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 28일 아침, 프롤로그밖에 읽지 못한 <차별하지 않는다는 착각>을 가방에 넣고 집을 나섰다. 숙제를 다 끝내지 못한 채 교실 문을 들어서는 학생의 마음이 이럴까 싶어 씁쓸한 미소가 번졌다.
아이들을 가르치다 이제는 직업계고 교장실에 앉아 있는 사람이, 정작 이 책의 제목 앞에서는 자유롭지 못했다. 발 디딜 틈 없는 전철에서라도 몇 장 더 넘겨보려 애썼다. 문화다양성 콘서트가 열리는 서울시교육청 대강당으로 가는 길이었다.
노란불이라는 말

▲멈춰 서서 물어야 할 시간8월 28일 서울시교육청 문화다양성 콘서트에서 홍성수 숙명여대 법학부 교수가 사회자 베튤 준불씨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 오성훈
강연은 2010년 겨울 광화문에서 "다문화 정책 반대" 팻말을 든 사람들의 사진에서 시작했다. 홍성수 숙명여대 법학부 교수는 그들을 비웃지 않았다. 외국인 범죄가 10년 새 세 배 늘었다는 그들의 숫자는 사실이었다. 다만 같은 기간 국내 거주 외국인도 정확히 세 배 늘었다는 분모를 함께 보자고 했을 뿐이다. 인구 10만 명당으로 환산하면 오히려 내국인의 절반 수준이었다.
강연 후반, 그는 법이 보호하는 속성들을 화면에 띄웠다. 성별, 장애, 종교, 나이, 출신 지역, 출신 국가, 인종, 성적 지향. 국가인권위원회법에도, 서울시 학생인권조례에도, 외국의 차별금지 법제에도 거의 같은 목록이 들어 있다.
"제 책에는 이걸 노란불이라고 써놨습니다. 무조건 안 된다는 게 아니에요. 빨간불이 아닙니다. 일단 딱 멈춰서, 이거 어떻게 해야 되는지 한번 생각해 보고 그다음에 행동하는 거죠."
학생을 성별로 나눌 일이 아예 없지는 않다. 탈의실을 만들려면 인원을 알아야 한다. 문제는 굳이 나눌 필요가 없는 자리에서 "너는 여자니까"라고 말할 때다. 정당한 사유는 나누는 쪽이 제시해야 한다.
그가 든 예는 유학 시절 학생기록카드였다. 인종을 적으라는 칸 옆에 이렇게 쓰여 있었다. 네가 생각하는 너의 인종을 적어라, 적고 싶지 않으면 넘어가도 된다. 노란불 앞에서 누군가 실제로 멈춰 선 흔적이었다.
이 문서에는 저자가 둘이다
사흘 전인 8월 25일, 서울시의회는 서울학생인권조례 폐지조례안을 재석 118명 중 반대 117명, 기권 1명으로 부결시켰다. 교권 침해의 원인이라는 주장이 앞세워졌지만, 표적의 한복판에는 2012년 제정 때부터 조례에 적혀 있던 성적 지향과 성별 정체성이 있었다. 그리고 사흘 뒤, 내가 이 책을 가방에 넣고 집을 나선 바로 그날 아침, 같은 두 단어가 다른 문서에서 지워졌다는 기사가 나왔다.
원안을 쓴 곳은 서울시교육청이었다. 지난 6월 29일 청룡기 전국고교야구선수권대회 광주제일고전에서 배재고 야구부가 5·18을 조롱하는 구호를 외쳐 문제가 되기 훨씬 전부터, 서울시교육청은 교실에 번진 혐오 문화를 어떻게 다룰지 고민하며 '혐오·차별 표현 예방·대응 안내서'를 준비하고 있었다. 아직 배포되지 않은 그 초안에 두 단어가 분명히 적혀 있었다. 사건이 터진 뒤 교육부가 전국 학교에 돌릴 가칭 '혐오·차별 표현 대응 가이드북'을 만들면서 그 초안을 받아 갔다.
한겨레가 세어본 바로는, 초안에 스물아홉 번 나왔던 '성적 지향'은 부록에 남은 한 번을 빼고 모두 지워졌고, 열일곱 번 나왔던 '성별 정체성'은 한 번도 남지 않았다. 초안이 "성별, 장애, 인종·민족, 국적, 출신 지역, 종교, 성적 지향, 성별 정체성"이라고 적었던 자리에 교육부 자료는 이렇게 적었다. "성별, 장애, 출신 지역, 국적, 인종·민족, 종교, 가족 형태, 경제적 상황, 외모 등." 항목은 오히려 늘었다. 늘어난 목록에서 두 칸만 사라졌다.
