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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더불어민주당 김민석 대표가 18일 서울 동작구 국립서울현충원 현충관에서 열린 김대중 대통령 서거 17주기 추모식에 참석해 추모사를 마친 후 이동하고 있다.
더불어민주당 김민석 대표가 18일 서울 동작구 국립서울현충원 현충관에서 열린 김대중 대통령 서거 17주기 추모식에 참석해 추모사를 마친 후 이동하고 있다. ⓒ 연합뉴스
거제 수해 현장 찾은 김민석 민주당 신임 대표 더불어민주당 김민석 신임 당 대표가 17일 오후 경남 거제시 옥포동의 산사태·폭우 피해 지역에서 현장을 둘러보고 있다. 이는 당선 후 첫 일정이다.
거제 수해 현장 찾은 김민석 민주당 신임 대표더불어민주당 김민석 신임 당 대표가 17일 오후 경남 거제시 옥포동의 산사태·폭우 피해 지역에서 현장을 둘러보고 있다. 이는 당선 후 첫 일정이다. ⓒ 연합뉴스

"대통령님, 김민석입니다."

8월 18일 오전 국립서울현충원 현충관. 김대중 전 대통령 서거 17주기 추모식 단상에 오른 김민석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추도사 첫 마디다. 이어 그는 "대통령님의 막내 비서실장이 대통령님 뒤를 이어 민주당 당 대표가 되어 인사드린다"고 말했다. 전날인 17일 오후 민주당 전당대회에서 당 대표로 선출된 그는 "어제 민주당 대표가 되고 밤새 수해 현장을 다녀와 새벽 뜬 눈으로 추도사를 쓰며 설레고 설렜다"면서 "오늘을 위해서도 어제 꼭 당선되고 싶었다"고 소회를 밝혔다.

같은 자리에서 이재명 대통령의 추도사도 이어졌다. 이 대통령은 을지국무회의를 주재하느라 강훈식 대통령 비서실장이 대독했다. 이 대통령은 "지금 우리가 처한 안팎의 현실도 그때(김대중 전 대통령 때) 못지않게 엄중하다"면서 "(김대중) 대통령님이 무척이나 그리운 요즘"이라고 심경을 밝혔다. 이어 "국민주권정부는 김대중 전 대통령의 뜻과 철학을 이어가겠다. '김대중이라는 이정표', '영원한 스승'을 항상 가슴에 품겠다"고 다짐했다.

두 사람의 추도사는 한 방향, 한 사람을 가리키고 있다. 후광(後廣) 김대중 전 대통령. 26년 전인 2000년 김민석 대표는 그 해 창당한 새천년민주당 김대중 총재의 비서실장이었다. 당시에는 대통령이 정당 총재를 겸할 수 있었다. 같은 시기 이재명 대통령은 변호사이자 시민운동가였다. 1995년 본인이 설립을 주도한 성남시민모임의 집행위원장을 맡고 있었다. 이재명, 김민석 두 사람의 나이는 36세였다.

28세 정치 신인 김민석의 출사표와 DJ의 지지

 1992년 2월 민주당 영등포구(을) 지구당 창당대회. 27세의 젊은 정치인 김민석이 처음 총선에 나가며 출사표를 던졌고, 김대중 민주당 공동대표가 지지와 응원을 보냈다.
1992년 2월 민주당 영등포구(을) 지구당 창당대회. 27세의 젊은 정치인 김민석이 처음 총선에 나가며 출사표를 던졌고, 김대중 민주당 공동대표가 지지와 응원을 보냈다. ⓒ 김민석T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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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2년 2월 민주당 영등포구(을) 지구당 창당대회. 정치에 입문해 처음 총선에 나가는 28세의 젊은 정치인 김민석은 이렇게 말했다.

"사회가 보수화되었다고 말합니다. 그래서 이제는 민주화운동의 가치가 떨어졌다고 이야기 합니다. 하지만, 저는 누가 뭐라고 할지언정 인간과 사회, 그리고 우리 민족과 세계에 대한 사랑을 가르쳐 준 저의 학생운동시절을 자랑스럽게 생각합니다.

여러분 기억하시죠? 전태일, 광주의 이름 없는 영혼들, 박종철, 이한열. 그 선량하고 희생적인 영혼들의 헌신 위에 오늘 우리의 이러한 자리가 만들어져 있다는 것을 잊지 않았으면 하는 것이 여러분께, 그리고 이 젊은 나이에 정치를 시작하는 제가 제 자신에게 오늘 꼭 다짐하고 싶은 저의 약속입니다."

