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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울북부지방법원 입구
▲서울북부지방법원 입구 ⓒ 연합뉴스

지난 9월 1일, 서울 북부지방법원 제13형사부(재판장 나상훈) 심리로 이른바 'TV조선 재승인 심사 점수 조작 사건'의 결심 공판이 열렸다. 윤석열 정부 출범 직후 감사원이 전격 감사에 착수한 지 4년 3개월 만이자, 검찰이 한상혁 전 방송통신위원장 등 관련 피고인 6명을 기소해 첫 재판을 시작한 지 3년 3개월 만이다. 재승인 심사가 이뤄진 2020년 3월을 기준으로 하면 무려 6년 6개월이라는 기나긴 시간이 흘렀다.

2023년 6월 첫 공판을 시작으로 이번 결심에 이르기까지 모두 31차례의 지리한 법정 공방이 이어졌고, 40여 명에 달하는 관계자들이 증인석에 섰다. 수십 차례 진행된 증인신문과 서증 조사 과정에서 검찰은 'TV조선 재승인 심사 평가 점수 조작'이라는 공소사실을 입증하겠다며 여러 증거를 내놨지만, 결정적인 증거는 찾아보기 어려웠다.

오히려 방통위 실무자들, 동료 심사위원, 그리고 방통위 상임위원 등의 법정 증언을 통해 밝혀진 것은 정권 교체기 방통위를 겨냥한 검찰의 무리한 기획 수사 정황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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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도 검찰은 이날 결심공판에서 그동안 법정에서 있었던 증언들을 무시하고 아무 일이 없었다는 듯 "검찰의 공소 사실이 입증됐다"며 한상혁 당시 방통위원장에게 징역 3년을 구형하는 등 6명의 모든 피고인에게 징역 3년에서 1년 6개월의 실형을 구형했다.

"피고인들이 공모하여 언론 자유와 독립성 보호를 위해 도입된 공정한 재승인 심사과정의 근간을 뿌리째 흔들고, 언론의 자유라는 기본권과 심사의 공정성을 훼손한 매우 중대한 범죄를 저질렀다"는 게 검찰의 구형이유다.

이제 이 사건은 오는 11월 12일 1심 선고만을 남겨두고 있다. 필자는 그동안 법정 증언을 중심으로 이 사건의 진실의 추적해왔다. 이제 변론이 종결됨에 따라 변호인들의 최후 변론과 피고인들의 최후 진술을 토대로 사건의 실체를 연속 재조명한다. 그 첫 번째 순서로, 당시 심사 위원으로 참여했다가 1년 6개월을 구형 받은 정아무개 당시 시청자 미디어재단 이사의 이야기를 전한다.

양평 코바코 연수원에서의 5일... 학자의 소신과 밤샘 고민

 한상혁 방송통신위원장이 'TV조선 재승인 의혹' 관련 피의자 신분으로 조사받기 위해 2023년 3월 22일 오전 서울 도봉구 북부지검에 출석하고 있다.
▲한상혁 방송통신위원장이 'TV조선 재승인 의혹' 관련 피의자 신분으로 조사받기 위해 2023년 3월 22일 오전 서울 도봉구 북부지검에 출석하고 있다. ⓒ 권우성

2020년 3월 16일부터 20일까지 5일간, 경기도 양평 한국방송광고진흥공사(코바코) 연수원에서는 미디어·법률·경제·시청자 권익 등 각 분야 전문가 13명으로 구성된 방통위 재승인 심사가 진행됐다. 학회 추천을 받아 심사위원으로 참여한 정아무개 당시 시청자미디어재단 이사 역시 십수 년간 미디어 정책을 연구해 온 전문가로서의 소임을 다하기 위해 심사장에 들어섰다.

당시 방통위에 접수된 시청자 의견서에는 TV조선의 오보, 막말, 편파 보도에 대한 시청자들의 직설적인 불만과 비판이 가득했다. 정 심사위원은 제출된 서류와 실적 자료를 바탕으로 객관적인 채점을 진행하려 애썼으나, 심사 4일차 저녁 평가표를 제출한 뒤에도 마음 한구석의 중압감을 털어내지 못했다. 시청자들이 체감하는 피해와 불만에 비해 자신이 '시청자 권익보호 실적 및 계획의 적정성' 항목에 부여한 점수가 지나치게 후했던 것은 아닌지 밤새 고민이 이어졌다.

심사 마지막 날인 5일차 오전(9:00~10:00) '평가표 집계 및 종합 심사의견서 작성' 시간에 한 심사위원이 윤아무개 심사위원장에게 "지금 평가 점수 수정 가능하느냐"고 물었고 심사위원장은 당시 회의장에 있었던 방송통신위원회 심사지원반의 의견을 받아 "최종 의결 전이므로 수정이 가능하다"고 고지했다. 정 심사위원은 자신이 매긴 점수를 시청자 평가 기준에 맞춰 바로잡을 수 있는 정당한 절차적 기회라고 생각했다.

