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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나라는 사람> 표지 미얀마에서 한국으로 유학 온 슈붕이 쓴 <나라는 사람>이라는 책 표지이다.
책 <나라는 사람> 표지미얀마에서 한국으로 유학 온 슈붕이 쓴 <나라는 사람>이라는 책 표지이다. ⓒ 이매진

"세상에는 늘 많은 사건이 벌어지고 있지만, 그 일을 내 주변에서 직접 마주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쉽게 잊고, 또 잊힌 채 살아가게 된다."(책, 7쪽)

한국에 살며 공부하는 99년생 미얀마 출신 슈붕은 "잊히지 않으면 좋겠다는 마음"으로 책 <나라는 사람>(2026년 3월 출간)을 쓰기 시작했다고 말했다(책, 8쪽). 그가 한국어로 책을 내야겠다고 마음을 먹을 정도로 우리는 미얀마를 잊고 지낸다. 2021년 SNS와 방송으로 전해지던 참담한 미얀마 군사 쿠데타 상황이 생생하게 남아 있지만, 머리와 가슴 속에서는 사라져갔다.

우리의 관심은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스라엘의 팔레스타인 공격, 미국과 이스라엘의 이란 공습으로 빠르게 옮겨갔다. 한국 역사책에는 군사 쿠데타의 흔적이 남아 있다. 하지만, 완전히 청산되지 못한 쿠데타는 2024년 12월 3일 대통령이라는 껍데기를 쓰고 반복됐다.

마치 '역사는 비극과 소극이 반복된다'라는 말을 증명하기라도 하듯이. 스스로 웃음거리가 되려고 애쓰는 등장인물들은 쿠데타를 사이에 두고 변명과 영웅담을 뱉어내기에 바빴다. 성찰의 시간을 갖고 주변을 둘러보기에 우리의 '정치'는 지나치게 좁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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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방선거 국면을 지나고 쿠데타와 전쟁은 잊혔다. 그 자리를 선거, 월드컵 등이 차지했다. 한두 달 동안, 열심히 허리를 굽히고 플래카드를 붙이고 소리를 지르던 후보들은 모두 사라졌다. 지방 권력을 장악한 이들은 허리를 펴고 커다란 의자에 앉았다. 그들의 허리는 4년 뒤에나 다시 굽혀질 것이다.

미얀마와 한국은 좁은 의미의 정치 측면에서 묘하게 닮은 데가 있다. 식민지 경험을 했으며, 쿠데타를 겪었다. 민주화의 불꽃이 강하게 타올랐던 시기도 비슷하다. 한국이 1961년 사회 혼란을 해결한다고 군인들이 권력을 장악한 다음 해인 1962년 미얀마에서도 군사 쿠데타가 있었다. 한국의 군사 정권은 지역 간 차별을 만들었고, 미얀마 군부는 민족과 종교 차별을 일삼았다.

"미얀마에는 규모가 큰 민주화 운동이 세 번 있었다. 1988년 '8888 민주 항쟁', 2007년 '샤프란 혁명', 2021년 쿠데타에 맞선 이른바 '봄의 혁명'이다." (책, 82쪽)

한국에는 1961년 4․19 혁명, 1980년 광주 민주화 운동, 1987년 6월 민주 항쟁이 있다. 2021년 2월 1일 미얀마의 군사 쿠데타는 성공했지만, 한국에서 벌어진 2024년 12월 3일 대통령의 친위 쿠데타는 실패했다. 군대를 동원한 윤석열의 내란이 성공했다면, 슈붕을 포함한 미얀마 사람들이 견디는 끝 모를 고통을 겪고 있을 것이다.

"나는 대학교 졸업장을 받기 직전에 코로나가 터졌고, 쿠데타가 일어났고, 졸업장을 받지 못한 채 한국으로 도망했다."(책, 25쪽)

"시간이 꽤 흐른 지금도 그날 함께 시위에 나간 친구들 몇몇은 아직 감옥에 있다. 나는 한국에서 공부를 이어 가고 있지만, 그 친구들 시간은 그날에서 멈춰 있다. 어떤 성취를 거둘 때마다 나는 그날 숨진 동갑내기 학생을 떠올린다." (책, 62쪽)

슈붕의 가족은 뿔뿔이 흩어졌다. 그의 지인들 가운데 감옥에 가거나 목숨을 잃은 사람도 이다. 생사를 알 수 없는 이도 있으며, 자신의 꿈을 포기하고 조용히 생계를 유지하며 국가의 '섬세한 그물망'에 걸리지 않으려 애쓰는 이들도 있다. 아직도 한국에서 내란을 옹호하는 인간들이 있지만, 과거 우리의 경험과 미얀마의 현재는 그들의 말이 '소음 공해'에 지나지 않음을 보여준다.

