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울 서초구 대검찰청의 모습. ⓒ 연합뉴스
2004년 대검찰청에 입사한 오아무개 전 문서감정관은 2015년부터 문서감정 업무를 맡았다. 이후 2026년 퇴직할 때까지 600건 가까운 문서를 감정했다. 지난 14일 <오마이뉴스> 기자를 만난 오 전 감정관의 말이다.
"대검찰청 문서감정실에서 약 10년 정도 일하는 동안 600건 가까이 문서감정을 했습니다. 감정 결과를 놓고 조직과 이렇게 충돌한 것은 두 건뿐입니다."
그가 말한 두 건은 과거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의 이른바 '조폭 뇌물 편지' 사건과 코스닥 상장사 A업체의 대여금 약정서 사건이다.
오 전 감정관은 두 사건 모두 문서에 담긴 필적이 동일하지 않다는 의견을 냈지만 내부 합의가 이뤄지지 않았고, 다른 감정관에게 재배당을 해달라는 요청도 받아들여지지 않았다고 주장한다. 감정 결과는 당시 예규상 처리기한인 20일을 크게 넘겨 각각 의뢰 70일째와 219일째 회신됐다.
그는 이 같은 내용을 지난 2025년 10월 국민권익위원회에 공익신고했다. 권익위는 업무처리의 적정성에 관한 부분을 법무부에, 형사책임에 관한 부분을 경찰청에 각각 송부했다.
<오마이뉴스>는 오 전 감정관이 자신이 진행한 600건 가까운 감정 가운데 왜 유독 이 두 사건에서만 조직과 충돌했다고 주장하는지, 처리 지연과 재배당 불발의 경위가 무엇인지 확인하기 위해 그를 만났다. 문서감정실 책임자였던 윤아무개 전 실장의 입장도 함께 들었다.
[첫 번째 사건] 이재명 '조폭 뇌물 편지'

▲페이스북 '박OO'의 2018년 11월 21일, 25일 게시물. 이 계정의 프로필 사진에 등장하는 남성은 김용판 국민의힘 의원이 18일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경기도 국정감사장에서 공익제보자라고 주장한 박철민씨와 같다. ⓒ 페이스북 박OO 계정 갈무리
이재명 당시 대선후보의 조폭 연루 의혹은 2021년 국민의힘이 성남 지역 폭력조직 출신 인사가 보관했다는 편지를 공개하면서 불거졌다. 편지에는 이 후보 측에 여러 차례 거액을 전달했다는 취지의 내용이 담겼고, 편지 내용은 돈다발 사진과 함께 조폭 연루설의 근거로 정치권과 언론에 퍼졌다.
그러나 작성자로 지목된 인물은 이 후보에게 돈을 전달했다는 내용이 적힌 부분은 자신이 작성하지 않았다는 취지로 진술했다. 이에 수원지검은 2021년 12월 28일과 29일 대검 법과학분석과에 편지의 필적과 가필 여부에 대한 감정을 의뢰했다. 오 전 감정관이 주임감정관을 맡았다.
대검은 가필 여부에 관한 감정 결과를 2022년 1월 6일 먼저 수원지검에 회신했다. 그러나 필적 동일 여부에 대해서는 내부 합의가 이뤄지지 않았다.
오 전 감정관은 인터뷰에서 이 후보에게 돈을 전달했다는 내용이 적힌 부분과 나머지 부분 사이에서 한글 자음 'ㅇ'·'ㅈ'·'ㅊ'·'ㅅ'·'ㅁ'의 운필 방식과 글자의 시작과 끝, 느낌표 형태 등 여러 차이를 확인했다고 설명했다. 이를 토대로 서로 다른 사람이 작성했을 가능성이 높다는 의견을 냈다는 것이다. 그러나 당시 문서감정실장은 이에 동의하지 않았다고 한다.
오 전 감정관은 "주임감정관 의견과 다르다면 어느 글자의 어떤 특징을 잘못 봤는지 과학적으로 설명하면 된다. 구체적인 근거 없이 동의하기 어렵다고만 하면 감정은 더 진행되기 어렵다"고 밝혔다.
그는 의견 차이를 해소하기 어렵다면 다른 감정관에게 사건을 재배당해 달라고 요청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고 했다. 결국 대검은 필적이 같거나 다르다는 결론을 내리지 못한 채 감정관들의 공통된 의견을 도출하지 못했다는 취지로 회신했다.
