에서 10월 25일까지 열리는 전시
<유영국 : 산은 내 안에 있다>서울시립미술관에서 10월 25일까지 열리는 전시 ⓒ 은주연

지난 16일, 서울시립미술관 서소문 본관에서 열리고 있는 유영국 회고전 <유영국 : 산은 내 안에 있다>에 다녀왔다. 더운 날씨였지만 전시장을 찾는 사람들의 발걸음이 끊이지 않았다.

유영국의 그림을 처음 보았던 것은 2022년 여름이었다. 삼청동의 국제갤러리(유영국 20주기 기념전)에서 처음 본 유영국의 그림은 세련되고 감각적이었다. 인지도는 이중섭에 미치지 못했지만, 그래서 막 미술사를 공부하기 시작한 나에게 그는 '울진의 부잣집 아들' 정도로 기억되어 있었지만, 처음 접한 그의 그림은 그런 나의 선입견을 보기 좋게 깨뜨려버렸다.

첫 그림 앞에서 나는 멈칫할 수밖에 없었다. 곧바로 "와~" 하는 감탄이 나도 모르게 튀어나올 만큼. 그림의 스케일도 어마어마 했거니와 큰 캔버스를 가득 메운 물감의 양도 놀라웠다. 또한 도록에서는 절대 느낄 수 없었던 깊고 깊은 색감도 기대 이상이었다. 단언컨대, 추상화에 대한 나의 가냘픈 거부감은 그때 이후로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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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 듯 모를 듯 난해하기만 한 추상화가 이렇게 명쾌하게 감동을 줄 수 있구나. 그러면서 들었던 생각은 '역시 부자는 다르구나'라는 사실이었다. 어렵고 가난하던 시절, 동갑내기 이중섭은 은지화에 그림을 그릴 때, 유영국은 이렇게 큰 캔버스에 이렇게 많은 물감으로(유영국의 초기 그림은 거친 질감이 특징적이다) 그림을 그릴 수 있었다는 사실이 놀랍기만 했다.

그 이후 이번 서울시립미술관 전시에서 유영국의 그림을 다시 한번 만날 수 있었다. 이번에도 그 때 만큼의 감동을 느낄 수 있을까 했던 잠시의 우려는 역시 헛된 걱정이었다. 유영국 탄생 110주년을 맞은 이번 전시는 그의 시기별 그림 뿐 아니라 다큐멘터리까지 전달해 그야말로 유영국이라는 작가를 제대로 톺아볼 수 있는 기회였다.

"말이 없어 좋다."

유영국 전시 유영국이 사용하던 이젤과 의자
유영국 전시유영국이 사용하던 이젤과 의자 ⓒ 은주연

평소에 말이 없던 유영국이 추상을 선택한 이유라고 한다. 그는 인간의 모든 비극은 말에서 비롯되기에 시끄러운 세상 소음을 꺼버리고 고요를 담고 싶었다고 말했다. 유영국이 젊은 시절부터 이렇게 고요를 추구했던 것 같지는 않다. 열아홉살 도쿄의 예술학교 '문화학원'에 유학하던 시절의 유영국은 말그대로 자유로운 '모던보이'처럼 보였으니 말이다.

그러나 유학을 떠난 지 8년 만인 1943년, 일본에서 더 이상 자유롭게 그림을 그릴 수 없게된 그는 고향 울진에 돌아와 사업가로 전향하는 듯 했다. 김환기의 연락을 받고 서울에서 다시 그림 생활을 시작하지만, 한국 전쟁으로 다시 울진에 내려오게 된다.

생계를 위해 다시 사업가가 된 그는 양조장을 열어 부를 쌓게 된다. 사업 수완이 남달랐던 유영국의 양조 사업은 대성공을 거두게 되지만, 1955년, 그의 나이 마흔에 "금산도 싫고 금밭도 싫고 나는 그림이 좋다"며 서울로 올라와 다시 그림을 그리게 된다. 만약 유영국이 그때 그림을 선택하지 않았더라면 우리는 아마 '망향소주'(당시 유영국이 만든 소주 이름)를 마시고 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유영국은 48세에 첫 개인전을 가졌고, 그 이후로 단체 활동과 그룹전 활동을 전면 중단하고 작업실에서 그림만 그리는 삶을 살게 된다. 그의 아내 고 김기순 여사에 따르면 "전쟁 겪느라, 어부하느라 남들보다 잃어버린 시간이 너무 많다"며 그 시간을 메우려는 듯 아침 8시부터 저녁이 될 때까지 종일 작업실에서 그림을 그리는 생활을 평생 지속했다고 한다.

유영국의 그림 작은 그림들도 전시되어있다
유영국의 그림작은 그림들도 전시되어있다 ⓒ 은주연

1977년 심장박동기를 달았고, 8번의 뇌출혈로 평생 입원만 37번을 하면서도 끝내 손에서 붓을 놓지 않았던 화가. 그렇게 고요하게 그림을 그리던 유영국이 평생을 그리던 '산'은 유영국에게 무엇이었을까. "산이 있어 거기 간다"는 등반가들의 명언처럼 유영국에게도 산은 어떤 목표나 성취가 아니라 숙명 같은 것이었을까.

50여 년간 반복되는 작업, 기쁨이자 고통이었을 그 작업을 통해 유영국이 만들어낸 고유한 조형 언어는 마지막 그림을 통해 가장 단순한 삼각의 산의 모습으로 그 여정을 마무리하게 된다. 거대한 캔버스 속 그가 남긴 단순한 선과 면의 조화 앞에 서서, 나는 잠시 그 산의 메아리에 귀를 기울여 보았다.

한편, 무료로 진행되는 이번 전시는 오는 10월 25일까지 계속된다.

유영국 유영국의 파란 색감이 시원하다
유영국유영국의 파란 색감이 시원하다 ⓒ 은주연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기자의 브런치에도 실립니다.


#유영국#산은내안에있다#추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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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읽고 글쓰는 일을 좋아합니다. 따뜻한 사회가 되는 일에 관심이 많고 따뜻한 소통을 좋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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