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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단에 선 첫해였다. 교직원공제회의 보험 안내문을 넘기다가 성대와 관련된 특약 항목에서 피식 웃었던 기억이 난다. 암 특약, 골절 특약 사이에 성대와 관련된 문제도 보장 대상에 들어 있었다. 목이 쉬는 것도 보험을 들 일인가 싶었었다.

십수 년이 지난 지금, 나는 그 특약을 보면서 피식했던 나 자신을 깊이 반성한다. 개학한 지 사흘째다. 목소리는 이미 맛이 가서 조금만 소리를 높여도 바람 새는 소리가 들리고, 물을 아무리 마셔도 목 안쪽이 뻑뻑하다. 학기 초마다 반복되는 일인데 해마다 조금씩 빨리 온다. 예전에는 개학 3, 4주차 무렵에 오던 것이 이번 학기에는 첫 주 세 시간을 연속 강의한 뒤 찾아왔다.

 AI 생성 이미지로, 강의 중 목의 통증과 피로감을 느끼는 교원의 모습을 재현했다.
▲AI 생성 이미지로, 강의 중 목의 통증과 피로감을 느끼는 교원의 모습을 재현했다. ⓒ 황은하

목으로 쓰는 원고지 이백 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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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업이 직업인지라, 앓는 소리만 하고 있을 수는 없어서 계산을 해 보았다.

사람이 말소리를 내는 원리는 단순하다. 폐에서 올라온 공기가 목 안의 두 성대 사이를 지나가면, 얇고 부드러운 점막으로 덮인 성대가 진동한다. 우리가 말을 한다는 것은 손톱만 한 두 장의 살을 초당 수백 번 맞부딪히게 하는 일이다. 성대는 대체로 여성의 일상 발화에서 초당 200회 안팎, 남성의 일상 발화에서 120회 안팎으로 진동한다.

이제 발화량을 세어 보자. 녹화 강의를 위해 가끔 강의 노트를 작성하는데, 38분 분량을 공백 포함 7500자 안팎으로 잡는다. 쉼까지 포함해 분당 약 150~160음절, 꽤 느긋한 속도다. 이 속도로만 계산해도 하루 세 시간 수업이면 2만 7천 음절이다. 그런데 교실에서 하는 강의는 원고 낭독보다 빠르고, 나는 원래 말이 빠른 편이다. 그러면 하루에 강의를 세 시간만 해도 4만 음절까지 간다.

공백을 포함한 글자 수로 환산하면 4만~5만 자. 대학 강단에 서는 교원은 매일 A4 스무 장, 원고지 이백 장 가까운 분량을 펜이 아니라 목으로 쓰는 셈이다. 하루 강의가 세 시간을 넘으면 그보다 더 많아진다.

성대 입장에서 세면 더 아득하다. 성대의 부담은 음절 수가 아니라 진동 횟수로 잰다. 수업 세 시간 가운데 실제로 소리를 내는 시간이 한 시간 반만 되어도, 초당 200회 진동하는 성대는 하루 백만 번 넘게 맞부딪힌다. 백만 번. 손뼉을 백만 번 치면 손바닥이 어떻게 되는지 생각해 보면, 성대 관련 특약이 왜 있는지 알 수 있다.

실제로 미국의 한 조사에서 현재 음성 문제가 있다고 답한 교사는 11.0%로 비교집단의 6.2%보다 높았다. 평생 한 번 이상 음성 문제를 겪었다는 비율도 교사는 57.7%로 절반을 넘었다. 만성적인 음성 문제는 교사, 가수, 상담원처럼 목소리를 주된 노동 도구로 쓰는 사람들에게 흔한 직업성 위험이다.

목소리도 학기 초에는 적응한다

이상하게도 목소리는 학기 초에 가장 쉽게 무너진다. 그리고 그 무너지는 시점은 해가 갈수록 앞당겨졌지만, 한 번 푹 쉬고 나면 그 뒤 열 주 남짓의 강의를 같은 강도로 이어 가도 목이 잠깐 잠길 뿐 아예 가 버리는 일은 드물다. 방학 뒤 갑자기 늘어난 발성량에 성대와 몸이 다시 적응하는 시간이 필요한 모양이다. 처음에는 목으로 힘을 주어 밀어붙이던 말도, 며칠이 지나면 호흡과 공명, 쉼의 리듬을 몸이 다시 찾아간다.

