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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히 그리스도인들은 예수에 관해 많은 사실을 알고 있다고 자부하기 쉽다. 허나, 과연 그럴까? 사실 우리가 일반적으로 알고 있는 거라곤 기껏해야 복음서를 비롯한 몇몇 성경 본문들에서 말하는 정리되지 않은 여러 예수의 상(像)일 뿐이다.

그런데 이 예수상이 서로 전혀 모순되지 않는다는 듯이, 우리는 교회에서 설교와 성경공부를 통해 듣고 배우는 경우가 허다하다. 하지만 찬찬히 생각해 보라. 복음서 자체에서마저 각기 일어난 사건의 본문들과 맥락을 자세히 대조하여 비교해 보면, 그 보도의 상이성들을 쉽게 발견할 수 있다.

이렇게 지적하면, 어떤 이는 대번에 다음과 같이 반박할지도 모른다. 한 인물에 대한 진술이 엇갈리고 분분한 것은 오히려 그게 역사적 사실이기 때문에 가능하다. 왜냐면, 마태, 마가, 누가, 요한, 바울이 경험하고 이해한 예수가 각기 다를 수밖에 없는 거 아니냐고 말이다.

한편으로 일리가 있는 말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다양한 예수상에 대한 우리네 궁금증이 시원스레 해결되는 것은 결코 아니다. 오히려 그러기 때문에 우리는 가감없는 진정한 예수의 모습은 어떠했는지에 대한 정직한 답변을 찾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따라서 '역사적 예수'를 복원하기 위한 작업은 수 천년 동안 교회의 전통과 교리에 의해 덧칠된 예수의 상을 넘어서서 정직하게 예수를 만나기 위한 하나의 힘겨운 신학적 몸부림이다.

이 책은 최근 미국을 중심으로 활발하게 전개되고 있는 역사적 예수 연구의 최고 권위자 중 한 사람인 도미닉 크로산의 저작이다. 그는 지금까지 약 40 여년 동안(거의 한평생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역사적 예수 연구에만 몰두해온 학자로 알려져 있는데, 그의 책들이 근래에 한국어로 속속히 번역되어 출간되고 있는 것은 매우 반가운 일이다.

최근 번역 출간된 이 책은 작년에 이미 번역돼 나온 바 있는 그의 '역사적 예수'라는 방대한 책을 저자가 일반 독자들을 위하여 보다 평이하게 다시 쓰고 축약한 요약본이자, 많은 토론과 질문 및 반론들을 거치면서 새로 수정 보완하여 내놓은 책이다.

원래 부제인 '하나의 혁명적 전기'라는 말이 함축하고 있듯이, 이 책은 예수에 대한 우리의 전통적인 이해를 매우 심각하게 뒤흔드는 어찌 보면 그야말로 위험천만한 책이다. 나는 이 책을 읽어 내려가면서 마치 외줄 타기 하는 듯한 아찔한 경험을 곳곳에서 하게 되었다. 그래서 역사적 예수연구 붐이 일어나기엔 아직도 요원한 한국 교회 실정에서 이 책이 대중적으로 읽혀지게 될 때, 과연 어떠한 반향을 불러일으키게 될지 자못 궁금하다. 하긴 평가는 예수에 대한 반응이 그러했듯이 매우 다양한 양상으로 나타날 것이 틀림없다.

"그는 바보다. 무시해 버리자.
그는 미친 사람이다. 내버려두자.
그는 위험하다. 그와 싸우자.
그는 범죄자다, 처형하도록 하자.
그는 하나님이다. 그를 경배하자."

하지만, 어쩔 수 없는 걱정은 일부 극성스러운 기독인들에 의해 예수연구로 평생을 보낸 한 신학자의 성실한 연구 결과물이 기독교 신앙에 심각한 해악을 끼치는 책으로 쉽게 평가절하 되어 일방적으로 매도당하지나 않을까 하는 점이다. 왜냐면, 이 책이 매우 급진적인 최근의 예수 연구에 대한 시각을 소개하고 있는데다가 기성 기독교 신앙을 뿌리째 전복시키는 지점을 곳곳에서 발견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마음 편하게 이 책을 잡고 읽기 시작하는 사람은 반드시 몇 장을 못 넘겨 책을 집어 던져 버리거나 덮어버리고 싶은 충동을 느낄 것이다.

그런데도 이 책을 굳이 소개하는 것은, 이 책은 예수의 제자가 되어 진지하게 그 분의 뒤를 따르고자 하는 많은 그리스도인들에게 예수 이해에 있어 결코 간과하지 말아야할 매우 중요한 사항들을 잘 말해주고 있기 때문이다.

저자 크로산이 이해한 바에 따르면, 역사적 예수는 유대의 농민 출신으로 견유(Cynic)적인 현자였다. 그의 전략은 무료 치유와 누구에게나 개방된 공동식사를 결합하는 것이었는데, 그가 한 곳에 정착하지 않고 끊임없이 움직였던 것은 인간과 인간 사이, 하나님과 인간 사이에 브로커(broker)도 매개자(mediator)도 되기를 거부했기 때문이었다.

