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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3월부터 시작한 지리산둘레길 토요걷기는 6월 마지막 주 토요일을 끝으로 올 상반기 걸음을 잠시 멈췄다. 두 달간 여름방학에 들어간 것이다. 그 동안 매주 토요일마다 16번에 걸쳐 총 195.1km에 84시간 20분을 걸었다(관련 기사 :
회복되지 않던 마음, 지리산 둘레길에서 찾은 해법).
비가 오는 날에도 걸음은 멈추지 않았다. 1주일에 한 번 걷는다지만, 한 주도 빠지지 않고 참여하기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토요걷기를 주관하는 사단법인 숲길 직원 외 매 회마다 일반 회원 20명이 참여하지만, 완주한 사람은 나를 포함한 3명 뿐이었다. 그 동안 한두 번 '쉬었으면' 하는 생각이 간절했지만 인내하며 끝까지 함께했다.
지난 6월 27일, 지리산둘레길 토요걷기 2026년도 상반기 마지막 걸음을 마쳤다. 이 구간은 서당~하동호 구간으로 12.7km 거리다. 서당마을 안길을 지나 버디재로 가는 길은 오르막길로 조금 힘이 드는 구간이다.
버디재부터는 내리막길로 원시림 같은 주변 풍경을 만나며 걷는다. 이정마을을 지나 삼화실에서 스탬프를 찍으면서 잠시 쉬어간다. 다시 오르막길을 올라 아이들이 학교를 오갔던 존티재를 넘는다. 횡천강 징검다리를 건너면서는 어릴 적 추억이 떠올라 잠시 걸음을 멈추게 된다. 세월의 무상함도 함께 느껴지는 시간이다.

▲지리산둘레길지리산둘레길 서당~하동호 구간을 걷는 토요걷기 회원들. ⓒ 정도길
출발지인 하동군 적량면 서당마을은 예전부터 마을에 서당이 있었던 것에서 유래됐다. 과거 '함덧거리'와 '뒷골 큰 대밭' 중심지에 서당이 자리하고 있었으며, 의령 출신 한학자가 후학을 양성했다고 전해진다. 마을길은 시멘트 포장길로 숲 입구까지 급경사로 이어진다.
무더위도 힘들지만 습기까지 더해 몸은 무겁기 그지없다. 숲길로 접어드니 그나마 낫다. 오르막 끝에 버디재가 쉬어가라 걸음을 멈추게 한다. 버디재는 버드나무가 많이 자생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이 재는 과거 동네 아이들이 소를 몰고 나무하러 다닐 때 쉬어가는 쉼터 역할을 한 곳이기도 하다.

▲버디재버드나무가 많았다고 붙여진 버디재에서 잠시 쉬어간다. ⓒ 정도길
두 '재'를 넘는 서당~하동호 구간
잠깐 휴식은 새로운 에너지를 얻는 시간이다. 젊었던 시절, 한창 산에 다닐 때는 오르막 구간이라도 한 시간을 걷고 3분을 쉬었다가 걷는 것을 원칙으로 삼았다. 하지만 나이가 드니 그런 원칙도 지키기 힘들고 꼭 지킬 필요도 없다.
휴식 시간 역시 너무 오래면 나중이 더 힘들다. 그저 체력에 맞춰 걸음과 휴식은 반복적으로 이뤄지는 게 알맞다. 잠깐 숨을 고르는 시간 물 한 모금 들이켜니 전신에 활력이 도는 느낌이다. 길 주변으로 숲은 울창한 원시림 같은 풍경으로, 꼭 밀림 속을 걷는 기분이다.

