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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시절 엄마는 해마다 봄이면 마당에 상추씨를 뿌렸다. 점심때면 엄마는 내게 말했다.

"숙아, 마당에서 상추 따와라. 된장에 쌈 싸 먹게."

나는 상춧잎이 찢어질까 봐 살살 돌려 땄다. 엄마는 이파리가 하나도 상하지 않았다며 칭찬해 주었다. 점심때 반찬이 마땅치 않으면 엄마는 꼭 내게 상추를 따오라 했고 나는 늘 상춧잎이 상처 입지 않도록 최선을 다했다. 엄마의 칭찬을 들으며 먹는 상추쌈은 그렇게 맛날 수가 없었다. 엄마는 잠이 안 올 때는 상추가 최고라며 상춧잎을 잘 따오는 나를 예뻐했다.

올봄 분양받은 텃밭에서 상추를 솎아 내느라 손끝이 새카매졌다. 그런데 상추를 돌려 딸 때 나오는 하얀 진액이 숙면에 도움이 된다는 엄마 얘기처럼 저녁에 상추쌈을 먹은 날은 다른 날보다 잠을 더 잘 자는 것 같다. 텃밭에 오가며 걷고 밭에서 쌈 거리를 솎고 풀을 뽑으며 땀을 내서 그런 것인지 상추 때문인지 정확한 이유는 알 수 없지만 잠을 잘 자게 된 것은 사실이다.

기다려도 기다려도 소식이 없더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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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상추 모종을 심던 날, 고랑을 파고 집에 있던 묵은 씨앗을 심었다. 한 달을 기다려도 싹이 날 기미가 보이지 않아서 아쉬운 마음에 남편이랑 시장에 가서 고추와 가지, 파프리카 모종을 사다 심었다. 그런데 이 묵은 씨앗들이 늦게 철들었는지 늦게서야 싹이 텄다. 하도 여러 가지 씨앗을 뿌려 처음엔 긴가민가했는데 본잎이 자라면서 본색을 드러냈다. 무순이었다. 그리고 또 한쪽에는 당근잎이 푸릇푸릇 돋아났다.

세상에 늦게 나온 새싹들은 무엇이 그리 급한지, 하루가 다르게 쑥쑥 컸다. 일부는 솎아서 상추랑 같이 밥에 넣고 비빔밥을 해 먹었다. 남은 녀석들은 땅에 자리를 잘 잡았는지 잎이 무성해졌다. 김장철 무에 달린 무청처럼 굵고 실하게 자라더니 옆에 심은 모종의 볕을 가릴 지경이었다. 가지도 고추도 무청 그늘에 가려 꽃도 열매도 맺지 못하고 있었다. 우리는 특별한 조처를 하기로 했다. 김장 준비하는 것도 아니니 무가 다 클 때까지 기다리지 말고 뽑기로 했다.

다 자라지 않은 무를 뽑을 때는 왠지 미안했지만 다 뽑고 나니 고추와 가지, 파프리카 모종에 틈이 생겨 시원하니 보기 좋았다. 그리고 우리에겐 쌈 거리가 아닌 새로운 먹거리가 생겼다. 평소엔 잎채소만 가득했던 봉지에 무청이 실하게 달린 꼬마 무를 일곱 개나 캐오니 오히려 뿌듯했다.

텃밭에서 뽑은 무와 무청 고추와 가지가 열매를 맺지 못하는 것 같아 다 자라지 않은 무를 뽑아왔다.
텃밭에서 뽑은 무와 무청고추와 가지가 열매를 맺지 못하는 것 같아 다 자라지 않은 무를 뽑아왔다. ⓒ 김효숙

그런데 집에 오니 도대체 이 녀석들로 무얼 해 먹을지 고민이 되었다. 가을에 무를 캐고 겨우내 무청을 말려 시래기나물을 해 먹는 것만 알았던 나는 도움이 필요했다. 오늘도 스마트폰을 열고 구글 인공지능에 물어보았다. 바로 대답이 돌아왔다. 여름 무는 씁쓸한 맛이 있으니 심심한 무나물보다는 칼칼하게 조림을 하는 게 낫고, 무청은 질기지 않으니 살짝 삶아서 나물을 무치면 좋다고 했다.

골칫거리 무가 입맛 돋우는 반찬으로 탈바꿈하다

우선 아이 손을 움켜쥔 것처럼 조막만 한 무를 무청에서 잘라냈다. 칼로 싱크대에 물을 가득 받고 무를 씻은 다음 무청을 씻었다. 며칠 전에 비가 내려서인지 흙을 털어냈는데도 무청에서 흙과 모래게 계속 나왔다. 삶아서 다시 헹굴 심산에 흙이 약간 비치지만 네 번 헹구고 채반에 밭쳐 놓았다.

