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다문화사회, 그들의 이름' 시리즈의 첫 번째 글입니다. 이 시리즈를 통해 서로 다른 언어와 문화권의 이름이 한국 사회에서 어떻게 불리고 표기되는지 살펴보며, 이름을 대하는 우리의 인식과 태도를 함께 돌아보고자 합니다. 이름을 존중하는 일이 곧 사람을 존중하는 일이라는 점을 다양한 사례를 통해 이야기 합니다.

▲2일 경기도 수원시 여권민원실에서 직원이 발급된 여권을 정리하고 있다. ⓒ 연합뉴스
콜센터에 전화를 걸 때마다 최혜경(가명)씨는 작게 숨을 고른다. 상담원이 성함을 묻는 순간부터 시작이다.
"씨, 유, 아이, 띄고, 에이치, 유, 아이, 제이, 아이, 엔, 지요."
CUI HUIJING(가명). 여권에 적힌 그의 이름이다. 알파벳 열 개를 또박또박 불러 주고 나면, 수화기 너머에서 잠깐의 침묵 뒤에 종종 이런 질문이 돌아온다.
"저... 본인이세요?"
이름은 외국인인데 한국어가 너무 유창해서일 것이다. 혜경씨는 중국 연변에서 나고 자란 조선족, 중국동포이다(최혜경은 이 글에서 고안한 가명이다. 그러나 이런 사례는 아주 일반적이다. 엄연한 우리말 이름을 가졌음에도 중국 동포라면 누구나 겪는 일이다. 박철호(朴哲浩)는 PIAO ZHEHAO, 즉 '퍄오 저 하오'로, 김영화(金榮花)는 JIN RONG HUA, 즉 '진룽화'로 불리는 상황을 겪는다 - 기자 주).
할머니도, 어머니도, 학교 선생님도 그를 "혜경아"라고 불렀다. 한자로는 崔慧景(최혜경)이라고 표기를 했지만, 그는 가족과 친구들 사이에서 조선어 독음으로 평생을 살았다. 그런데 여권은 그 이름을 중국어 병음으로만 적는다. 최혜경은 그렇게, 국경을 넘는 순간 CUI HUIJING이 되었다. 그 열 글자는 매번 그가 '본인'임을 의심 받게 만든다.
표기가 딱지가 될 때
다행히 한국의 직장 동료나 주변 친구들은 그를 최혜경이라고 부른다. 문제는 사람이 아니라 시스템이다. 온라인 회원 가입, 본인 인증, 예약 시스템. 대문자 하나가 다르거나 성과 이름 사이 띄어쓰기가 있고 없고의 차이로 "일치하는 정보가 없습니다"라는 안내문을 마주하는 일이 다반사다. 'CUI HUIJING'과 'Cui HuiJing'과 'CUI HUI JING'은 기계에게 서로 다른 세 사람이다. 가끔 이 다양한 경우의 수를 모두 입력해도 본인을 입증하기 어려워 결국은 대면 서비스로 찾아갈 때가 허다하다.
그리고 열린 고객 대기실에서, 중국 원지 발음대로 "추이후이징 님!" 하고 호명되는 순간이 있다. 모국어로 된 이름을 가진 사람이 제 이름의 중국어 발음으로 불리며 낯선 사람이 되는 순간이다. 여기저기서 꽂히는 사람들의 의아한 시선은 덤이다.
그 로마자 표기는 단순한 불편을 넘어, 첫눈에 당사자를 '외국인'으로 구분해 주는 표지가 된다. 여기서 일하고, 똑같이 세금을 내고, 아이를 낳아 기르는 동안에도 그 딱지는 떨어지지 않는다. 아이가 학교에 들어가면 표지는 하나 더 붙는다. 엄마의 이름이 로마자라는 이유로, 아이는 학기 초마다 제출하는 서류상에서도 한눈에 '다문화'로 원하든, 원하지 않든 본인 신상을 노출하게 된다.
제도에도 논리는 있다, 그러나...
물론 행정에도 사정은 있다. 여권의 로마자 성명은 국제민간항공기구(ICAO) 기준을 따르는 국제 표준이고, 본인 확인의 최종 근거다. 법무부는 모든 외국인에게 한글 이름을 열어 주지 못하는 이유로 표기의 자의성을 든다. Michael은 '마이클'도 되고 '미하엘'도 되니, 전국의 창구마다 표기가 달라지면 오히려 동일인 식별이 어려워진다는 것이다. 일리 있는 논리다.
