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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년 전 이맘때 나는 대한민국법무부로부터 귀화허가서를 받고 몹시 기뻤다. 할아버지가 살던 고국의 국민이 되었으니 말이다. 그런데 입적(入籍) 과정에 기쁨도 잠시 머리가 복잡하고 혼란스러웠다. 심지어 나는 껍데기만 한국인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법무부에 제출한 귀화신청서에 나의 한자 이름(金正龍)과 본(선산 김)을 밝혔었는데 정작 주민증을 받아보니 한글 이름만 있고 한자 이름은 없었다.

"대한민국 선주민은 모두 주민증에 한자 이름이 기재되어 있는데 왜 저희 주민증엔 한자 이름이 없습니까?"
"한자 이름의 기재를 원하신다면 개명 신청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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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나라에서 태어나 한자 이름을 갖고 지금까지 살아왔는데 개명 신청이라니? 일제시대 창씨개명의 슬픈 역사를 조선족 동포들에게 대물림하다니. 고국이 원망스러워졌다. 한자 이름의 개명 신청보다 더 황당한 일이 나를 괴롭혔다.

대한민국 관공서 서류인 '기본증명서', '가족관계증명서', '혼인관계증명서'에 '본'을 기재하게 되어 있는데 나의 모든 관공서 서류엔 '본'이 비어 있다. 난 '선산 김'인데 입적 과정에 나의 '본'을 인정해 주지 않아서 생긴 일이다.

"전 분명히 선산 김이라고 밝혔는데 왜 인정 안 해 주십니까?"
"본의 기재를 원하신다면 가문의 족보를 제시하든가 아니면 대한민국 문중의 증빙서류를 발급받아 제출하세요."

"족보는 문화혁명 때 불태워서 없고 대한민국 문중의 증빙서류를 발급받을 수는 있지만 본이란 가문의 뿌리이고 우리 백의민족의 전통문화인데 왜 증빙서류가 필요하죠? 제가 '선산 김'이 아닌데 '선산 김'으로 주장할 이유가 무엇이고 또 허위로 본을 주장해서 얻는 이익이 무엇일까요? 가문의 조상을 배신하면서까지 허위로 주장할 이유가 전혀 없으니 그냥 인정해 주면 안 됩니까?"
"법이 이렇게 되어 있어 저희는 어쩔 수 없어요."

맞는 말이다. 일선 창구 공무원의 선에서 해결될 문제가 아니니까. 그런데 나와 같은 10만여 명에 달하는 조선족 동포 출신 귀화자들이 가문의 뿌리이자 우리 백의민족 전통문화인 '본'을 인정해주지 않는 그 법이란 도대체 무엇일까?

그때부터 나는 가족관계등록법을 공부하기 시작했다. 2008년부터 호적제도가 폐지되고 가족관계등록법이 실시되었다. 가족관계의 등록 등에 관한 법률 본문은 이렇다.

제4장 제11절 제96조 제1항, 외국의 성을 쓰는 국적취득자가 그 성을 쓰지 아니하고 새로이 성(姓)·본(本)을 정하고자 하는 경우에는 그 등록기준지·주소지 또는 등록기준지로 하고자 하는 곳을 관할하는 가정법원의 허가를 받고 그 등본을 받은 날부터 1개월 이내에 그 성과 본을 신고하여야 한다.

제2항 대한민국의 국적을 회복하거나 재취득하는 경우에는 종전에 사용하던 대한민국식 성명으로 국적회복신고 또는 국적재취득신고를 할 수 있다.

조선족 출신 귀화자는 두 가지 부류이다. 하나는 제2항에 해당되는 1세대들이다. 이들은 창성창본 없이 본래의 가문 전통 본과 한자 이름을 인정받는다. 문제는 조선족 동포 출신 국적 취득자들이다.

조선족 동포 출신 국적 취득자들은 제2항에 해당되지 못하고 또 재외동포법에 의하면 재외동포 개념이 혈통주의(속지주의 아닌 속인주의)임에도 불구하고 이에 관련하여 별도의 조항 신설 없이 제96조 제1항 순수 한반도와 아무 혈연관계가 없는 외국인 출신 귀화자들의 조례에 적용하다보니 한자 이름이 있고 가문의 전통 '본'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새로이 창성창본해야 한다.

상기 조례에 따라 10만여 명 조선족 동포출신 귀화자들이 거주지에 따라 창본하다보니 '구로 김' 영등포 최' '인천 박' '부천 이'등 이 땅에 있어 본 적 없는 '본'들이 생겨나고 이들은 새로운 '본'의 시조가 되는 것이다.

나의 경우 '구로 김'으로 하라는 것을 거절했다. '구로 김'이 약하다면 폼 나게'서울 김'으로 하라는 권유에 더욱 화가 치밀어 지금까지 관공서 서류에 기재되어야 할 '본'을 비워두고 있다. 언젠가 이 문제를 꼭 해결하고야 말겠다는 신념을 갖고 현재까지 노력해왔다.

조선족 동포 출신 귀화자들의 창성창분 문제를 주제로 포럼을 개최하여 직접 발제하였고 재외동포청, 법무부, 대법원 등 관련 기관을 찾아 호소하였고 법무부 출입국·외국인정책본부장 출신 국회의원도 만나 제기했다.

탈북민과 조선족 동포 출신 귀화자들은 2007년까지 본인의 진술에 의해 '본'을 인정받았다. 2008년부터 가족관계들록법이 실시됨에 따라 탈북민과 조선족 동포 출신들이 가문의 전통 '본'을 인정받지 못해 창본해야 한다. 탈북민들은 창본이 신분노출이란 인권문제를 제기하여 2016년 10월부터 법이 바뀌어 본인의 진술에 의해 '본'을 인정받고 있다.

조선족 동포들은 만주에 이주해 살아온 역사가 길어서 160년이고 짧으면 100년 미만이다. 그동안 가문마다 자녀가 태어나면 어김없이 '본'을 가르쳐 왔다. 그렇게 자랑스럽게 지켜온 가문의 뿌리이자 민족의 전통문화인 '본'을 고국에 와서 인정받지 못하고 있으니 참으로 서글픈 일이다.

대한민국이 조선족 동포출신 귀화자들의 '본'을 인전하지 않고 이 땅에 존재해 본 적 없는 '창본'을 강요하는 것은 조선족 동포 집단의 존엄에 대한 침해이고 정체성에 대한 말살이다. 현재 한자 이름의 기재는 마음속으로 내키진 않지만 법원에 개명 신청하면 해결된다. 그러나 가문의 뿌리인 '본'의 기재는 법원에 제출해도 해결되지 않고 있다.

인간은 관계가 소원한 사람들한테서 받는 상처보다 가까운 친구, 친인척, 가족들한테서 받는 상처가 훨씬 더 큰 법이다. 차라리 할아버지가 살던 고국 아니고 한반도와 아무런 혈연관계가 없는 외국인 신분이라면 이런 고민도 없을 텐데 말이다.

나는 한민족이고 고국에 와서 당당하게 대한민국 국민으로 귀화했으나 한자 이름도 가문의 조상 대대로 지켜온 '본'도 인정받지 못하고 있는 현실. 그래서 나는 껍데기만 한국인이라는 생각이 나를 몹시 괴롭히고 있다.

덧붙이는 글 | 글쓴이는 중국동포사회문제연구소 소장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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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성창본#조선족#동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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