정 심사위원은 검찰의 공소장에 적시된 것처럼 밀실에서 음모를 꾸민 것이 아니었다. 다른 심사위원들과 방통위 담당 공무원들이 한데 모인 공개된 회의장에서, 심사지원반의 양해 아래 시청자 권익보호 항목 점수를 소신 있게 조정했다. 그것이 학자로서, 심사위원으로서 맡은 바 책무를 다하는 길이라 믿었다.

법정에서 흔들린 검찰 공소사실

검찰은 정 심사위원이 한상혁 방통위원장 등 방통위 관계자들 , 그리고 다른 심사위원들과 공모하여 TV조선에 대해 조건 없는 재승인을 막기 위해 의도적으로 점수를 깎았다고 규정했다. 하지만 31차례에 걸친 재판 과정에서 검찰의 프레임은 깨졌다.

먼저 절차적 정당성이다. 검찰의 공소장 내용은 이미 4일차에 평가가 끝났는데도 TV 조선에 대해 중점심사 항목에서 과락을 주기 위해 나중에 점수를 조작했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방통위의 기존 운영계획상으로도 5일차 오전에 평가표 집계와 종합 심사의견서를 작성하고 제5차 회의에서 최종 의결을 거치도록 되어 있었다. 최종 의결 전 점수 수정이 불가능하다는 지침이나 규정은 존재하지 않았으며, 현장 심사지원반 역시 "의결 전이니 고치는 것이 가능하다"고 명확히 확인했다.

검찰은 또 윤아무개 심사위원장이 TV조선의 총점 집계 결과를 정 심사위원에게 알려주어 점수를 감점하게 했다고 공소장에 적시했다. 그러나 윤 심사위원장은 법정에서 정 심사위원에게 점수를 가르쳐 줬다는 의혹을 부인했고, 정 심사위원이 집계 결과를 전해 들었다는 목격자나 물증은 단 하나도 제출되지 않았다. 방통위 직원들조차 심사위원들에게 집계 결과를 사전에 공개한 적이 없다고 일관되게 증언했다.

검찰은 한상혁 전 위원장부터 담당 국·과장, 심사위원장으로 이어지는 '조직적 공모'를 주장했으나, 사건 당일 오전 9시 25분경의 객관적 물증은 정반대의 사실을 가리키고 있었다. 양아무개 담당 국장은 차아무개 과장으로부터 "세 분이 점수를 수정하고 계십니다"라는 보고를 받자 "안 된다고 해"라며 당황해하는 답신을 보냈고, "심사위원회가 허용했다"는 보고에 "헉"이라는 반응을 보였다. 방통위 국·과장이 점수를 깎으라고 공모한 이후 이를 심사위원장을 통해 심사위원에게 전달됐다면 나올 수 없는 반응이었다. 검찰이 공무상 비밀누설 혐의로 기소한 차아무개 과장의 휴대전화 포렌식에서 나온 내용이 오히려 검찰에 부메랑이 돼 되돌아온 셈이다.

검찰이 유죄 증거로 제출한 동료 심사위원들의 감사원 확인서 역시 신빙성을 의심받게 됐다. 점수를 고치지 않은 다른 심사위원들은 증인으로 출석해 "감사원 감사관들이 답변 내용을 미리 타이핑해 가지고 와서 서명을 요구했다", "답을 정해놓고 강압적으로 의견을 강요했다"고 폭로했다.

3년여만에 드러난 검찰의 강압수사 정황

 서울 도봉구 도봉동 서울북부지검 모습
▲서울 도봉구 도봉동 서울북부지검 모습 ⓒ 연합뉴스

결심 공판 직후 필자와 만난 정 심사위원은 수사 과정에서 검찰로부터 당했던 심리적 압박과 공포의 순간을 비로소 털어놓았다.

그는 4년 전인 지난 2022년 9월 검찰로부터 주거지와 휴대전화와 차량, 그리고 자신의 책상조차 없는 근무지에 대한 압수수색을 당한 이후 2023년 1월부터 3월까지 모두 네 차례의 검찰 조사를 받았다.

정 심사위원은 첫 번째 조사에서 "3년 전에 있었던 심사 과정의 세부적인 상황이 잘 기억나지 않고 자신은 소신에 따라 점수를 수정했다"고 일관되게 진술하자 두 번째 조사부터는 담당 검사가 아닌 간부로 보이는 검사로부터 협박성 발언을 들었다고 밝혔다.

