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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말
트랜스보더링랩(Trans-border-ing Lab)은 국경과 종(種)을 넘은 몸들이 통제와 구금, 박탈과 추방의 위험 속에서 살아가야 하는 현실에 주목하고, 난민과 비인간존재의 안전하지 않음이 '국민'과 '인간'인 '우리'의 '안전'을 위한 것으로 정당화되어 온 담론에 문제를 제기하며 실천적인 앎을 모색하는 것을 활동의 비전으로 삼고 있습니다.

12화에 걸친 이번 연속 기고는 2025년에 기획한 '디딤돌 걸림돌 애매한 돌, 판례로 만나는 이주/난민 이슈'에서 논의된 결과물입니다. 난민/이주민이 겪는 상황들이 지금-여기 우리에게 어떤 의미를 가질 수 있는지 함께 질문을 만들어가는 계기가 되기를 바랍니다.

지금도 이 세상에는 동성애자라는 이유만으로 감옥에 보내지거나, 혹은 죽임을 당할 위험이 있는 나라들이 있다. 2026년 6월을 기준으로 유엔 가입국 중 63개 국가에서는 동성애를 공식적으로 처벌하고 있고, 7개 국가에서는 동성애자를 최대 사형에 처하고 있다(ILGA, International Lesbian, Gay, Bisexual, Trans and Intersex Association World Database, 2026).

내가 공감에서 만나는 난민들 중 대부분은 이런 나라들을 탈출해 안전한 삶을 찾아 한국에 온 성소수자 난민들이다. 한국은 유엔 난민협약에 가입했을 뿐만 아니라, 아시아에서 유일하게 난민법을 제정해 자체적인 난민심사체계를 갖춘 나라다. 또한 전 세계로 뻗어 나간 K팝과 K드라마 등 문화 콘텐츠를 보유한 문화 강국이기도 하다.

하지만 인권친화적 선진국인 한국에서 자신의 상황을 세심하게 살핀 뒤 국가 차원의 보호를 받을 수 있을 것이라는 이들의 기대는 난민심사 과정을 하나하나 겪으면서 자연스럽게 사라지고 만다.

난민 주관 부처인 법무부가 공개한 자료에 따르면, 2025년 한 해 난민 인정률은 1.45%다(난민인권센터, 법무부 정보공개청구 결과, 2025년 12월 31일 기준). 100명 중 1명만이 난민으로 간신히 인정되는 한국 사회에서, 성소수자로서 난민 인정을 받는 것은 얼마나 어려운 일일까. 이론적으로는 가능하지만 현실에서는 사실상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

대법원도 인정한 성적 지향과 성별 정체성의 의미

그나마 다행인 점은 우리 법원이 성적 지향 및 성별 정체성에 근거한 난민 신청을 인정할 수 있다는 입장이라는 것이다.

대법원은 동성애자로서 난민 신청을 한 사건에 대해, 서울고등법원은 트랜스젠더로서 난민 신청을 한 사건에 대해 판단하는 과정에서 '동성애 또는 트랜스젠더라는 정체성이 난민 신청자의 출신국 사회의 도덕·법 규범에 어긋나고, 그 정체성이 외부로 드러날 경우 박해에 노출될 가능성이 높으며, 이에 대해 출신국 정부가 보호를 거부하거나 보호가 불가능한 경우 특정사회집단에 해당한다'고 보았다.

그렇다면 동성애자나 트랜스젠더가 함께 묶이는 이 '특정사회집단'이란 무엇인가? 우리 대법원은 이를 아래와 같이 정의한다.

"특정사회집단이란 한 집단의 구성원들이 선천적인 특성, 바뀔 수 없는 공통적인 역사, 개인의 정체성 및 양심의 핵심을 구성하는 특성 또는 신앙으로서 이를 포기하도록 요구하여서는 아니 될 부분을 공유하고 있고, 이들이 사회 환경 속에서 다른 집단과 다르다고 인식되는 것이다." (대법원 2017. 7. 11. 선고 2016두56080 판결)

우리나라 최고 법원이 한 사람의 성적 지향과 성별 정체성을, "개인적 정체성의 핵심을 구성하는 특성으로서 이를 포기하도록 요구되어서는 아니 될 부분"이라고 선언하였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무지개는 국경을 넘는다>(소수자난민네트워크, 2018) 성소수자, HIV 감염인 등 성적 지향 및 정체성을 이유로 박해를 피해 국경을 넘어온 소수자 난민의 인권과 지원을 다루는 인권 네트워크 및 자료집(https://www.rainbowrefugee.kr)
<무지개는 국경을 넘는다>(소수자난민네트워크, 2018)성소수자, HIV 감염인 등 성적 지향 및 정체성을 이유로 박해를 피해 국경을 넘어온 소수자 난민의 인권과 지원을 다루는 인권 네트워크 및 자료집(https://www.rainbowrefugee.kr) ⓒ 소수자난민네트워크

성소수자난민으로 인정되기 위한 요건

그런데 정작 성소수자로서 난민 인정을 받는 사람은 왜 이렇게 적은 것일까. 이 질문에 대한 답 역시 같은 대법원 판결에서 찾을 수 있다. 대법원은 성소수자의 난민 인정이 이론적으로 가능하다는 원칙을 확인하면서도, 동시에 성적 지향 및 성별 정체성에 근거한 난민 신청에 대해 처음으로 구체적인 판단기준을 제시했다.

