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네시아 부톤섬의 찌아찌아어는 지금도 9만여 명이 쓰는 살아 있는 말이다. 그러나 인도네시아의 공용 문자인 로마자로는 그 소리를 제대로 적을 수가 없었다. 적을 글자가 없으니 신화와 전설, 조상 대대로 내려온 옛이야기는 오직 입에서 입으로, 세대에서 세대로 전해질 수밖에 없었다. 기억에 기대는 전승은 세대가 바뀔 때마다 조금씩 지워진다.
2009년 7월, 바우바우시 소라올리오에서 찌아찌아정음(한글) 첫 수업이 열렸다. 그로부터 17년, 마침내 그 옛이야기들이 문자로 담기어 한 권의 책이 되었다. 찌아찌아족의 구전 설화 열 편을 묶은 <미똣 마이 레겐다 아슬리 찌아찌아- 찌아찌아 민속 설화>(북스힐)가 지난 4월에 나왔다. 찌아찌아정음·한국어·영어를 나란히 실은 3중 대역본으로, 찌아찌아 설화가 문자로 묶여 나온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찌아찌아 민속설화집 표지 ⓒ 북스힐
공저자인 현지 교사 아비딘(Abidin)과 우충환 박사를 7월 25일 화상으로 만났다. 아비딘은 2009년 첫 수업 이래 17년째 찌아찌아 정음을 가르쳐 온 사람이고, 우충환은 현지에서 4년간 지내며 이 작업을 함께 꾸린 사람이다. 대화는 한국어와 영어로 이루어졌고, 영어 통역은 우충환이 맡았다.
- 자기소개를 부탁드립니다.
아비딘 : "저는 아비딘입니다. 지금은 고등학교 교사로 일하면서 찌아찌아어를 디지털로 남기는 작업도 맡고 있습니다. 찌아찌아정음은2009년7월에 이곳에서 제가 처음으로 가르쳤습니다."
- 선생님을 '한글 교사'라고 해야 합니까, '한국어 교사'라고 해야 합니까?
우충환 : "정확히는 '찌아찌아정음 교사'입니다. 찌아찌아어를 한글로 적는 법, 곧 자모와 표기법을 가르쳤으니까요. 다만 한국어 교육도 같은 2009년에 함께 시작했기 때문에 아비딘 선생님은 두 가지를 모두 가르쳐 온 교사이기도 합니다."
- 책 제목을 직접 읽어 주시겠습니까.
아비딘 : "미또스(스는 모음을 약하게) 마이 레겐다 아슬리 찌아찌아."
- '미똣'의 받침 시옷을 그대로 소리 내시는군요. 오늘날 한국어 표기법대로 읽으면 '미똗'이 되는데, 15세기 세종 시대에는 받침 시옷을 그대로 발음했지요. 책이 나온 소감을 말씀해 주십시오.
아비딘 : "먼저 훈민정음학회와 원암문화재단에 감사드립니다. 이 이야기들은 아주 오래전부터 찌아찌아에 있었지만, 오직 입에서 입으로만, 세대에서 세대로만 전해졌습니다. 이대로 두면 젊은 세대가 이 이야기를 완전히 잊어버리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여러 해 동안 애를 써서 글로 옮겼고, 이제야 책이 되었습니다."

▲영상 인터뷰에서 찌아찌아 정음(한글)로 쓰인 설화집을 낭독해 보는 아비딘 씨 ⓒ 김슬옹
- 현지 반응은 어떻습니까.
아비딘 : "까르야바루 초등학교, 부기 초등학교, 제가 있는 고등학교에 나눠 주었습니다. 소라올리오의 교사와 예비교사들, 고향을 떠나 사는 찌아찌아 사람들에게도 보냈습니다. 모두 우리 것을 우리 글로 잘 담았다고 했습니다. 이제 다시 읽을 수 있으니 더 이상 잊지 않을 것이고, 다음 세대에게 물려줄 수 있겠다고들 합니다."
