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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8월 초, 여행을 다녀왔다. 하필 무더위가 맹위를 떨치는 극성수기였다. 39도를 오르내리는 땡볕에 여행이란 모험 그 자체였다. 더구나 구순이 넘은 엄마를 모시고 떠나는 여행은 더 말해 무엇하리. 숨이 턱턱 막히는 찜통더위에도 불구하고 우리 엄마는 씩씩했다.
친정 식구들과 함께 휴가지로 정한 곳은 단종의 유배지로 잘 알려진 강원도 영월이었다. 경관 좋은 숲속에 자리 잡은 콘도에 여장을 풀고 일정부터 논의했다. 계획하고 떠난 게 아니라 일단 부딪혀보고 장소를 찾아보자는 여행이었으니. '엄마를 모시고 과연 어디로 가야 좋을까.'
제일 먼저 찾은 곳은 '한반도 지형'이었다. 산으로 오르면 한반도 지형을 한눈에 볼 수 있었으나 엄두를 내지 못했다. 대신 평지에 가까운 강가 길을 택했다. 출발할 때부터 챙겨온 휠체어 덕분에 강행할 수 있었다. 온통 자갈밭이라 몇 걸음 옮기다 쉬고 또 걷기를 반복하느라 시간이 오래 걸렸다. 인내심으로 결국에는 자갈밭 끝 승선장에 닿는데 성공할 수 있었다.
강을 건널 수 있는 뗏목 두 대를 교대로 운행 중이었다. 흰 바지저고리를 입은 연세 지긋한 사공(역사해설사)이 뗏목의 선장이었다. 출발을 기다리는 동안 엄마는 사공 아저씨와 구수한 농담을 주고받으며 웃음꽃을 피웠다. 마치 오래 알고 지내온 사이처럼 격의 없는 대화가 끝없이 이어졌다.

▲한반도 지형을 도는 뗏목흰 바지저고리를 입은 사공(역사문화해설사) 님의 익살스러운 설명으로 재미있고 유쾌한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 윤태정
드디어 모터 달린 뗏목이 동강의 물줄기를 따라 미끄러지듯 나아갔다. 물줄기에 발을 담근 우리 얼굴에 해맑은 미소가 떠나지 않은 건 사공(역사해설사)의 익살스러운 해설 덕분이었다. 뗏목 위에 작은 축제가 열린 듯 스토리텔링이 유쾌하게 진행됐다.
"동해를 거쳐 이순신 장군이 싸웠던 울돌목을 지나는 길이드래요."
"우리는 지금 인천 앞바다 연평도를 지나고 있드래요."
되돌아오는 길에는 뗏목의 속도가 빨라져 물속에 담긴 발에 천연 마사지를 받는 느낌이었다. 바위틈에 난 커다란 구멍은 수달의 집이고, 작은 구멍은 수리부엉이의 집이라 했다. 물속에는 순수한 우리 어종 35종이 사는데 외래종이 없는 이유는 수달이 살고 있기 때문이라는 해설까지 더해졌다. 구명조끼를 입은 우리 일곱 명은 멋진 포즈로 추억을 남겼다. 우리 문화를 지키느라 애쓰는 사공 아저씨의 노고에 감사하며 인사를 건넸다.