대선 하루 전이었다.
20일 규정인데 70일…대선 전날 나온 감정 결과
오 전 감정관은 예규상 처리기간을 넘겨 감정 결과가 회신된 점도 문제 삼고 있다. 당시 예규에는 문서감정을 20일 이내에 처리하도록 규정돼 있었다.
특히 이 사건은 대통령선거를 앞두고 유력 후보의 조직폭력배 연루 의혹을 뒷받침하는 핵심 자료에 관한 감정이었다. 따라서 필적 동일 여부에 관한 결과가 언제, 어떤 방식으로 회신되는지는 의혹의 신빙성을 판단하는 데 중요한 요소였다.
오 전 감정관은 "법무부 인사라인, 대검 수뇌부, 과학수사부장 및 과장, 문서감정실장, 대검 감찰라인, 수원지검 수뇌부와 담당 검사 및 수사관이 조직적으로 연루됐을 가능성에 대해 진상규명과 수사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그는 이 사안을 대리인 최정규 변호사를 통해 2025년 10월 10일 국민권익위원회에 신고했다. 권익위는 두 달 뒤인 같은 해 12월 예규 위반과 공무원 성실의무 위반 등 업무처리의 적정성에 관한 부분을 법무부에, 공직선거법·청탁금지법 위반과 직무유기죄 등 형사책임에 관한 부분을 경찰청에 각각 송부했다.
지난 6월 국민권익위원회가 통지한 법무부 조사결과에 따르면, 법무부는 감정관 전원의 합의가 이뤄지지 않아 회신이 늦어졌으며, 관계자들이 고의로 법령이나 예규를 위반했다고 보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이에 대해 오 전 감정관은 "문서감정실장이 대선이 임박한 시점에서야 감정의견란을 제외한 부분은 그대로 두고 감정의견란의 문구만 자신이 제안한 문구로 고치자고 먼저 제안했다"며 "이미 감정기간이 상당 기간 도과한 상태라 이를 수용했고, 실장이 제안한 문구를 상호 확인한 뒤 결재 상신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두 번째 사건] A업체 '대여금 약정서'

▲국회 법사위에서 열린 대검 국정감사에서 문서 감정 예규 관련 의혹이 제기됐다. 2025-10-27 ⓒ 국회방송 유튜브 갈무리
두 번째 사건은 한 개인의 형사처분과 재산권에 영향을 줄 수 있는 사건이었다. 오 전 감정관 측이 권익위에 제출한 신고서에는 A업체 대표가 전직 직원 명의의 대여금 약정서를 근거로 민사소송을 제기했고, 전 직원은 해당 문서를 작성한 사실이 없다며 위조를 주장한 것으로 기재돼 있다. 수사를 진행한 대구지검 서부지청은 2022년 5월 25일 대검 법과학분석과에 문서감정을 의뢰했다. 주임감정관은 오 전 감정관이었다.
오 전 감정관은 인터뷰에서 약정서에 적힌 이름과 비교 필적의 운필 방식 등을 분석한 결과 두 필적이 서로 다르다는 의견을 냈다고 설명했다.
이 사건에서도 내부 합의는 이뤄지지 않았다. 오 전 감정관은 첫 번째 사건과 마찬가지로 재배당과 감정운영위원회 개최를 요청했다. 신고서에는 감정운영위원회가 소집됐지만 논의 내용과 결과는 공개되지 않았다고 적혀 있다.
이 사건에서 제기되는 또 다른 쟁점은 감정이 진행되는 동안 문서감정 규정이 개정됐다는 점이다.
대검은 2022년 12월 22일 문서감정 규정을 개정해 감정관들이 끝내 합의하지 못할 경우 '판단불명'으로 처리할 수 있도록 했다. 부칙에는 시행 당시 감정이 진행 중인 사건에도 개정 규정을 적용한다는 내용이 포함됐다.
일주일 뒤인 12월 29일, A업체 사건은 의뢰 219일째에 '판단불명'으로 회신됐다.
오 전 감정관은 자신이 필적이 서로 다르다는 의견을 냈지만 내부 합의가 이뤄지지 않은 채 사건 처리가 장기간 지연됐고, 결국 규정 개정 뒤 판단불명으로 종결됐다고 주장한다.
