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取중眞담]은 <오마이뉴스> 상근기자들이 취재과정에서 겪은 후일담이나 비화, 에피소드 등을 자유로운 방식으로 돌아가면서 쓰는 코너입니다.

▲정은령 SNU팩트체크 센터장이 28일 오전 서울 코엑스에서 개막한 글로벌 팩트 10 행사에서 개회사를 하고 있다. 2023-07-02 ⓒ Poynter&IFCN
국민의힘이 또 사실관계에 맞지 않는 소리를 했다.
헛소리를 워낙 자주해서 종종 무감각해지지만, 정성스레 사실관계를 하나하나 틀려가며 공개적으로 내놓는 공당의 입장은 그 수준을 새삼스레 의심케 한다.
국민의힘 미디어특별위원회는 8일 정은령 세명대학교 저널리즘대학원 교수의 방송분쟁조정위원 위촉 철회를 요구했다. 이유는 정 교수가 이끌었던 SNU팩트체크센터가 "팩트체크를 가장해 정치적 낙인찍기"를 했고, 홍준표 후보 발언에 "거짓 판정을 남발"했으며, 윤석열 정부 당시 보수 진영을 "표적 검증"했다는 것이다.
한마디로, SNU팩트체크센터가 무슨 작업을 했던 곳인지 확인도 하지 않은 채 대충 쓴 성명이다.
SNU팩트체크가 '거짓 도장' 찍는 기관?
SNU팩트체크센터는 국민의힘의 상상 속 그림처럼 정은령 교수가 앉아서 보수 정치인의 발언에 '거짓'이나 '새빨간 거짓' 도장을 찍는 기관이 아니었다. SNU팩트체크센터는 서울대학교 언론정보연구소가 운영한 협업형 팩트체크 '플랫폼'이었다. 개별 사안을 고르고 취재하고 검증하고 판정한 주체는 센터가 아니라 제휴된 각 언론사들이었다. 센터는 공통 척도와 플랫폼을 제공했고, 언론사들은 각자 독립적으로 검증 결과를 올렸다.
포털에 걸린 한 언론사의 특정 기사가 편향됐다면, 문제 제기는 기사를 작성한 언론사를 향해야 한다. 포털로 향한다면 손가락질 방향이 잘못된 것이다. SNU팩트체크센터는 설립 당시부터 각 언론사의 자율성을 존중하는 것을 모토로 삼아왔다. 같은 사안을 놓고 서로 다른 언론사가 정반대 방향의 팩트체크 결론을 내리더라도 이를 모두 인정하는 기관이었다.
해당 기관이 언론사에 '의뢰'하거나 직접 '검증'한 기사가 아닌데, 단순히 '거짓' 판정이 많았다고 해서 정치적 의도를 비난하는 것은 번지수가 틀려도 한참 틀렸다. SNU팩트체크센터에는 애초에 진보 성향 언론사만이 아니라 보수 성향 언론사도 다수 등록해 활동해 왔다. 마지막까지 제휴했던 32개 언론사 중에는 <조선일보>, <중앙일보>, <동아일보>, <문화일보>, TV조선, 채널A 등도 포함됐다.
국민의힘 미디어특위의 "SNU팩트체크센터가 홍준표 후보에게 거짓 판정을 남발했다"는 문장은 전제부터 틀린 명제이다. 정확히 쓰자면 "SNU팩트체크 플랫폼에 올라온 제휴 언론사들의 검증 결과 중 홍준표 후보 발언에 대한 거짓 판정이 많았다"라고 해야 한다. 국민의힘이 이 차이를 몰랐다면 잘 알지도 못하면서 비난의 화살을 날린 것이고, 알고도 썼다면 자신들의 편향과 왜곡을 스스로 증명한 것이다.
검증 건수 차이가 곧 편향의 증거는 아니다
또한, 검증 건수가 많았다는 이유로 "편향"이라는 낙인을 찍는 것도 문제이다. 보수 진영 검증이 민주당보다 많았다는 숫자를 들이밀며 "표적 검증"이라고 단정하는 건 너무 편하다. 집권 세력, 대통령, 정부·여당 인사의 발언은 당연히 더 자주 '권력의 감시견'인 언론의 검증대에 오른다. 공적 권한이 큰 사람의 말일수록 사회적 영향도 크다.
무엇보다 팩트체크는 특정 진영 검증의 숫자를 기계적으로 맞추는 작업이 아니다. 그것은 공정도 아니고 균형도 아니고 중립도 아니다. '거짓말을 더 많이 한 정치인에게 더 많은 검증의 잣대'를 들이미는 것이야말로 공정이고 균형이자 중립이다.
