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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장이 가족이 사는 낙원구 행복동에 이십일 안에 자진철거하라는 철거 계고장이 날아들었다. 동생 영호는 집에서 떠날 수 없다고 버티었고, 울기 잘하는 영희는 훌쩍훌쩍 울기만 하고, 어머니는 무허가 건물 번호가 새겨진 알루미늄 표찰을 떼어 간직했다. 새 아파트에 들어갈 형편이 되지 않는 행복동 주민들은 하나 둘씩 입주권을 팔기 시작했다."

문단에 거세게 불고 있는 복고풍, 아니 독자들이 줄기차게 우리 문단에 복고풍이라는 회오리바람을 불어넣는 원인은 무엇일까. 새로운 작가의 새로운 작품의 부재 때문일까. 아니면 자본주의의 내음이 물씬 풍기는 이 지긋지긋한 현실에서 잠시나마 추억 속으로 떠나가고 싶은 것일까.

최근 1978년에 초판을 펴낸 작가 조세희(60)의 소설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이성과힘, 8000원)이 마침내 150쇄를 돌파했다. 약 30여년 전에 펴낸 이 책을 이렇게 많이 찍었다는 것은 '난쏘공'이 지난 30여년 동안 꾸준히 독자들의 사랑을 받아왔다는 것을 증명한다.

물론 지금 팔리고 있는 이 책은 1978년에 펴낸 그 책은 아니다. 하지만 이 건 마치 반란 같다. 최근 출판 현실을 살펴보자. 아무리 신간이라 하더라도 일단 잘 팔리지 않으면 끝장이다. 다시 말해서 따끈따끈한 초판을 서점에 내놓아도 인기가 없으면 보름 정도 지나 서점가에서 사라지는 경우가 비일비재하기 때문이다.

"쇄 이야기만 나오면 슬퍼져요. 요즘에는 섹스 얘기를 써도 몇달 만에 수십만부를 팔잖아요. 난쏘공이 150쇄를 넘었지만 판매부수로는 60만부 남짓이거든요. 문학은 지켜나가야할 자존심과 명예가 있어야 하는데..." (작가 조세희의 말 중에서)

<난쏘공>은 말 그대로 난장이로 상징되는 못 가진 자와 거인으로 상징되는 가진 자 사이의 갈등과 대립을 주축으로 삼아 우리 시대가 안고 있는 갖가지 모순과 부패, 그리고 그 사이에서 힘겹게 살아가는 사람들, 즉 난장이로 표현되는 서민들의 소박한 꿈과 자유에의 의지가 담겨 있는 작품이다.

"입주권 가격은 하루가 다르게 치솟아갔다. 난장이네 집도 입주권을 팔고 전세금을 빼주어야만 했지만, 가족들은 아버지와 어머니가 돌을 이어나르고 시멘트를 직접 발라 만든 집에 애착을 갖고 있었다. 이웃집 명희 어머니는 명희가 죽고 남긴 통장에 든 돈을 전셋돈을 빼주라고 빌려 주었다. 명희는 나(난장이집 큰 아들 영수)를 좋아했다. 그녀가 바라던 건 내가 공부해서 다른 아이들처럼 공장에 가지 않고 큰 회사에 취직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나는 그 약속을 지키지 못했고, 명희는 다방 종업원에서 캐디로, 버스 안내양으로 전전하다가 통장에 19만원을 남기고 자살했다."

<난쏘공>은 '뫼비우스의 띠' '칼날' 등 12편으로 구성된 소설집으로 이미 100쇄를 넘어 선 최인훈의 광장과 더불어 우리 출판계에 또 하나의 금자탑을 쌓은, 비록 부수는 60만부 정도밖에 안되지만 조정래의 1000만부에 못지 않은 또 다른 금자탑을 세웠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작가 조세희를 70년대적인 작가라고 말한다. 이는 조세희가 '칼날' '뫼비우스의 띠'와 더불어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 등을 발표하며 문단의 주목을 받기 시작한 시기가 70년대 중반이었기 때문일 것이다.

특히 주목할 것은 작가 조세희가 70년대 중반에 시도한 연작 형태의 소설이다. 이러한 형식의 소설은 우리 문단에 조세희가 남겨놓은 새로운 형태의 소설작법이다. 난장이 연작으로 이어지는 이러한 형식의 소설작법은 단지 새로운 형식을 개발했다는 것에 그치지 않는다.

이러한 소설 작법은 70년대의 상황이 낳은, 어쩌면 당연한 결과물일지도 모른다. 당시 작가 조세희가 볼 때 70년대의 상황을 기존의 단편소설이란 그릇에 담아내기에는 조금 작았다. 하지만 장편이란 그릇 속에 담아내자니 오히려 장편이라는 그릇이 너무 컸다(그렇다고 작가 자신의 역량이 장편을 써낼 수 없는 역량이 모자라는 그런 작가라는 뜻이 아니다). 그래서 작가는 어쩔 수 없이(?) 연작이란 새로운 형식의 소설작법을, 자신의 신작처럼 창작해낸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영희는 남자의 금고에서 자신의 집 대문에 달려 있던 알루미늄 표찰을 되찾아 집으로 돌아왔다. 영희는 표찰을 내고 아파트 입주 신청서에 아버지의 이름과 주민등록번호를 적어넣었다. 신애 아주머니는 열이 나 아파하는 영희를 방에 데리고 가 간호를 해주며 말했다. 아버지가 굴뚝 속에서 죽은 채로 발견되었다고. 아버지의 자살을 알게 된 영희는 큰오빠인 영수에게 이렇게 말한다. "아버지를 난장이라고 부르는 악당을 죽여 버려."

작가 조세희는 1942년 경기도 가평에서 태어나 1965년 '경향신문' 신춘문예에 소설 '돛대없는 장선'이 당선되면서 문단에 나왔다. 주요작품으로는 '심문' '칼날' '뫼비우스의 띠' '내 그물로 오는 가시고기' '시간여행' '1979년 저녁밥' 등이 있다.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 (300쇄 기념 한정판)

조세희 지음, 이성과힘(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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