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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동영 통일부 장관이 통일부 장관 접견실에서 순창청소년기자단과 인터뷰를 하고 있다.
정동영 통일부 장관이 통일부 장관 접견실에서 순창청소년기자단과 인터뷰를 하고 있다. ⓒ 통일부

순창 청소년 기자단(아래 청소년 기자단)이 지난 14일 정동영 통일부 장관을 만나 특별한 인터뷰를 진행했다.

이날 청소년 기자단은 정 장관의 기자 시절과 5·18민주화운동 취재 경험부터 정치 입문, 남북 관계와 통일정책, 북한 국호와 주적 표현, 경원선 복원, 교황 방한과 한반도 평화, 고향에 대한 추억까지 폭넓게 질문했다.

청소년 기자단은 제81주년 광복절을 기념해 '평화'를 주제로 8월 13일부터 15일까지 2박 3일 동안 국회~전쟁기념관~통일부~임진각~보신각 등을 탐방하는 가운데 정 장관을 인터뷰했다. 전북 순창 출신의 정 장관은 고향의 까마득한 후배들인 청소년 기자 7명(초등학교 6학년~중학교 2학년)을 환영하며 "청소년 기자와 인터뷰는 처음"이라고 밝게 웃었다.

다음은 청소년기자단이 정 장관과 접견실에서 오전 10시부터 1시간가량 나눈 대담 전문이다.

"개성공단 다시 열고 싶다", 남북 평화공존과 통일의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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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준혁 기자 : 기자를 하게 된 이유가 있었나요? 5·18 당시 기자 활동을 하셨고 그때 취재하신 내용이 보도가 되지 않은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당시 어떤 내용을 취재했고, 보도되지 않았을 때 심정은 어떠셨나요?

"제가 전주 북중학교 2학년 때 국어 선생님께서 언론의 역할을 이야기하시며 천관우 선생이라는 훌륭한 언론인이 있다고 말씀해 주셨어요. <동아일보> 주필로 역사학자이기도 했습니다. '나도 역사를 공부해야겠다'고 생각해서 국사학과에 진학했고, 언론인이 되고 싶다는 꿈도 갖게 됐어요. 중학생 때 갖는 꿈이라는 게 굉장히 중요합니다.

1978년 MBC 기자가 됐고 기자 생활을 시작한 지 1년 반 정도 됐을 때 5·18 민주화 운동이 일어났습니다. 당시 기자로 광주에 있었습니다. MBC 기자 세 명이 갔는데 저는 가장 후배였기 때문에 주로 시내를 돌아다니며 취재했어요.

광주 양동시장에 가서 무 한 개에 얼마인지, 돼지고기 한 근에 얼마인지, 상추 한 다발에 얼마인지 생활물가를 취재했습니다. 그런 상황에서도 물가가 뛰지 않고 평온이 유지되고 있었어요. 시내를 돌아보니 파출소 유리창이 깨진 곳도 없고 은행 셔터도 그대로 있고 가게도 멀쩡했습니다. 광주의 일상이 평온하고 질서가 유지되고 있다는 것을 세세하게 취재해 보도하려고 했던 겁니다. 그런데 한 줄도 보도되지 못했습니다.

5월 27일 새벽 4시쯤, 도청 앞 여관에서 자고 있었는데 기관총 소리와 헬기 소리가 들렸어요. 그때 군이 진압했습니다. 아침에 식당에 기자 몇 명이 모였는데 무슨 말을 할 수가 없었어요. 그냥 통곡했던 기억이 납니다. 시민들과 함께 저항하지 못했다는 마음도 있었고, 기자로서 현장을 기록했는데 한 줄도 보도하지 못했다는 무력감도 있었습니다.

여러분에게는 역사 속 한 대목처럼 들리겠지만 제가 이야기하고 싶은 것은 민주주의의 소중함입니다. 오늘 우리가 누리는 민주주의의 바탕에는 당시 젊은이들의 희생과 피가 있었다는 것을 기억했으면 좋겠습니다."

- 임정연 기자 : 정치를 하게 된 계기는 무엇이었나요? 그리고 통일부 장관을 두 번째로 맡고 계신데 어떤 방법으로 통일을 추진하고 있으며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는지 궁금합니다.

"정치를 시작하게 된 때가 1995~1996년 무렵입니다. 당시 김대중이라는 정치 지도자가 학계와 법조계, 언론계, 문화계 등의 30~40대 젊은 사람들에게 함께 정치를 해보지 않겠느냐고 제안했습니다. 저에게도 제안이 왔고, 김대중이라는 지도자와 함께 정권교체에 참여해보자는 것이 정치에 뛰어든 배경입니다.

결국 1997년 12월 대한민국 역사상 처음으로 야당이 여당이 되고, 여당이 야당이 되는 수평적 정권교체가 일어났습니다. 그리고 김대중 대통령은 2000년 평양을 방문해 김정일 국방위원장과 만나 6·15공동선언을 발표했습니다.

