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다문화사회, 그들의 이름' 시리즈의 세 번째 글입니다. 이 시리즈를 통해 서로 다른 언어와 문화권의 이름이 한국 사회에서 어떻게 불리고 표기되는지 살펴보며, 이름을 대하는 우리의 인식과 태도를 함께 돌아보고자 합니다. 이름을 존중하는 일이 곧 사람을 존중하는 일이라는 점을 다양한 사례를 통해 이야기합니다.

▲어느 국내 대학교 행사에서 전통의상을 입은 외국인 유학생들이 함께 모여 사진을 찍으며 즐거워하고 있다(사진은 기사 내용과 관계 없음) ⓒ 연합뉴스
어느 학기 대학원 수업에 유학생이 유난히 많았다. 아홉 명 중 여덟 명이 유학생이었다. 베트남 네 명, 인도네시아 두 명, 미얀마와 카자흐스탄에서 각각 한 명이었다.
대학원 수업은 주 1회였다. 3주가 지나도록 나는 학생들의 이름을 거의 외우지 못하고 있었다. 출석을 부를 때마다 출석부를 보며 더듬었고, 수업 중에 학생을 지목할 때는 이름 대신 손짓을 썼다. 미안하고 부끄러웠다. 이름이 길어서만은 아니었다. 한국인 이름은 대개 성 한 음절과 이름 두 음절의 짜임으로 읽히지만, 출석부에 길게 붙어서 적힌 낯선 이름들은 어디서 끊어 읽어야 할지부터 알기 어려웠다. 그날 수업에서 나는 발표에 앞서 각자 자기 이름의 뜻을 소개해 달라고 부탁했다. 이름을 외워 보려는 궁여지책이었다.
(이 글에 나오는 학생들의 이름은 모두 가명이다. 이름의 짜임과 뜻은 실제 사례를 따랐으나 당사자를 특정할 수 있는 부분은 바꾸었다 - 기자 주)
'티'는 우리가 아는 그 '씨'였다
베트남 학생 레티탐의 이름은 세 토막이다. '레(Lê)'는 성으로 한자 여(黎), '탐(Thắm)'은 짙고 곱다는 뜻의 순 베트남어다. 늘 곱기를 바란 가족의 마음이 담겼다.
가운데 '티(Thị)'가 흥미로웠다. 전통적으로 여성 이름의 가운데에 흔히 놓이던 요소라기에 한자를 물었더니 씨(氏)라고 했다. 우리가 '김미정 씨' 할 때 그 씨다. 한국에서는 이름 뒤에 붙어 사람을 부르는 말이 되었고, 베트남에서는 이름 가운데로 들어가 여성임을 표시하는 자리가 되었다. 같은 글자가 두 언어에서 각기 다른 자리를 찾아 앉은 셈이다. 한자문화권의 언어를 견주어 보는 것이 내 관심 분야의 하나인데, 나는 이 사실을 그날 처음 알았다.
다만 요즘 베트남에서 이 글자를 이름에 넣는 일이 예전만큼 흔하지는 않다고 한다. 전통적 여성 표지라는 성격을 굳이 이름에 남기지 않으려는 흐름도 있다고 했다. 이름의 문법도 세대를 따라 바뀐다.
호바오투이린의 가운데 토막은 사정이 달랐다. 베트남에서 성과 이름 사이의 이 자리는 집안의 계파나 항렬을 표시하는 데 쓰이기도 한다. 그런데 이 학생의 경우 '바오(Bảo, 寶)'는 외할아버지의 함자에서 가져온 것이라고 했다. '투이린'은 온화하고 영민하라는 뜻이고, 집에서는 끝 글자를 겹쳐 '린린'이라고 부른다고 했다. 이름 다섯 자 안에 성씨와 외조부와 부모의 바람과 애칭이 층층이 들어 있었다.
성을 전제하지 않는 이름들
인도네시아에서 온 자바족 학생 셉티아나 하비바의 이름에는 성이 없다. '셉티아나'는 라틴어 계통의 이름으로 9월을 뜻하는 September와 뿌리가 같은 말이고, '하비바'는 아랍어로 사랑받는 이라는 뜻이다. 그 학생은 자신의 이름을 "9월에 태어난 사랑받는 이"라는 뜻으로 들었다고 했다. 또 다른 인도네시아 학생 파우지 압둘라의 이름도 마찬가지다. 아랍어로 승리를 뜻하는 '파우지'에 신의 종을 뜻하는 '압둘라'가 붙었다. 라틴어에서 온 이름과 아랍어에서 온 이름이 한 사람에게 나란히 붙어 있다. 이름의 출처가 곧 그 사람의 종교를 뜻하는 것은 아니다.
