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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월이 되고 얼마 전 입추가 지났다. 신기하게도 절기가 지나자 아침저녁으로 조금은 시원한 바람이 부는 것 같다. 38도, 40도까지 오르던 날씨 탓에 내가 있는 곳이 한증막인지 길거리인지 구분하기 어려울 정도였는데, 입추가 지나고 나니 바람의 온도가 확실히 달라졌다. 이럴 때면 새삼 조상들의 지혜가 놀랍다.
SNS에서는 폭염에 시달린 사람들이 이제는 34도도 시원하게 느껴진다며, '뇌의 오류'라는 우스갯소리를 한다. 정말 그런지도 모르겠다. 요즘은 창문을 열어놓고 선풍기를 틀면 제법 견딜 만하다. 물론 오후에는 여전히 덥지만, 혼자 있는 집에서 에어컨을 켜기에는 조금 아깝다는 생각이 들 정도가 됐으니, 한여름의 무시무시했던 더위가 한풀 꺾인 것만은 분명했다.
입추가 지났는데, 여름은 아직 뜨거웠다
그렇게 혼자 날씨에 대한 생각을 하고 있는데 방학 중인 아이가 덥다며 에어컨을 켜달라고 성화였다. 선풍기를 더 세게 틀거나 얼음물을 마셔보라고도 했지만 통하지 않았다. 둘이 한참 실랑이를 하다가, 결국 에어컨을 켜는 대신 아이를 데리고 젤라또를 먹으러 나가기로 했다.
집에만 있으면 아이도 심심할 테고, 바깥 바람을 쐬며 이야기를 나누고 돌아오면 방학의 오후도 조금 빨리 지나갈 것 같았다. 무엇보다 가게에는 시원한 에어컨이 있으니 일석이조라 생각했다. 밖으로 나오니 그늘에서는 제법 시원한 바람이 불어 살 만하다 싶다가도, 햇볕으로 나오면 금세 생각이 달라졌다.
휴대전화로 기온을 확인해 보니 32도였다. 32도를 두고 시원해졌다고 여기다니, 그동안 폭염을 겪으며 더위의 기준이 상당히 느슨해진 모양이었다. 10분쯤 걷다 보니 처음에는 그늘의 바람도 즐길 만했지만, 나중에는 어서 시원한 곳으로 들어가고 싶다는 생각뿐이었다.
그렇게 도착해 먹은 젤라또는 그야말로 꿀맛이었다. 마침 1+1 행사까지 하고 있어 아이와 맛있는 시간을 보냈다. 옆 빵집에 들러 식빵도 한 봉지 샀다. 문제는 다시 집까지 걸어가는 10분이었다. 분명 아이스크림을 먹었는데도 다시 더웠다. 결국 집 앞 무인 아이스크림 가게에 들러 만 원 어치를 더 사 들고 집으로 돌아왔다.
에어컨을 켜지 않으려고 나갔는데, 젤라또, 식빵, 아이스크림까지 2만 원이 넘는 돈을 쓴 것이다. 게다가 집에 들어오자마자 참을 수 없는 더위에 결국 에어컨까지 켜고 말았다. 전기요금을 아껴보겠다고 시작한 외출이었는데, 계산해보면 아무래도 실패였다.
언젠가는 엄마보다 친구가 더 좋아질 테니까
그래도 꼭 손해만 본 것은 아니다. 조금만 더 크면 엄마보다 친구와 보내는 시간을 더 좋아할 아이와 함께 젤라또를 먹으며 맛있다고 호들갑을 떨고, 아이스크림 한 봉지 가득 사 들고 돌아온 오늘은 곧 그리운 하루가 되지 않을까.
그런 감상에 잠겨 있는데, 아이는 에어컨 앞에 자리를 잡더니 방금 젤라또를 먹었다는 사실도 잊은 듯 무인 가게에서 사 온 아이스크림을 꺼내며 이번엔 토스트까지 먹고 싶다고 했다. 토스트를 해주자니 조금 있다 다시 밥을 차려야 할 것 같았다. 시원한 국수로 한 끼를 해결하기로 했다.

▲전복 당근 들기름 국수 ⓒ 김선아
냉장고엔 미리 삶아둔 전복이 있었다. 당근과 소면도 있었다. 요즘 자주 만들어 먹는 들기름 국수에 전복과 당근을 올리면 간단하면서도 제법 든든한 한 끼가 되겠다 싶었다. 고소한 들기름에 쯔유만 있으면 별도의 양념장을 만들 필요도 없어 더운 날 해 먹기에도 좋다.
원래 당근은 가늘게 채 썰어 소금에 살짝 절인 뒤 볶아야 맛있지만, 더운 여름날에는 그 과정 하나도 귀찮다. 이날은 소면을 삶을 물에 채 썬 당근부터 살짝 익힌 뒤 건져 식히고, 그 물에 바로 소면을 삶았다. 설거지도 줄고 불 앞에 서 있는 시간도 줄어드니 여름에는 이런 요령도 제법 쓸 만하다.
입추가 지났다고 여름이 하루아침에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32도를 시원하다고 느낄 만큼 우리는 여전히 뜨거운 여름 한가운데 있다. 에어컨을 아끼려다 2만 원 넘게 쓰고 결국 에어컨까지 켜버린 날이었지만, 아이와 함께 차가운 국수 한 그릇을 후루룩 먹고 나니 우리 둘의 뜨거웠던 여름날도 조금은 식어가는 것 같았다.
[전복 당근 들기름 국수]
▶ 재료: 소면, 들기름, 쯔유(국시장국), 전복, 당근, 김, 깨, 소금, 얼음
▶ 만드는 법
① 소면은 삶은 뒤 찬물에 여러 번 헹군 뒤 얼음을 몇 개 올려둔다.
② 당근은 가늘게 채 썰어 소금에 살짝 절인 뒤 물기를 빼고 볶아 식힌다. 간단하게 만들고 싶다면 채 썬 당근을 끓는 물에 살짝 데쳐 식혀도 된다.
③ 손질한 전복은 익힌 뒤 먹기 좋은 두께로 편 썰어 식혀둔다.
④ 쯔유와 들기름을 1:1 정도로 넣어 소면과 골고루 버무린다. 쯔유는 제품마다 염도가 다르므로 처음부터 많이 넣지 말고 간을 보면서 조금씩 추가한다.
⑤ 양념한 국수를 그릇에 담고 당근과 전복을 올린다. 김과 깨를 뿌려 완성한다. 얼음 한두 조각을 곁들이면 마지막까지 시원하게 먹을 수 있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인스타, 브런치에도 실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