▲지리산둘레길지리산둘레길 서당~하동호 구간을 걷는 토요걷기 회원들. ⓒ 정도길
숲을 나오니 들녘 풍경은 그림처럼 눈앞에 펼쳐져 있다. 겉으로는 넉넉하고 풍요로운 농촌 풍경이지만, 그 속에는 농민들의 애환이 담겨 있음을 누구보다 잘 아는 터다. 어릴 적 힘든 농사일은 할머니의 주름살을 더욱 깊게 패이게 만들었다. 어느덧 세월은 흘러 내가 그때의 할머니 얼굴을 닮아가고 있다.
이정마을에 이르니 '지리산둘레길'이라고 새겨진 대형 표지석이 서 있다. 한 때는 지리산둘레길을 걷는 사람이 넘쳐났다고 하는데, 이것 역시 유행을 타는지 지금은 예전보다 많이 줄었단다.

▲지리산둘레길이정마을에 서 있는 지리산둘레길 대형 표지석. ⓒ 정도길
이정마을에서 5분 정도면 삼화실에 닿는다. 삼화실은 하동군 적량면 동리와 서리 일대를 아우르는 말로, 배꽃, 복숭아꽃, 매화 등 세 가지 꽃이 아름답게 피는 마을이라 붙여진 이름이다. 이곳은 폐교된 옛 삼화초등학교를 리모델링한 삼화에코하우스가 자리하고 있다.
비교적 저렴한 비용의 다양한 형태의 숙박시설과 넓은 잔디밭 운동장은 하루 쯤 쉬어가는 곳으로 인기가 있다고 한다. 삼화옛길 탐방로, 계절별 농산물 수확 체험, 그리고 농촌문화 체험은 아이들과 하는 가족 여행으로 제격이 아닐까 싶다. 여기서 스탬프를 찍고 잠시 쉬어가기로 한다.

▲삼화에코하우스폐교된 옛 삼화초등학교를 리모델링한 삼화에코하우스. 농촌체험시설로 인기가 있다. ⓒ 정도길
걸음을 시작하자마자 오른쪽으로 현대식 큰 건물이 눈에 들어온다. 인구도 많지 않은, 시골 작은 마을에 이런 큰 건물이 있다니 놀랍기만 하다. 이 건물은 지리산아트팜이었다. 자연과 예술이 공존하는 생태 예술 복합 시설로, 환경과 재생에너지를 주제로 전시가 열린다고 한다. 주택 담장에 핀 수국과 백합이 잠시 걸음을 멈추게 한다. 또 다시 이어지는 비탈길은 존티재까지 계속된다. 존티재에서도 스탬프를 찍었다.

▲지리산아트팜시골 작은 마을에 쉽게 볼 수 없는, 대형 건축물인 지리산아트팜. ⓒ 정도길
명사마을의 넉넉한 시골 인심
이제 마지막으로 내리막 구간이다. 쉬운 걸음으로 명사마을에 도착했다. 명사마을은 지리산 자락에 자리 잡은 전형적인 청정 산촌마을로 알려져 있다. 마을 쉼터 정자에서 점심을 해결했다. 때마침 이날은 마을 공동 급식 날이라 찌개와 반찬을 내 주었다.
생각지도 못한 환대에 회원들은 연신 고마움의 인사를 전한다. 휴식 시간을 마치고 떠날 즈음, 도시에 살다가 고향마을로 들어 온 지 18년 되었다는 이곳 마을 이장이라는 분이 나서 마을에 대해 연설을 이어갔다.
"우리 마을은 산업체나 오폐수시설이 없는 개발되지 않은 청정마을로, 5~60년 전 모습과 똑같은 자연환경을 가진 것이 큰 자랑거립니다."
이어, 집에서 존티재를 넘어 삼화초등학교를 1시간 넘게 걸어 다녔다는 이야기, 때로는 무서움을 이겨내며 어두침침한 언덕 산속 길을 혼자서 걸었다는 이야기, 그리고 마을 발전에 관한 이야기가 이어졌다. 65가구 약 90여 명이 사는 마을로, 평균 나이 약 75세라는 이야기를 뒤로 하고 오후 시간 걸음이 이어졌다. 명사마을 주민들께 감사의 말씀을 전하고 싶다.

