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7일은 웬일인지 몸도 마음도 가뿐하고 무슨 일이든 더 해야 할 것 같은 기분이었다. 무심코 카카오톡을 보다가 '한길 동네 영화제'라는 프로그램을 보고 남편에게 물었다.
"당신 한길문고에서 영화 하는데 보러 가실 거야?"
"무슨 영화?"
"외국 영화."
영화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 남편이지만 싫지 않은 기색이다. 다행이다 싶어 행사를 주관하는 작가님에게 두 사람 참석이 가능한 지 물었다. 저녁 7시에 영화를 시작하기 때문에 주최 측에서 김밥을 준비해 놓았다는 알림이 떴다. 한길문고로 남편과 같이 발걸음 옮긴다. 걸어서 10분 정도 짧은 거리지만, 저녁 바람이 품고 있는 알지 못할 유혹에 이끌려 발걸음도 가볍게 걷는다.
거주지 가까이 이처럼 문화를 누리고 살 수 있는 공간이 있다는 사실에 늘 감사한다. 이날도 두 번째 방문이었다. 한길문고에서 문우들이 모여 글도 쓰고, 유명 작가님 강의도 듣고, 내가 출간한 책도 판매하는 곳이다. 나만의 아지트 같은 느낌은 혼자만의 생각은 아닐 것이다.
무슨 영화인지 아무 정보도 알지 못한 채, 영화를 보러 갔다. 한길 문고 내부 공부 공간은 다른 날과 달리 조명도 은은하고 반가운 얼굴들이 친구처럼 반갑게 맞아준다. 김밥을 먹으며 영화를 보다니, 생소하지만 특별한 느낌이 나쁘지 않다. 무슨 영화일까? 궁금한 마음에 영화에 집중하면서도 곁에 있는 남편을 한 번씩 바라본다. 말없이 화면에 집중하고 있는 남편, 아마 재미없을 것이다. 영화 보러 가자고 하니 호기심에 따라 나왔지만, 나와는 완전히 감성이 다른 성향의 남편이 좋아할 만한 영화는 아니다.
영화를 보면서도 자꾸 신경이 쓰인다. 조금 있다가 남편은 나에게 살짝 "나 먼저 집에 갈게"라고 말했다. 취향은 각자의 몫이니까. 남편에게 살짝 미안했다. 걱정을 내려놓고 영화에 집중한다. 영화를 보면서 잠시 후회 했다. 영화 줄거리라도 미리 알고 참여했더라면 영화 감상하는 재미가 더 했을 것을... <프란시스 하>는 서른 즈음에 꼭 보아야 할 인생 영화다.

▲프란시스가 거리를 달리는 모습. ⓒ 그린나래 미디어(주)
청춘이라는 나이로 살아간다는 것은 마냥 아름답고 행복하지만은 않다. 불안정하기 때문이다. 살면서 꼭 이루고 싶은 모든 것을 담아둔 바구니에서 하나 둘 꺼내어 버리는 시기이기 때문이다. 27살인 '프란시스'도 이 과정을 거친다.
영화는 손에 잡힐 듯 말 듯하던 꿈이 이룰 수 없는 꿈이라는 걸 알면서 좌절하고 또 견디며 다른 삶을 찾아가는 과정이다. 현실은 잔인하게 다가온다. 집이 없어 계속해서 다른 사람에게 기대며 불안정한 삶을 살아가는 사람, 이 영화의 계속해서 달라지는 그녀의 주소를 보여준다. 이루기 쉽지 않은 장애물이 존재하는 것이 우리의 삶이다. 살아있는 인생은 끊임 없는 도전의 연속이다. 방황하는 서른 즈음에 고난을 헤쳐 나가는 젊음을 바라보면 위안을 얻을 수 있다. 많은 여운을 남기는 영화였다.
이 영화가 특별하게 다가오는 이유가 있다. 나는 딸 넷을 낳았다. 그중 맏딸이 20대에 뉴욕으로 유학을 가서 지금까지 살고 있다. 딸은 넉넉하지 못한 생활비로 얼마나 힘들었을까. 영화 주인공이 꼭 딸 같다는 느낌이 들어 마음이 애잔했다.
딸이 살아왔던 그 시절, 세심한 감정까지 공감할 수 있어 내게는 특별한 영화였다. 매번 딸에게 안부를 물으면 "난, 괜찮아"라고 말했던 그 말이 되살아나 가슴이 먹먹했다. 힘들다고 말하면 부모님 마음 아플까 봐 그랬구나. 영화에서 '프란시스' 역시 부모님에게 안부 전화를 하면 "난 괜찮아"라고 했다. 우리 딸도 그랬구나. 지금은 결혼해서 뉴욕에서 안정된 직장과 두 아이를 교육시키며 잘 살고 있다. 치열하게 살아내야 했던 뉴욕이란 도시를 생각한다. 뉴욕이란 도시는 만만한 곳이 아니다. 딸 덕분에 세 번 다녀온 곳이었다. 영화 속 풍경들이 낯설지 않아 공감할 수 있어 좋았다.
영화 <프란시스 하>를 통해 딸이 살아왔던 서른 즈음의 한 부분을 이해할 수 있어 내게는 의미 있는 시간이었다. 말로는 다 전달이 되지 않는 미세한 감정은 영화를 보면서 나 홀로 느꼈다. 한편으로 인생의 씁쓸한 맛을 알게 되지만, 슬픈 영화는 아니었다. 영화는 서른 즈음 청춘, 그들이 살아가는 방식은 여전히 그들의 삶이라는 것을 말한다.
영화가 끝나고 모여 앉아 각자 의견을 말하는 젊은이들의 모습도 좋아 보인다. 언제 준비를 했는지 프란시스의 역동적인 사진과 기억에 남는 문장을 뽑아 카드처럼 만들어 나누어 주는 아이디어도 좋았다. 역시 젊음이 좋다. 내 잃어 버린 청춘의 감정도 한 조각 마음 안에 담아 볼 수 있는 시간이었다.

▲프란시스 하메인 포스터 ⓒ 그린나래미디어(주)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기자의 개인 브런치에도 실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