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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에 살다가 시골로 들어온 분들. 그 가운데서도 전원생활이라는 걸 원하고, 원해서 들어온 분들이 가장 바빠지는 계절이 돌아왔습니다.

닭장 같이 규격화된 아파트 공간에 갇혀서, 얼마나 꿈 꾸고 애 태워 오던 일인가. 텃밭을 일구고, 마당 가득 꽃씨를 뿌리고, 보기만 해도 서늘한 바람이 일렁이는 나무들을 심는 일을 얼마나 꿈꿔 왔던가.

그 때문에 처음 시골에 들어온 분들의 봄은 언제나 분주하고, 밤이면 끙끙 앓으면서도 헤세의 <정원일의 즐거움>을 뒤적거리고, 도감을 뒤지고, 한 번쯤 원예관련 책들을 뒤적거려 보지 않은 분이 드물 것입니다.

먹고 살기도 힘든데, 무슨 꽃밭 타령이냐고 할지 몰라도, 생활이 어렵다고, 마당에 소담스런 꽃밭마저 바라보지 못해야 한다면, 그 삶은 또한 얼마나 삭막할까. 우리네 시골집들이 팍팍한 생활 속에서도 아담한 꽃밭이나, 마당 한모퉁이에 꽃나무 몇 그루는 심어 오던 걸 보면 그걸 배 부른 장난이라고 혀를 찰 일은 아닙니다.

돈 많은 이들처럼 정원사를 불러다 호화로운 꽃나무에 비단 같은 잔디밭을 까는 호사는 못 부려도, 하다 못해 울타리 밑에 봉선화라도 심고, 낙수물 떨어지는 마당에 채송화라도 얹었던 그 삶의 여유를 되찾아 보는 것도 시골살이의 즐거움이라 생각합니다.

내 경우도 그와 다름없었습니다. 처음 시골에 들어와서 어렵사리 지은 집이지만, 제법 멋도 내고, 남들 보기 좋으라고 칠도 하고, 광도 내보느라 밤이면 끙끙거리며 앓으면서도 집단장에 열을 올렸지요. 그 짓이 끝나고 나니, 이제는 꺼칠한 집 주변으로 눈이 돌아갑니다.

찬 바람이 가시기도 전에 꽃시장에 가서 온갖 화초들을 사다 심고, 여기저기 꽃나무도 심었지만 이게 조그만 아파트도 아니고, 봉당 좁던 불당골 농가와 달리 산비탈에 들어앉은 집이다 보니 여간해선 흔적도 나지 않았습니다.

벌겋게 까진 맨땅이 내 살 벗겨진 것처럼 흉측해 온갖 나무들을 사거나 얻는데, 그때는 온통 관심이 나무와 꽃뿐입니다. 누구네 집에 가서도 우선 늘어선 화분을 들여다보고, 남의 집 마당에 심겨진 아름드리 나무들을 탐내기도 합니다.

마음이 급하다보니, 개울가에 푸릇하니 돋아난 싹만 보아도 그게 무슨 귀한 화초나 될 법 싶어 유심히 지켜보고, 화분에 기르다 버리는 시든 화초들도 주워다 심고, 슈퍼에서 사 온 복숭아나 사과도 그 씨를 마당에 슬그머니 묻어두었답니다.

어쨌든 이래저래 라일락에, 장미, 능소화, 매화, 살구, 사과, 황도까지 심어놓고, 그 걸로도 성이 안차 북나무, 다래 넝쿨, 호리병나무, 주목에 심지어 참옻까지 심고 보니 훌쩍 여름이 와서 이젠 심을래도 뿌리를 내리지 못할 때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정신없이 꽃과 나무를 사다 심고 나니, 벌겋게 벗겨져 흉터처럼 눈에 거슬리던 산언덕에 누가 심은 것도 아닌데, 초록 융단 같은 풀이 덮이고, 잠시 놀랄 틈도 주지 않고, 작지만 조금만 무릎을 낮추고 들여다보면, 눈부시게 아름다운 꽃들이 터져나오기 시작했습니다.