인도네시아의 이름 체계는 민족, 지역과 종교에 따라 사뭇 다르지만, 가족 성을 대대로 물려받지 않는 방식이 널리 존재한다. 적어도 이 두 학생의 이름에는 한국식 의미의 성이 없었다.
미얀마에서 온 묘테인쪼도 그렇다. 미얀마의 다수 이름 체계에서는 세습되는 가족성이 일반적이지 않다. 이름은 성과 이름으로 쪼개기보다, 전체로 불리고 적히는 한 단위다. 부모와 자식의 이름이 서로 닮지 않는 것이 오히려 자연스럽다. 태어난 요일에 따라 첫 글자를 정하는 관습도 널리 알려져 있다. 그러니 묘테인쪼의 이름에서 성을 찾는 일은 애초에 성립하지 않는 질문이다.
내게 기억하기가 제일 어려운 이름은 카자흐스탄에서 온 나이마노바울잔이었다. 일곱 자가 한 덩어리로 붙어 있으니 어디에서 끊어 읽어야 할지 막막했다.
들어 보니 앞의 다섯 자가 성이었다. 중세 유라시아 초원을 호령하던 튀르크계 유목민 나이만의 이름에, 러시아어의 여성형 어미 '-오바(-ova)'가 붙어 있다. 제정 러시아와 소련을 거치며 중앙아시아 사람들의 성에 러시아식 어미가 얹힌 결과이다. 독립 이후 전통적인 표기로 되돌아갈 선택지가 제도적으로 열렸지만, 서류를 하나하나 고치는 일이 간단치 않아 실제로 바꾸는 사람이 그리 많지는 않다고 그 학생은 말했다.
뒤의 두 자 '울잔'은 카자흐어로 아들을 뜻하는 '울(ұл)'과 영혼을 뜻하는 '잔(жан)'을 합친 이름이다. 그 학생은 '울잔'이 딸에게 붙이면서 다음에는 아들이 태어나기를 바라는 마음을 담기도 하는 이름이라고 설명했다. 자신은 딸 넷 중 막내라고도 했다.
성 다섯 자에는 유목 부족의 기억과 제국의 흔적이 남았고, 이름 두 자에는 아들을 바라던 집안의 소망이 담겼다.

▲카자흐스탄 유학생의 이름나이마노바 울잔의 이름 풀이 ⓒ 오마이뉴스
'성 하나, 이름 하나'라는 전제
그날 나는 이름을 외우는 법만 배운 것이 아니었다. 한국의 출석부와 신청서가 전제하는 '성 하나, 이름 하나'의 질서 밖에 서 있는 이름들이 있다는 사실을 새로 알게 되었다.
행정안전부 예규 제303호 '외국인의 성명 표기에 관한 표준'이 2024년 11월 22일부터 시행되고 있다. 로마자 성명은 성-이름 순으로 대문자로 쓰고 성과 이름을 띄어 쓴다. 이름이 여러 단어인 경우에는 그 사이에도 띄어 쓸 수 있다. 한글 성명은 성-이름 순으로 쓰되 붙여 쓴다. 정부가 든 예시가 'SAWYER TOM(소여톰)'이다. 표기의 출처는 외국인등록증 등 출입국 관련 문서를 우선하고, 없으면 여권의 기계판독영역을 따른다. 기관마다 제각각이던 표기를 정리한 것은 분명 진전이다.
원칙도 예시도 출처도, 모두 이름을 성과 이름으로 나눌 수 있다는 전제 위에 서 있다. 로마자 이름 안의 여러 단어는 띄어 쓸 수 있어도, 한글로 옮겨지는 순간 그 경계는 다시 붙는다.
그 전제를 벗어나는 이름에는 세 가지 일이 벌어진다.
첫째, 잘못 나뉜다. 최근 미국의 소비자 문제 전문 매체 <엘리엇 리포트>가 지난 7월 전한 사례가 그렇다. 토론토에서 델리로 가려던 승객 사우라브 쿠마르의 여권에는 이름 칸에 'Saurabh Kumar'가 통째로 적혀 있고 성 칸은 비어 있었다. 예약 사이트가 성을 요구하자 그는 'Saurabh'를 이름으로, 'Kumar'를 성으로 나눠 적었다. 공항에서는 그 나눔이 여권과 다르다는 이유로 탑승을 거부했다. 그는 급히 다른 표를 사야 했고, 환급을 받고도 1000달러 넘게 물어냈다.
둘째, 경계가 지워진다. 성과 이름 두 칸만 두는 개별 서식에서는 가운데 토막을 따로 보이게 할 자리가 없다. 호바오투이린이 그런 서식에 이름을 적으면, 외할아버지의 함자인 '바오'는 이름 전체 안에 남더라도 원래의 자리를 잃는다. 가운데 토막을 성과 이름 어디 쪽에 붙일지는 담당자와 시스템이 정한다.