개선의 노력도 있었다. 2019년부터 외국국적동포와 재한화교는 등록증에 한글 이름을 병기할 수 있게 됐고, 2024년에는 정부가 외국인 성명 표기 표준안까지 내놓았다.
그런데 이상하다. 본인 확인을 위해 만든 제도가, 정작 본인 확인에 자꾸 실패한다. 혜경씨가 "본인이세요?"라는 질문을 받는 것도, 띄어쓰기 하나, 대소문자 입력 하나로 인증이 막히는 것도, 운전면허 교환 창구에서 한글 성명이 있음에도 영문만 강제되는 것도, 모두 그 '표준' 안에서 벌어지는 일이다. 한글 이름은 어디까지나 '병기'일 뿐 공식 성명이 아니고, 표준안은 기존의 민간 시스템까지 닿지 못한다. 심지어 이 병기 제도가 있다는 사실조차 창구 직원이 모르는 경우가 있다. 제도가 있어도 현장이 모르면, 제도는 없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이 나라 국민이 되려면 그는 새로 성과 본을 '창설'해야 한다

▲AI생성 이미지 ⓒ 오마이뉴스
가장 아픈 대목은 귀화를 해서도 이런 문제가 따라다닌다는 것이다. 혜경 씨의 성은 경주 최씨다. 할아버지의 할아버지, 그 위로 수백 년을 거슬러 오르는 성이다. 어릴 적 할아버지는 "사람은 제 본을 알아야 한다"고 하셨고, 그는 한 번도 그것을 잊은 적이 없다.
그런데 이 나라의 국민이 되려면 그는 새로 성과 본을 '창설'해야 한다. 원칙대로라면 현 거주지를 따라 '대림동 최씨'나 '원곡동(안산시 단원구) 최씨'의 시조가 되는 것이다. 경주 최씨로 남을 길이 아주 없지는 않다. 귀화 허가 직후 가정법원에 성·본 창설 허가를 별도로 신청하고 법원의 심사를 받아야 한다.
그러나 한국에서 태어난 경주 최씨는 태어나는 순간 그 본관을 얻는다. 누구에게도 혈통을 입증하지 않아도 된다. 수백 년 이어 온 제 성씨를 지키기 위해 그 입증의 짐을 왜 당사자만 져야 하는가. 게다가 평생 써 온 한자 '崔'를 서류에 올리려면 귀화 뒤 다시 법원을 찾아 개명 절차를 밟아야 한다.
일제강점기, 이 땅의 사람들은 성과 이름을 강제로 바꿔야 했던 창씨개명의 아픔을 겪었다. 그 역사를 기억하는 나라가, 제 발로 국민이 되겠다고 찾아온 동포에게 사실상의 창씨를 요구하고 있다. 강요의 주체가 남의 나라에서 제 나라로 바뀌었을 뿐이다.
이름은 부르라고 있는 것
혜경씨가 바라는 것은 대단한 것이 아니다. 병원에서, 은행에서, 아이의 학교에서 "최혜경 님"이라고 불리는 것. 알파벳 열 개를 낱낱이 부른 뒤 "본인이세요?"라는 질문을 받지 않는 것. 고객 대기실에서 직원의 "츠, 우, 이... 씨, 유, 아이... 고객님 계신가요?"라고 하는 곤혹스러운 호명과 그에 따른 타인의 시선을 받지 않는 것. 할아버지가 물려준 본관을 지키기 위해 법원 문턱을 넘지 않아도 되는 것.
그것이 불가능한 것이 아니다. 제도는 이미 한글 병기를 허용한다. 다만 허용할 뿐, 보장하지 않는다. 창구는 모르고, 시스템은 낡았고, 본관은 법원 문턱 뒤에 있다.
이름은 확인하라고 있는 것이기 전에, 부르라고 있는 것이다. 김춘수의 시처럼, 이름을 불러 주었을 때 비로소 꽃이 된다. 우리는 지금 이 땅에 뿌리내리려는 수많은 이름들을, 부르는 대신 로마자 알파벳으로 철자(綴字)하게 하고 있다.
그리고 이 이야기는 다문화 사회를 살아 가는 한국 거주 동포들만의 것이 아니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중국 wechat 공중호에도 실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