까맣게 불을 놓은 묵은 풀들 위로, 마법처럼 피어 오른 보라빛 제비꽃과 노상 내가 딛고 다니는 섬돌 틈바귀에서 얼굴을 내미는 금빛 민들레, 이름만 들어도 코끝이 향긋해지는 냉이와 꽃다지. 그리고 눈이 내린 듯 깔리기 시작하는 하얀 산매화와 세상의 어느 향수보다 아름다운 내음으로 온 산을 뒤덮는, 이름조차 모르는 야생화들에 덮여 내가 사다 심은 메리골드나 이탈리아제 무슨 어려운 이름의 꽃들은 흔적도 뵈지 않았습니다.

그때부터 도감도 뒤져 보고, 들꽃들에 관심을 기울이다 보니 밋밋하니 푸른 잎을 달고 있어 늘 눈총만 받고, 심지어는 잡초거니 내 손에 함부로 뽑혀 버리던 것들도 어느 하나 꽃을 달지 않은 것이 없으며, 그 꽃마다 독특한 빛깔과 향내를 지니고 있다는 걸 알게 되었습니다.

그 가운데 영 이름도 모를 풀 하나가 제법 넓지막한 잎사귀를 펼치고 자라기에 주변을 솎아주고 북을 넣어주니 대번에 쑥쑥 자라 여름에는 그 잎사귀 하나가 얼굴을 가릴 만큼 자랐지요. 나는 그 이름도 모를 기이한 식물을 보며, 과연 저 탐스럽게 자란 것이 과연 어떤 꽃을 내보일까 자못 궁금하기만 했습니다.

장마를 지내고 나니, 과연 그것은 염주같은 꽃봉오리들을 줄줄 매달았는데, 어느 날인가, 햇살이 눈부신 날, 드디어 나는 그것이 열리며 펼쳐낸 신비로운 아름다움에 입을 다물지 못했습니다. 파전을 담아 놓을 듯 펼쳐진 꽃잎들은 소박하면서도 흔치 않은 빛깔로 피어났는데, 얼마 지나지 않아 나는 그것이 도종환 시인의 시에 나오는 <접시꽃>이라는 걸 알게 되었지요.

그때만 해도 접시꽃이 아마 중국집 잡채 그릇처럼 넙적한 꽃인가 보다고 흘려 들었는데, 막상 마당에서 그 꽃을 만나고 보니 여간 감회가 깊지 않았습니다.

들꽃의 매력은 무엇보다 제 스스로 철마다 바꿔가며 이어지는 꽃들의 행렬에 있습니다. 한 꽃이 사그라지는 아쉬움을 달래주기라도 하듯, 아직 지난 꽃의 향내가 지워지기도 전에 새로운 꽃이 골짜기를 채웁니다.

여름내 이어지던 머루덩굴, 호리병꽃, 산벚, 으아리들 틈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중학교 때 배운 <소나기> 소설에 나오는 마타리꽃을 만났다는 것입니다. 도감을 뒤적인 끝에 나는 산기슭을 따라 피어난 노란 꽃들이 바로 그 꽃이라는 걸 알고 탄성을 질렀지요. 사춘기 때 가슴을 설레게 하던 그 꽃을 눈앞에 대하니 가슴부터 울렁이더군요.

들꽃의 아름다움은 사람이 심지 않아도 말 그대로 바람에 날아와 자리를 잡는 신비로운 생명에 있는 듯합니다. 어느 날인가, 전혀 생각도 않던 곳에서 피워내는 작은 보석 같은 꽃들을 대할 때면 새삼 자연과 생명의 경이로움을 느끼곤 합니다.

나무도 이와 같습니다. 심지도 않았던 비탈에 큰 나무들 틈에 끼어 제대로 뵈지도 않던 살구나무가 화사한 연분홍 봄을 피워냅니다. 비록 사람이 먹지는 못하는 개살구라지만, 세상의 것들이 어찌 사람의 입을 위해서만 존재할 수 있을까요.