▲뗏목 포토존친절한 문화해설사인 사공 님이 뗏목을 저을 수 있는 '노'를 모형으로 제작하여 포토존을 만들어 놓았다. 관광객에게 재미와 관심을 가지고 뱃노래를 부르면서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 윤태정
엄마를 모시고 다니는 여행은 언제나 그렇듯 제약 조건이 많다. 제주도를 두 번이나 갔던 작년에도 호텔에서만 머물러야 했다. 이번에도 역시 김삿갓 공원이나 고씨동굴 같은 곳은 가 볼 생각조차 안 했다. 이글거리는 태양열 아래서 땀을 줄줄 흘리고 싶지 않으면 실내에 머무는 게 상책이었다.
영월까지 와서 단종의 유배지를 그냥 건너뛰기에 아쉬움이 남았다. 하지만 배를 타려면 수많은 계단을 오르내려야 했다. 엄마가 가장 두려워하는 게 바로 계단이다. 다섯 층 정도라면 시도해 볼 만하지만 수십 개의 계단 앞에서는 걸음마를 겁내는 아이와 같아진다. 강행할 것인가 말 것인가 고심하다 엄마의 허락 하에 도전해 보기로 최종 결정을 내렸다.
대신 사람이 많이 몰리는 시각을 피해 아침 일찍 서둘렀다. 예상대로 관광객이 적어 뱃삯을 끊고 조심스레 계단을 내려가기 시작했다. 휠체어는 접어서 세 사위가 번갈아 가며 들고, 딸들은 앞뒤 옆에 바짝 붙어서 엄마를 보위했다. 도전장을 내건 엄마가 안심할 수 있도록 힘찬 목소리로 응원했다.
"옳지, 잘했어. 한 계단만 더. 조금만 가면 돼."
난간을 붙든 엄마의 얼굴이 발그레해진 건 뙤약볕을 고스란히 받기도 했지만 미안한 감정이 들었기 때문일 테다.
"엄마, 고지가 바로 저기야. 저기까지만 힘내자."
장애인을 위해 계단을 이용하지 않아도 되는 길을 개방했으면 하는 바람이 생겼다. 여행지에서 초고령자인 엄마는 단연 화제의 중심이었다. 백발노인의 도전을 보는 주변 여행객들이 '절대 포기하지 마세요!'를 외치며 지지를 보내주었다.
오뉴월 삼복더위에 홀몸도 건사하기 힘든데 엄마를 휠체어에 태우고 호위무사처럼 지키는 우리 가족한테도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어쩌면 그들도 부모님과 함께하는 여행을 꿈꿨으나 용기가 부족했을지 모른다. 우리 가족의 도전 정신을 봤으니 다음 여행길에는 부모님과 함께하지 않을까 기대를 해보았다.
마침내 평지에 다다른 뒤 자갈밭과 숲길을 헤쳐 청령포에 발을 디뎠다. 드디어 엄마가 해냈다는 사실이 자랑스러웠다. 단종이 한양에서 출발하여 7일 만에 이곳에 당도했듯이, 우리 엄마도 오랜 시간을 한 걸음씩 공을 들여 내디딘 끝에 이 땅에 도착했다. 해설사의 목소리가 숲에 울려 퍼졌다.
"계유정난이 일어나 세조가 조카인 단종을 유배시켰던 곳이 이곳 청령포입니다."
그때, 형제간의 우애를 가장 중요시하는 엄마가 나지막이 말씀하셨다.
"어린 조카한테서 왕위를 빼앗아 가다니, 예나 지금이나 욕심이 문제여."

▲단종이 살던 집터단종이 살던 집터에 훗날 영조가 단종의 슬픔을 위로하기 위한 비석이 설립되었다. 그 앞에서 슬픈 역사에 대해 해설을 심각하게 듣는 엄마의 모습 ⓒ 윤태정
단종이 묵었던 초가집 자리에 훗날 영조가 세워 놓았다는 비석이 위로를 해주었다. 수령 600년이 넘은 '관음송'을 올려다보니 단종이 매일 올라가 울부짖던 그 날의 슬픈 목소리가 들리는 듯했다.
허리를 바짝 구부려 왕을 향해 깍듯한 예를 갖추는 소나무에 경건함이 감돌았다. 깊은 감성을 지닌 자연 앞에 내 고개가 저절로 숙여졌다. 유배지의 시린 역사 속에서 척박한 운명을 견뎌낸 단종의 모습과 온갖 파고를 넘어 이곳에 닿은 엄마의 삶이 겹쳐 보였다면 과장일까.
단종이 한양을 바라보기 위해 매일 올랐다는 망향대는 올라가지 않았어도 청령포는 둘러봤으니 흐뭇했다. 남는 시간은 대부분 영월 기념관의 실내에서 여유롭게 휴식을 취했다. 숙소에서 밤늦도록 이어진 대화 속에 엄마도 동등한 속도로 동참하셨다.
올여름에도 엄마는 불볕처럼 쨍쨍한 삶을 살고 있다. 수많은 아픔과 괴로움을 견뎌내고 이제는 아름다운 삶을 마주한 엄마. 앞으로도 엄마 앞에 '멈춤'이란 결코 없을 것이다. 어디를 가든 엄마 곁에는 우리가 함께할 테니까.
나는 이제 여행을 마무리하는 의미로 영화 <왕과 사는 남자>를 보여드려 한다. 단종의 슬픔에 대해, 그리고 우리가 함께 걸었던 그 날의 청령포에 대해 더 많은 이야기를 나누고 싶다. 선선한 바람이 부는 어느 가을, 새로운 여행지를 향해 엄마와 다시 걸음을 맞출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
덧붙이는 글 | 참, 숙소를 제공해준 셋째 동생 부부, 운전을 끝까지 책임져준 둘째 제부, 직장 때문에 함께하지 못한 남동생과 미국에서도 수시로 응원해온 막내 여동생까지 모두 고맙다. ‘엄사모’ 회원들이 이 여름을 건강하게 잘 마무리할 수 있기를 바라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