정치 신인 김민석을 발탁한 당시 김대중 민주당 공동대표는 축사를 통해 "민주주의의 봄을 위해서도 김민석 동지가 이번에 반드시 이 영등포을에서 필승할 것이라는 신념을 가지고 있다"면서 "자식을 세상에 내놓은 부모 같은 심정으로 김민석 동지를 내보냈는데 김대중이 좋으면 김대중을 보고 김민석을 꼭 찍어달라는 것을 부탁드린다"고 힘을 실어줬다.

같은 해 3월 24일에 치러진 제14대 총선에서 김민석 후보는 전두환 정권과 문민정부에서 경제기획원장관과 재정경제원장관을 역임한 3선 중진 나웅배 민주자유당 후보에게 260표, 0.23%p 차이로 석패했다.

'DJ 황태자'의 추락, DJ가 던져준 화두 '퇴수(退修)'

 김민석 더불어민주당 당대표 사진
김민석 더불어민주당 당대표 사진 ⓒ 김민석 당대표 페이스북

이후 김민석은 'DJ의 황태자'로 불릴 정도로 김대중 전 대통령의 총애를 받았다. 국민회의와 민주당의 당직자였던 권칠승 의원(민주당 정책위의장)은 "역대 정권의 황태자라고 불리던 사람들을 다 합친 것보다 DJ 때 김민석의 권한이 더 셌다"고 말한다. 김대중 정부의 실세였던 정균환 전 원내대표는 지난해 6월 국무총리로 지명된 김민석 대표를 만난 자리에서 "DJ가 전적으로 믿고 실권을 주면서 일을 맡긴 사람이 김민석 당신이었다"고 회고했다.

김민석은 새천년민주당의 창당, 인재 영입, 공천 등에 관여하고, 대변인과 총재 비서실장, 대표최고위원을 거쳤다. 2002년 지방선거에서는 서울시장 후보로 나섰다. 모두 30대 중반 때의 일이다. 이때까지만 해도 그는 지방선거와 대선이 같은 해에 치러졌던 2002년이 자신의 정치 인생에서 최악의 해로 기록될 줄은 상상하지 못했다.

일에 관해서는 철두철미했던 김대중 전 대통령이 젊은 정치인에게 막강한 권한을 준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정균환 전 의원은 "일을 잘 하고, 딴 주머니를 차지 않아서"라고 판단했다. 새천년민주당 시절 국무총리실 국무조정실장을 맡고 싶었던 김민석은 25년 뒤 이재명 정부의 초대 국무총리가 됐다.

김민석은 2002년 대선 때 '노무현-정몽준 후보단일화'를 성사시키기 위해 정몽준 캠프로 옮겼다고 본인은 소명하고 있지만, '정치 철새'로 낙인 찍히고 이후 18년 동안 '바닥 생활'을 겪었다. 정치 낭인처럼 인식됐던 2005년 8월 미국 유학길에 오르기 전 김민석은 인사차 동교동으로 김대중 전 대통령을 찾아갔다.

그날의 대화는 길게 이어졌다. 2002년 대선 이야기가 나오자 김 전 대통령은 "그런 경험을 통해 배우는 것도 중요하다"며 그를 위로했다. 그날 받은 두 글자가 김민석의 남은 정치인생에 큰 영향을 미쳤다. '퇴수(退修)'. 조용히 물러나 자신을 수련하고 내공을 기르라는 뜻이다. 이어 DJ는 "앞으로 정치를 40년은 더 할 것이니까 퇴수의 내공을 잘 닦으라"고 조언했다. 지난 7월 17일 당대표 후보 등록 뒤 첫 일정으로 DJ 묘역을 참배한 자리에서 그는 "야인으로 있을 때 김대중 전 대통령이 제게 주셨던 '퇴수를 잘 해라'는 말씀으로 '바닥 18년'을 버텼다"고 말했다.

