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학기 학급회장에 당선되어 '임명장'을 들고 온 아들이 지인에게 질문을 던졌다고 한다. (AI생성 이미지) ⓒ 오마이뉴스
지인의 인스타그램에 짧은 글이 하나 올라왔다. 서울시교육청에서 임기제 공무원으로 일하며 온갖 공문서와 행정 언어를 오래 다뤄온 그조차, 중학교 특강을 마치고 집에 돌아와 2학기 학급회장에 당선되어 '임명장'을 들고 온 아들의 질문 앞에서는 선뜻 답을 하지 못했다. 아들이 물었다.
"아빠, 왜 이건 당선증이 아니고 임명장이에요?"
어른들 누구도 의심하지 않았던 그 종이 한 장에, 중학교 1학년 아이가 딱 멈춰 세운 것이다. 아이는 친구들의 선택으로 학급 회장이 되었는데, 손에 쥐어진 것은 '당선'이 아닌 '임명'이었다. 마침 나도 출장 중이었는데, 그 글을 우연히 보고 돌아오는 내내 아이가 던진 이 질문이 마음을 맴돌았다.
출장으로 밀린 결재를 처리하려 시스템에 접속했다. 우리 학교 2학기 학생회 정·부회장과 학급회 정·부회장 임명장 수여 관련 기안이 올라와 있었다. 늘 하던 대로라면 별생각 없이 '승인' 버튼을 눌렀을 것이다. 그 순간, 퇴근길에 본 그 글이 떠올랐다. 나는 잠시 결재를 멈추고 학교 규정집을 뒤졌다. 나이가 들수록 익숙한 절차 앞에서 무뎌지기 쉬운 법인데, 아이 하나의 질문이 그 무뎌진 감각을 다시 흔들어 놓은 셈이었다.
임명을 당선으로
'임명(任命)'은 위에서 아래로 향하는 말이다. 자리와 권한을 남에게 맡긴다는 뜻이니, 임명하는 자와 받는 자 사이에는 필연적으로 위아래가 생긴다. 반면 '당선(當選)'은 아래에서 위로 솟는 말이다. 표를 던진 유권자가 주인이고, 뽑힌 사람은 그 신임을 잠시 위임받은 대리인일 뿐이다. 학급 친구들이 투표용지에 이름을 적어 넣은 결과물은 분명 '당선자'인데, 결재 과정을 거쳐 받아 드는 순간 아이는 '임명자'가 되어버린다. 학생자치의 주어가 종이 한 장에서 슬그머니 뒤바뀌는 셈이다.
규정집을 펼쳐보니 의외였다. 우리 학교 학생회 규정 제2장은 '선출', '당선', '당선 확정'이라는 말만 쓰고 있었다. '임명'이라는 단어는 어디에도 없었다. 안도하는 순간, 제26조 3항에서 걸음이 멈췄다. "학생회장 및 부회장은 학교장의 결재가 끝나는 순간부터 당선자로 인정하며..." 말은 '당선자'라 부르는데, 그 자격이 확정되는 시점은 개표가 끝난 순간이 아니라 학교장 결재 도장이 찍히는 순간이었다.
우리 학교 규정은 시대의 변화를 반영하고 있었지만, 그 언어가 현실에 구현되는 과정에는 여전히 '승인 게이트'가 버티고 있었다. 학교장 결재 도장이 찍혀야만 당선이 완성된다는 관행의 성벽이다. 내 결재시스템 위 기안은, 규정 조문조차 뛰어넘지 못한 관행이 서식이라는 더 낮은 층위에서 훨씬 오래 버틴다는 증거였다.
다른 학교도 마찬가지였다
혹시 우리 학교만의 일일까 싶어 동료 교장 몇 분이 있는 카톡방에 슬쩍 물어보았다. 답이 돌아온 학교들은 모두 아직 '임명장'이라는 표현을 그대로 쓰고 있었다. 소수의 사례일 뿐이라 이것이 우리 지역만의 관행인지, 더 넓은 범위의 공통된 관행인지는 정확히 알 수 없다. 다만 적어도 이 서식이 나만의 착오나 우리 학교만의 예외적 사례는 아니라는 것만은 분명해 보였다.

▲실제 학교 현장의 임명장 예시한 고등학교에서 실제로 발급된 학생회장 임명장. "위 학생을 학생회 회장으로 임명함"이라는 문구가 선명하다. 학생들이 투표로 뽑은 결과임에도, 종이 위에는 '당선'이 아닌 '임명'이라는 말이 자리하고 있다. ⓒ 오성훈
답을 준 교장 중 한 분은 학교장이 일정한 지위나 임무를 부여하는 것이고 학교장 명의로 나가기 때문에 임명장이 더 맞을 것 같다는 의견을 덧붙였다. 문서의 발급 주체를 기준으로 보면 틀린 말이 아니다. 하지만 그 문서가 증명해야 할 것이 '누가 발급했는가'가 아니라 '누가 그 자리를 만들었는가'라면, 답은 달라진다. 발급자는 학교장이지만, 그 자리를 만든 것은 투표함에 표를 넣은 아이들이었다.
학생자치를 강화하겠다는 정책은 해마다 새로워지는데, 정작 아이들 손에 쥐어지는 종이 한 장의 문구는 몇 년 전 서식 그대로 머물러 있었다.
물리학에 관성의 법칙이 있듯, 조직도 외부에서 힘이 가해지지 않으면 하던 대로 움직인다. 재미있는 건 언어를 바로잡는 일과 절차를, 서식을 바로잡는 일이 저마다 다른 크기의 힘을 필요로 한다는 점이다. 규정의 '임명'을 '당선'으로 고치는 건 개정 절차 한 번이면 됐다. 하지만 그 조문이 결재선을 타고 서식까지 내려오게 하려면, 아무도 의심하지 않은 채 되풀이해온 관행의 관성을 한 번 더 넘어야 했다. 조문 하나 고치는 걸로 끝났다고 믿는 순간, 개혁은 거기서 멈춘다.
결재의 자리를 바꾸다
다행히 손 볼 자리는 찾았다. 담당 선생님께 전화를 했다. 임명장이 아니라 당선증으로 보내는 것이 학생 자치 활동 장려 차원에서 좋겠다고. 번거로운 재기안을 기꺼이 하시겠다는 선생님이 고마웠다.
다음 규정 개정 때는 제26조 3항도 손보려 한다. '개표 결과 공고와 동시에 당선자로 인정하고, 학교장은 행정적 확인을 한다'는 식으로 순서를 바꾸는 것이다. 결재가 사라지는 게 아니라, 결재의 자리가 바뀌는 것이다. 자격을 주는 도장에서, 이미 확정된 사실을 확인하는 도장으로.
반려한 기안이 다시 올라올 때쯤이면, 제목은 '당선증'으로 바뀌어 있을 것이다. 그 종이를 받아 들 우리 학교 아이들에게, 그리고 애초에 이 질문을 던졌던 그 지인의 아들에게도 말해주고 싶다. '이 종이는 학교가 너희에게 내려준 권한이 아니라, 친구들이 너희에게 신뢰를 맡겼다는 증거란다.'
아이들에게 당선증을 건네며 나는 나 자신에게도 되묻는다. 교장실에 앉아 있는 나 또한 위에서 임명받은 자인지, 공동체의 신임을 확인받은 자인지. 어쩌면 지금 이 순간, 어느 학교의 결재 화면에도 '임명장'이라는 제목의 기안이 별생각 없이 올라와 있을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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