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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림동 고시촌 새벽 모습.
ⓒ 김진석
가장 늦게 불이 꺼지고 가장 빨리 불이 켜진다. 고즈넉한 달빛과 따사로운 햇빛조차 숨죽이며 지나간다. 노래방, PC방, 비디오방, 만화방이 시중에서 가장 저렴하다. 단 돈 만원이면 하루 종일 부담 없이 놀 수 있다. 불안한 미래와 청운의 꿈이 뒤엉켜 있는 곳. 사시 2차 시험을 백일 앞 둔‘신림동 고시촌’ 엔 미묘한 긴장감이 감돌고 있었다.

"젊은이들의 의식이 너무 일회용적입니다."

소신 있는 검사가 되고 싶어 뒤늦게 고시를 준비하고 있는 늦깎이 고시생 이모씨(33). 그는 현재 도서관에서 청소 아르바이트를 하며 어렵게 공부를 이어가고 있다. 그는 자신을 스스로 낡은 성격의 소유자라 한다. 세상이 아무리 변한다 할지라도 분명 바뀌지 말아야 할 것들이 있음을 강조한다.

"책이나 물품 등 귀한 줄을 몰라요. 심지어는 부모님이 보내 주신 보약까지 버립니다."

젊은 고시생을 말하는 그의 눈가엔 근심이 가득하다. 이제 더 이상 고시는 자수성가의 대명사가 아니다. 자비로 학비를 충당했던 과거와 달리 오늘의 많은 젊은이들은 든든한 지원에 힘입어 공부하고 있다. 풍족함이 넘쳐 나는 그들은 무언가 귀한 줄을 모른다. 법만 알고 사람 귀한 줄 모르는 고시생이 넘쳐나는 것이다.

"어린 친구들이 어떤 마음으로 공부하는지 가끔 궁금해요."

▲ 새벽 1시가 조금 못된 시간. 늦은 시간 독서실에서 공부하고 있는 고시생
ⓒ 김진석
행정고시를 준비하고 있는 24세의 장모양은 "의외로 나이 어린 친구들이 일찍 고시를 준비한다" 며 자신이 결코 어린 연령층이 아니란다. 유년 시절의 꿈이었던 '교수' 와는 다른 길을 선택했지만 지금의 모습에 만족한다.

"미래에 대한 불안감 때문에 힘들긴 하지만, 무언가를 공부하며 알아 가는 느낌이 들었을 때 뿌듯함을 느껴요."

비록 불안하지만 자신을 믿고 착실히 미래를 준비해 나가는 그녀에게 문득 장난을 걸어 보고 싶었다.

"사는 거 재미있어요?" 라는 황당한 질문에 그녀는 멋쩍게 웃는다. "네"라는 당당한 목소리를 뒤로 감춘 체.

고시생을 바라보는 주변인의 시각은 어떠할까. 모대학 심리학과에 재학 중인 두 남학생의 말을 들어보았다.

"고시촌이 거의 기업화되고 있습니다. 학원, 도서관, 숙소가 연결되어 하나의 체인점 같은 역할을 하고 있는 거죠. 즉, 돈 있는 사람만이 좋은 환경에서 더 많은 정보를 얻으며 공부 할 수 있게 된 것이죠. 반면 경제적으로 어려운 고시생들은 막노동을 하며 힘들게 공부를 합니다. 빈익빈 부익부 현상이 더욱 심화되고 있는 거죠.”

왜 그리 많은 젊은이들이 고시를 준비하려 하는 걸까.

"IMF이후로 더 많은 학생들이 고시를 준비해요. 취업을 했다가 다시 때려치고 고시를 준비하는 친구들도 많습니다. 고시의 폐해가 심하긴 해도, 어떻게 보면 고시처럼 가장 합리적인 시험도 없습니다. 사회가 워낙 불안하다보니, 더 낳은 미래를 위해 고시를 선택한 친구들을 한 편으론 이해할 수 있어요.”

더 낳은 미래와 불안한 미래를 동시에 떠안고 있는 고시촌의 밤은 창백하기 그지없다. 유독 그 곳만은 봄이 비껴간 것처럼 시린 바람이 거리를 메운다. 어디선가 새어 나오는 백열등의 열기가 봄의 온기를 대신하고 있었다.

▲ 새벽 2시가 넘었다. 공부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는 고시생들의 발걸음을 잡고 있는 분식 포장마차
ⓒ 김진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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