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고 싶은 일, 좋아하는 일을 찾아 도전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찾고 전합니다. 원하는 일이 있는데 두려워서 시작을 망설이는 2030에게 용기를 주고 싶습니다.
새우 맛 나는 과자와 미역국 향기를 동시에 맡으면 이렇지 않을까요. 바다내음을 들이마시며 강원 속초 영랑해안길을 걷다 보면 작은 삼륜차 하나가 나옵니다. 해변 옆을 지키는 이동식 서점, '세발서점'입니다.
양팔을 쭉 뻗은 길이만 한 분홍색 책장에는 여러 종류의 책들이 진열되어 있습니다. 비닐 북 커버에 싸인 책도, 원래 초록색이었지만 바닷바람과 햇빛에 바래 푸른빛을 띠게 된 책도 보입니다. 푹 젖었다 마른 듯 우글우글 몸이 불어난 책도 있지요. 책 한 권을 골라 뒤를 돌아보면, 모래사장에서 책 읽는 사람들이 눈에 들어옵니다. '세발서점'에선 책을 사면 돗자리나 의자를 빌려 바다를 마주보고 독서할 수 있거든요.
이 풍경을 매일 볼 수 있는 건 아닙니다. '세발서점'은 일주일에 2~3일 정도만 문을 열고, 추운 겨울에는 잠시 쉬어갑니다. 지난 2025년 문을 연 '세발서점'은 휴식기를 지나 얼마 전 다시 영업을 시작했습니다.
'세발서점'의 캐치프레이즈는 '어른들을 위한 동화'입니다. 동화 속 이야기가 아이들에게 꿈과 희망을 주듯 현실에 지친 어른들이 잠시 쉬어갈 공간이 되어준다는 의미죠. 주인장인 박영아 대표(38)에게도 '세발서점'은 동화 같은 꿈이었다는데요. 지난 6월 21일 속초에서 박 대표를 만나 동화를 현실로 만든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그냥 하는 거예요"

▲세발서점의 박영아 대표가 삼륜차에 앉아 포즈를 취하고 있다.책장 반대편 대형 로고 앞은 세발서점을 찾은 사람들이 기념사진을 남기는 공식 포토존이다. ⓒ 유채원
- '세발서점'을 만든 계기가 궁금해요.
"5년 전 일본의 그림책 작가 요시타케 신스케의 <있으려나 서점>을 읽었어요. <책 축제> 챕터에 '헌책 행진'이라고 움직이는 책장이 거리를 누비는 축제가 나와요. 책에 그림이 같이 있어서 '움직이고 야외에서 운영하는 서점' 이미지가 직관적으로 떠올랐어요. 재밌어 보였고 직접 만들고 싶었어요."
- '세발서점'을 구체화하기까지 4년 걸렸다고요?
"원하는 형태의 삼륜 트럭을 구할 수 없었어요. 모델은 있었는데 상용화가 안 됐었죠. 테스트로 몇 대 만든 거라도 구할 수 있을까 해서 중고 거래 플랫폼도 찾아보고 발품도 팔았어요. 용접하는 곳에 가서 제작해 줄 수 없냐고도 했는데 다 퇴짜 맞았죠. 몇 년이나 안 되면 포기할 법하잖아요. 근데 포기가 안 되더라고요. 매년 봄이 돌아오면 검색했어요. 그러다 2025년에 딱 맞는 모델을 찾았어요. 컨테이너가 달린 농업용 이동 수단이었는데, 페인트칠하고 책장을 설치해서 지금의 형태로 만들었죠."
- 우여곡절 끝에 삼륜차를 구하셨어요. 영업 첫날 감격스러웠을 것 같아요. 기억나세요?
"정식 영업 전에 가영업을 먼저 했어요. 어린이날에 부랴부랴 열었어요. '인지도가 없으니까 빨간날이라도 돼야 지나가는 사람이라도 오겠지' 하고 출근했는데 황당한 거예요. 갔는데 아니, 트럭이 안 보였어요. 캠핑 온 가족이 대형 트레일러로 서점을 가려버린 거예요. 이미 짐을 다 푼 상태라 옮기라고도 못 했어요. 3시간을 그냥 있었는데, 그 캠핑카 주인 부부가 제 책을 사주셨어요."
- 다음날은 괜찮았나요?
"네. 그런데 지나가는 사람 한두 명씩 오는 정도였어요. 어쩔 수 없죠. 인지도가 없으니까요. 작년에는 '그래 다 처음이니까' 하고 견딜 수 있었어요. 오히려 올해 SNS 계정이 해킹당하고 다시 알고리즘을 타기까지 정말 힘들었어요. 아무도 재오픈 사실을 몰라서 망망대해에 망부석처럼 혼자 있었죠. 무인도에서 장사하는 기분이었어요. 재오픈하고 한 달 반까지 손님이 별로 없었어요. 원래 30권 팔렸다면 5권 정도 팔리는 정도였어요."