대체로 시골집을 꾸밀 때는 우리네 들꽃이나 오래 전부터 이 땅에 어우러져 온 꽃들이 기르기도 좋고, 정감도 가는 듯합니다. 멋도 모르고 비싼 외제꽃들을 가져다 거의 한해살이 전시용처럼 심었다가 철이 지나면 흔적도 없이 사라지게 하기보다는 제 풀에 씨를 뿌리고, 해마다 소담한 꽃밭을 스스로 일궈나가는 채송화나, 봉선화, 과꽃, 백일홍이 적당하고, 꽃나무로는 울타리 삼아 조팝나무나 개나리를 심고, 진달래는 가능한 무더기로 모아 심는 것이 쓸쓸해 뵈지 않으며, 유실수로는 대추나무, 은행나무, 감나무가 적당하나 중부 지방에서는 감나무가 크기에 관계없이 한파로 죽는 일이 잦으니, 감나무를 심을 때는 북쪽 바람이 막히고, 늘 남향의 볕이 잘 드는 곳을 골라 심어야 한답니다.

큰 나무는 집 안에 들여심지 말며, 유난히 그늘을 넓게 덮어 습지를 이루는 밤나무도 집 가까이에 심지를 않는다 합니다. 조상들은 명자나무나 살구나무처럼 지나치게 화려한 꽃들마저 집안에 심기를 꺼렸다니, 꽃나무조차도 집과 그 안의 사람들과도 어울림을 중시여긴 마음을 읽을 수 있습니다.

요즘처럼 전원주택이라면 으레 영산홍이나 화사하고, 일부러 눈에 띠려고 애쓰는 조경의 풍조와 비긴다면 많은 차이를 느끼게 됩니다. 그리고 집안에 적잖은 돈을 들여 심는 잔디보다, 민들레든, 양지꽃이든, 돗나물이든 우리 주변에 자생하는 들꽃들을 심어보는 것도 좋은 생각이라고 봅니다. 집안의 습기와 벌레나 뱀을 막기 위해 마당은 가능한 건조한 마사토를 깔아 정갈함을 유지해온 전통 농가들의 마당도 돌아볼 필요가 있을 법합니다.

가능하면 집 가까이나, 앞 쪽에는 큰나무를 심지 않으며, 키가 큰 나무와 늘푸른 노간주, 향나무들을 뒤울을 막아 겨울철 북풍을 막아온 뜻도 살피어, 꽃과 나무가 집과 사람들과 잘 어울어지도록 생각해야 할 것입니다.

사태가 걱정되는 비탈진 곳에는 칡이나 비비취를 심되, 그 뿌리가 비탈진 언덕 중간에 걸려서는 빗물이 머물지 못해 심겨진 나무들이 잘 자라지 못하니, 언덕 밑이나 위의 평탄한 곳에 뿌리를 박고, 그 넝쿨이나 잎사귀로 덮도록 배치해야 합니다. 부득이 비탈에 심어야 할 때는 계단형의 평지를 조성하고, 주변에 수분을 머물게 할 지표식물이나 떼를 붙여두는 것이 좋습니다.

장독대에는 그늘이 질 나무나, 습기나 벌레를 꼬이게 할 키 큰 풀들을 심지 않으며, 사람이 자주 다니는 마당과 우물가에도 발목이 감길 정도의 풀들을 심어서는 자칫 넘어지거나, 뱀이 숨어들 수가 있습니다.

나는 이제 봄과 여름, 그리고 깊은 가을에 이르기까지 맞이하고 보냈던 들꽃들을 보며, 세상에는 무엇 하나 버릴 것 없는 소중한 아름다움으로 가득찬 것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심술궂게 살만 찔러대는 줄 알았던 엉겅퀴가 그렇게 우아하고, 탐스런 보라색의 황홀한 꽃술을 지녔는지도 알게 되었고, 쓸데없이 밭만 메꾸는 망초들이 그처럼 매혹적인 꽃내음을 지녔는지도 비로소 알게 되었습니다. 찬 바람이 불고, 꽃보다 더 아름다운 단풍과 낙엽들도 황갈로 메말라갈 숲이지만, 그 속에서 잠이 든 황홀한 봄이 잠들어 있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바람이 불 때마다 서걱거리는 겨울의 황량한 숲에서 수많은 들꽃들의 꽃내음을 맡을 정도가 되면 제법 시골사람이라는 소리를 할 만한 게 아닐까 혼자 생각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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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동면 광대울에서, 텃밭을 일구며 틈이 나면 책을 읽고 글을 씁니다. http://sigoo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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