한글 표기도 마찬가지다. 로마자로는 HỒ BẢO THÙY LINH처럼 나뉘어 보이는 이름이 한글로는 호바오투이린이 된다. 성과 이름 사이뿐 아니라 이름 안에 있던 가족의 기억과 개인 이름의 자리도 모호해진다.
셋째, 바뀐다. 우리 표준이 근거로 삼는 여권 기계판독영역은 이름을 주식별자(primary identifier)와 부식별자(secondary identifier)로 나눈다. 흔히 앞이 성, 뒤가 이름이다. 그런데 국제 규격은 주식별자만 있는 이름도 허용한다. 성이 없는 사람의 이름은 통째로 주식별자 자리에 들어간다. 그 이름은 틀린 것이 아니다. 다만 '성=주식별자, 이름=부식별자'라고 단순화하는 서식에서 문제가 생긴다. 그 여권의 구분을 성과 이름의 구분으로 그대로 옮기는 시스템에서는, 셉티아나 하비바나 묘테인쪼도 성만 있고 이름이 없는 사람으로 표시될 수 있다.
이 연재의 1화에서 나는 귀화하는 동포가 성과 본을 새로 '창설'해야 하는 사정을 썼다. 수백 년 이어 온 경주 최씨가 대림동 최씨가 되는 일 말이다. 나누고 지우고 바꾸는 일은 국경 밖의 사정이 아니다.
띄어 쓰고 끊어 읽기
그날 강의실에는 아직 소개할 사람이 한 명 더 있었다. 유일한 한국인 학생 박다솜이다. '다솜'은 사랑이라는 뜻의 옛말이라고 했다. 익숙해서 뜻을 물어볼 생각조차 해 본 적 없는 종류의 이름이었다.
아홉 명의 소개가 끝나자 학생들이 내게 물었다. "교수님 이름도 소개해 주세요."
나의 이름은 어머니가 지었다. 은하, 은빛 노을이다. 학생들이 머리를 끄덕였다.
그날 이후로 학생들의 이름을 부르기가 수월해졌다. 어디까지가 성이고 어디부터가 이름인지, 이 사람은 이름의 어느 토막으로 불리기를 바라는지 알게 되었을 뿐이다. 레티탐은 '탐'으로, 호바오투이린은 '린'으로 불러 달라고 했다. 묘테인쪼는 넉 자를 다 불러 달라고 했다.
한글 맞춤법에도 길이 있다. 제48항은 성과 이름을 붙여 쓰라고 하면서 단서를 달아 두었다. "성과 이름을 분명히 구분할 필요가 있을 경우에는 띄어 쓸 수 있다." 남궁 억, 독고 준, 황보 지봉처럼 성과 이름의 경계가 혼동될 수 있는 경우를 위한 예외다. 두 음절짜리 성처럼 경계가 잘 보이지 않는 이름이 있다는 것을, 국어 규범은 이미 알고 있다는 뜻이다. 그러나 행안부 예규는 외국인의 한글 성명을 성과 이름 순으로 붙여 쓰도록 할 뿐, 그 경계를 드러내기 위한 띄어쓰기 가능성은 따로 두지 않았다.
그리고 그 예규가 적용되는 곳은 '민원 처리에 관한 법률'이 정한 행정기관이다. 대학의 출석부는 거기 들어가지 않는다. 규정을 바꾸지 않고도 가능한 일이라는 얘기이다.
공식 문서에는 여권에 적힌 이름 전체를 그대로 보존하되, 출석부에서는 그 이름의 짜임이 보이게 띄어 적으면 된다. 나이마노바 울잔, 호 바오 투이린처럼 말이다. 성이 없는 이름은 억지로 성과 이름으로 나누지 않고, 가운데 요소가 있는 이름은 어느 한쪽에 밀어 넣지 않는 방식이다.
이름을 정확히 적고 알맞게 띄어 쓰는 일은 서류를 깔끔하게 만드는 일이 아니다. 한 사람이 자기 이름의 문법을 잃지 않고 사회 안으로 들어오는 일이다.
다음 학기 출석부에도 처음 보는 유학생들의 이름이 적혀 있을 것이다. 이번에는 첫 주에 물어볼 생각이다. "이름이 어떤 뜻이에요? 어떻게 불러 드리면 될까요?"라고.

▲여권과 출석부에 적힌 같은 이름여권에는 성과 이름을 띄어 적지만, 행정문서와 출석부에는 붙여 적는다. 그 사이에서 이름의 경계가 사라진다. 이름은 가명이다. ⓒ 오마이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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