사라진 것은 단어만이 아니었다. 초안에는 한 학생의 성적 지향에 관한 소문이 단체대화방과 익명 앱으로 번지고 동아리에서 배제된 사례, 그리고 학교가 무엇을 확인하고 어떻게 2차 아웃팅을 막아야 하는지가 적혀 있었다. 완성본에는 그 사례도, '커밍아웃'과 '아웃팅'이라는 말도 없다. 교사가 그 상황을 만났을 때 펼쳐 볼 페이지가 없어진 것이다.
2020년 인권위와 전국시도교육감협의회가 함께 만들어 전국 학교에 배포한 <우리 학교는 혐오 표현으로부터 안전한가요?>에는 '성적 지향'과 '성별 정체성'이 혐오 표현의 판단 기준으로 명시돼 있었다. 6년 전 학교에 배포된 그 두 단어가 올해 문서에서는 빠졌다.
교육부 관계자가 <한겨레>에 밝힌 이유는 단순했다. 성소수자 관련 내용이 들어가면 반대 민원이 몰려 시도교육청이 배포를 부담스러워한다는 것이다.
<오마이뉴스>에는 한 교육기관 관계자가 또 다른 설명을 내놨다. 개정 교육과정에도 없는 '성소수자'라는 말을 매뉴얼에 넣으면 교사들이 이를 가르치는 데 부담을 느낄 것으로 판단했다는 것이다. 같은 관계자는 "아직 매뉴얼이 완성되거나 확정된 것은 아니다"라고도 했다(관련 기사:
소수자 혐오 막겠다더니, 14개 교육청이 "'성소수자' 빼 달라" https://omn.kr/2jkwt).
감수에 참여한 전문가 일곱 명 중 여섯 명이 검토위원 명단에서 이름을 삭제했다. 그중 한 사람이 그날 강단에 서 있었다. 그는 <한겨레> 인터뷰에서 "성소수자를 언급조차 하지 않는 것은 의도적인 배제나 차별로 여겨질 수 있어 반드시 수정돼야 한다고 의견을 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았다"고 말했다. 노란불이 부담스럽다고 신호등을 뽑아버린 셈이다. 두 기관은 이 문서의 공동 저자가 됐다. 그런데 완성본에서 한쪽이 쓴 문장이 사라졌다.
차별의 얼굴은 친했다
이날 사회를 맡은 이는 배우이자 작가인 베튤 준불씨였다. 여섯 살에 튀르키예에서 건너와 한국어를 모국어로 쓰며 자랐다. 질의응답 말미에 그가 조심스럽게 자기 이야기를 꺼냈다.
2024년 국립극단 청년교육단원 모집 요강에는 국적 제한이 없었다. 그는 전화로 "제가 한국인이 아닌데 지원 가능할까요"라고 물어 확인까지 하고 지원했고, 합격해 활동을 마쳤다. 그런데 이후 같은 기관의 청년 배우 모집 공고에는 '대한민국 국적'이라는 조건이 붙었다. 어제까지 지원할 수 있었던 사람이 오늘은 지원할 수 없게 됐다.
"아, 이거 나 때문에 생긴 거구나 싶더라고요. 제가 세상을 바꿨어요. 방향이 좀 거꾸로지만."
웃음이 나왔지만 마냥 웃을 수 없는 웃음이었다.
"차별의 얼굴이 굉장히 친하더라고요."
그 방침을 만든 사람들은 몇 달을 함께 보낸 피디들이었다. 나중에 마주쳤을 때 "죄송해요"라는 말을 들었다. 미안해하는 마음은 분명히 전해졌다. 그런데 그 마음이 차별을 되돌리지는 못했다. 게다가 연극판은 좁다. 문제를 제기하면 앞으로 일이 끊길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고 했다.
홍 교수의 답은 다시 노란불이었다. 출신 국가는 인권위법에도 학생인권조례에도 적혀 있는 차별 금지 사유다. 게다가 예술은 다양성이 곧 창의성이 되는 영역이다. 중요한 것은 공연의 수준이지 무대에 선 사람의 국적이 아니다.
"아마 이 결정을 하신 분은 그렇게 신중하게 판단하지 않으셨을 거예요."
바로 그것이 무섭다. 악의는 없었다. 그냥 요강 한 줄을 정리하다가 노란불 앞에서 멈추지 않았을 뿐이다. 가이드북에서 두 단어가 빠진 과정도 아마 크게 다르지 않았을 것이다. 누구도 성소수자 학생을 미워해서 그러지는 않았을 것이다. 다만 민원이 두려웠고, 두려움 앞에서 따져보는 대신 지우는 쪽을 택했을 뿐이다. 악의가 없다는 것은 위로가 되지만, 면죄부가 되지는 않는다.