즉 ① 출신국에서 이미 성적 지향이 공개돼 있었고, ② 공개된 성적 지향으로 인해 출신국에서 구체적인 박해를 받은 경험이 있을 것을 판단기준으로 제시한 것이다.

"따라서 동성애자들이 난민으로 인정받기 위해서는, 출신국에서 이미 자신의 성적지향이 공개되고 그로 인하여 출신국에서 구체적인 박해를 받아 대한민국에 입국한 사람으로서 출신국으로 돌아갈 경우, 그 사회의 특정 세력이나 정부 등으로부터 박해를 받을 우려가 있다는 충분한 근거 있는 공포를 가진 사람에 해당하여야 하고, 박해를 받을 '충분한 근거 있는 공포'가 있음은 난민 인정 신청을 하는 외국인이 증명하여야 한다." - 대법원 2017. 7. 11. 선고 2016두56080 판결.

이 대법원 판결로 인해 본국에서 박해를 피하기 위해 자신이 성소수자임을 숨겼고, 그 결과 심각한 박해를 피할 수 있었던 사람이라면(박해가 심한 나라일수록 더욱 철저히 숨겼을 터다), 아무리 본국의 객관적 정황상 성소수자에 대한 박해가 인정되더라도 한국에서 난민으로 인정받을 수 없게 된다.

하지만 유엔난민기구와 해외 주요 법원들은 일관되게 '박해에 대한 두려움으로 인해 성적 지향을 숨겨야 하는 상황 그 자체가 박해에 해당한다'고 판단하고 있다. 특정사회집단의 특성을 이루는 성적 지향은 인간 존엄성의 본질적인 부분으로서 은폐하고 살아갈 것을 요구받아서는 안 된다.

더불어 그러한 은폐가 가능한지, 언제까지 지속될 수 있는지는 개인의 의지만으로 통제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따라서 과거의 은폐 경험과 미래의 은폐 가능성을 기준으로 박해 가능성을 판단하는 것은 사실상 특정사회집단에 대한 보호 자체를 부정하는 결과가 된다는 취지다.

우리 대법원은 한 사람의 성적 지향과 성별 정체성을 "개인적 정체성의 핵심을 구성하는 특성으로서 이를 포기하도록 요구되어서는 아니 될 부분"이라고 정의하면서도, 정작 정체성의 핵심을 숨기고 살아갈 수밖에 없는 성소수자의 특성이나 그 상황 자체가 갖는 의미에 대해서는 부정하였다는 점에서 모순적이다.

애매하게, 하지만 조금씩 나아간다

안타깝게도 약 10년이 지난 지금까지 대법원은 위 2016두56080 판결의 법리를 변경하지 않았고, '본국에서 자신의 성소수자성을 숨겼고, 과거에 박해를 받은 경험을 입증하지 못하면 난민으로 인정할 수 없다'는 이 법리는 하급심과 대법원에서 계속해서 재인용되며 성소수자 난민 인정의 확고한 기준이 되었다.

소수자난민네트워크 소수자 난민 인권 증진을 위해 함께 공부하고 협력하는 한국 유일의 네트워크인 소수자난민네트워크 활동가들
소수자난민네트워크소수자 난민 인권 증진을 위해 함께 공부하고 협력하는 한국 유일의 네트워크인 소수자난민네트워크 활동가들 ⓒ 소수자난민네트워크

하지만 그간 모두가 손을 놓고 있었던 것은 아니다. 성소수자난민 사건을 심리하는 1심 법원, 2심 법원에서 유의미한 판결들이 나오고 있다.

예를 들어 서울고등법원은 젊은 여성 성소수자로서 성폭행 피해자인 원고가 겪은 상황을 고려하여 성소수자난민의 진술에 일부 불일치한 부분이 있더라도 이를 이유로 난민 불인정을 할 것이 아니라, '진술의 핵심적인 내용에 있어서 모순이 없다면' 전체적으로 진술의 일관성과 신빙성을 인정할 수 있다는 기준을 제시하였다(서울고등법원 2018. 10. 12. 선고 2018누30022 판결).

그리고 최근 서울행정법원은 성소수자 난민 신청자가 겪은 박해가 주로 가족 내에서 입은 박해(사적 박해)라 하더라도, 법적 사회적 문화적 이유로 본국 정부가 이를 구제할 수 없다면 난민협약상의 보호를 제공해야 한다는 판결을 하기도 하였다(서울중앙지방법원 2026. 1. 30. 2024구단68616 판결).

이처럼 유의미한 변화들이 이어지고 있지만, 여전히 현재 법무부 심사 단계와 법원 단계에서 성소수자 난민으로 인정되는 경우는 많지 않다. 인정되는 경우 역시 성소수자라는 이유로 구체적인 박해 경험이 있고, 이를 입증할 수 있는 구체적인 증거를 제시한 신청자들에 한정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한국 법원이 이러한 기준을 넘어, 박해를 피해 개인의 정체성의 핵심을 구성하는 성적 지향과 성별 정체성을 숨기고 살아갈 수밖에 없었던 난민 신청자에 대해서도, 그리고 증거가 없더라도 자신의 박해경험을 일관되게 진술한 난민 신청자에 대해서도 난민협약에 걸맞은 심사를 할 수 있게 되는 날을 기다린다.



덧붙이는 글 | 필자 김지림 변호사는 공익인권법재단 공감에서 활동합니다.


#성소수자난민#공익인권법재단공감#트랜스보더링랩#이주구금#ILG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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