- 이 설화를 구술해 주신 분이 어머니라고 들었습니다.
아비딘 : "책이 나오자마자 가장 먼저 보여 드린 사람이 어머니였습니다. "이건 어머니 이야기예요. 어머니가 들려주신 것을 제가 적었어요" 하고 말씀드렸더니"정말 잘했다"고 하셨습니다. 이 이야기가 책이 되어 교재로 쓰인다는 것을 무척 기뻐하셨습니다. 엮으면서 다른 분들께도 여쭈었습니다. 같은 이야기가 정말 같은지, 다른 판본이 있는지 여러 사람에게 물었습니다."
- 옮기면서 가장 어려웠던 점은 무엇입니까.
아비딘 : "이 책은 10년쯤 전부터 시작했다가 멈추기를 반복했습니다. 가장 큰 어려움은 자모 자체였습니다. 처음 찌아찌아정음은 스물일곱 자였는데, 그것으로는 우리말 소리를 다 적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2019년에 제가 직접 한국에 가서, 처음 찌아찌아 표기 체계를 만드신 서울대 이호영 교수님을 찾아뵈었습니다. 그 개정을 거쳐 서른두 자가 된 뒤에야 비로소 이 책을 쓸 수 있었습니다."
우충환 : "2009년 도입 당시에는 자음17자·모음10자였고, 2019년 개정으로 자음21자·모음11자가 되었습니다. 표기 도구가 갖춰지고 나서야 기록이 가능해진 것입니다. 구상은15년쯤 전부터 있었지만 코로나 팬데믹으로 진행이 여러 차례 끊겼고, 자료 수집과 집필이 집중된 것은 최근2~3년입니다."
- 한국에서는'한글 수출'이 문화 우월주의나 문화 침탈로 비칠 수 있다는 걱정이 있습니다. 현지에서도 그런 반응이 있었습니까?
아비딘 : "처음 소개할 때는 의심하는 분들이 있었습니다. "바깥 사람들과 손잡으면 우리 문화가 침해받는 것 아니냐"는 걱정이었고, 자카르타 쪽에서도 조심해야 한다는 말이 나왔습니다. 그래서 저는 이것이 누가 누구를 지배하는 일이 아니라 문화 교류이며, 우리는 우리 문자를 갖고 싶어서 한글을 표기 체계로 받아들이기로 스스로 정한 것이라고 설명했습니다. 소라올리오의 주민들과 지도자들이 동의하고 서명한 일입니다. 그 뒤로10년 넘게 큰 갈등은 없었습니다.
우충환 : "'한글 수출'이나 '문화 패권'이라는 프레임은 현장의 실제와 거리가 있습니다. 이 책의 표기를 '한글'이 아니라 '찌아찌아정음'으로 명시한 이유가 그에 대한 답입니다. 2019년 자모 개정도 현지의 언어 구조와 필요에 맞춰 진행되었고, 이번 책의 표기와 영어 번역까지 현지 교사인 아비딘 선생님이 직접 수행했습니다.
2024년 11월<뉴욕타임스>가 주목한 것도 '한국의 시혜적 성과'가 아니라 자신들의 전통과 문화유산을 지키려는 '지역 공동체의 주체적 노력'이었습니다. 우리 역할은 필요한 환경과 도구를 지원하는 조력자일 뿐입니다. 문화적 영향력을 넓히는 일이 아니라, 소수언어 보존을 위해 상호 존중으로 연대하는 문화 협력 모델입니다."
- 인도네시아 공용 문자, 곧 로마자로는 이 발음을 정확히 적을 수 없습니까.
아비딘 : "찌아찌아어와 인도네시아어는 발음이 아주 다릅니다. 오래전 찌아찌아 사람들은 도시에서40~50km 떨어진 곳에 살며 인도네시아어를 알지 못했습니다. 나중에 인도네시아어가 국어가 되어 들어왔지만, 우리 소리를 그 문자로 옮기는 일은 잘 되지 않았습니다."