대구와 울산 사이
민원이 두려운 관리자에게 홍성수 교수가 내놓은 답은 사례 두 개였다. 대구에서 이슬람 사원 건립을 두고 갈등이 커졌을 때, 관리자들은 계속 항의하면 사원이 안 들어올 수도 있다는 뉘앙스를 흘렸다. 사람들은 거기에 희망을 걸었고, 반대는 아직도 이어지고 있다.
울산에서 아프간 특별기여자 자녀들을 학교에 받는 문제로 교육청이 뒤집혔을 때, 지금은 고인이 된 노옥희 교육감은 정반대로 했다. 아이들을 받지 않는 것은 옵션이 아니라는 점만 처음부터 못 박고, 나머지는 모두 열어놓았다. 담임의 관심이 쏠린다는 항의에는 한국어 적응 교육을 따로 편성하고 보조교사를 배치하겠다고 답했다. 민원은 교육감이 직접 받았다.
"안 되는 걸 될 것처럼 이야기하면 정말 꼬입니다. 양보할 수 없는 원칙에 대해서는 분명하게, 그 외에는 유연하게."
교육부가 이번에 한 일은 정확히 그 반대였다. 지워서는 안 되는 것을 지울 수 있는 것처럼 만들었다. 게다가 이것은 교육부 혼자 한 일도 아니다. <오마이뉴스> 보도에 따르면, '성소수자'라는 말을 넣을지 물었을 때 전국 열여섯 개 시도교육청 가운데 열네 곳이 빼자고 답했다. 넣자고 한 곳은 한 곳뿐이었고, 한 곳은 답하지 않았다.

▲교육부 건물. ⓒ 윤근혁
그 목록은 소수자 명단이 아니다
강연에서 홍성수 교수는 혐오표현과 차별을 규정하는 조문 어디에도 '소수자'라는 말이 등장하지 않는다는 점을 강조했다.
"무슬림에 대한 혐오표현이 혐오표현이다, 이렇게 규정하지 않습니다. 종교를 이유로 한, 이렇게 규정합니다."
150여 년 전만 해도 천주교는 신자라는 이유로 목숨을 잃던 종교였고, 개신교는 이 땅에 갓 들어온 낯선 소수 종교였다. 한 세대 뒤 내 종교가 어떤 처지에 놓일지는 아무도 모른다. 장애도 마찬가지다.
이 관점에서 보면 '성적 지향'을 지운 것이 무엇을 지운 것인지가 분명해진다. 특정 집단을 명단에서 뺀 게 아니다. 판단 기준에서 한 칸을 뺀 것이다. 성적 지향을 이유로 한 차별을 금지한다는 문장은 이성애자에게도 똑같이 적용된다. 우리가 잃은 것은 소수자 보호 조항 하나가 아니라, 멈춰 서서 물어야 할 지점 하나다.
강연 말미에 사회자가 물었다. 이 일을 하길 잘했다고 느낀 순간이 있었느냐고. 홍 교수는 "제가 받은 질문 중에 제일 따뜻한 질문"이라며 웃었다.
몇 년 전, 한 학생이 찾아와 교수님이 이 학교에 계신 것이 큰 힘이 된다고 말했다.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그 학생은 동성애자였다. 부모님에게도 말하지 못했고 친구들도 아무도 모르는데, 자신에게 처음 이야기하는 거라고 했다.
"조금이라도 버팀목이 될 수 있었다는 게, 그런 순간이 몇 번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 학생은 대학생이었다. 그전에는 초등학교 6년, 중고등학교 6년을 어딘가의 교실에서 보냈을 것이다. 그 12년 동안 자기를 설명할 말을 어디서도 듣지 못한 채로.
국가인권위원회가 지난 4월 결과를 내놓은 '성적 지향·성별 정체성에 따른 차별 실태조사'를 보면, 청소년 성소수자 455명 가운데 79.7%가 자신의 정체성을 절대 드러내고 싶지 않은 장소로 학교를 꼽았다. 차별을 경험했다고 응답한 청소년 99명 가운데 74.7%는 학교에서 차별을 경험했다고 답했다.
정민석 청소년 성소수자 지원센터 '띵동' 이사장은 이 수치를 두고 "대한민국 청소년 자퇴 비율이 2퍼센트인 것에 비해 청소년 성소수자의 탈학교 비율이 17.4퍼센트라는 점을 놓고 봤을 때, 이 정도면 청소년 성소수자에게 학교를 다니라고 하는 게 폭력"이라고 말했다.