김민석의 '정치적 스승' 김대중과 '정치적 동지' 이재명

 이재명 대통령과 김민석 국무총리, 강훈식 대통령비서실장이 8일 용산 대통령실 직원식당에서 식사 후 매점에서 만난 기자들과 차를 마시며 대화하고 있다.
이재명 대통령과 김민석 국무총리, 강훈식 대통령비서실장이 8일 용산 대통령실 직원식당에서 식사 후 매점에서 만난 기자들과 차를 마시며 대화하고 있다. ⓒ 대통령실통신사진기자단

이재명 대통령이 취임 후 처음으로 김대중 전 대통령을 언급한 것은 2025년 8월 18일 서거 16주기 추모식에서였다. 추도사를 통해 "바람 한 점에도 그리움이 스며드는 그 이름, 김대중 전 대통령님"이라면서 "김대중은 '희망의 이름'이자 '소망의 이름'"이라고 했다. 이어 "격동하는 위기의 시대, 거인 김대중의 삶에서 답을 찾겠다"면서 "김대중이 키워낸 수많은 '행동하는 양심'들을 믿고 흔들림 없이 '국민이 주인인 나라', '함께 잘 사는 나라', '평화가 강물처럼 넘쳐흐르는 나라'를 향해 나아가겠다"고 밝혔다.

같은 해 12월 10일 김대중 대통령 노벨평화상 수상 25주년 기념식에서 이재명 대통령은 '김대중'에 대한 가장 길고 구체적인 메시지를 남겼다. 12·3 비상계엄이 발생한 지 1년이 갓 지난 시점이었다. 치열한 '서생의 문제의식'과 실용적인 '상인의 현실감각'을 호출했고, '국민이 언제나 승리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마지막 승리자는 국민입니다'라는 김 전 대통령의 통찰을 복기했다. 이는 '결국 정치는 국민이 합니다'라는 본인의 정치 철학과도 맞닿아 있다.

이날 국무총리로 축사에 나선 김민석 대표는 "이재명 대통령이 저와 말을 나눌 때 김대중 대통령 말을 많이 한다"고 했다. 김대중 전 대통령을 '정치적 스승'으로, 이재명 대통령을 '정치적 동지'로 여기는 김민석 대표는 두 사람의 교집합을 '실용주의'에서 찾는다. "두 분 모두 굉장히 현실주의적인 균형 감각이 있다"고 평가한다. DJ의 유머와 이재명의 '유쾌한 토론'도 또다른 교집합이라고 본다.

"이재명 국민주권정부는 김대중의 노선 위에 서 있다"는 말을 자주했던 김민석 대표는 8월 18일 김대중 전 대통령 17주기 추도사에서 이렇게 말했다.

"(김대중 전 대통령과) 세대 차를 넘어 비슷한 결론을 내릴 때가 많아 신기하곤 했습니다. 지금 이재명 대통령님과 (함께 하면서) 느끼는 실사구시, 민생 우선 사고의 공통성과 너무 비슷한 경험이었습니다. 그래서 (김대중) 대통령님의 비서실장이 이재명 대통령의 총리가 되었나 봅니다. '무언가 정리하려 들춰보면 다 김대중 대통령께서 해놓으셨더라'는 노무현 대통령님 말씀이 생각납니다."

김민석 대표가 '김대중'이라는 이름을 강조하는 이유는 민주당의 오랜 지지 기반이자 원점으로 인식되는 DJ와 국민주권정부를 내건 이재명 정부의 역사적 정통성과 소명을 끊임없이 상기시키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 이와 더불어 '하나의 뿌리' 민주당의 지지세력을 통합하고, 김대중 정부가 지향했던 실용주의, 중도개혁, 한반도 평화의 노선을 승계한다는 의미도 담고 있다. 이는 집권 2년 차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이 지지세력 확장을 시도할 때 핵심 키워드이기도 하다.

8월 18일 추도사에서 김민석 대표는 "국민과 함께 이념을 넘어 초당적으로 기리고 배우겠다"는 말로, 이재명 대통령은 "김대중이라는 위대한 이정표를 항상 가슴에 품고 어떠한 시련을 마주하더라도 주저함 없이 나아가겠다"는 말로 마무리했다. 더불어민주당에도, 이재명 국민주권정부에도 똑같은 과제가 주어졌다. 역사에서 무엇을 배울 것이며, 김대중의 무엇을 잇고 무엇을 뛰어넘을 것인지.

 김민석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17일 대전시 유성구 대전컨벤션센터(DCC) 제2전시장에서 열린 '더불어민주당, 제3차 정기전국당원대회'에서 당기를 흔들고 있다.
김민석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17일 대전시 유성구 대전컨벤션센터(DCC) 제2전시장에서 열린 '더불어민주당, 제3차 정기전국당원대회'에서 당기를 흔들고 있다. ⓒ 공동취재사진

#김민석#이재명#김대중#국민주권정부#더불어민주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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取중眞담 2026

사람에 대한 기사에 관심이 많습니다. 사람보다 더 흥미진진한 탐구 대상을 아직 보지 못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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