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나라당 대전광역시 선대위 현판식을 갖고 있다.2004.03.31 19:55
3월 31일 대구경북지역 교수 거리행진 벌여2004.03.31 19:54
3월 31일 대구백화점앞 민주광장에서 대구경북지역 교수 촛불문화한마당 가져2004.03.31 19:54
송두율교수 1심, 징역 7년형 선고2004.03.31 19:54
수장회담.2004.03.31 19:23
투자양해각서 체결.2004.03.31 19:23
중국서 열린 전남투자유치설명회2004.03.31 19:23
수출상담.2004.03.31 19:23
늘푸른고교는 도로와 연접한 곳에 위치해 있어 방음벽 시공이 불가피함에도 아직 공사가 이뤄지지 않고 있다.2004.03.31 19:16
임시로 설치된 울타리는 그물 형식이라 도로에서 발생되는 먼지가 학교로 고스란히 스며들고 있다. 사진은 운동장에서 학생들이 공을 차는 모습.2004.03.31 19:16
한나라당의 '부산불패' 신화는 깨질 것인가? 열린우리당은 31일 여론조사에서도 40%의 지지율을 기록하면서 부산 1위를 지키고 있다. 총선이 15일 남은 현재, 열린우리당은 부동의 1위를 고수할 수 있을 것인가. 지난 30일 열린 부산 선대위 출범식.2004.03.31 19:15
<매일신보> 1931년 3월 13일자는 다시 택시운전사로 변신한 이정희의 소식을 전하고 있다.2004.03.31 19:06
<동아일보> 1929년 9월 21일자에 소개된 '무용가' 이정희의 모습이다. 이렇듯 가난한 비행사 이정희는 땅으로 내려왔으나 이마저도 '패트론' 최씨와의 마찰 덕분에 이내 이시이 바쿠 무용연구소에서 밀려나고 말았다.2004.03.31 19:06
중국 상해에서 돌아온 직후 이정희의 음독사실을 전하고 있는 <매일신보> 1933년 8월 6일자이다. 그가 죽음을 생각한 것은 과연 실연 때문이었을까, 아니면 여전히 궁핍한 자신의 처지를 비관한 탓이었을까?2004.03.31 19:06
우연찮게도 이정희가 죽음을 생각하던 며칠 뒤에 또 다른 여자비행사 박경원이 고향방문비행을 시도하다가 추락사했다. <매일신보> 1933년 8월 9일자에 수록된 사진자료 속에는 박경원(가운데)과 이정희(오른쪽)가 나란히 선 모습이 보인다.2004.03.31 19:06
식민지 시대에 이정희는 박경원과 더불어 여자비행사의 쌍벽을 이뤘다. 1926년 9월의 대구모험비행으로 처음 그 자신의 존재를 세상에 드러낸 뒤부터 일본비행학교를 거쳐 삼등비행사와 이등비행사의 자격을 따내던 시절의 모습들이다. 마지막의 것이 1929년이니, 모두가 10대 후반 때에 촬영된 장면들이다.2004.03.31 19:06
1922년 12월 10일 안창남 비행사는 처음으로 조선의 하늘을 날아올랐다. 왼쪽은 그가 가져온 비행기 '금강호(金剛號)'이고, 오른쪽은 창덕궁 위를 나르는 금강호의 모습이다. 이 당시 창덕궁 전하 즉 순종임금은 후원금으로 금일봉을 하사했으며, 그 보답으로 안창남은 두 번째 비행에서 창덕궁 위를 날았다.2004.03.31 19:06
지난해 왕인문화축제 때 '왕인박사 일본 가오'.2004.03.31 18:55
영암 벚꽃길. 뒷편으로 월출산이 보인다.2004.03.31 18:55
영암 벚꽃길.2004.03.31 18:5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