- 어떤 마음으로 버티셨어요?
"그냥 하는 거예요. 우리 인생이 다 보장되어서 하는 건 아니잖아요. 분명히 그냥 해야 하는 순간도 있는 거거든요. 그래야 나중에 할 말이 있죠."
"없던 그림을 만들어 보고 싶어요"

▲세발서점의 책장80종류 이상의 책이 보관되어있다. ⓒ 유채원
- 야외에서 일을 하시는데 특별한 준비 과정이 있나요?
"전날 저녁에 다음 날 챙겨야 할 것들을 현관문 가까이에 두고요. 어느 것 하나 잊어버리지 않도록! 이동식 서점을 하니 보따리장수가 될 수밖에 없어요. 내 공간에 택배 하나 받을 수 없고 적재량 이상으로는 놔둘 수도 없으니까요. 살아 있는 지게꾼이 돼야 하죠.
다음날에는 눈 뜬 순간 날씨를 검색해요. '겉옷을 챙길지 말지' 아니면 '시원한 소재의 옷을 입어야 될지' 이런 식의 것들을 파악해요. 그러고 가장 중요한 게 있어요. 화장실에서 시간을 충분히 보내고 나서요. 한 방울까지(?) 다 짜내야겠다는 일념으로요."
- 독립 서점 운영이 돈을 잘 버는 사업은 아니잖아요. 노력 대비 수입이 적을 것 같은데 괜찮으신가요?
"당연히 노동력만큼은 가져가야죠. 근데 '이게 직업이다', '이게 사업이다'라는 생각을 애초에 안 했어요. 즐겁게 할 수 있는 일이어서 하는 거예요. 결국 저를 사랑해서 하는 거 같아요. 이 일을 벌였을 때 인생이 재밌어질 거란 생각이 든 거죠. 그러면 저를 더 사랑하게 만드는 환경이 될 테니까."
- 처음엔 서점만 운영하셨죠. 해변 독서는 어떻게 시작하셨나요?
"사실 이동식 서점만 해도 특별하니까 이것만으로도 손님이 올 수 있거든요. 해변 독서는 부가적인 건데 왜 했냐면 책임감을 느꼈던 것 같아요. 보통 독립 서점 사장님들이 힘들어하는 부분이 '사진만 찍고 책은 안 사 간다' 이거거든요. 근데 저희는 이걸 오히려 비틀었어요. '사진 찍으러 오세요'로 콘셉트를 잡았죠. 사진 촬영, 외부 음식, 휴식. 다른 곳에서 안 되는 모든 게 가능한 거예요. 그로 인해서 책을 읽지 않을 법한 친구들, 성수동에 자주 갈 것 같은 힙한 손님들까지 부를 수 있었죠.
그런데 이런 사람들을 그대로 방생하면 결국 '저기(세발서점)는 관심만 받고 끝이네'라고 비칠 수 있다고 생각했어요. 다른 서점과 차별화는 두지만, 본질은 잃지 않아야 하는데 사진 찍으러 오는 곳에서 끝나버리면 안 되잖아요. 마침표가 아닌 다음을 기약하는 형태가 뭐가 있을까 했을 때 그게 바다 독서였던 것 같아요."
- 기억에 남는 손님이 있다면요?
"지난해 10월 영업 종료 직전에 2주 내내 비가 왔어요. 그중에서도 제일 비가 많이 온 날 손님 한 분이 찾아오셨어요. 그날은 해안가 스피커에 재난경보가 계속 울릴 정도의 날이었어요. 책이 다 날라갈 정도였죠. 그래서 오픈 여부가 불투명하다고 사전 공지를 올린 유일한 날이예요. 바다 독서를 하시겠다는 거예요. 그분은 연극배우였는데 3개월 동안 하루도 쉬지 못하다가, 딱 하루 생긴 휴일에 이걸 하려고 속초에 오셨어요. 힘든 시기에 몇 달 전부터 '세발서점'을 알았고 '여기를 언제 가지'만 계속 생각하셨대요. 그러다 딱 하루 휴무가 잡혔으니 '천지가 다 무너져도 여기는 간다, 만약에 닫혀 있어도 나는 이걸 보고 오겠다' 결심한 거죠. 그분한테는 '세발서점'이 몇 달 동안 계속 희망을 품게 하는 동화였던 거예요. 덕분에 내 공간이 어떤 의미로 사람들한테 다가가는지 생각해 볼 수 있었어요. 서점을 찾는 시간이 숨통을 트이게 하는 시간일 수 있다는 걸 알았고 진하게 기억에 남았어요."
- 좋아서 시작한 일이라도 하다 보면 기쁜 감정이 무뎌지지 않나요? 지속할 수 있는 원동력이 궁금해요.