▲마을자랑고향으로 돌아온 지 18년 되었다는 명사마을 이장(김명열)이 마을 자랑에 열심이다. ⓒ 정도길
들녘은 모가 진한 녹색을 띤 건강한 모습으로 자라는 모습이다. 관점마을 어느 집 입구에 매달린, 수백여 머루송이가 싱그럽다. 추석 때면 익지 않을까 싶다. 시골에 어른이 있는 아이들에게는 이 역시 좋은 추억거리가 되지 않을까 싶다. 마을 안길을 지나니 다시 들녘 길이 이어진다. 따가울 정도로 햇볕이 강하다. 창이 가려진 모자를 뚫고 들어오는 강한 빛은 눈을 침침 하게 만든다. 선글라스를 가져오지 않는 내 탓을 해 본다.

▲머루관점마을 한 집 대문 위에 열린 머루 송이. ⓒ 정도길
징검다리를 건너며
횡천강에 닿았다. 횡천강은 경남 하동군 지리산 삼신봉에서 발원하여 청학동 도인마을을 거쳐 섬진강으로 흘러든다. 이 강은 약 30km의 지방 하천으로 수질이 1급수로 매우 맑고, 주변 환경도 좋아 고즈넉한 강변 산책길 명소로 알려져 있다. 물이 맑다 보니 오염되지 않은 다슬기 채취도 이뤄진다. 이날도 물속에서 다슬기를 잡고 있는 사람들을 볼 수 있었다.
강폭이 그리 넓지 않은 횡천강은 큰 돌로 만든 징검다리로 이어져 있다. 발 하나, 돌 하나, 건너는 걸음이 재미가 있다. 징검돌이 크다 보니 헛디딜 염려가 없다는 생각에 장난기가 발동한다. 그러다 한 발이 물에 첨벙 빠지고 말았다. 그래서 자만심은 금물이라는 것을 다시 깨우친다.

▲횡천강횡천강에서 다슬기를 잡는 사람들과 징검다리를 건너는 지리산둘레길 토요걷기 회원들. ⓒ 정도길
출발지 서당마을에서 5시간 30분 만에 종착지인 하동호에 도착했다. 하동호는 청암면 중이리와 평촌리에 걸쳐 있는, 농업 용수 목적으로 1993년 11월 준공된 인공 호수다. 장마철 이전이라 물은 조금 빠진 상태지만, 그래도 수위는 높은 편이고 푸른빛 호수가 싱그럽다. 이곳에서 청학동 도인촌까지는 그리 멀지 않으며, 뒤쪽 삼신봉을 올라 지리산 주능선인 세석평전에 다다를 수 있다. 오래 전 이 코스를 따라 걸은 기억이 새삼 떠오른다.

▲하동호지리산둘레길 서당~하동호 구간 종착지에 있는 하동호. ⓒ 정도길
지난 3월 14일부터 시작한 지리산둘레길 토요걷기는 이날을 마지막으로 여름방학에 들어갔다. 그 동안 16번의 토요일을 지리산과 함께했다. 힘든 시간도, 즐거움의 여유도, 그리고 기억에 남을 만한 에피소드도 있었다. 이제 두 달간 휴식 시간이다. 지루한 걸음이라는 생각도 들었는데, 막상 마치려니 아쉽기만 하다. 그 동안 안전하게 지리산둘레길 토요걷기를 주관한 사단법인 숲길에 깊은 감사의 인사를 전한다.
● 구간별 거리 및 소요시간(총 12.7km, 5시간 30분)
서당마을(09:30) ~ 버디재(10:15, 1.6km) ~ 이정마을(10:36, 1.3km) ~ 삼화실안내소(10:43, 0.4km) ~ 존티재(11:33, 1.2km) ~ 상존티마을(12:02, 0.7km) ~ [점심시간(12:02~13:05)] ~ 관점마을(13:40, 3.2km) ~ 화월마을(1.1km) ~ 평촌마을(14:30, 1.2km) ~ 하동호(15:00, 2.0km)/ 12.7km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티스토리 블로그 <여행, 인생여정>에도 실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