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경찰청은 순경 공개 채용에 있어서 처음으로 성별 통합선발 방식을 적용한 결과, 여성이 최종 합격자 중 1112명(37.8%)으로 나타났다고 밝혔다.
여성의 채용 비율을 제한해 두고 성별을 분리해 채용했던 과거의 방식에 대해 2004년 7월 국가인권위에 진정이 제기됐다. 이를 받아들인 인권위가 2006년 1월 경찰청장에게 성별 분리 모집이 평등권 침해의 차별행위이므로 개선해야 한다고 권고한 이후, 20년 만이다.
과거의 방식은 직무수행능력과 관계없이 단순히 여성이라는 이유로 채용 인원을 제한했던 것이므로 전형적인 성차별이었다. 이를 폐지하고 체력시험과 필기시험 모두 성별 구분 없이 선발을 진행했다는 점과 그 결과가 여성 채용의 확대로 이어진 것은 고무적이다. 이번 순경 채용은 일부 지역에서는 여성 응시자의 합격자 비율이 남성보다 많거나 같았고 여성 합격자 비율이 40%를 넘은 지역도 많았다.
그러나 이 소식이 알려진 뒤의 SNS나 커뮤니티의 반응은 의아스러웠다. 여전히 많은 사람들이 여성에 대한 성별 고정관념을 가진 채로 '현장에 문제가 발생할 것'이라거나 '여경이 출동하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댓글을 달았다. 남성경찰과 동일한 체력시험을 통과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여성은 물리력에서 약할 것이라는 편견으로 여성 경찰 전체를 폄하하는 내용들이었다.
언론 보도에 따르면 체력시험에서 상대적으로 남성 응시자들이 우위에 있었지만 필기시험에서는 상대적으로 남성 응시자들이 낮은 점수를 기록했기 때문에, 여성 응시자들의 합격 비율이 높아졌다고 한다. 하지만 '남경이 필기시험 성적이 떨어져서 업무를 제대로 수행할 수 있을지 걱정된다'는 댓글은 보이지 않았다. 물리력 행사는 경찰의 수많은 업무 중 하나임에도 불구하고, 이처럼 물리력이라는 잣대만으로 여성에게 성차별적 발언이 쏟아지는 게 현실이다.
남성의 성비위와 부정부패를 묵인하는 공직사회

▲여고생 살해범' 장윤기 사건의 증거를 인멸한 혐의를 받는 광주 광산경찰서 수사팀장 A 경감이 8일 오전 전남광주통합특별시 동구 광주지방법원에서 열린 구속 전 피의자 심문(영장실질심사)에 출석하고 있다. 경찰은 A 경감이 장윤기의 차량을 압수수색하는 과정에서 '케이블타이'를 증거인멸한 혐의로 전날 구속영장을 신청했다. ⓒ 연합뉴스
하지만 실상은 어떨까. 공직사회를 흔드는 여러 성비위, 부정부패 사건들이 남성 공직자들에 의해 일어나고 있다. 지난해 10월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소속 박정현(더불어민주당) 의원이 공개한 '최근 3년간 국가공무원 성비위 및 음주운전 징계현황'에 따르면 최근 성 비위와 음주운전으로 징계를 받은 중앙행정기관 소속 국가공무원은 총 2356명으로, 그 중 성 비위가 921명이었다.
지난해 광주 광산소방서에서는 상급자가 하급자인 여성 소방관에게 음주를 강요하고 남성 상사 옆자리에 착석하라거나, 오빠라고 부르라는 등의 갑질 행위로 인해 피해자가 자살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올해 5월 5일 광주에서 귀가하던 고 이채원 양을 장윤기가 살인한 사건에서, 장윤기의 아버지가 현직 경찰로서 리얼돌이나 범행에 이용했던 차량 등에서 발견할 수 있었던 결정적인 증거들을 수사 초기에 인멸한 사실도 알려졌다.
최영중 전 청주시의원은 중학생에게 '담배 사주겠다'며 불러내어 아동 성매매를 하고 성착취물을 제작했다는 혐의를 받아 구속됐다. 하지만 경찰 수사 중임에도 선거 전 공천에서 걸러지지 못하고 국민의힘 소속으로 버젓이 당선되었다.
또한 여성 육군 부사관이 남성 상관으로부터 성추행과 폭행을 당한 뒤 다른 부대로 전출해서 근무를 이어갔지만, 새 부대에서마저 남성 행정보급관으로부터 성폭력 피해를 당한 일이 지난 2일 JTBC 사건반장을 통해 알려졌다. 곳곳에서 일어나는 성비위와 권력형 비리 사건으로 공직사회가 송두리째 흔들린다고 봐도 과언이 아닐 정도이다.
앞선 사례들은 단순한 공직자의 비위행위가 존재했다는 점 뿐만 아니라 문제가 된 행위를 둘러싼 주변인들의 묵인과 방조행위가 존재했다는 점이 공통적이다. 광주 광산소방서는 피해자 유족의 감찰 요구를 가해자가 셀프조사하여 '특이사항 없음'으로 종결하는 등 사실상 감찰을 묵살하였고, 고 이채원양 살인사건의 수사팀은 증거를 제대로 확보하지 않고 살인범 장윤기의 아버지에게 증거물을 인계하거나 수사 일정을 미리 알리는 등 편의를 봐 주었다. 국민의힘 청주서원 김진모 당협위원장은 언론 인터뷰에서 최영중 전 의원을 두둔하면서 "여성이 어떤 의도로 이렇게 하고 있는 건지 감안해야" 등 2차 가해 발언을 하기도 했다.
