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오덕 참교육 토론회 포스터이오덕 '참교육' 그 역사와 뜻이란 주제로 국회에서 참교육 토론회가 열렸다. ⓒ 김옥성
[기사 수정 : 오후 5시 7분]
"아이들이 살아야 교육이 산다. 교사가 살아야 학교가 산다."
25일 국회에서 열린 '참교육 정책토론회 - 이오덕 '참교육' 그 역사와 뜻' 행사는 눈물로 시작했다. 인사말에 나선 백승아 의원은 행사장 입구에서 만난 교사들의 얼굴을 보며 문득 교실의 아이들이 떠올랐다고 했다. 교권 보호 정책과 법안을 이야기하며 국회를 뛰어다니던 시간 속에서 잠시 밀어두었던 아이들의 얼굴이었다. "우리 아이들이 보고 싶다"는 말 끝에 그의 목소리가 떨렸다.
그 눈물은 한 사람의 감상이 아니었다. 교사를 떠난 뒤에도 아이들을 잊지 못하는 마음, 법과 제도를 만들면서도 교육의 출발점이 어디였는지를 다시 묻는 마음이었다. 어릴 적 자녀와 함께 읽었다는 아이의 시, "나는 때리는 손 없어"라는 구절이 소개되자 토론회장은 잠시 조용해졌다. 참교육이라는 말이 폭력과 응징의 언어로 소비되는 시대에, 때리지 않는 손을 가진 아이의 말은 그 어떤 주장보다 선명했다.
내가 교육운동의 길을 걷게 한 스승
내가 교육운동의 길을 걷도록 이끌어 준 스승은 이오덕 선생님이다. 선생님은 거창한 이론보다 아이들의 삶을 먼저 보라고 가르쳤다. 아이들을 믿고, 아이들에게 배우고, 아이들이 제 삶의 주인으로 서도록 도우라고 했다. 말과 글은 삶에서 나와야 하며, 교육은 사람을 사람답게 살게 하는 일이어야 한다고 했다.
이날 토론회는 바로 그 가르침을 오늘의 교육 현실 속에서 다시 헤아려 보는 자리였다. 얼마전 이오덕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은 이부영 일놀이공부연구소 대표는 이오덕을 삶·말·글·교육·연구·교육운동의 결이 하나였던 한국의 교육사상가라고 말했다. 참교육의 핵심을 어린이 해방, 자연과 생명, 비판과 성찰, 자기 형성, 저항 정신으로 정리하면서도, 그 모든 것은 결국 아이가 자기 삶의 주인으로 서게 하는 데 모인다고 했다.
돌아보면 우리는 오랫동안 교육의 해답을 밖에서 찾았다. 새로운 정책이 나올 때마다 낯선 이름의 교육 방법을 들여왔고, 정권이 바뀔 때마다 학교의 방향도 흔들렸다. 그러나 이오덕 선생님은 언제나 아이들에게서 출발해 아이들에게로 돌아가라고 했다. 우리 반 아이들이 어떻게 살고 있는지, 무슨 말을 삼키고 있는지, 무엇 때문에 웃고 우는지를 모른다면 어떤 훌륭한 방법도 참교육이 될 수 없다.
아이들의 삶이 사라진 학교
이날 토론자들이 들려준 학교의 현실은 무거웠다. 학생과 학생이 서로 신고하고, 학부모와 교사가 서로를 경계하며, 갈등은 대화보다 법과 심의위원회로 향한다. 아이들은 관계 맺는 법과 갈등을 풀어가는 법을 배우기 전에 경쟁과 평가를 배운다. 마음껏 놀 시간도, 자기 생각을 말하고 쓸 시간도 빼앗긴다. 교사는 정당한 교육 활동조차 민원과 신고를 걱정하며 주저한다.
참교육학부모회 강영미 회장은 토론 직전, 중학교 1학년 학생이 학교에서 뛰어내렸다는 소식을 들었다고 했다. 하루 한 명이 넘는 아이들이 극단적인 선택을 하는 현실 앞에서 '어떤 교육을 더하자'는 말조차 공허하게 느껴진다고 울먹였다. 그가 강조한 것은 거창한 제도보다 무너진 신뢰의 회복이었다. 학생과 교사와 학부모가 마주 앉아 서로의 아픔을 듣는 것, 바로 거기에서 교육을 다시 시작해야 한다는 것이다.
AI 시대의 글쓰기 교육을 이야기한 손명선 사무처장의 말도 마음에 남았다. AI는 문장을 만들 수 있지만 아이의 경험을 대신 만들어 줄 수는 없다. 친구와 다투고 화해한 하루, 실패하고 다시 일어난 경험, 누군가를 돌보며 느낀 기쁨은 기계가 대신 살아줄 수 없다. 아이들에게 필요한 것은 더 그럴듯한 문장을 만드는 기술이 아니라, 자기 삶을 살아내고 그 삶을 자기 말과 글로 표현할 기회다.
