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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4일 시내 약속이 있어 아내와 함께 외출했다. 주말이라 경로당은 문을 닫아 아버지는 집에 계셨다. 아버지 혼자 두고 외출하게 되면 늘 당부하는 것이 있다. 미리 준비한 점심을 제시간에 챙겨드시고 특히 바깥에 함부로 나가지 말라는 것이다.
이는 90세를 넘기면서 기력이 약해진 아버지를 위한 안전 조치다. 아버지도 그 뜻을 이해하고 잘 지켜주신다. 외출하고 돌아와 가장 먼저 묻는 것도 식사와 외출 여부를 확인하는 것이다. 그런데 이번에는 귀가해서 여쭙자 아무 말씀이 없다. 못 들으셨나 해서 다시 물었다. 내가 없는 사이 아버지가 외출해 이발을 하셨다고 했다.
아버지는 평소 동네 성당 가까운 곳의 이발소를 이용하고 있다. 중장년과 노인들이 많이 가는 곳이다. 그곳에선 가위로만 머리를 손질해 주어 예전 머리 깎는 기분을 느낀다고 한다. 이날 아버지는 머리가 긴 것 같아 이발소를 갔다. 그런데 문이 잠긴 것이다. 수십 년 다녔지만 이런 일은 없었다. 아버지는 문을 닫은 이유를 발견하지 못했다고 한다.
아버지는 이발소 쉬는 날이 혹시 바뀌었나 생각하며 허탈한 심정으로 집으로 향하는데 골목의 미용실이 눈에 들어왔다. 아버지는 무작정 미용실로 들어갔다. 손님 머리를 매만지던 여성은 아버지를 보고 놀랐다고 했다. 등 굽고 지팡이를 한 어르신이 손님이라곤 예상치 못했던 것.

▲경로당 가시는 아버지 뒷모습 ⓒ 이혁진
보청기를 껴도 귀가 어두운 아버지는 주인에게 머리만 깎아달라고 하셨단다. 그랬더니 그 주인은 하던 일을 멈추고 아버지 머리를 깎아주셨다는 것이다. 아버지는 생전 처음 가본 미용실이 전혀 어색하지 않았다. 주인의 친절한 응대가 한몫했지만, 기다리지 않고 머리 깎은 것도 행운이었다.
어쩐지 이발한 아버지 머리가 조금 달랐다. 가위 손질이 아니라 전동 이발기로 밀어 깎았기 때문이다. 아버지는 미용실에서 처음 머리를 깎은 셈이다. 아버지는 우리가 집을 비운 사이 머리를 깎고 싶었던 것이다. 그러면서도 내심 이발한 것을 은근히 자랑하고 싶어하는 눈치셨다.
고령의 아버지가 이발하는 것이 별것 아니라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우리 집에서는 큰 관심사다. 우리는 아버지가 혼자 식사하거나 목욕하시는 것도 매일 확인하고 있다. 밖에 나가 머리 깎는 것은 더욱 중요하다.
물론 아버지의 안전을 지나치게 우려해 외출을 막거나 조심을 강조하는 면이 없지 않다. 주변 사람들은 아버지가 연세에 비해 활기차시다며 너무 괜한 걱정을 말라고 내게 타이르기도 한다. 하지만 자식 마음은 그렇지 않다.
어쨌든 아버지는 생전 처음 미용실에 가서 이발을 하셨다. 나는 이번에 이발소를 바꾼 것인지 물었다. 그건 아니었다. 하지만 아버지의 미용실 이발은 두고두고 무용담처럼 회자될 것이 분명하다. 초고령에도 자기를 관리하고 적극적인 삶을 추구하는 아버지가 존경스럽다. 미용실을 간 아버지의 호기심도 장수 비결이지 싶다.
아참, 무턱대고 찾아간 97세 아버지를 무안하지 않게 친절하게 맞이해주신 미용실 원장님께 특별히 감사드리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