예컨대, 미국의 트럼프 대통령이 팩트체크 검증 대상에 더 많이 올랐다고 해서, 단순히 미국의 언론이 민주당 편향이라고 단정할 수는 없다. 실제로 누가 더 거짓말을 많이 했느냐가 우선 검증되어야 한다. 미국의 저명한 팩트체크 기관 <폴리티팩트>가 지적한 것처럼, '트럼프가 바이든보다 거짓말을 훨씬 많이 했다'면, 언론의 검증 횟수 역시 한쪽에 쏠릴 수밖에 없다.
국민의힘이 자신들에게 불리한 검증은 편향으로, 자신들을 향한 비판은 낙인으로 몰아가기 전에, 자당 정치인이 실제로 거짓말을 한 것은 아닌지 되돌아보아야 할 이유이다. 팩트체크에 관여하지도 않은 기관의 정파성을 의심하는 것은 제1야당이라는 공적 위치에 걸맞지 않은 언행이다.
더 기가 막힌 대목은 SNU팩트체크센터가 이미 윤석열 정부의 압박으로 사실상 문을 닫았다는 점이다(관련 기사:
SNU팩트체크 7년 만에 중단... "한국 언론자유 퇴보" https://omn.kr/29u8t). 윤석열 정부 시기 여당이었던 국민의힘은 끊임없이 해당 센터를 '좌편향'으로 색깔론 공세를 펼쳤고, 결과적으로 네이버 재정지원이 중단되며 재정난에 몰렸다. 결국 2024년 8월부터 무기한 휴지에 들어갔다. 신규 콘텐츠 게시도, 주요 사업도 중단됐다. 자신들이 공격해 망가트린 플랫폼을 다시 끌고 와 정은령 교수의 자격을 문제 삼는 것은 적반하장도 유분수이다.
팩트체크를 비난하려면 팩트부터 확인해야
전세계적으로 팩트체크가 위축된 주된 이유 중 하나는 정치적 압박이다. 정치적 압박의 주체들이 대체로 보수 편향적이라는 점은 일단 넘어가자(관련 기사:
대통령의 교묘한 거짓말, 보수당에게 공격 받는 팩트체크 https://omn.kr/26f1i). 팩트체크의 존재 이유는 특정 정당이나 정치인들이 듣기 좋은 말을 해주기 위해서가 아니다. 정치인의 주장을 그대로 받아쓰지 않고, 증거와 자료를 통해 사실 여부를 따져보는 '저널리즘'의 본령에 충실하기 위함이고, '국민의 알 권리'를 보장하기 위해서이다.
특정 검증 결과에 반박할 수 있다. 실제로 팩트체크 결과가 오류일 가능성도 있다. 그래서 더 많은 근거를 공개하고, 더 엄격한 기준을 적용하고, 더 다양한 교차검증이 필요하다. 그런데 국민의힘 미디어특위 성명의 제목은 "팩트체크를 가장한 정치적 낙인찍기"였다. 대체 누가 누구에게 정치적 낙인을 찍고 있는가? 이게 선동이 아니면 뭐란 말인가?
팩트체크를 싫어하는 것은 자유이다. 하지만 그 팩트체크를 공당의 이름으로 비난하려면 최소한 팩트체크가 무엇인지 정도는 정확히 알고 있어야 한다. 이재명 정권을 향해 '입틀막' 노래를 부르면서, 정작 자신들이 집권했을 때의 언론 겁박과 '입틀막'이 어떤 수준이었는지는 잊어버린 것 같다. 참으로 편리한 선택적 기억상실이 아닐 수 없다.
잊은 것 같아서 한 가지 더 상기해주자면, 국민의힘의 전신인 자유한국당은 2017년 SNU팩트체크 게시물들이 명예를 훼손했다며 정은령 당시 SNU팩트체크센터장과 윤석민 당시 서울대 언론정보연구소장, 서울대 등을 상대로 손해배상 소송을 냈다. 그러나 2019년 5월 원고 패소했다.
당시 법원은 "게시물의 주제와 내용은 제휴 언론사가 자율적으로 정했고 운영진은 이에 관여하지 않았다"라며 "언론사의 평가 근거, 이유 등을 보면 게시물은 믿을 만한 근거를 토대로 합리적 사고 과정을 거친 것으로 보여 악의적이거나 현저히 상당성을 잃은 공격에 해당한다고 보이지 않는다"라고 판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