제 생일이 1953년 7월 27일입니다. 바로 정전협정이 체결된 날이에요. 어린 시절을 보낸 구림면에는 회문산이 있습니다. 한국전쟁 전후로 좌우가 서로 죽이고 죽는 엄청난 비극이 벌어진 곳입니다. 철이 들면서 '내가 태어나고 자란 땅이 이렇게 비극적인 역사를 가진 곳이구나'라는 것을 알게 됐고 남북 문제에 관심을 갖게 됐습니다.

2004년 노무현 대통령께서 내각에 들어와 장관을 맡아보라고 했습니다. 제가 통일부 장관을 하고 싶었던 중요한 이유가 개성공단이었습니다. 2000년 남북정상회담에서 합의했는데 몇 년이 지나도록 제대로 진척되지 않고 있었어요. '개성공단을 내가 만들어내야겠다'는 생각이 있었습니다.

2004년 7월 통일부 장관으로 취임해 개성공단에 온 힘을 쏟았습니다. 이후 125개 공장이 들어서고 5만 명이 넘는 북한 노동자들이 출근하는 곳으로 성장했습니다. 남쪽의 자본과 기술, 북쪽의 노동력과 자원이 결합해 옷도 만들고 신발도 만들고 자동차 부품도 만들었습니다.

제가 정치를 하면서 가장 큰 보람과 자부심을 느낀 일 가운데 하나입니다. 그런데 2016년 개성공단이 폐쇄됐습니다. 너무나 안타까운 일입니다. 제가 두 번째 통일부 장관을 맡은 데에는 개성공단을 어떻게든 다시 열어보고 싶다는 생각도 있습니다."

 정동영 통일부 장관은 예정된 시간을 넘기며 순창청소년기자단과 진지한 대화를 나눴다.
정동영 통일부 장관은 예정된 시간을 넘기며 순창청소년기자단과 진지한 대화를 나눴다. ⓒ 통일부

"북한 국호? 서로 인정하고 존중해야"

- 최용준 기자: 북한의 국호 문제에 대해 말씀하셨는데, 만약 북한의 국호가 바뀌게 된다면 기존 역사와 혼란이 생길 수도 있지 않을까요?

"북한의 공식 이름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입니다. 우리가 그동안 북한이라고 불러왔기 때문에 갑자기 조선이라고 부르면 어색하게 느껴질 수 있겠죠. 하지만 다른 나라의 사례를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우리가 예전에는 '터키'라고 불렀지만, 지금은 그 나라가 원하는 이름인 '튀르키예'라고 부르잖아요.

남과 북은 1991년 9월 17일 유엔에 동시 가입했습니다. 유엔 회원국이 됐다는 것은 서로의 주권을 인정하고 존중한다는 의미가 있습니다. 당시 노태우 대통령도 유엔 무대에서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라는 명칭을 사용했습니다.

2000년 6·15공동선언에서도 '대한민국 대통령 김대중',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국방위원장 김정일'이라고 국호를 적었습니다. 남북 사이에 국호를 명시해 서명한 문서가 100건이 넘습니다.

지금 정부 대북정책의 기본은 평화공존입니다. 서로 인정하고 존중하면서 싸우지 말고 평화롭게 공존하자는 겁니다. 상대방을 존중한다면 본인이 원하는 이름을 불러주는 것이 맞다는 생각입니다.

그렇다고 이것을 국민에게 강제할 수는 없습니다. 현재는 국민 여론과 함께 공론화하는 과정이라고 생각하면 됩니다."

- 최서후 기자: 아직 휴전 상태인 북한을 '주적'이라는 표현 대신 '위협'이라는 표현을 사용해야 한다고 하셨는데요?

"서로 싸우다가 정전협정을 맺은 것이기 때문에 적대적인 관계가 맞습니다. 그런데 남북 관계에는 이중적인 성격이 있습니다. 남과 북의 지도자들이 만나 악수하고 화해하고, 과거의 증오를 씻고 서로 인정하고 존중하며 협력하자고 합의했습니다. 철도와 도로를 연결하고 금강산 관광도 했고, 개성공단도 만들었습니다.

이렇게 서로 협력하면서 궁극적으로 통일을 향해 나가야 하는 상대방에게 계속해서 '너는 적이야'라고만 할 수는 없잖아요. 과거 노무현 정부나 문재인 정부 같은 민주 정부에서는 정전협정 상 적대관계라는 현실은 인정하면서도 북한을 직접 '적'이라고 규정하기보다는 평화와 안정을 위협하는 세력, 즉 '위협'이라고 표현했던 것​입니다."

"끊어진 철도 잇고 평화의 시대 준비"... 경원선 복원 구상

- 이수민 기자: 10년 만에 경원선 복원을 재개한다고 들었습니다. 접경지역 생태계를 고려한 환경영향평가 등은 어떻게 진행되는지 궁금합니다.

"경원선은 서울에서 원산으로 가는 철도입니다. 현재 서울에서 백마고지역까지는 기차가 갈 수 있습니다. 백마고지에서 디엠지(DMZ) 비무장지대 쪽으로 가면 월정리라는 곳이 있는데 그곳까지 철도를 더 연장하려는 것입니다. 10년 전 박근혜 정부 때 추진하다가 북한 핵실험 등의 문제로 중단됐습니다.