'다른 사람들이 다 얘기했는데, 당신만 계속 우기면 혼자 독박을 쓴다.'
'나중에 기억나는 것은 의미가 없다. 기억에는 골든타임이라는 게 있다. 다음날 새벽까지가 골든타임이다. 그때가 지난 뒤에 기억이 나면 아무런 의미가 없다.'
'기억이 떠오르면 새벽이든 언제든 상관없으니 연락해라.'
'모두 당신 생각해서 하는 얘기이다.'

담당 검사는 정 심사위원에게 자신의 개인 명함을 건네기까지 했다고 한다. 정 심사위원은 그럴 때마다 "조서를 안 꾸미고 이렇게 얘기하는 것이 불법 수사 아니냐?"라고 강력히 항의하고 나서야 다시 조사실로 돌아올 수 있었다고 주장했다. 정 심사위원은 또 "(내가) 조사를 받고 나오면 기자들 사이에서 검찰이 구속영장을 청구한다는 소문이 돌았다"고 덧붙였다.

당시 검찰은 정 심사위원의 변호인에게도 '어떻게 하는 게 의뢰인에 도움이 되는 건지 잘 생각해보라'고 말했다고 한다. 법적 절차와 피의자의 방어권이 있는데도, 구속과 기소라는 권력을 무기로 심리적 굴복을 강요한 강압 수사 정황이다. 정 심사위원은 당시 느꼈던 극심한 공포와 무력감이 지금도 생생하다고 증언했다.

4년간 빼앗긴 일상... "학자의 양심이 죄가 될 수 없다"

정권 교체기 '공영방송장악을 위한 방통위원장 축출'이라는 정치적 목적을 위해 시작된 표적 수사의 여파는 참혹했다. 정 심사위원에게 지난 4년은 '일상의 완벽한 궤멸'이었다. 전문가로서의 정당한 정성평가는 하루 아침에 '범죄'로 낙인찍혔고, 기소되었다는 이유만으로 임기 1년을 남긴 공영방송 EBS 이사직에서 강제 해임됐다. 십수 년간 쌓아 올린 미디어 학자로서의 명예는 실추되었고 모든 연구 활동과 사회적 참여 기회조차 박탈당했다. 가장 힘들었던 것은 "혹시 정말 무슨 일이 있었던 것 아니냐?"라는 동료 학자들의 따가운 시선이었다.

정 심사위원은 당시 함께 심사위원회 참석해 점수를 수정했는데도 기소되지 않은 다른 심사위원의 사례가 '점수 수정의 절차적 정당성'과 자신의 무죄를 반증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그 심사위원은 이번 사건 재판에 증인으로 채택됐지만 출석하지 않았다.

정 심사위원은 결심 공판 최후진술에서 재판부를 향해 진심 어린 호소를 남겼다.

"밖에서 재승인 심사만을 놓고 본다면 그 일이 너무나 대단하여 제가 당시 심사에 매몰되어 있었을 것이라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저에게는 수많은 전문가로서 수행했던 일들 중 하나일 뿐이었습니다. 굳이 점수를 수정했던 것은 시청자들의 평가를 충분히 반영해야 한다는 생각에서였고, 그로 말미암아 방송 내용이 조금이라도 개선되길 바라는 마음뿐이었습니다.

심사에 참여했다는 사실조차 잊혀질 무렵 대통령이 바뀌었습니다. 당시 정권은 곧바로 한상혁 방송통신위원장을 교체하기 위해 사건을 기획하고 수사·기소했다고 생각합니다. 긴 시간 동안 일상을 빼앗기고 모든 학술·사회적 일에서 배제되었습니다. 모쪼록 현명히 판단하시어 이 길고 고통스러운 시간을 끝내고 다시 일상으로 돌아갈 수 있도록 해주십시오."

검찰이 제대로 입증하지 못한 '점수 조작'이라는 굴레 속에서 한 미디어 학자의 삶은 심각하게 짓밟혔다. 31차례의 재판을 통해 드러난 진실은, 정 심사위원의 전문가로서의 소신과 양심이 정치적 파도 속에서 검찰 수사권 남용의 희생양이 되었다는 점이다.

그래서 정 심사위원은 11월 12일이 매우 기다려진다고 했다. 법원이 검찰의 무리한 수사에 경종을 울리고 자신에게 빼앗긴 일상을 되돌려 주길 기대하면서.

(계속)

#TV조선#재승인#재판방청기#한상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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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V조선 재승인 심사 점수 조작 사건 재판 방청기

1990년 KBS 기자로 입사해 탐사보도팀장,사회팀장, 보도본부장,KBS 비즈니스 대표이사를 거쳐 2023년 9월까지 KBS 사장을 지냈다.지금은 저널리즘 비평, 커뮤니케이션, 소통과 관련된 글쓰기등 다양한 활동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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