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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록자원봉사자 사전교육재난현장을 기록하는 기록자원봉사자 사전교육 ⓒ 구혜은
삶은 우연과 필연의 연속이다. 내 마음 속에 품고 있는 의지와 방향성이 필연이라면, 우연은 그 의지로 인해 찾아온다. 남들 눈에는 보이지 않는 일상의 단편들이 의지를 품은 자에게 의미로 다가오니까 말이다. 기록 자원봉사자의 시작이 그러했다. 우연히 찾아본 자원봉사 포털 사이트에서 가슴 뛰는 문구를 발견했다.
'재난 현장의 기억을 함께 써 내려갈 기록자원봉사를 모집합니다'
단숨에 신청서를 작성했다. 꼭 선발되기를 바라면서. 다행히 자원봉사자 명단에 이름을 올렸고, 지난 6월 30일 사전 교육에 참석했다. 이제껏 나는 자신만을 위한 글을 써왔다. 사실 나와 내 주변에서 시작하는 글쓰기가 가장 쉽다. 글 쓰는 이의 시선은 자아와 함께 성장한다. 그동안의 내가 걸음마를 떼고 세상을 알아가는 기쁨에 흠뻑 빠진 어린아이었다면, 이제는 조금 자라 나와 세상 사이 관계를 고민하며 내가 누구인지 알아가는 사춘기 문턱에 서 있다는 생각이 든다. 이렇게 우연은 나를 '기록 자원봉사'라는 세계로 데려다 주었다.

▲우리가족이 사랑하는 만리포 해변우리가족은 일년의 두세번 이상 만리포를 찾는다. 아름답고 한적한 이 바다를 보면 힐링이 되기 때문이다. ⓒ 구혜은
해마다 두세 번은 태안에 간다. 서해이면서도 뻘이 아닌 백사장이 있는 곳, 조수 간만 차이 덕에 안전하게 물놀이를 즐길 수 있는 곳, 물이 빠진 해변 어디서든 땅만 파면 한 움큼 조개를 잡을 수 있는 곳, 이곳 만리포 바다를 우리 가족은 사랑한다. 하지만 이 아름다운 만리포 앞바다는 2007년 태안 기름 유출 사고가 발생했던 곳이기도 하다.
당시 123만의 자원봉사자들이 이 태안 바다로 모여들었다고 한다. 남녀노소 할 것 없이 손을 걷어 붙이고 바다를 뒤덮은 검은 기름 때를 닦아내고 길어 올렸다. '그때 나는 무얼 했던가?' 마음만 먹었다면 분명 도움의 손길을 줄 수 있었을 여건이었음에도 그러지 못했다. 태안유류피해극복기념관에서 당시의 기록을 마주하는 동안 얼굴이 화끈거렸다. 방관자로 지켜보기만 한 내 모습이 못 내 부끄러웠다.

▲태안유류피해극복기념관2007년 태안의 기름유출 사고 당시, 123만명의 자원봉사자들이 모여 기적을 이루어 냈다. ⓒ 구혜은
'기록 자원봉사'에 참여를 결심하게 한 것은 바로 지난날에 대한 속죄의 마음이었다. 그동안 외면하고 지나쳐왔던 무수한 재난 속 눈물과 절망을 이제야 마주하며 깊은 부채감이 밀려왔다. 이렇게 관심을 갖고 봉사의 의미를 바라보니, 한 분 한 분 봉사에 참여하는 분들이 대단한 재능과 특별한 능력이 있어서가 아니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내가 할 수 있는 것들을 찾아 손을 보태는 그 마음이 있다면 충분한 일이란 걸 깨닫고 나니, '나도 도움 될 수 있겠다'는 확신이 든다.
사전 교육 중 가장 기억에 남는 구절이 있다.
"모든 재난은 사회적 사건이다."

▲재난자원봉사자 사전교육 2재난현장에서의 자원봉사자는 00이다 ⓒ 구혜은
재난을 심화시키는 것은 결국 사회라는 뜻이다. 자연 재해라 할지라도 그 안에는 사회적 책임이 존재한다. 위험에 취약한 지형, 잠재적으로 야기될 부정적 결과 등은 어느 정도 예측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재난을 만들어 내는 것은 이런 현존하는 취약성을 묵인할 때 발생한다. 이처럼 시선의 변화는 재난을 바라보는 다각도의 눈을 뜨게 한다. 사건 해결을 위한 접근법은 물론, 고통 받는 이재민을 향한 태도까지도 넓어지는 것이다.
처음 접하는 재난 교육이었지만 세상을 바라보는 나의 관점이 깊고 넓어지는 것을 느낀다. 그동안 내 중심으로 그려온 삶의 궤적을 이제 더 큰 범위로 넓혀 보려한다. 그리고 그 속에서 나의 역할을 다해보자고 결심한다. 누군가에게 작은 힘이 될 나의 글이, 꼭 필요한 곳에 쓰임이 닿기를 바라며.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개인블로그에도 실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