이것은 남북이 합의해야만 할 수 있는 사업이 아니라 우리 땅에서 우리가 할 수 있는 사업입니다. 첫째로 월정리까지 기차가 다니게 되면 철원과 연천 등 접경지역 주민들의 교통이 편리해지고 관광객도 갈 수 있습니다.

투자도 일어날 수 있기 때문에 지역경제 활성화에도 도움이 됩니다. 두 번째는 앞으로 남북대화가 이뤄졌을 때를 대비하는 의미가 있습니다. 끊어진 철도를 연결하면 북쪽을 거쳐 원산까지 갈 수 있습니다. 그런 시대를 준비하는 것입니다.

환경영향평가도 시행할 예정입니다. 기존에 토지 매입과 설계 등이 상당 부분 진행돼 있기 때문에 잘 준비해서 사업을 추진할 생각입니다."

 정동영 장관은 고향 후배들인 순창청소년기자단을 진심으로 환대했다.
정동영 장관은 고향 후배들인 순창청소년기자단을 진심으로 환대했다. ⓒ 통일부

- 이서경 기자: 내년에 교황님의 방한으로 남북에 다리를 놓는 계기를 기대한다고 말씀하셨는데, 교황님이 남북 간의 평화를 위해 어떤 역할을 해주기를 기대하시나요?

"가톨릭에서는 미사를 마칠 때 옆 사람에게 '평화를 빕니다'라고 하잖아요. 교황은 세계 평화의 상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2014년 프란치스코 교황이 한국에 왔을 때 세월호 유가족들을 만났습니다. 유가족들의 손을 일일이 잡아주고 위로해 주셨습니다. 우리 국민에게 큰 감동을 줬습니다.

교황들은 한반도의 평화를 위해 기도하고 평화의 메시지를 계속 보내왔습니다. 교황의 한국 방문을 계기로 가능하다면 평양도 방문하면 좋겠다는 것이 우리의 바람입니다. 교황께서는 북한이 초청한다면 갈 의사가 있다는 뜻도 밝힌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북한이 어떻게 할지는 알 수 없습니다. 하지만 교황의 한국 방문이 남과 북이 적대하는 지금의 상황을 개선하는 좋은 계기가 되기를 바랍니다."

순창 후배들에게 건넨 꿈의 메시지

- 이연서 기자: 고향에 대한 추억은 어떤 게 있나요? 청소년들에게 선배로서 꼭 전하고 싶은 말씀이 있으신가요?

"순창초등학교 앞 경천에서 친구들과 뛰어놀았던 기억이 있습니다. 구림면 율북초등학교를 다닐 때는 산골이니까 학교가 끝나면 친구들은 각자 자기 마을로 돌아갔습니다. 혼자 뒷동산 잔디밭에 누워서 하염없이 하늘을 바라봤습니다.

구름이 사자가 됐다가 코끼리가 됐다가 곰이 되는 모습을 보면서 '저 하늘 너머에는 무엇이 있을까', '서울은 어떻게 생겼을까' 하고 상상했습니다. 순창의 산과 들과 바람과 논이 제 놀이터였고, 그곳에서 상상의 날개를 펼쳤습니다. 저는 '나를 키운 건 순창의 하늘이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순창 청소년들에게 '꿈을 믿으면 현실이 된다'​는 말을 해주고 싶습니다. 꿈을 꾸세요. 꿈이 없다는 것은 배가 바다를 항해하면서 나침반이 없는 것과 같습니다. 목적지가 있어야 그 방향으로 갈 수 있습니다.

그러기 위해 첫 번째로 상상하세요. 순창은 하늘과 강과 산과 자연이 열려 있습니다. 자연과 교감하면서 마음껏 상상했으면 좋겠습니다. 두 번째는 책을 읽으세요. 인공지능 시대에는 지식 자체보다 자기만의 창의력과 발상의 창의성이 중요합니다. 책과 소설, 시, 영화, 미술, 음악 등을 통해 나보다 앞서 살아간 사람들의 삶을 간접적으로 경험할 수 있습니다.

세 번째는 여행하세요. 꼭 외국에 가라는 뜻이 아닙니다. 친구들과 걸어서 섬진강에도, 회문산에도, 강천산에도 가보세요. 직접 세상을 보는 경험이 중요합니다. 마지막으로 긍정하세요. 긍정적인 생각을 하면 적극적으로 움직이게 됩니다. '상상하라, 읽어라, 여행하라, 긍정하라.' 그리고 무엇보다 여러분의 꿈을 믿으세요. 꿈을 믿으면 현실이 됩니다."

정 장관은 예정된 인터뷰 시간이 훌쩍 지났음에도 단체사진 촬영을 마친 후, 청소년기자 한 명 한 명 이름을 불러가며 별도로 기념사진을 찍으면서 고향 후배들에 대한 진심 어린 애정을 표현했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전북 순창군 주간신문 <열린순창> 에도 실립니다.


#정동영#통일부#순창청소년기자단#순창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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