그는 예규 개정이 언제부터 추진됐는지, 진행 중인 사건에 개정 규정을 적용하도록 한 이유가 무엇인지, 감정운영위원회에서 어떤 논의가 이뤄졌는지를 공개해야 한다고 요구한다. 특히 규정 개정 일주일 뒤 해당 사건이 판단불명으로 종결된 경위를 설명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600건 중 왜 이 두 건만 문제가 됐나
오 전 감정관은 2015년 문서감정 업무를 시작한 뒤 수백 건의 감정을 맡았지만, 자신의 의견이 장기간 받아들여지지 않고 재배당 요청까지 받아들여지지 않은 사례는 이 두 건뿐이었다고 말했다.
오 전 감정관은 다음 세 가지가 여전히 설명되지 않았다고 주장한다.
▲왜 두 사건에서만 대검 소속 감정관들 사이의 의견 충돌이 장기간 이어졌는가 ▲왜 두 사건에서 재배당 요청이 받아들여지지 않았는가 ▲왜 두 사건 모두 예규상 처리기간을 크게 넘겼는가.
오 전 감정관이 권익위에 신고한 이후 받은 법무부 조사 결과 통지에는 첫 번째 사건에 대한 판단만 담겼다. 두 번째 사건이 조사됐는지, 조사됐다면 어떤 결론이 내려졌는지는 통지서에서 확인되지 않는다.
경찰청에 송부된 형사책임 관련 사건의 처리 결과도 현재 공개된 문건에서는 확인되지 않는다.
오 전 감정관 대리인 최정규 변호사는 <오마이뉴스>에 경찰청에 송부된 사건의 수사 진행 상황을 확인하기 위해 국민신문고를 통해 질의했지만, 구체적인 답변을 받지 못했다고 밝혔다.
경찰청은 처리기한을 한 차례 연장한 뒤 해당 신고가 2025년 12월 29일경 서울경찰청 수사과로 하달됐으며, 이후 서울경찰청 광역수사단 공공범죄수사대로 다시 하달됐다고 회신했다. 그러나 실제 사건 담당자와 구체적인 수사 진행 상황은 답변에 포함되지 않았다.
최 변호사는 "신고자가 위험을 감수하고 공익신고를 했는데도 현재 수사가 어디까지 진행됐는지조차 확인하기 어려운 상황"이라며 "형식적인 회신만으로는 국민권익위원회가 송부한 사건이 제대로 수사되고 있는지 알기 어렵다"고 말했다.
윤아무개 실장 반박 "오 전 감정관 주장과 다른 사실도 있다"
지난 28일 <오마이뉴스>는 오 전 감정관의 인터뷰 내용을 토대로 당시 대검 문서감정실장이었던 윤아무개 실장에게 입장을 물었다.
윤 실장은 인터뷰에는 응하지 않았지만 "국회 국정감사에서 이미 충분히 설명했다"며 당시 설명과 입장에 변화가 없다고 밝혔다.
지난해 10월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국정감사에서 윤 실장은 오 전 감정관의 주장이 일방적인 측면이 있다고 반박했다.
그는 "문서감정은 감정관 합의제로 운영되며, 의견이 일치하지 않으면 원칙적으로 '판단불명'으로 처리해 왔다"고 설명했다. 이재명 후보 편지 사건의 경우 오히려 오 전 감정관의 의견을 최대한 반영하기 위해 기존에 사용하지 않았던 이례적인 문구를 감정서에 담았다고 주장했다.
또 필적 감정이 장기간 지연됐다는 지적에 대해서도 "감정 일정은 담당 감정관이 결정하는 사항으로 실장이 개입할 수 없다"면서 "2021년에도 60일 이상 소요된 사건이 14건 있었고 이 가운데 12건은 오 전 감정관이 처리기한을 넘겨 통과한 것"이라고 말했다.
이에 대해 오 전 감정관은 "윤 실장이 말한 (12건) 감정 지연은 처음부터 통계 근거가 불명확하다"며 "지연 사유는 의뢰청의 추가자료 송부 지연이나 선접수 감정물, 긴급 감정물 우선 처리로 순연되는 경우 등 다양하다"고 반박했다. 그러면서 "일반적인 감정 지연은 누적된 미제 감정물로 인한 것으로, 문제가 된 감정서의 결재 거부로 인한 지연과는 본질적으로 다르다. 본질을 흐리는 의도적 흠집내기"라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