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6월 아리셀 참사가 준 충격 중 하나는, 중국동포 이주노동자들이 16명이나 사망한 사고였다는 점이다. 그전까지 한국 사회 곳곳에서 많은 중국동포 노동자들을 만날 수 있지만, 독특한 위험을 가진 '이주노동자'로는 잘 인식되지 않았다. 참사는 중국동포들의 노동을 다시 생각해보게 된 계기였다.
경계인의몫소리연구소 박동찬 소장은 참사가 발생하자마자 화성으로 달려가, 유가족 통역을 자원했다. 한국에 이미 살고 있던 유가족뿐 아니라, 중국에서 급하게 입국했던 유가족들이 사태를 이해하고 필요한 것을 요구할 수 있게 도왔다. 아리셀 참사 2주기를 맞아 그는 참사를 어떻게 기억하고 있는지, 중국동포 사회에는 어떤 영향이 있는지 들어보았다. 7월 13일 경계인의몫소리연구소에서 만난 그의 손목에는 아리셀 참사를 상징하는 파란 팔찌가 달려 있었다.
- 아리셀 참사가 다른 사고나 재해에 비해 관심이 덜하다는 문제의식을 여러 차례 제기해왔다. 이번 2주기는 어떻게 보내고 계신가.
"아리셀 참사가 과소재현됐다는 문제의식은 여전하다. 1주기나 2주기, 혹은 재판 등 특정 시기에만 반짝 보도될 뿐이다. 그것도 주로 법적 공방 중심이라 안타깝다. 23명이나 사망한 아리셀 참사는 이주노동자 유입 이래 가장 심각한 인명피해를 초래한 사건이지만, 전혀 모르는 사람도 많다. 특히 젊은이들을 대상으로 하는 교육에서는 '화성에서 리튬 배터리 공장 폭발 사고로 23명이 숨진 사건 아느냐?'고 자세히 설명해도 대부분 모른다. 한국 사회에서 참사의 의미가 충분히 공론화되거나 각인되지 않았다고 생각한다.
이런 문제의식에서 지난 5월 31일 '아리셀 기억과 애도의 밤'을 기획했다. 지난 2년 동안 유가족이 충분히 위로받는 자리, 희생자가 제대로 애도 받는 자리가 없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유족과 시민들을 초대해서 식사도 하고, 유가족이 직접 자신과 고인의 생전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을 가졌다."
- 그 자리에서는 어떤 이야기가 오갔나?
"고인이 어디서 태어났고, 한국에 언제 어떻게 이주하게 됐는지, 이주한 뒤에 한국에서 살면서 있었던 에피소드 등 추억을 소환하는 시간이었다. 나를 포함해서 많은 청중이 '처음 듣는' 얘기들이었다. 이것 자체가 아리셀 사고의 기록이 너무 부족하다는 방증이라고 본다. 이렇게 큰 사고의 2주기면 백서, 인터뷰집, 참사 내용과 고인들을 다루는 다양한 2차 작품이 나올 만도 한데 별로 없다.
아리셀 참사를 기억하는 사람조차 고인들의 이름을 모른다. 23명 사망, 그 중 18명이 외국인, 5명은 한국인 이런 식으로만 기억되고 있다. 그래서 애도의 밤에는 참가자들이 함께 희생자들의 이름을 일일이 호명하고, 각각 어떤 사람이었는지 한 줄로 짧게 소개하는 시간도 가졌다."

▲2026.5.31. 아리셀 중대재해 참사 2주기 애도의 밤 행사에 참여한 박동찬 경계인의몫소리연구소 소장. ⓒ 경계인의몫소리연구소
- 과소재현 외에 중국동포 이주노동자들의 피해가 큰 사고였다는 점이, 아리셀 참사를 기억하는 데 어떤 면에서 영향을 주었다고 보나?