이러한 예수의 활동은 종교적이고 경제적인 평등주의라는 원칙에 입각해서 이루어진 것이라 볼 수 있다. 이는 유대교의 엄격하기 짝이 없는 정결 규정들이나 지중해 지역에 일반화되어 있던 명예와 수치, 후견과 의뢰의 가부장제적인 결함에 대한 직접적인 도전임과 동시에, 가장 근원적인 차원에서 문명의 영원한 속성, 즉 선을 긋고 경계를 나누며 계급체제를 구축하고 또 차별을 지속시키고자 하는 문명의 영원한 속성에 대해서까지 도전하는 행위였다.

저자는 이 책을 기술하는 방법론으로 세 개의 독립적인 방향축이 교차하는 곳에 예수를 위치시키고자 시도하는데, 즉 교차문화인류학, 예수가 살았던 초기 25년간의 그리스-로마 역사 및 유대역사, 문학적 혹은 본문적인 비평이 그것이다. 특히 독자들은 책을 읽으면서 일반인들이 좀처럼 접할 수 없는 여러 가지 고대 사료들의 자유로운 인용에 놀라움을 금치 못할 것이며, 그러한 다양한 자료들과 함께 예수를 읽어 나가면서 전에 맛보지 못한 새로운 차원의 예수 읽기를 경험하게 될 것이다.

저자의 정직하고 성실한 연구작업에도 불구하고 책을 끝까지 읽으면서 품게된 의문점이 있다. 즉 '예수 생애에 관한 복음서의 수많은 진술들이 저자의 주장처럼 후대 유식한 그리스도인들에 의해 치밀하게 '창작'되거나 '되쏘아진(retrojected)' 것으로 본다면, 도대체 예수에 관한 무엇이 남아 날 수 있겠는가?'하는 원초적인 질문이다.

예컨대 저자는 복음서에서 예수 생애 중 매우 중요한 장면으로 묘사되는 십자가 처형과 매장에 대한 일련의 과정이 역사적인 수난이 먼저 있은 다음, 나중에야 예언적 수난(히브리 성서 본문에서 예수 수난에 대한 예언 발견)이 밝혀지면서 이 둘을 이야기로 재구성하여 설화적인 수난으로 발전시키게 되었다고 말한다.

즉 이럴 경우 예수의 수난사화는 우리가 성서를 통해 알고있는 사실과는 달리 후대에 유식한 예수의 제자들의 정교한 작업에 의해 엄청나게 부풀려지고 새롭게 창작되었으며 드라마틱하게 변형되어 전달되는 과정을 밟은 것이다. 그러나 정작 그렇다면, 진정한 역사적 예수를 어렵사리 찾아내었다 한들 극히 일부에 지나지 않는 그에 대한 짧막한 기록들과 그가 남긴 단편적인 어록들로 우리가 도대체 예수에게서 무엇을 건질 수 있을 것이며 또 그것이 오늘의 그리스도인들의 실천에 무슨 기여를 할 수 있을까?

물론 저자의 주장들은 매우 논리적이고 설득력이 있으며 곰곰히 따져 성찰해 볼만한 주제들을 많이 제공하고 있다. 하지만 내게 얼핏 드는 생각은 역사적 예수를 복원한다고 기존의 텍스트들 대부분을 창작과 가필로 자르고 단정지을 경우 예수를 발견하기는커녕 오히려 예수에 대해 미궁에 빠져드는 게 아닐까하는 생각이다.

다행히도 저자는 자신의 주장을 절대적인 것으로 고집하지 않고 역사적 예수 연구의 개방성을 말한다. 그러면서 '다양한 역사적 예수 연구들'이 동시대의 세상 학문들의 성과와 학제간의 연구가 가능토록 방법론에 대해 열려 있어야 하며 세상의 학문적 판단을 받아들일 수 있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옳은 말이다. 저자의 주장처럼 '다양한 역사적 예수들'이 시대적 요구에 걸맞게 연구되어 재조명되어야 하며, 그에 기초해 그리스도에 대한 신앙 또한 새롭게 형성되어야 한다고 본다. 그 이유는 2천년 전의 '그때의 예수'를 새롭게 이해하면서 '오늘의 그리스도'로 그가 현재 의미하는 바를 다시금 얼마든지 의미심장하게 깨달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역사적 예수 연구는 단순한 지적 호기심 차원에서 과거사적 유물을 발굴해 내려는 할 일없는 학자들의 작업이 결코 아니다. 이 작업의 진정한 의의는 오늘의 그리스도가 어떠한 분이어야 하는지를 정직하고 진지하게 되묻는 작업이며, 수많은 세월이 흐르면서 자꾸만 왜곡되고 굴절된 우리 기독교 신앙을 다시금 제대로 바로 잡는 혁신적인 작업 중의 하나이다. 그런 차원에서 볼 때 이 책은 오늘 한국 그리스도인들에게 던지는 하나의 매우 중요한 도전장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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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수솔샘교회(solsam.zio.to) 목사입니다. '정의와 평화가 입맞추는 세상' 함께 꿈꾸며 이루어 가기 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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