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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래 기사에는 서평 소설의 스포일러가 포함돼 있습니다.

책 <서울의 선인>을 읽던 지난주, 알 수 없는 번호로 문자가 왔다.

"저의 휴대전화에 저장돼 있는 공예 선생님이 맞으실까 모르겠습니다. 오랜 시간이 지났지만, 뜨문뜨문 계속 선생님 떠올리면서 살았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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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내가 지난 십 년 전, 아동 공예 클래스에서 만난 어린 친구였다. 그 클래스를 닫게 되면서 점차 연락이 끊어졌다. 오랜만에 불쑥 들어온 안부 문자에 놀랐고, 여전히 나를 기억해 준 그 고운 마음에 감동돼서 울컥했다. "나도 한때는 누군가에게 좋은 사람이었을까?" 부끄러운 물음을 슬쩍 던져본다.

'선인'과 '의인'이 무엇인지 곱씹게 되는 <서울의 선인>(2026년 6월 출간)은 김호연 작가의 신작 소설이다. 작가는 '소돔과 고모라'에서 영감을 얻고, 계엄에 맞선 시민을 보며 본격적으로 집필을 시작했다고 한다. 소설은 판타지와 범죄 추리, 스릴러 등 다양한 장르가 섞였다. 작가 특유의 유머와 따뜻한 시선, 현실적인 인물의 이야기는 역시 휴먼 드라마였다.

의인을 찾으러 온 천사

<서울의 선인> 김호연 작가의 신작 소설이다.
<서울의 선인>김호연 작가의 신작 소설이다. ⓒ 강미순

주인공 재근은 북한산 인근에서 17년째 철물점을 운영하는 50대 남자다. 녹록지 않은 삶을 살던 그에게 자칭 천사라는 성갑이 찾아온다. 성갑은 서울의 멸망을 막을 수 있는 의인이 있는지 확인만 해주면 4천만 원을 주겠다고 한다. 재근이 그 황당한 말을 믿을 리가 없다. 그러나 천사가 제시한 금액은 집안의 문제를 즉각 해결해 줄 수 있었다. 재근은 고민할 여지도 없이 그 돈을 받고, 의인을 찾아 나선다.

과거, 재근은 사람을 구한 일로 의인상을 받아 특채 경찰이 되었지만, 장물(4천만 원)에 손을 대면서 직장과 명예를 모두 잃었다. 다시 눈 먼 돈이 아니라 하늘에서 뚝 떨어진 돈 앞에서 흔들린다. 재근은 오직 현실의 문제에만 집중한다. 당장 아들의 합의금을 마련해야 한다.

세상 모든 문제가 그렇듯 이게 다 돈 때문이었어. - 34p

사람들이 돈을 쫓는 이유는 돈이 문제를 해결해 주기 때문이다. 물론 돈은 문제를 일으키기도 한다. 하지만 그 문제는 더 큰 돈으로 막을 수 있기도 하다. - 155~156p

이 구절에서 재근의 돈에 대한 생각을 읽을 수 있다. 작가는 재근을 단순히 돈에 휘둘리는 인물로 그리지 않았다. 먹고사는 일 앞에서 자신의 신념과 선의를 끝까지 지킬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될지. 인간의 선함이 현실에서 얼마나 쉽게 이용되고 변질될 수 있을지 되묻는다.

선의로 시작해 저의로 끝나버린 내 지난날

제자의 문자 때문인지, 수년 전 일이 문득 떠올랐다. 내가 그 제자를 비롯한 어린 친구들을 만났던 건, 아동과 청소년을 대상으로 주 1회 재능 기부를 하면서였다. 내게 보람과 성취, 즐거움이 되리란 기대감이 있었다. 물론 온전히 선의로만 채울 수 없었다. 아주 작지 않은 저의랄까. 유료 수강으로 이어질 기대감도 없지 않았다.

무료 수업을 하던 어느 날, 내가 방심하는 사이 초등학생 한 명이 공예용 도구에 다치는 사고가 났다. 나는 정신없이 아이를 업고 가까이 있는 병원으로 냅다 뛰었다. 100미터 정도의 길이라 걸어가도 되는 아이를 굳이 둘러업고 뛰었던 건, 나도 나를 구하고 싶었다. 절박한 심정이 하늘에 닿았을까. 다행히 아이의 상처는 간단한 처치로 끝났고, 학부모도 그 상황을 이해해 주셨다. 지금도 그날을 돌아보면 마음이 무겁다.