"아리셀 참사는 동포와 이주노동자라는 두 개념이 중첩되는 지점에서 발생한 사건이었다. 동포와 이주노동자는 충돌하는 정체성이 아니다. 많은 중국동포에게 민족적 정체성은 중요하다. 중국 정부로부터 중국 건국과 역사에 기여했다는 점을 인정받아 부여된 '조선족'이라는 호명에 자부심이 있다. 동시에 나고 자란 장소를 떠나 '이주'해서 일하는 노동자라는 점에서 이주노동자인 것도 분명하다. 이 두 가지 정체성이 그동안 같이 이야기되지 못했는데, 하필 '참사'를 통해 드러난 거다.
부정적인 영향도 분명히 있었다. 2024년 6월에 사고 난 직후부터, 온라인상의 2차 가해가 심각했다. 중국에 가서 보상금 달라하지, 왜 한국 정부에 징징대냐는 둥 차마 입에 올리기 어려운 내용들이었다. 당시 유가족들이 기사도 열심히 찾아보고 기사마다 달린 댓글도 읽으셨는데, 처참한 댓글로 인한 상처가 만만치 않았다."
- 사고 당시 유족에게 가해졌던 혐오와 폭력을 돌아본다면?
"혐오와 폭력 자체보다, 그것이 미쳤을 여러 영향이 떠오른다. 당시 화성시청에서 거의 매일 저녁 추모제가 있었고 유가족 발언도 있었는데, 여기에 '동포' 발화가 많았던 거로 기억한다. '우리도 김치 먹으며 살아왔다', '우리도 한민족이다'. 이 발언들은 물론 사실이지만, 동시에 다수와 주류의 수용을 갈구하는 전략적 발화이기도 했다. 한국 사회 내 여론에서 자신들을 배제하려는 움직임을 아니까 유가족들이 의식적, 무의식적으로 이렇게 발언하지 않았을까 싶다."
- 사고 이후 동포 노동자들의 노동권, 안전보건에 관한 관심이 높아졌다고 보는지?
"한국 내 이주노동자의 대다수를 차지하는 게 중국동포 노동자다. 그런데도 노동권이나 노동안전 문제에서는 후순위로 밀려왔다고 생각한다. 말이 통하고 안정적인 체류자격이 있으니, 덜 취약한 노동자라고 인식되었던 것 같다.
이주노동자 사고가 나면 '말이 통하지 않아서', '소통이 안 돼서'가 사고 원인으로 쉽게 지목됐다. 그런데 중국동포는 말이 통하잖나. '불이야!' 외치면 듣고 도망칠 수 있고, 안전보건 교육도 잘 받을 수 있을 거라 가정했던 거다. 그런데 아리셀 참사를 통해 그렇지 않다는 것이 가슴 아프게 드러난 것이다.
비자 문제도 마찬가지다. E-9 비자로 들어오는 노동자들은 사업장 변경 자유가 없다. 그래서 사업장 내 관계는 시작부터 갑과 을로 세팅되고, 폭력과 인권 침해에 속수무책으로 당하는 경우가 많다. 그에 비해, 한국 내 중국동포는 직업 선택과 이직이 자유로운 재외동포(F-4) 비자를 대부분 갖고 있고, 최근에는 영주권자도 상당히 많다.
그런 점에서 한국 국적 노동자와 비슷한 상황이라고 볼 수도 있다. 아리셀에서 한국말이 통하는 노동자들에게도 안전교육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았다. 파견 노동자, 비정규직 노동자에 대한 안전 책임이 방치되는 등 일터의 구조적 문제는 국적을 가리지 않는다."
- 특별히 동포 노동자들의 문제가 있다기 보다, 한국 사회의 노동안전 문제를 함께 겪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중국동포들이 한국 사회에서 본격적으로 일하게 된 게 이제 거의 40년이 된다. 그동안 중국동포들은 주로 소위 3D 업종에서 더럽고, 어렵고, 위험한 일을 해왔다. 한편에서는 노동자들 스스로 이런 일자리와 노동조건을 당연시하는 분위기가 있기도 하다.
