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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 날씨는 참 변덕이 심하다. 눈부시게 쏟아지던 좀 전의 햇살은 어디로 사라졌나. 먹구름이 사방으로 깔리더니 금세 어두컴컴해진다. 굵은 장대비가 타닥타닥, 콩 타작 소리를 내며 요란하게 바닥으로 튄다. 바닥에 구멍이라도 뚫을 태세다. 바람까지 휘몰아쳐 창문도 덜컹거리는 소리를 낸다.
홀로 계신 엄마 생각에 일손이 잡히지 않는다. 퍼붓는 비를 우두커니 바라보고 계실 우리 엄마. 어디서 들려오는 거지? 빨리 가보라며 재촉하는 듯한 저 소리. 당장이라도 집을 나서야 할지, 조금 기다려봐야 할지 판단이 서지 않아 애꿎은 하늘만 올려다본다.
'거센 장맛비에 어린 내가 혼자 있다면, 엄마는 부리나케 달려왔겠지?'
엄마는 나를 '무조건'인 딸로 키웠는데 나는 왜 머뭇거리는 걸까. 엄마한테 딸이 무조건인 존재였듯, 나한테 엄마도 '무조건'인 존재여야 공평하지 않은가.
엄마는 아버지와 지상에서 영원한 이별을 치른 지 얼마 안 되어 '데이케어센터'에 나가신다. 학교 문턱에도 가보지 못한 엄마한테 센터는 학교와도 같은 곳이다. 처음에는 낯설기만 했던 곳이 이제는 재미와 활력을 주는 장이 되었다. 난생 처음 단체 생활에 적응하며 노래와 그리기, 체조 등 여러 가지 활동을 즐기신다.
아이들이 있는 교실과 마찬가지로 노인들 간에도 불협화음이 많이 생기나 보다. 그럴 때마다 엄마가 나서서 점잖게 타이르신다고 선생님들이 내게 귀띔했다. 명심보감에 나오는 성현 말씀을 꾸준히 공부하며 실천해온 덕분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센터가 쉬는 일요일마다 엄마 집에 가서 말동무도 해드리고 식사와 목욕을 챙겨드린다. 어제는 가족 모임이 있었기에 오늘 하루쯤은 건너뛰자고 한 건데 후회가 급물살로 덮쳐온다. 구십 킬로 속도로 빠르게 지나가는 시간이 오늘 만큼은 오뉴월 엿가락처럼 늘어져 지루하셨을 테다. 비까지 퍼부어 대는 기나긴 하루를 어찌 보내고 계실지 조바심이 났다.
엄마를 만나는 데에 횟수가 무슨 필요며 날짜가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밤새 큰비가 예상되니 각별한 주의가 필요하다는 기상 아나운서의 예보가 귓전을 때린다. 저녁이 가까워지면서 점점 굵어지는 빗줄기가 가슴에 두방망이질 쳐댄다. 갈까 말까 두 갈래 길에서 여전히 주춤대는데 마음은 이미 친정으로 종종걸음친다.
'일 년 삼백육십오 일 중 엄마와 함께 밤을 보낼 날이 얼마나 될까.'
슬그머니 남편 쪽으로 눈길을 돌린다. 눈치를 챈 남편이 집 걱정은 말고 얼른 가서 잘 돌봐드리란다. 하루 살림을 맡겨놔야 하니 마음이 편치만은 않다. 머뭇거리다가 '가자'에 마음 도장을 찍는 순간, 늘 그렇듯 냉장고 안부터 살핀다. 엄마가 잡수실 만한 반찬을 통에 담고 내 옷가지를 챙기다 보니 이동식 가방이 불룩해진다. 주차장까지 가방을 끌어다 주는 남편에게 아들의 아침을 부탁한다고 하니 어이가 없다는 듯 피식 웃는다.
앞이 보이지 않게 퍼붓는 비가 차 유리문까지 뚫고 들어올 만큼 거셌다. 이렇게 우당탕 요란한 일기에 구순이 넘은 노인을 덩그러니 홀로 놔두려 했다니. 만일 천둥 번개 요란한 날에 어린애만 혼자 집에 놔뒀다면 아동학대로 손가락질당하고도 남을 일이다. 툭하면 노인을 어린애로 취급하면서도 정작 돌봄 앞에서는 이중적 잣대의 시류에 휩쓸려 소홀할 뻔했으니. 우리 오 남매 중 누군가는 엄마 곁을 지켜야 하는데, 은퇴한 내가 나서는 건 당연하다.
엄마네 아파트 정문을 통과하고 나서야 안심이 되었다. 비밀번호를 누르고 집안으로 들어서니 거실 등이 꺼진 채였다. 활짝 열린 베란다로 들이치는 빗물을 보자 속이 상했다. 누가 들어온 것도 모르고 스탠드 불빛 아래에서 한자 공부에 여념이 없던 엄마. 얼마나 공부에 몰입했으면 문 여는 소리조차 못 들으셨을까.
