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둘째야, 너 월영교 기억나?"
"그게 뭔데?"
"안동 호수에 있는 긴 다리, 아빠랑 사진도 많이 찍었잖아."
"당연히 기억나지. 그런데 왜."
"그 다리가 사랑의 다리래. 사랑하는 사람들끼리 손 잡고 건너면 오래오래 잘 산대."
"그러면 아빠랑 나랑 손 잡고 걸어야겠네."

▲월영교는 '사랑의 다리'로 유명하다. 거기엔 깜짝 놀랄 사연이 숨어 있다. ⓒ 김대홍
2003년 4월 만들어진 월영교는 처음부터 화제였다. 2003년 5월 첫 주말에 월영교를 방문한 사람은 3만 여명. 5월 11일까지 16만명이 방문했다. 안동에서 가장 유명한 관광지는 당연히 하회마을로 같은 기간 28만 넘게 찾았다. 하회마을을 제외하면 도산서원, 병산서원, 민속박물관 등 다른 유명 관광지들보다 더 많은 사람이 월영교를 찾았다.
월영교는 이야기가 많았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긴 나무다리라는 타이틀이 눈길을 끌었다. 안동호를 가로지르는 길이 387m 다리는 누가 보더라도 멋있었다. 이름 또한 남달랐다. 안동은 1970년대 안동댐이 만들어지면서 수많은 수몰민들이 생겼다. 이때 떠난 수몰민이 수천 가구에 이르렀다.
월영대(月映臺)와 월곡면, 음달골은 댐 건설로 수몰된 지역이었다. 이들 이름에서 월영대란 이름을 지었다. 수몰민들의 아픔을 위로하겠다는 생각이 이름에 담겼다. 더불어 사랑 이야기가 더해졌다.
1998년 고성 이씨 문중 이응태(1556-1586) 무덤 이장시 관에서 뱃속 아기의 배냇저고리와 함께 미투리 한 켤레, 편지가 발견됐다. 편지는 절절했다.
"당신 늘 나에게 이르되, 둘이서 머리가 희어지도록 살다가 함께 죽자 하시더니, 어찌 나를 두고 당신 먼저 가십니까. 나와 자식은 누구한테 기대어 어떻게 살라고 다 버리고 당신 먼저 가시나요."
병에 걸린 남편을 위해 아내는 빨리 낫기를 바라며 자기 머리카락과 삼실을 섞어서 미투리(신발)을 만든다. 머리카락을 한올 한올 뽑아서 신발을 만들며 얼마나 기원하고 기원했을까. 유학 분위기가 강한 조선 시대라는 이미지에 비춰봤을 때 편지는 색달랐고 애틋했다. 아내의 기원에도 불구하고 남편은 31세에 세상을 떠난다.
KBS <역사스페셜>은 '조선판 사랑과 영혼'이라는 이름으로 이 사연을 소개했다. 내셔널 지오그래픽은 2007년 < Locks of Love >란 제목으로 이 사연을 다뤘다. 월영교 다리 디자인은 아내(원이 엄마)의 미투리를 모티브로 삼았다.
이로 인해 월영교는 '사랑의 다리'라는 닉네임을 얻었다. 사랑하는 사람들끼리 손을 같이 잡고 걸으면 오래오래 잘 산다는 이야기. 500여 년 전 사연이 더해지면서 이 새로운 다리는 곧바로 전설이 됐다.

▲월영교. 안동 명물로 방문객이 가장 많다. ⓒ 김대홍

▲월영교. ⓒ 김대홍
곧이어 큰 위기가 다가온다. 다리 한가운데 만든 팔각정이 기울어진 것. 안전진단 결과 해체와 보수가 불가피했다. '기울어짐 정도가 기준치의 2-3'(YTN, 2003.7.29.)라는 심각한 결과였다. 다리를 개방한지 불과 3개월 지난 뒤였다. 안동시는 부랴부랴 상황을 수습했다.
3년 뒤 또다른 문제가 발생했다. 월영교 난간과 바닥 부위가 썩고 있다는 소문이 들리기 시작한 것. 안동MBC가 이를 파기 시작했다(아래 내용은 한국기자협회에 2006년 12월 29일 실린 안동MBC 정동원 기자의 글에서 발췌) . 안동시 공무원들 또한 당황스러웠다. 다리 재질, 준공일 등 질문에 모두 "모른다"고 답변했다. 상판목재 개수에 대한 질문엔 신경질로 대응했다.
안동시 공무원들은 당연히(?) 취재에 소극적. 전문가들도 취재를 회피했다. 취재진이 안전진단을 직접 실시해서 사실관계를 파악하려면 용역비가 500만 원 가량이었다. 회사에선 지원해줄 수 없다는 답변. 해당 기자는 국립산림과학원 연구진들을 섭외해서 문제를 해결했다. '안동 월영교, 명물이 애물단지로'라는 안동MBC 기사는 그해 지역기획보도 방송부문을 수상했다. 순식간에 월영교는 명물에서 애물단지로 전락했다.
3년 사이에 두 번이나 큰 사고가 벌어지자 안동시도 이번엔 제대로 해야 했다. 또다시 문제가 불거지면 회복불능 상황에 처할 수 있었다. 수많은 사람들이 찾는 다리의 안전문제가 커지면 사람들은 더 이상 다리를 걷지 않을게 뻔했다. 2008년 안동시는 11억7000여 만 원을 들여 나무난간 400여개와 바닥 목재를 보수하고 다리입구 기둥 4곳을 더 튼튼하게 세웠다.
마침내 2008년 12월 보수공사를 마무리하고 2009년 1월 전면 개통했다. 오랜 기간이었다. 보수공사로 멈춘 분수가 재가동됐다. 2019년 안동호에 문보트가 나타나 월영교를 누볐다. 문보트는 초승달 모양으로 생긴 보트로 디자인 덕분에 처음부터 화제를 모았다.

▲문보트 멀리 월영교가 보인다. 월영교와 더불이 문보트 또한 안동 명물이 됐다. ⓒ 김대홍
월영교는 야간조명, 분수쇼, 문보트(Moonboat) 덕분에 SNS 포토존으로 인기를 끌었다. 2024년 한국문화관광연구원이 전국 2752개 주요 관광지점 입장객을 집계했다. 월영교는 봉정사(21만명), 도산서원(20만명), 만휴정(10만명) 등 수많은 인기관광지를 넘어서 68만명으로 1위를 차지했다.
"둘째야, 안동에서 제일 유명한 여행지가 어디일까?"
"나는 키즈카페."
"자 몇 가지 알려줄게. 하회마을, 도산서원, 월영교 중에서."
"나는 월영교."
"왜?"
"다른 데는 재미없어. 다리는 사진 찍기 좋잖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