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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영화제가 끝나 갈 무렵 또 하나의 영화제가 열린다. 11월2일(목)부터 5일(일)까지 아트선재센터에서 한국 농아인 협회 주최로 열리게 되는 제1회 장애인 영화제가 바로 그것이다.

규모면에서는 부산 국제 영화제나 인권영화제에 비할 바가 못되지만 그 의미만은 예사롭지 않다. 이미 예전에 지방에서 몇 번의 장애인 영화제가 열렸다.

하지만 그때뿐, 정기적인 영화제로 상승되지 못했다. 무엇보다도 예산과 일반인들의 호응이 문제였다. 그러나 장애인 영화제는 또 열린다. 설령 이 영화제가 이번만으로 끝날지라도 그들의 시도는 앞으로 계속 될 것이다.

영화제는 크게 세 부분으로 진행된다. 먼저 장애인을 다룬 혹은 장애인 문제를 다룬 공모영화가 있고, 다음으로 여러 가지 현실적인 제약으로 영화라는 문화를 향유할 수 없었던 장애인들을 위한 극장 개봉작, 그리고 단편영화와 에니메이션이 상영된다.

이중에 극장 개봉작은 장애인 1500명에게 설문조사를 하여 평소 가장 보고 싶었던 영화들을 선정했다. 선정된 영화는 '공동경비구역 JSA', '죽거나 혹은 나쁘거나', '비천무', '8월의 크리스마스', '박하사탕', '인정사정 볼 것 없다' 6편으로 최근 한국 영화 걸작들이 총망라되어 있다.

장애인 영화제하면 언뜻 생각하기에 장애인에 대한 인식을 전환하기 위해 장애인 문제나 장애인의 삶을 다룬 영화제 같지만 이 영화제는 그것과 더불어 진정 장애인 영화제가 갖춰야 할 것을 보여주고 있다. 평소 영화라는 문화로부터 소외되어 있었던 장애인들에게 그 문화를 향유할 수 있는 좋은 기회를 제공하는 것으로 영화제의 성격을 분명히 하고 있다.

또한 장애인 영화제는 영화를 관람하는 장애인들을 위해 여러가지 배려를 하고 있다. 이미 선진국에서는 장애인이 영화 관람을 희망할 경우 정부의 예산으로 이를 지원해 주고 있다. 예를 들면 시각장애인이 영화 관람을 희망하면 이를 도와주는 사람이 같이 영화관을 찾아 영화의 장면을 설명해 주기도 하고, 청각 장애인용 보청장비가 영화관에 마련되어 있기도 하다. 하지만 우리의 경우 이런 부분이 사실 전무하다.

이번 영화제에서는 이런 부분들을 선보인다. 먼저 시각 장애인들을 위해서는 별도의 동시통역장비 같은 것을 착용하면 변사와 같은 사람이 영화를 설명해 주기도 하고, 청각 장애인들을 위해서는 전 영화가 한글자막 처리되었으며 아직 국내에 널리 알려지지 않은 골도기기라는 골전도 진동방식의 보조 청각장비를 비치해 놓기도 했다.

이 제품은 기존의 음파를 증대시켜 주는 보청기와 달리 청신경이 살아 있는 사람일 경우 고막을 통하지 않고 바로 음파의 진동을 골에 전달시켜 소리를 인식시키는 장비로 전세계 60개국에 국내 한 제조사가 특허를 출원한 제품이다. 이번 행사에 이 장비가 도입된 것은 이번 행사 소식을 들은 제조사가 협찬을 해 줘서 성사되었다. (문의:세호상사 02-713-8756)

이외에도 지체장애인들의 승강기 활용 등을 위해 자원봉사자들을 행사장 곳곳에 배치하고 휠체어 공간도 마련한다고 한다.

영화제의 내용은 이뿐만 아니라 장애인 문제를 다룬 공모작 상영도 있다. 공모 결과는 결국 다큐멘터리 작품에 국한되게 되었고 심사위원들을 아쉽게 했다고 전해진다. 심사위원들의 심사평에 의하면 전체 12편 응모작 중 당초 시상계획을 수정해 3편만을 선정하게 되었는데 전반적으로 시대가 영상의 시대임에도 불구하고 장애인을 소재로 하거나 장애인이 주체가 되어 만든 영화의 수준이 기대에 못 미쳤다는 것이다. 또한 심사위원들에게 이번 심사는 장애인에 대한 편견과 냉대가 고착화 되어 있는 사회 제반현상을 감안할 때 영화 분야 역시 크게 다르지 않다는 것을 확인하는 순간이 되었다고 한다.

공모작은 3편이 상영된다. 에바다 농아원 사태를 집요하게 물고늘어진 '끝없는 싸움, 에바다'와 정신지체인들의 보호작업장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담담하게 그린 '나는 행복하다', 그리고 한 여성장애인이 이 땅에 살아가기 위한 생업과 사랑, 출산의 모습을 보여준 '여성 장애인 김진옥씨 이야기'가 선정되었다. 이중 대상은 '끝없는 싸움 - 에바다'가 우수상은 '여성 장애인 김진옥씨 이야기'가 차지했고 '나는 행복하다'는 가작으로 결정되었다.

그리고 수화공연과 장애인들의 영화 문화 접근 현황 파악 및 개선을 위한 세미나와 같은 부대행사도 마련되어 있다.

이 영화제의 공모작 대상 상금을 보면 아주 조촐하다. 그만큼 이런 작은 영화제의 재정형편은 어렵다는 이야기다. 그러나 재정의 문제가 아니라 이 영화제는 작은 영화제여서 더욱 아름답다. 시끌벅적한 잔치나 과시의 의미이기보다 실제로 장애인에게 영화라는 문화기회를 제공하는 의미가 더 크기에 작더라도 너무 아름다운 영화제이다.

<영화제 개요>
▷기 간: 2000년 11월 2일(목)~11월 5일(일), 4일간, 무료상영
▷장 소: Artsonje Center(지하철 3호선 안국역 하차)
▷주 최: (사)한국농아인협회
▷문 의: 02-525-4950, 588-3369
▷상영일정
11월2일 오후2:00 개막공연 / 2:30 개막식 / 4:30 공동경비구역JSA / 7:00 리셉션
11월3일 오후2:00 공모작상영 / 4:30 죽거나 혹은 나쁘거나 / 7:00 비천무
11월4일 오후2:00 8월의 크리스마스 / 4:30 박하사탕 / 7:00 에니메이션
11월5일 오전11:00 단편영화 / 오후2:00 인정사정 볼 것 없다 /
오후4:30 폐막식,폐막공연 / 6:00 비욘드 싸일런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드가의 다큐멘터리 이야기'의 드가가 제공합니다. '드가(박성호)의 다큐멘터리 이야기'를 방문하시면 다큐멘터리에 관한 풍부한 정보들을 만나 보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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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료방송 채널에서 교양다큐멘터리를 주로 연출했, 1998년부터 다큐멘터리 웹진 '드가의 다큐멘터리 이야기'를 운영. 자연다큐멘터리 도시 매미에 대한 9년간의 관찰일기 '매미, 여름 내내 무슨 일이 있었을까' 2016년 공개, 동명의 논픽션 생태동화(2004,사계절출판사)도 출간. 현재 모 방송사에 근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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