적을 수 없으니 남길 수 없었고, 남길 수 없으니 잊혔다. 이번 설화집은 그 오랜 단절을 끊은 첫 기록물인 셈이다.
- 우충환 선생님께서는 어떻게 찌아찌아와 인연을 맺으셨습니까?
우충환 : "팬데믹 이전부터 인연을 맺었고, 원암문화재단 이기남 이사장님의 요청도 있었습니다. 여러 교사 선생님들과 교류하며 현장 수업을 지켜보았고, 지금도 매달 보고 형식으로 현황을 받고 있습니다. 지난 15년간 해외에서 한글 보급을 도우며 확인한 가장 큰 과제는 '문자는 배웠지만 정작 읽고 익힐 책과 기록물이 부족하다'는 점이었습니다. 2022년 찌아찌아어 사전에 이어 이번 설화집을 낸 것도 그 고민의 연장선입니다."
- 현지의 한글 보급은 어떤 형태로 이루어집니까.
우충환 : "두 갈래입니다. 하나는 부톤섬 주민을 대상으로 한 한국어 교육이고, 다른 하나는 찌아찌아어를 아는 교사가 찌아찌아정음을 직접 가르치는 방식입니다. 후자는 전 세계에서 오직 찌아찌아족에게만 적용되고 있습니다. 현재 소라올리오읍에서는 세 명의 현지인 교사가 가르치고 있고, 최근까지 약 20명의 찌아찌아 출신 예비교사가 3차 연수까지 마쳤습니다. 이분들이 현장에 나서면 보급이 급격히 늘어나는 전기가 될 수 있습니다."
- 무엇이 더 필요합니까.
우충환 : "예비교사들의 한국어 능력을 키워 주는 일이 관건입니다. 그러려면 한국어 전문 교사가 바우바우 현지에 파견되는 일이 꼭 필요합니다."
- 찌아찌아 학생들에게도 한류가 닿아 있습니까.
아비딘 : "특히 청소년들이 좋아합니다. 한국 드라마를 보고, K-POP 춤을 따라 춥니다. 가사의 뜻은 몰라도 노래와 춤을 아주 좋아합니다."
"쭐라 쭐라1. 라 은도께 은도께 마이 라 까까뽀루까."
인터뷰 끝머리에 아비딘에게 제1화 '라 은도께 은도께 마이 라 까까뽀루까'(원숭이와 거북이)」의 첫 대목을 찌아찌아 정음으로 낭독해 달라고 청했다. 어머니에게서 들은 이야기를 이제 제 손으로 적은 글자로 소리 내어 읽었다. 이어 우충환이 다음 대목을 받아 읽었다. 원숭이가 파파야를 독차지하려다 거북이에게 되갚음을 당하는, 욕심과 정직에 관한 옛이야기다. 한글을 아는 이가 새로 도입된 문자 설명을 잠깐 들으면 누구나 금방 읽을 수 있다.
찌아찌아족은 약 9만 명으로 부톤섬 특히 남부톤 일대에 흩어져 산다. 그중 바우바우시 외곽의 소라올리오읍에만 9500명 가량이 거주한다고 한다. 교사들이 초·중등학교에서 가르치는 곳도 이 지역이고, 한글 도입 동의서에 먼저 서명한 것도 이 지역 주민들이다.
마을의 한글 간판이나 도로명 표기로 한글을 쉽게 접할 수 있지만 어른들은 새 문자를 배우는 데 어려움을 겪어, 주로 학교 교육에 기대고 있다. 현재 초등학교 세 곳에서 찌아찌아정음을 가르치고 있고, 최근에는 제6고등학교장의 요청에 따라 초급 한국어를 주4회 가르치고 있다.
로마자로는 적을 수 없어 입으로만 전해지던 이야기가, 이제 종이 위에 글자로 앉았다. 말은 있으나 글이 없던 사람들이 자기 이야기를 자기 글자로 읽는다. 찌아찌아정음이 태어난 지 17년 만의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