자신이 겪은 아픔을 기록하는 일은 매우 어렵다. 기록은 기억을 남기는 소중한 일이지만, 그것을 하는 이에게는 또 다른 상처를 준다. 고통을 다시 곱씹어야 하고, 떨리는 심장을 부여잡게 된다. 억울함과 화가 동시에 치밀어 올라 흔들리는 마음을 다잡아야 할 때가 셀 수 없었을 것이다. 더구나 아직도 진행되고 있는 참상이라면, 더 말할 나위가 없다.

슈붕은 2021년 미얀마와 2024년 한국에서 몇 년의 시간을 두고 쿠데타를 경험했다. 그가 기록한 <나라는 사람>은 선거를 앞두고 개인 욕심을 위해 주민과 지역, 국가를 팔며 얼굴을 내미는 이들이 만든 책으로 도배된 2026년 봄날의 서점에서 유독 빛났다.

"멀리 떨어져 있으면서도 완전히 외부인이 될 수는 없는 상태다." (책, 103쪽)
슈붕은 한국에 살고 있지만, 미얀마 국적을 가진 경계인이다. '경계'는 묘한 구석이 있다. 넘을 수 있다면, 다른 공간을 경험할 수 있는 자유를 준다. 그런데, 경계를 넘는 것이 모두에게 쉬운 일은 아니다. 경계는 약자의 자유를 빼앗고 구속하는 곳이기도 하다.

"프랑스-스위스나 이탈리아-스위스 경계를 '유럽 여권'을 소지하고 건너는 것과 구 유고슬라비아 여권을 소지하고 건너는 것이 동일한 방식일 수는 없다"(에티엔 발리바르, 1997, 최원, 서관모 옮김, 2007, <대중들의 공포>, 446쪽, 도서출판 b).

유럽 사람 발리바르는 '구 유고슬라비아 여권'을 예로 들었다. 그런데, 군부 독재로 인해 국가 통제는 극에 달해 있고 경제는 파탄 나 있는, 동남아시아의 미얀마 사람에게 경계는 훨씬 높은 장벽이다. 한국이나 유럽 여권을 가진 이들이 하지 않아도 될 일을 하고 오랜 시간을 초조하게 기다려야 겨우 그 경계를 넘어설 수 있다. 경계를 넘어서면서도 영원히 돌아가지 못할 수도 있다는 불안을 동반해야 한다.

"한국에서 대학에 다니면서 늘 부러워한 존재가 있다. 바로 외국인 친구들이다. … 방학 때마다 자연스럽게 집으로 갈 수 있는 유학생 친구들이 부럽다. 나는 언제쯤 저렇게 가족이 있는 곳에 돌아갈 수 있을까."(책, 91쪽)

대학원에서 정치외교학을 전공하는 슈붕의 바람은 간단하다. "이제 더는 희생은 없었으면 좋겠다는 마음뿐"이다(책, 121쪽). 슈붕은 지금도 미얀마에서 무자비한 폭력이 계속되고 있음을 잘 안다(책, 129쪽). 그는 잊지 않기 위해 기록한다. "아무 일도 안 일어난 양 넘어가지 않기 위해" "계속 기록해야 한다"고 믿는다(책, 129쪽)

슈붕이 한국에서 공부하고 있다고 해서 군부 쿠데타 세력의 만행을 잊고 저항을 멈춘 것이 아니다. 그는 '저항'을 미화하지 않는다. 그는 저항을 "밀려난 사람들이 마지막으로 붙잡을 수 있는 태도"에 가깝다고 썼다. 우리가 미얀마 사람들의 저항을 기억해야 하는 이유는 그들과 한국의 역사가 비슷하기 때문이 아니다. 한국 안에서도 수많은 이들이 '밀리고 밀려나' 저항하고 있기 때문이다. 미얀마 사람들의 손을 잡는 것은 드러나지 않는 우리 안에 있는 다수의 밀려난 사람들과 함께하는 일이기도 하다.

"저항이 아름답기 때문이 아니라 포기하지 않겠다는 선택 말고는 다른 길이 없어서 우리는 여기까지 왔다. 저항은 이상적인 행동이 아니라 밀려난 사람들이 마지막으로 붙잡을 수 있는 태도에 가까웠다. 더 많은 희생이 반복되지 않기를 바라면서도, 이미 일어난 희생을 지울 수 없기 때문에 우리는 멈추지 못하고 있다." (책, 190-191쪽)

나라는 사람 - 쿠데타 사이에 선 어느 미얀마 사람의 기록

슈붕 (지은이), 이매진(2026)


#나라는사람#슈붕#이매진#미얀마#쿠데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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