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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대학병원 417호실 낡은 침대 곁에서 처음 그 소식을 알렸을 때, 차마 입이 떨어지지 않아 망설이고 망설이다 결국 그 이야기를 꺼내야 했을 때 그는 오히려 담담했다.

"농민회 사업을 더 열심히 해야하는데 이렇게 돼서 죄송합니다. 그래도 꼭 다시 복귀하겠습니다"

전국농민회 경상남도연맹 정책실장 김성원씨.
올해 서른 일곱의 젊은 농민운동가인 그가 지난해 가을 소장암 말기 판정을 받았다. 그리고 그를 아끼는 사람들과 함께 누구보다 '아름답게' 투병하고 있다.

84년 진주 경상대에 입학한 김성원씨는 그 시대의 많은 이들처럼 숨가쁘게 80년대를 지나왔다. 그러나 90년대에 그가 택한 삶은 남들과는 다른 삶이었다.

93년 UR투쟁을 통해 농민운동과 인연을 맺게 된 그는 사천군농민회를 거쳐 지난 97년부터 경남 도연맹에서 정책실장으로 활동해 왔다. '30대 기수론'을 이야기하며 틈만 나면 30대 젊은이들을 만나러 다녔고, 고향에서 '삼농회'라는 모임을 만들어 지역 농협에 대해 연구하기도 했다.

자신의 몸을 돌보기보다 농민의 현실을 돌보는게 더 중해서였을까.
몸의 이상을 느끼고 병원을 찾은 그는 막힌 장을 뚫기 위해 수술실에 들어갔다가 뜻밖에도 '소장암 말기' 진단을 받았다. 하지만 홀어머니와 아내, 초등학교 입학을 앞둔 아들딸을 둔 젊은 가장은 "목표가 뚜렷하니 오히려 마음이 편하다"며 웃었다.

말기암 진단은 그가 받았지만, 투병은 그 혼자 하는게 아니다. 농민회와 고향 친구, 시민단체, 대학동문들이 꾸린 그의 후원회는 "절대 성원이를 보낼 수 없다"고 다짐한다. 전국 각지에서 보내오는 후원금과 동충하초, 상황버섯, 현미 같은 건강식품은 그를 염려하는 마음 그대로이다. 학생 신분이라 마음만큼 물질적인 도움을 주지 못하는 학교 후배들은 그의 집 한쪽에 몸에 좋다는 황토방을 지었다.

김성원 씨는 지금 소장 끝을 잘라 인공항문을 만들고, 몸에 비닐팩을 단 채 투병 생활을 하고 있다. 새벽 5시에 일어나 맑은 산소를 받아들이는 풍욕을 하고, 곡물가루와 각종 야채로 만든 생식으로 하루 세 끼 식사를 한다. 2시간의 쑥뜸도 빼놓지 않는다.

"통일된 세상을 보기 전에는 절대 죽지 않습니다"라는 약속을 지키기 위해, 어쩌면 그는 지금 '투병'을 하는 것이 아니라 '투쟁'을 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덧붙이는 글 | 후원 계좌: 농협 강기갑 801065-51-029297
후원 문의: 경남 도연맹 055) 761-7557 GOODKN@chollian.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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