사람이 말로 하는 게 제일 쉬워. 그다음이 글이야. 글도 처음엔 쓰기 어렵지. 쓰다 보면 글로 사람 속이는 것도 쉽다고. 제일 힘든 게 행동이야. 행동은 직접 제 몸뚱아리를 움직여야 한다고. - 148~149p

밑줄 긋게 만드는 문장이다. 그렇다. 예상하지 못한 위기에 직접 내 몸을 움직여 보고서야 실감했다. 아이를 업고 뛰지 않았다면, 내가 무얼 놓치고 있었는지 몰랐을 것이다. 아주 미세하고 점진적인 저의로 옮겨가고 있는 나 자신을. 좋은 일과 보람이 생계와 같은 방향으로 가지 않는다는 것도 깨닫게 됐다.

'의인'이란 무엇일까

재근이 의인을 찾기 위한 여정이 흥미롭다. 그가 다른 '의인상' 수상자들이 의인인지 아닌지 판단하다가 의도치 않게 자신의 과오를 뉘우치는 여정이 되었다.

나는 의인이 아닙니다. 진즉에 자격을 잃은 불의한 인간입니다. - 186p


재근은 의인을 찾을 수 없었다. 자신도 의인이 될 수 없다고 판단한다. 그가 한 번 저질렀던 실수 때문에 그의 선행까지 가짜가 되는 것인지. 그렇다면, 한 번 선행으로 평생 의인이라 불릴 수 있을까? 실수 한 번으로 의인이라는 이름은 사라지는 걸까? 무엇이 선인가, 의로운가 하고 고민하게 된다.

사람이 의롭게 되는 것은 율법의 행위로 말미암음이 아니요.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는 줄 알므로... 갈라디아서 안 가르쳐요? - 226p

천사 성갑은 성경 구절을 툭툭 던진다. 다소 가벼운 말투로 묵직한 신의 메시지를 전달한다. 성경에서 의인은 하나님 앞에서 의롭다고 인정받거나, 그 뜻에 맞게 살아가는 사람이다. 소설은 오히려 성경대로 온전히 살기 어려운 인간의 현실을 보여준다.

책 제목이 '서울의 의인'이 아니라 '서울의 선인'인 것도 대단한 영웅을 찾기보다 평범한 인간다운 선함과 양심을 되짚어 보게 한다. 거창한 희생이나 완벽한 선행이 아니더라도, 선하다고 자신할 수 없는 평범한 사람이 다른 사람을 위해 건네는 작은 마음에 가깝다.

선의는 양방향으로 흐르는지도 모른다

소설은 천사 성갑의 정체가 드러나면서 선의가 꼭 한 방향으로만 흐르는 것은 아니라는 걸 보여준다. 성갑이 제 어머니의 은인에게 받은 만큼 돌려준 것도 있지만, 재근이 다시 세상으로 걸어 나갈 수 있도록 돕는 천사의 역할도 더한 셈이다.

'선인'은 누군가에게 선행을 베푸는 사람만을 뜻하는 것이 아니다. 서로가 조금 더 선하게 살아갈 수 있도록 붙들어주는 사람. 그 한 사람이 베푼 선의가 또 다른 사람의 삶에서 이어지도록 한다.

수년이 흘렀는데도, 오랜만에 안부를 묻는 제자는 작고 사소한 것까지 기억하고 있었다.

"선생님 웃을 땐 흥흥흥 하고 웃었어요... 작업하시다가 손가락 상처 난 것 기억나요."

나는 내가 '홍홍홍' 웃는 사람인지도 몰랐다. 내 손가락에 난 상처까지 기억해 주니, 나는 실로 오랜만에 '홍홍홍' 웃었다. 어느새 어린애에서 성인이 된 제자가 선하고 따뜻한 마음을 돌려주고 있었다. 제자의 기억 속에 따뜻한 장면 하나라도 남아 있다면, 나도 누군가에게 좋은 사람이지 않을까.

서울의 선인

김호연 (지은이), 위즈덤하우스(2026)


#서울의선인#김호연장편소설#의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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흙을 빚고 글을 짓는 프리랜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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