이것을 성대가 '단련됐다'고 부르기는 조심스럽다. 성대는 근육이지만 동시에 얇은 점막으로 덮인 진동 조직이기 때문이다. 다만 반복된 발성 요구에 몸이 반응하고, 휴식 뒤에 회복하면서 같은 수업량을 조금 더 효율적으로 감당하는 법을 찾아가는 듯하다. 그렇다고 적응이 마모를 없애 주는 것은 아니다. 목이 쉬는 일이 잦아지고 오래 이어진다면, 그 역시 몸이 보내는 신호일 것이다.

목소리도 학기 초에는 새 시간표에 적응하는 시간이 필요한 것이다.

목소리도 나이를 먹는다

그런데 내 목소리가 해마다 조금씩 빨리 잠기는 데에는 다른 사정이 하나 더 있다. 성대도 나이를 먹는다.

성대는 근육과 점막으로 되어 있다. 나이가 들면 몸의 다른 근육처럼 성대 근육도 조금씩 야위고, 점막은 탄력을 잃는다. 성대 근육과 점막의 탄성이 달라지면 목소리는 예전보다 거칠어지고, 오래 말할수록 쉽게 지칠 수 있다.

흥미로운 것은 방향이다. 여러 음성학 연구는 여성의 평균 음높이가 중년 이후 낮아지고, 남성의 평균 음높이는 노년기에 다시 높아지는 경향을 보고한다. 다만 이는 평균적 패턴일 뿐, 개인차는 크다. 젊을 때 그렇게 다르던 남녀의 목소리가 노년에는 서로를 향해 가까워지는 것이다.

말의 속도도 함께 변한다. 국내 음성학 연구에서도 60~70대 화자의 자유 발화는 초당 4음절에 못 미쳤다. 40~50대 화자의 5음절 안팎보다 느린 속도다. 다만 연령에 따른 속도 차이는 자유 발화보다 낭독에서 더 선명하게 드러났다. 흔히 이것을 "기력이 떨어져서"라고 하지만, 다르게 읽을 수도 있다. 느려진 말은 그만큼의 세월을 통과한 발성 기관이 찾아낸 자기만의 속도이기도 하다.

목소리를 아끼는 법

그래서 요즘 나는 두 가지를 지키려 한다. 하나는 물이다. 목이 건조하면 성대도 쉽게 지친다. 커피는 커피대로 마시되, 물은 물대로 챙긴다.

다른 하나는 침묵의 시간이다. 수업과 수업 사이, 목에게도 쉬는 시간을 주는 것. 백만 번 부딪힌 살에게 필요한 것은 사탕이 아니라 휴식이다.

어제 찾은 내과에서 의사 선생님은 단호하게 말씀하셨다.

"본인이 관리를 잘못한 거예요. 말하지 마세요. 작은 소리로도 말하지 마세요. 쉬세요."

백 번 옳은 말씀이신 것을 나도 안다. 그러나 현실은 어제도 오후 75분씩 강의 두 개를 해야 했다. 그리고 저녁부터는 목소리가 거의 나오지 않는다. 목소리가 잠겼다고 학기 초부터 휴강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이것을 개인의 체력이나 관리 실패만으로 볼 일은 아니다. 큰 교실, 긴 연강, 소음, 간혹 마이크 없는 강의실은 모두 목소리로 일하는 사람의 노동조건이다. 교육자의 목소리는 단지 개인의 것이 아니라, 학생에게 지식을 전달하고 관계를 만드는 도구이기도 하다. 그러니 그 목소리가 쉽게 상하는 환경은 교육의 환경이기도 하다.

그리고 한 가지 더. 학기 초의 잠긴 목소리를 예전만큼 부끄러워하지 않기로 했다. 잠긴 목소리는 내가 그만큼 말했다는 증거다. 다만 그 증거가 훈장이 되지는 않게 해야 한다.

보험 서류는 다시 찾아서 볼 생각이다. 이번에는 진지한 태도로 말이다.

[참고한 자료]
Roy, N., Merrill, R. M., Thibeault, S., Parsa, R. A., Gray, S. D., & Smith, E. M. (2004), "Prevalence of Voice Disorders in Teachers and the General Population," Journal of Speech, Language, and Hearing Research, 47(2), 281-293.

서윤정·신지영(2019), 「화자 연령 지각과 음성적 특성: 음높이와 발화 속도를 중심으로」, 『말소리와 음성과학』 11권 4호, 9-18쪽.

Baken, R. J. (2005), "The Aged Voice: A New Hypothesis," Journal of Voice, 19(3), 317-325.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기자 본인의 블로그나 위챗 공중호 등에 실릴 수 있습니다.


#교원#목소리#언어학#노동#성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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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어학을 공부하고 가르치며, 사회와 일상에서 오가는 말들이 어떤 의미를 만들고 어떤 힘을 가지는지 늘 궁금한 사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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