"난 아직 목마르다. (웃음) 이걸로 답이 될 것 같아요. '세발서점'이 더 뻗어나갈 게 무궁무진한데 아직도 기대되는 것밖에 없어요. 우리나라에 '세발서점'을 모르는 사람이 더 많잖아요. 찾아올 사람들이 훨씬 많은데 그런 미래를 기대하기만 해도 바빠요."
- 앞으로의 계획이 궁금해요. 본업으로 할 생각도 있으세요?
"해보고 싶은 건 없던 그림을 만들고 싶어요. 뻔한 게 싫어요. 이미 세상에 존재하는 거를 따라간다는 느낌이 유쾌하지 않거든요. 언제까지 할지는 진짜 미지수인 것 같아요. 그래서 더 재밌기도 해요. 방 구조 바꾸듯이 계속 변화를 주면서 하고 싶어요. 단순히 잘 되기 위해서가 아니라 안 지치기 위한 방향으로요. 본업으로 할 생각은 없어요. 저희의 메인 타이틀이 어른들을 위한 동화라고 했잖아요. 그전에 저를 위한 동화로도 남겨두고 싶어요."
- 본업으로 전환하면 동화가 될 수 없을까요?
"단언할 수 없어요. 동화가 될 수도 있죠. 하지만 지금은 제가 저한테 해줄 수 있는 가장 큰 선물의 형태로 남겨두고 싶어요. 본업이 되면 치열해질 테니까요."
- 마지막으로 시작을 망설이는 사람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 있으신가요?
"도전이라는 게 남들과의 약속이 아니잖아요. 자신과의 약속을 지키려고 하는 거거든요. 너무 힘을 들일 필요는 없어요. 만약에 비즈니스인데 준비 없고 계획도 안 세우면 무책임한 거고요. 어떤 외부적인 관계성이 없는 문제라면 그냥 하시라고 말하고 싶어요.
그리고 작은 것도 도전이라고 불러주세요. 고소공포증인 사람한테 처음부터 30층 올라가라고 할 수 있는 건 아니니까. 도전의 크기를 보지 않고 도전하는 행위만 우선 계속 쌓아갔으면 좋겠어요. 연습 없이 계속 내던지는 경험이 쌓이면 수월해질 거거든요. 그것도 습관이 돼요. 반복하면요."
전에는 알지 못했던 바다 독서의 매력

▲6월 21일 바다독서를 즐기던 한 손님영업 시간이 지나고도 해변에 앉아 독서를 이어갔다. ⓒ 유채원
여러분은 바다에서 천둥소리가 난다는 사실을 아셨나요? 속초를 찾았을 때는 폭우가 내린 다음 날이었습니다. 강원도 곳곳에 풍랑주의보가 내렸죠. 거세게 몰아치는 파도 앞에 책 한 권을 들고 앉았습니다. 가만히 책을 읽는데 파도 소리가 귀에 들어왔어요. 멀리서 오는 파도는 우르릉… 밀려온 파도가 작아져 모래사장에 부딪힐 때는 쏴... 파도 앞에 오래 앉아 있지 않았다면 알지 못했을 소리였습니다. 바다 독서의 매력도 알지 못했겠죠.
'하기 전까진 아무것도 모른다.' 저는 이 사실을 잠깐 회피하고 있었습니다. 오랫동안 '좋아하는 일을 직업으로 실현해야만 해' 이 생각에 갇혀 있었거든요. 꿈꾸던 직업이 아니면 망한 인생이라고 믿었죠. '앞으로 어떻게 살 건데…?' 이 질문은 스스로에게 던지지 않았습니다. 다른 형태로 좋아하는 일을 해볼 궁리도 안 했어요.
박영아 대표는 말했습니다.
"운영 초반에 손님들한테 감사하다는 말을 많이 들었어요. 나이 먹어도 동심을 잃지 않고 꿈을 이룰 수 있다는 희망을 보여주셔서 감사하다고. 우리가 회사 생활을 하고 현실에 순응해서 살다 보면 예전에 가졌던 꿈은 포기하고 적당히 현실에 맞춰서 살아가게 되니까요. '세발서점'을 탄생시키기까지 과정에서 가장 크게 한 일이 있다면 나만의 보석 상자를 끝까지 보석으로 다뤄준 것 아닐까요."
'세발서점'의 탄생을 들으니 동화를 현실로 만드는 비결을 조금이나마 알 것 같습니다. 나의 보석을 끝까지 보석으로 대우해주는 것. 그것을 어떤 방식으로든, 어떤 규모로든 현실에 꺼내보는 것. 직업이든, 취미든, 부업이든 가장 중요한 건 일단 해보는 일 아닐까요. 누군가는 그 덕에 바다에서 천둥소리를 듣게 될지도 모릅니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비사이드클럽 인스타그램 계정(@bside_seoul)에도 실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