큰 냄비에 무청 삶기 무청의 숨이 죽도록 앞뒤로 돌려가며 삶는다.
큰 냄비에 무청 삶기무청의 숨이 죽도록 앞뒤로 돌려가며 삶는다. ⓒ 김효숙

커다란 냄비에 무청이 잠길 만큼 물을 붓고 소금을 넣은 다음 물을 끓인다. 무청을 넣어 숨이 죽도록 앞뒤로 뒤집어 주며 끓인다. 말린 무청은 한 시간 이상 끓여서 반나절을 불려야 하지만 금방 뽑은 생무청은 끓고 나서 5분 정도 두었다가 불을 끄고 30분 정도 불리면 충분하다. 찬물에 헹구고 물을 꼭 짠 뒤에 먹기 좋은 크기로 썬다.

삶은 무청을 반으로 나누었다. 한쪽은 내가 좋아하는 된장으로 무치고 다른 한쪽은 식구들이 좋아하는 참치액과 들기름으로 무치기로 했다.

생무청나물 된장 무침과 참치액 들기름 무침
생무청나물된장 무침과 참치액 들기름 무침 ⓒ 김효숙

<생무청 된장무침 재료>

삶은 무청 4줌
된장 2 큰 술
고추장 1/2 큰 술(고추장은 취향에 따라 빼도 된다. 된장 양을 늘리면 된다.)
다진 마늘 1 큰 술
잘게 썬 대파 1 큰 술
매실청이나 갈색 원당 1작은 술
참기름
통깨나 깨소금 약간

삶아 놓은 무청을 그릇에 담고 된장과 고추장을 취향에 따라 가감하고 마늘과 파를 넣는다. 매실청이나 원당으로 단맛을 살짝 더해주면 된장의 텁텁함이 줄고 감칠맛이 깊어진다. 된장을 좋아하지 않으면 참치액이나 굴소스로 기본 간을 하고 들기름을 한 스푼 정도 넣어도 맛깔스러운 무청 나물이 된다.

나는 두 가지 방법으로 다 무쳤더니 골라 먹는 재미가 쏠쏠했다. 시래기만 먹다가 생무청으로 나물을 무치니 생경하면서도 풋풋한 냄새가 나쁘지 않았다. 간단하면서도 입맛을 돋우는 반찬이 두 개나 생겨 좋았다.

여름 무조림

이제 꼬마 무로 칼칼한 무조림을 할 시간이다. 깨끗하게 씻은 꼬마 무 일곱 개를 1.5 센티미터 두께로 썰어 소금과 올리고당에 살짝 절인다. 한 시간 정도 지나니 물기가 빠지고 간이 적당하게 밴다(무를 절이는 동안 생무청 나물을 하면 시간이 훨씬 줄어든다).

냄비에 썰어 놓은 무를 넣고, 표고버섯도 서너 개 곁들인다. 대파를 숭덩숭덩 썰어 넣고 고춧가루를 솔솔 뿌린다. 무가 잠길 정도로 물을 붓고 동전 모양 양념과 다시마를 넣고 끓인다. 강한 불로 팔팔 끓이다가 물이 졸아들면 다진 마늘을 넣고 국간장과 참치액 또는 굴소스로 간을 하면 끝이다.

꼬마 무 조림 여름 무를 두툼하게 썰어 표고버섯과 함께 간장에 졸여낸다.
꼬마 무 조림여름 무를 두툼하게 썰어 표고버섯과 함께 간장에 졸여낸다. ⓒ 김효숙

"오늘따라 반찬이 왜 이렇게 많지?"
"어제 밭에서 뽑은 무랑 무청이 큰 일을 했어요."

남편은 신기한 듯 무조림과 생무청 나물을 한참 바라보더니 젓가락을 들었다.

"이게 무조림이라고? 달큰하고 짭조름한 게 밥도둑이구먼. 이럴 줄 알았으면 무를 많이 심는 건데 그랬네."

남편은 무청 나물도 별미라고 말하면서도 젓가락은 계속 무조림으로 향했다. 딸은 참치액으로 양념한 무청 나물이 깔끔해서 좋다고 했다. 나는 역시 구수한 된장무침이 최고다. 저마다 입맛에 맞는 반찬이 생긴 것도 좋은데 우리 밭에서 난 거라는 사실에 다들 한몫했다며 뿌듯해 하니 식사 시간에 웃음이 끊이지 않았다.

이 맛에 허리가 아파도 땀이 쏟아져도 풀을 뽑고 무거운 물통을 나른다. 매번 아낌없이 내어주는 텃밭이 다음번에는 또 어떤 먹거리를 줄지 궁금하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카카오 브런치와 개인 블로그에도 실립니다.


#텃밭농사#여름무조림#생무청나물#상추돌려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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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신나게 텃밭에 가요

우리 모두는 푸른 지구에 기대어 살아갑니다. 함께 손잡고 살아갈 행복한 세상을 꿈꾸며 글을 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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