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0월항쟁 80주년·한국전쟁 민간인 희생자 76주기 추념식’이 10월 1일, 가창골에서 거행되었다. ⓒ 임재근

▲‘10월항쟁 80주년·한국전쟁 민간인 희생자 76주기 추념식’에서 국회의원 및 정당 대표들이 헌화를 하고 있다. ⓒ 임재근
10월항쟁 80주년을 맞은 1일, 대구에서 한국전쟁전 후 민간인희생자 추념식이 개최됐다. 그간 '합동위령제'라는 이름으로 진행해오다 10월항쟁 80주년을 맞아 '추념식'으로 명명하며 희생된 영혼을 위로하는 의례에서 역사를 되새기는 공식 기념식으로 의미를 부여했다.
이날 대구 달성군 가창골 '10월항쟁 한국전쟁 전후 민간인 희생자 위령탑'에서 진행된 '10월항쟁 80주년·한국전쟁 민간인 희생자 76주기 추념식'에는 특히 대통령의 추모 메시지가 처음으로 전달되면서 그 의미를 더했다.
이 대통령 "희생자 명예 회복과 유가족 상처 치유 위한 노력 멈추지 않겠다"
이재명 대통령은 김민재 행정안전부 차관이 대독한 추도사를 통해 "공권력이라는 이름으로 돌이킬 수 없는 비극을 낳은 어두운 역사를 우리는 결코 잊지 말아야 한다"며 "더욱 비통한 것은 사랑하는 가족을 잃은 슬픔 속에서도 마음 놓고 소리 내어 울지 못했던 유가족의 지난 세월"이라고 전했다.
이어 "정부는 지난날의 아픔을 마주하며 희생자의 명예 회복과 유가족의 상처 치유를 위한 노력을 멈추지 않겠다"며 "그것이 국가와 공동체가 희생자를 위로하고 유가족의 아픔에 진정으로 공감하는 길"이라고 밝혔다. 아울러 "미래 세대가 이 역사를 편견과 증오의 언어가 아닌 민주주의와 인권, 평화의 언어로 기억할 수 있도록 더욱 노력하겠다"고 덧붙였다. 조정식 국회의장도 추념식에 참석하지는 못했지만, 국회의장으로서 처음으로 추도사를 보내왔다.

▲김민재 행정안전부 차관이 이재명 대통령의 추도사를 대독하고 있다. ⓒ 임재근

▲10월항쟁 유족회 초대회장이자, 10월항쟁 80주년 행사위원회 공동대표를 맡은 채영희 대표가 인사말을 하고 있다. ⓒ 임재근
10월항쟁 유족회 초대회장이자, 10월항쟁 80주년 행사위원회 공동대표를 맡은 채영희 대표는 인사말에 나서 "1946년 10월 1일 일어난 첫 민중항쟁으로서 그날을 기리기 위하여 우리 모두 이 자리에 모였다"며 "이제 80주년 추념식을 시작으로 묻혀 있던 10월항쟁의 고귀한 정신을 고취시키고 새롭게 계승 발전시키고자 한다"고 밝혔다. 이어 "여기 잊히지 않고 10월항쟁의 정신을 이야기해 주신 모든 문학인들, 예술인들, 시민운동가분들에게 모든 공을 돌리고자 한다. 그리고 2016년 '10월항쟁'으로 조례안을 통과시키고 위령탑을 세워주신 대구광역시 시청관계자들께도 감사드린다"며 감사의 마음을 전했다.
이날 추념식에는 송상교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 위원장(김귀옥 상임위원 대독)과 추경호 대구시장(김동우 행정국장 대독)도 추도사를 보내왔다. 추념식에서는 10월항쟁 80주년 미니다큐 <1946 항쟁의 꿈, 2026 다시 묻다>가 상영되었고, (사)한국민족예술단체총연합 대구지회의 추모공연이 있었다. 10월문학회 회원 이정연 시인의 '새 나라 희망가'를 이수진 시인이 낭독하기도 했다.

▲10월문학회 회원 이정연 시인의 ‘새 나라 희망가’를 이수진 시인이 낭독하고 있다. ⓒ 임재근

▲(사)한국민족예술단체총연합 대구지회의 추모공연이 진행되고 있다. ⓒ 임재근
추념식에 앞서 10시부터는 '참된 평화를 향한 기억, 되새김과 해원'이란 이름으로 종교 위령제가 진행되었다. 종교 위령제는 불교, 유교, 원불교, 천주교, 개신교 순으로 진행됐다.
한편 '10월항쟁 80주년 행사위원회'는 10월항쟁 80주년을 맞아 추념식 외에도 다양한 기념행사를 준비했다. 10월 1일과 2일 양일간 민주연구단체협의회 공동학술대회가 진행된다. 10월 3일에는 공평네거리 일대에서 10월항쟁 민예총의 집체극과 '제80주년 9월총파업-10월항쟁 전국노동자·민중대회'가 예정되어 있다. 같은 날 저녁 7시에는 대구엑스코에서 10월항쟁 80주년 기념 콘서트가 있다. 10월6일에는 '10월 항쟁 80주년의 의미와 과제'라는 주제로 국회토론회가 있고, 10월 10일에는 거리예술제와 10월문학제가 진행된다.
10월항쟁은 해방 이듬해인 1946년 10월 1일 대구에서 촉발된 해방 공간 최초의 대규모 민중항쟁이다. 극심한 식량난과 생존 위기 속에서 자주독립국가 건설을 요구하며 일어났으나, 미군정과 이승만 정권의 국가폭력 및 한국전쟁 전후 학살로 이어지며 수많은 민간인이 적법 절차 없이 희생됐다. 오랜 세월 '폭동'이나 '소요'로 왜곡되어 희생자와 유족들은 '빨갱이'라는 사회적 낙인과 고통을 겪어야 했다. 1기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의 조사를 통해 국가폭력에 의한 억울한 희생이었음이 밝혀졌으며, 현재는 국가 차원의 공식 배·보상을 위한 특별법 제정이 주요 과제로 남아 있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통일뉴스에도 실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