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미제라블> 스틸.

<레미제라블> 스틸. ⓒ Working Title Films


이런 영화를 또 볼 수 있을까. <레미제라블>이 마음에 안 드는 이들에게는 그저 '뮤지컬도 아닌 것이 영화도 아니'라고 치부해버릴 수 있지만 분명 <레미제라블>은 또 하나의 '뮤지컬 영화'다. 또한 21세기에 어울리는 '예술 블록버스터'랄까. 

<레미제라블>은 많은 볼거리를 제공하지는 않는다. 시민군의 혁명이나 몇몇 인물들이 죽음을 맞는 장면이 있지만, 화려한 액션이나 새로운 그래픽 기술의 재미가 있는 류의 영화는 아니다.

대신 '사람'을 다룬다. 사람의 여러 기질들에 대해 이야기하는 영화다. 원작 소설의 영향을 받은 것이다. 주인공 장발장(휴 잭맨 분)을 통해 정의란 무엇이고, 용서란 무엇이며, 사랑이란 무엇인지 <레미제라블>은 계속해서 관객들에게 물어본다.

영화의 첫 장면부터 관객들은 깊은 슬픔을 느낄 수 있다. 죄를 지어 노예로 사는 이들이 노역을 하는데, 장발장도 그 노예들 중 하나다. 그들이 부르는 노래의 가사는 때 묻은 얼굴 표정과 함께 관객들을 아프게 한다. 가장 밑바닥의 사람들을 클로즈업해 보여주는 데에서 출발한 이 영화는 끝까지 사람들의 이야기를 깊이 있게 다루려 노력한다.

 <레미제라블> 스틸.

<레미제라블> 스틸. ⓒ Working Title Films


뮤지컬과 원작소설을 몰라도 즐길 수 있다

장발장은 억울한 죄수다. 어린아이를 굶기지 않으려 빵을 훔친 죄로 20여 년 징역을 살게 되었기 때문이다. 이후 가석방 될 때까지 그가 억울함으로 인해 품은 세상에 대한 분노가 커다란 증오감으로 그에게 자리했다. 자신이 지은 죄에 비해 너무 가혹한 형벌을 내리고, 자신의 선행에 대해서는 무시하는 사회가 너무 싫었던 것이다.

그런 증오감은 장발장의 영혼마저 잠식했다. 가석방 뒤 자신을 끊임없이 감시하는 자베르(러셀 크로우 분)를 피해 성당에 몸을 숨겼던 그는 살아갈 걱정에 성당의 은식기들을 훔쳤다가 잡힌다. 성당 신부는 장발장에게 처음으로 사랑을 가르쳐준다. 은식기 뿐 아니라 은촛대까지 장발장에게 다 주는 것. 장발장은 그런 사랑의 힘으로 성공해 시장이라는 고위 공무원의 자리에 오른다.

한편 판틴(앤 해서웨이 분)은 장발장 못지않게 억울한 사람이다. 그녀는 그저 자신의 딸 코제트(어린 코제트: 이자벨 알렌 분)를 잘 키우려 한 죄밖에 없다. 그런데도 그녀의 직장 상사는 그녀를 성추행하고, 같은 여자인 직장 동료들은 그녀를 창녀라고 모함한다. 결국 직장에서 쫓겨난 판틴은 매음굴에서 남자들에게 갖은 수모를 당할 수밖에 없다. 어린 딸을 먹여 살릴 돈을 벌어야 하기 때문이다.

뮤지컬 <레미제라블>을 잘 모르는 관객도 판틴이 홀로 괴로움을 토로하는 노래 'I Dreamed A Dream'(아이 드림드 어 드림)의 멜로디를 듣다보면 '아 이 노래!' 할 수 있을 것이다. 순식간에 지옥에 떨어진 것 같은 앤 해서웨이의 표정연기와 아름다운 곡조에 슬픈 가사의 이 노래가 더해져 영화에서 처음으로 관객의 눈물샘을 건드린 부분이 되어준다.

<레미제라블>은 원작 소설이나 뮤지컬을 잘 몰라도 감동적으로 볼 수 있다. 열연한 배우들과 녹슬지 않은 연출력을 선보인 톰 후퍼 감독 그리고 그 외의 제작진의 노력도 한 몫 했지만, 특히 영화 속에 나오는 노래들이 가장 큰 역할을 했다고 보인다. 특히 에포닌(사만다 바크스 분)의 'On My Own'(온 마이 오운)은 눈물을 흘리지 않고 못 배기게 하며, 마리우스(에디 레드메인 분)와 코제트(성인 코제트: 아만다 사이프리드 분)의 서로간의 세레나데는 무척이나 사랑스럽고 예쁘다. 

 <레미제라블> 스틸.

<레미제라블> 스틸. ⓒ Working Title Films


사랑에 대한 숙연함, 커플들에게도 추천한다

휴 잭맨의 연기는 탁월했다. 초반에 수염 덥수룩한 장발장과 나중에 말끔해진 장발장이 같은 배우라는 걸 바로 알아차리지 못할 정도로 말이다. 극과 극을 모두 체험한 인생의 장발장을 무리 없이 소화해냈다. 코제트를 알기 전에 삶의 의미를 몰라 괴로워하고, 언제 자신의 과거가 사랑하는 이에게 알려질까 두려워하며 지내는 고독한 한 남자의 초상을 이렇게 잘 담아냈다.

앤 해서웨이의 판틴 연기는 비록 분량은 많지 않지만, 그녀에게 어떤 상이든 하나는 주어야 하지 않을까 싶다. 잔인하지만 왠지 측은하기도 한 자베르 역을 노래까지 해가며 완수해낸 러셀 크로우와 뮤지컬 <레미제라블>에도 출연했던 에포닌 역의 사만다 바크스도 훌륭했다. 자베르와 에포닌이라는 사람의 내면까지 이해할 수 있게 해주는 호연을 보여주었다.

이들 외에도 특히 기자의 눈에 들어온 배우는 가브로쉬 역의 다니엘 허틀스톤이다. 첫 등장부터 '뭘해도 하겠다 싶은' 소년이었다. 그는 똑 부러지게 혁명에 가담하고 시민군을 이끌기까지 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레미제라블>은 아름다운 영화다. 이 영화는 관객에게 말해주는 듯하다. '인류가 후손에게 물려주는 가장 위대한 유산은 사랑'이라고. 양심적인 사람의 숭고한 죽음과 시민군들의 용맹한 죽음 앞에 보는 이는 숙연해지기도 한다.

이 영화는 슬프다. 또한 생소한 형식의 영화라 지루할 수도 있고, 워낙 상영시간이 길어 마음의 준비를 해아 한다. 어쩌면 데이트 영화로는 어울리지 않을 수도 있다. 하지만 <레미제라블>을 연인끼리 끝까지 몰입해 보고나면 분명히 두 사람 마음속에는 더 큰 사랑이 자리하게 될 것이다. 사랑은 영원하고, 내일은 오리라!


덧붙이는 글 영화 <레미제라블> 상영시간 158분. 12월 18일 개봉. 12세 이상 관람가.
레미제라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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