이 조사의 책임연구원이 그날 강단에 선 홍 교수였다. 11년 만에 이뤄진 조사를 마치고 그는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그동안 많은 공론화가 있었는데 법적·제도적으로 발전이 없는 분야가 이 분야일 것이다." 그로부터 다섯 달이 채 되지 않아, 교육부 문서에서 두 단어가 빠졌다.
3초와 12년
강연에서 홍성수 교수는 온라인에서 혐오를 막는 일은 거의 불가능하다고 잘라 말했다.
"난민이 폭동을 일으켰다는 사진 석 장이면 3초예요. 그런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난민을 수용해야 하는 이유를 설명하려면 저는 15분이 걸립니다. 플랫폼 자체가 게임이 안 되는 거죠."
그래서 그는 이기려 하는 대신 다른 시간대를 쓰자고 했다. 성희롱 예방 교육을 맡을 때 그가 거는 조건은 오프라인 네 시간, 스무 명 이하다.
"스무 명이 모여서 네 시간 토론하면요, 안 좋은 결론이 나오기가 굉장히 힘들어요."
성인은 두 시간 모으기도 어렵다. 그런데 학교에는 12년이 있다. 인생을 통틀어 거의 유일한 기회라고 그는 말했다.
그 12년을 어떻게 쓸 것인가에 대한 답도 명확했다. 5·18 조롱이 문제가 되면 어른들은 진실을 제대로 가르쳐야 한다고 말한다. 물론 필요한 일이다. 그러나 사건 직후 선생님이 열과 성을 다해 설명하면, 학생들 중 일부는 이렇게 생각할 수도 있다. '아, 이거 확실히 긁을 수 있는 소재구나.'
정말 필요한 것은 타인의 고통에 공감하는 훈련이라고 그는 말했다. 훈련이 되어 있으면 "내 의도는 그게 아니었는데요"보다 먼저, 그 말을 들은 사람이 어떤 생각을 할지가 떠오른다.
그리고 그 훈련은 커리큘럼이 아니라 환경에서 나온다고 했다. 노원구의 한 초등학교에서 체류 자격 문제로 친구가 본국으로 돌아가게 되자 아이들이 대사관 앞에 몰려가 항의한 일을 그는 예로 들었다. 지식으로 배운 행동은 아니었을 것이다.
옆자리에 장애 학생이 있고, 이주 학생이 있고, 성소수자 학생이 있는 교실. 그 친구가 무엇을 어려워하는지를 12년 동안 곁에서 보는 시간. 그보다 좋은 교육은 없다고 그는 말했다.
그렇다면 이번에 지워진 두 단어는 커리큘럼의 문제가 아니다. 환경의 문제다. 그 두 단어가 문서에 없다는 것은, 그 아이가 교실에 없는 것으로 되어 있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아직 노란불이다
강연 내내 홍성수 교수는 시원한 답을 내놓지 않았다.
"대안이 있었다면 제가 장황하게 이 대안이 뭐다, 이렇게 하면 해결된다고 말씀드렸겠죠. 솔직히 대안이 마땅치 않기 때문에 제가 여기서 이 강의를 하고 있는 것일지도 모릅니다."
나중에 알았다. 내가 강당에서 노란불 이야기를 듣고 있던 그 시간에, 서울시교육청은 교육부에 자기가 쓴 문장을 되살려 달라고 요구하고 있었다. 교육부는 다음 주로 잡아둔 발표를 보류했다. 오는 31일에는 이름을 뺀 그 전문가들, 그리고 차별금지법제정연대와 마주 앉기로 했다.
학생인권조례도 아직 끝난 게 아니다. 2024년 시의회가 따로 의결했던 폐지조례는 대법원 결정으로 효력이 정지된 채 소송 결과를 기다리고 있다.
조례는 남았고 단어는 지워졌지만, 어느 쪽도 확정되지 않았다. 신호는 빨간불도 초록불도 아니다.
기술을 가르쳐 사회로 내보내는 학교에서 일하는 사람으로 자문해 본다. 우리 졸업생들이 처음 들어설 작업장과 사무실에서 누군가의 이름 대신 출신 지역이나 성별이 먼저 불릴 때, 그들은 멈춰 설 수 있을까.
멈춰 설 줄 아는 사람으로 길러 내보내는 것이 학교의 일이라면, 홍 교수가 말한 그 12년의 마지막 3년이 내 앞에 있다. 아직 노란불이다. 아직은 멈춰 설 수 있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기사 채택 후 개인블로그에도 실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