노동 권익을 위한 조직이 안 되는 편인데, 이런 경험 자체가 거의 없다. 중국에서도 노조 등을 경험하기 어렵고, 한국에 와서는 주로 조직되지 않는 일자리에서 일하다 보니 정부나 사용자와 맞선다는 상상을 하기도 어렵다. 처음에 민주노총이 주축이 되어 대책위가 구성됐을 때 '정치적으로 이용당하는 것은 아닐지' 두려워하시는 분들도 많았다."
- 한국 노동운동, 사회운동이 중국동포 공동체와도 적극적으로 만나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한국 노동운동은 이들을 어떻게 만나면 좋을까?
"이주노조(MTU)는 존경하고 또 연대하는 조직이지만, 당면한 과제가 다른 점도 분명하다. 현재 이주노조는 사업장 변경 자유 쟁취가 주요 과제다. 이에 대해 동포들은 '그게 무슨 얘기야?' 이런 반응이 나올 수밖에 없다. 미등록 체류 문제도 중국동포에게는 거의 해당이 없다. 사실 이미 중국동포들은 한국 사회에서, 일반적인 저임금 노동자로서 포진하고 있다. 결국은 각 산별노조에서 미조직 노동자 조직 사업의 일환으로서 '중국동포 이주노동자'도 조직하는 것이 길이라고 본다.
동포노동자들이 조직 안 됐다는 건 절반은 맞고, 절반은 틀린 얘기다. 건설노조에 조합원이 3천 명 넘게 있다고 들었다. 연구소가 운영하는 이주민혐오대응네트워크에도 청년 노조 간부들이 이주노동자 조직의 의욕을 갖고 함께 참여하고 있다. 보건의료노조에서는 요양보호사나 간병인 조직화를 항상 고민하고 있다고 전해 들었다. 대구 성서공단 노조나 이번에 울산 조선소 이주노동자 투쟁과 같은 조직 사례도 있지 않나. 결국, 이렇게 가야 한다고 본다."
- 노동자 건강권 관련한 활동으로 제안할 건 없을까?
"중국동포 여성 노동자들이 간병인으로 많이 일하고 있다. 간병인들은 환자 개인이 채용하고 간병비도 현금으로 지급하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노동 실태, 규모도 파악이 잘 안 되고 있다. 시급한 과제다.
동포 노동자도 나이 들고 노령화하고 있다. 아픈 데도 많아지고 의료비 지출도 많아진다. 이주민, 중국인 건보 적자 유발설이 있었는데, 실제로는 모두 흑자였다. 하지만 이런 언론의 팩트체크 정도로만 대응하는 건 아쉽다.
안정적으로 정주하는 동포들은 60대, 70대가 많아지고 있다. 국민연금 고갈이나 내국인 건보료 적자는 인구 고령화에 따른 흐름이다. 이주민이라고 예외일까. 언젠가 정말로 건보 재정이 적자가 될 수도 있다. 그때 어떤 담론으로 차별과 배제에 맞설 수 있을지 미리 고민하고 대비해야 한다."
박동찬 소장은 중국동포를 포함한 이주민과 한국인들 사이의 일상적인 마주침이 더 많아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주민들의 삶의 터전을 오감으로 체험하면서 별반 다를 게 없는 사람들이라는 대안적 인식을 만들고 싶어, '다양성의 큰 숲, 대림동을 걷다' 프로그램도 진행하고 있다.
지금까지 2천여 명이 대림동을 함께 걸었다. 2025년 7월 11일 혐오 세력이 대림동에 들이닥치면서 대항 활동도 이어오고 있다. 이런 만남과 어울림 속에서 아리셀 참사에 대한 우리의 기억과 기록도 더 풍부하고 곡진해질 것이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월간 일터 8월호에도 실립니다.이 글을 쓴 최민 님은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상임활동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