"엄마, 누가 업어가도 모르겠어요."

▲엄마의 공책네모 칸 새 공책을 사드려도 엄마는 언제나 달력 뒷면이나 광고지의 이면을 재활용해서 한자를 쓰신다 ⓒ 윤태정
예상치 못한 딸의 등장에 엄마는 깜짝 놀라며 후다닥 책을 덮었다. 식탁 위에 층층이 쌓인 한자 책더미 위로 손때 묻은 명심보감 책이 급하게 올라앉았다. 미처 덮지 못한 천자문 책과 이면지에 빼곡히 채워진 한자들. 비가 퍼붓는 것도 모르고 공부에만 집중했냐 했더니 엄마는 강한 손사래를 치셨다. 눈도 침침한데 노인네가 무슨 공부냐며 얼굴 붉히는 눈빛이 꼭 어린애처럼 보였다.
엄마의 시선이 내가 끌고 온 이동식 가방으로 꽂히는 순간, 표정이 싹 바뀌었다. 그리고는 곧바로 지청구로 이어졌다.
"살림하는 주부가 집을 비워서 쓰나. 나는 괜찮아."
사위 보기 미안하다며 내 걱정은 말라는 말씀이다. 자식부터 생각하는 엄마의 오래된 습관은 쉽사리 고쳐지지 않는다. 얼마를 더 살아야 당신의 입장을 챙기는 걸까. 무엇이든 필요하면 자식들한테 요구하시라 해도 '나는 괜찮아'로 끝맺고는 입을 다무신다. 엄마가 인생의 주인이 되어야 한다고 수백 번을 알려드려도 오로지 자식과 타인만 꿰고 있는 엄마. 그런 엄마를 보는 내 속은 용광로처럼 펄펄 끓어오르기 일쑤다.
장맛비에 천둥벼락이 무섭지 않냐며 누가 와 있어야겠다는 속내를 비쳤다. 엄마는 이내 표정을 단단히 하면서 목소리에 힘을 주셨다.
"내가 왜 자식네 가서 눈치 보며 사냐? 아직은 혼자 있는 게 좋아."
맞다. 엄마는 당신 집에서 누구의 방해도 받지 않고 자유 시간을 누리고 계신다.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스마트폰을 쥐고 유튜브를 켜는 자유. 천수경을 틀어놓고 불경을 외우며 편안하게 아침을 여는 자유. 간단히 요기하고 아홉 시쯤 아파트 마당으로 내려가 센터 차를 기다리는 자유를 빼앗기고 싶지 않은 거다.

▲천자문책애지중지하는 명심보감 책과 천자문은 수십 년의 역사를 지니고 있다. 엄마는 언제나 식탁 한쪽에 쌓아 놓고 언제든지 펴 볼 수 있도록 해 놓으셨다. ⓒ 윤태정
오래간만에 엄마의 침대에 나란히 누웠다. 마당의 평상에 누워서 하늘에 뜬 별을 세어보던 날이 떠올랐다. 서로 엄마 곁을 차지하겠다고 티격태격했던 정다웠던 우리 오 남매. 그때 엄마는 하늘을 가리키며 마음에 드는 별 하나를 정해서 소원을 빌라 하셨다. 그때 동생들의 소원은 무엇이었는지 몰라도 내 소원은 늘 한 가지였다.
'제발 울 엄마가 죽지 않고 오래오래 살게 해주세요.'
엄마 곁에 누우니 아무리 거칠게 쏟아지는 빗소리라도 감미롭게 들려온다. 술술 풀어놓는 엄마의 이야기 속에는 늘 고향이 있고, 언니와 동생, 아버지의 추억이 담겨 있다. 아무리 들어도 지루하지 않은 건 엄마 특유의 구수한 입담 덕분이다. 엄마와 함께하는 이 시간이 과연 언제까지 이어질까. 나는 엄마의 투박한 손을 꼭 잡았다.
모진 풍랑을 겪어낸 엄마 손은 갈퀴 손처럼 거칠다. 오로지 가족을 위한 희생으로 몸이 부서지는 줄 모르고 살아오셨다. 가시밭길을 헤치고 자갈밭을 일구어 '지금'을 만드셨다. 성실 하나로 닦아 놓은 옥토에서 이제야 겨우 자유 시간을 누리는 중이다. 수행을 마친 스님처럼 유유자적하게 늘 웃음을 띤 얼굴을 대할 때면 나도 흡족하여 염화시중의 미소를 짓는다.
창밖의 대찬 빗줄기가 점점 잦아드는 모양이다. 쌔근거리는 엄마의 숨소리도 어둠 속으로 고요히 내려앉는다. 엄마가 평생토록 벼려온 스스로의 삶이 앞으로도 기운차게 이어지기를 조용히 빌어 본다. 이 변덕스러운 여름날, 장맛비도 뙤약볕도 부디 잘 견뎌내셨으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