박문희 원장은 아이의 말이 '시키지 않아도, 묻지 않아도, 하고 싶어서 견딜 수 없어 터져 나오는 말'이어야 한다고 했다. 아이의 똥을 닦아 주는 이야기까지 꺼내며 참교육은 아이의 몸과 마음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데서 시작한다고 말했다. 누군가에게는 사소해 보일지 모른다. 그러나 생명을 돌보는 교육은 언제나 이렇게 구체적이다. 아이 곁에 앉고, 냄새를 견디고, 말을 기다리고, 끝까지 들어주는 일이다. 박문희 원장의 발표 때는 유치원 어린이가 엄마와 함께 깜짝 참석해서 이야기를 해 주기도 했다.
참교육이라는 말을 되찾아야 한다
요즘 '참교육'이라는 말은 자주 폭력과 응징의 뜻으로 쓰인다. 문제 학생이나 악성 민원을 힘으로 제압하는 장면에 사람들은 통쾌함을 느낀다. 학교가 겪는 고통이 그만큼 크다는 방증일 것이다.
그러나 이날 토론자로 참여한 좋은교사운동 장승진 선생님은 참교육이 분노와 응징에 머물러서는 안 된다는 점을 짚었다.
장 선생님은 "분노와 카타르시스는 출발점일 수는 있어도 목적지가 될 수 없다. 개인을 응징한다고 무너진 공동체가 살아나지는 않는다"고 말했다. 문제를 일으킨 한 사람을 찾아내 벌주고 몰아내는 것으로 학교가 다시 살아나는 것은 아니라는 뜻이었다. 더 강한 힘으로 누르는 교육은 또 다른 두려움과 침묵을 낳을 뿐이다.
이오덕의 참교육은 아닌 것을 아니라고 말하는 교육이었다. 그렇다고 누군가를 미워하고 벌주는 데 머무는 교육은 아니었다. 잘못된 제도와 관행을 비판하되, 그 처음과 끝에 아이들의 삶을 두는 교육이었다. 아이의 인권과 교사의 교육권을 서로 맞서는 권리로 만들지 않고, 아이가 존중받아야 교사가 온전히 가르칠 수 있으며 교사가 존중받아야 아이도 안전하게 배울 수 있다고 믿는 교육이었다.
오늘의 참교육은 기후위기 앞에서 생명을 지키는 교육이어야 하고, 혐오와 차별 앞에서 약자의 편에 서는 교육이어야 한다. AI가 모든 것을 대신할 것처럼 말하는 시대에 몸으로 일하고 놀며 자연과 관계 맺는 경험을 되살리는 교육이어야 한다. 무엇보다 아이와 교사, 학부모가 서로를 신고하기 전에 마주 보고 이야기할 수 있도록 신뢰를 회복하는 교육이어야 한다.

▲참교육토론회국회에서 이오덕 선생님을 기리며 오늘날 참교육 정신을 되새기기 위한 토론회가 백승아 의원 강경숙 의원실과 함께 공동으로 열렸다. ⓒ 오지연
눈물은 다짐이 되었다
토론회는 다시 눈물로 끝났다. 마지막 토론자가 위태로운 아이들과 상처 입은 교사들의 현실을 말하다 울음을 삼켰다. 사회자는 "눈물은 전염성이 강하다"고 했다. 시작의 눈물과 끝의 눈물 사이에 세 시간이 흘렀지만, 그 눈물이 가리킨 곳은 같았다. 우리 교육이 사람을 살리는 본래의 자리로 돌아가야 한다는 절박함이었다.
참석자들은 마지막으로 '아이도 교사도 살아가는 교육, 이오덕의 참교육을 다시 세우자'는 성명을 함께 읽었다. 지나친 경쟁교육에서 벗어나 모든 아이의 삶과 존엄을 지킬 것, 아이들에게 쉬고 놀며 말하고 쓰는 시간과 공간을 돌려줄 것, 교사가 부당한 민원과 위협에 시달리지 않고 양심과 전문성을 지키며 가르칠 수 있게 할 것, 학생·교사·학부모가 서로 존중하는 민주적 교육공동체를 세울 것을 다짐했다.
성명의 마지막 문장이 오래 남았다. "참교육은 폭력이 아니다. 참교육은 사람을 살리는 교육이다." 그렇다. 참교육은 누군가를 꺾어 무릎 꿇리는 일이 아니다. 아이의 말에 귀 기울이고, 교사의 손을 붙잡고, 상처 입은 공동체가 다시 서로를 믿게 하는 일이다. 생명을 지키고 저마다 자기 삶의 주인으로 서게 하는 일이다.
아이들이 살아야 교육이 산다. 교사가 살아야 학교가 산다. 서로 믿고 존중할 때 우리 교육의 앞날이 열린다. 눈물로 시작해 눈물로 끝난 토론회는 끝났지만, 그 눈물이 우리에게 건넨 물음은 이제 시작이다. 우리는 다시, 사람을 살리는 교육의 길을 걸을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