이렇게 남성 공직자의 심각한 부정행위를 묵인하고 은폐하는 구조가 존재하기 때문에 이들은 더욱더 당당하게 문제를 저지를 수 있게 된다. 피해자와 유가족, 시민단체의 적극적인 행동이 없었다면, 이 사건들은 아마도 권력에 의해 은폐되었을 가능성이 높다.
젠더관점에서 볼 때에도 마찬가지로 구조적 은폐가 이루어진다. 행위자가 모두 남성인데도 여론은 이를 '남성'의 문제로 명명하지 않는다. 수많은 문제의 원인임에도 지목되지 않고 회피할 수 있는 권력, 이것이 바로 남성이 남성이라는 이유로 가지는 권력이기도 하다.
여성 공직자에 대한 뿌리 깊은 편견에도 불구하고

▲한국여성단체연합을 비롯한 여성단체 관계자들이 지난 3월 27일 서울 여의도 국회 정문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6·3 지방선거 여성 후보자 공천 확대 촉구하라"고 외치고 있다. ⓒ 남소연
여자라는 이유로 채용에서의 차별, 성희롱, 성폭력, 직장 내 괴롭힘의 피해자가 되는 현실에도 불구하고 여성 순경 합격자 확대와 같이 여성들은 공직 곳곳에서 자신들의 파이를 키워나가는 중이다. 지난 6·3 지방선거에선 추미애 더불어민주당 후보가 경기도지사에 당선되면서 헌정사상 최초의 여성 광역단체장이 등장하였으며, 전국 광역의회 최초로 여성의원이 전체 시의원의 절반을 차지하게 된 대전시의회에서는 모든 상임위원장과 운영위원장에 여성의원이 선출되었다.
그 이외에도 전국적으로 올해 기초의원 선거에서 여성 당선자가 전체의 36.8%를 달성하였고, 그 중 광주는 54.8%로 여성의원이 과반이 되었고, 경기도와 인천이 45%, 서울시가 44.7%에 달하는 등 차근히 의사결정 영역에서 여성의 대표성이 확대되고 있다.
아쉬운 것은 아직도 인식 변화는 더디다는 점이다. 지난 7월 15일 이재명 대통령이 청와대 영빈관에서 열린 업무보고를 마무리하면서 공직자들을 향해 "술 먹고 노는 것, 다 좋은데 옆자리에 젊은 이성을 앉히지 마세요"라고 말했다. 그 뒤로 이어진 발언은 광주 광산소방서의 직장 갑질 사례를 염두에 두고 동료를 성적대상화하고 지위를 이용하여 수단으로 삼지 말라는 내용이었다. 하지만 첫 마디가 "옆자리에 앉히지 말라"는 말이었기에 오히려 공직사회 성폭력의 원인을 피해자인 여성에게 돌리거나 중요한 업무를 논의하는 자리에서 여성을 배제하는 차별행위(일명 '펜스룰')로 이어지는 발언으로 해석될 여지가 있어 보였다.
아니나 다를까, 국민의힘 김재섭 의원이 이 대통령의 해당 발언이 펜스룰이라며 문제제기를 하기도 했다. 김 의원은 지난 지방선거에서 정원오 민주당 서울시장 후보의 출장에 여성 공무원이 동행한 것을 두고 '여직원과 휴양지 출장'이라는 식으로 의혹을 제기했던 것과 일맥상통하게, 이재명 대통령 발언의 앞뒤 맥락을 다 자르고 정치적 공격에 이용했다.
왜 여성들은 공적 영역에서 자신의 능력을 증명하고 자리를 넓혀가도 남성을 공격할 때만 수단으로 활용되거나 성차별적인 시선에 발목을 잡혀야 할까? 이는 지금까지 공직사회가 '남성'을 기본값으로 두고 설계되었기 때문이다. 여전히 여성 동료를 '옆에 앉히는 존재'나 '출장에 데려가는 존재'처럼 수동적인 물건처럼 대하고 말하는 행위가 공적 영역에서 공공연하게 이루어지고 있는 것 이다. 지금까지의 공직사회가 고수해 온 군대식 문화나 남성중심적 온정주의를 버리지 못한다면 과연 한국 공직사회에 미래가 있을까?
순경 통합선발에 20년의 세월이 걸렸듯, 제도가 편견을 깨는 데는 시간이 걸린다. 하지만 이제 시작이다. 최초의 여성 광역단체장, 여성이 과반을 차지한 의회는 당연한 상식이 되어야 한다. 공직사회의 평등은 기득권의 부정부패를 청산하고, 안전하고 청렴한 민주주의를 구현하기 위한 필수 조건이다. 이제는 여성공직자의 수적인 확대를 넘어 모든 성별이 함께 안전하게 일하고 업무에 집중할 수 있는 문화를 만드는 것을 진지하게 고민해야 한다. 평등한 조직문화를 만들어갈 때, 공직사회는 비로소 시민의 신뢰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