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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라종일 국가안보 보좌관(왼쪽)이 지난 6일 노무현 대통령이 함께 청와대에서 열린 통일외교안보분야 장관회의에 들어서고 있다.
ⓒ 연합뉴스

미국의 이라크 공격이 초읽기에 들어간 가운데 국내외 반전 여론은 점차 고조되고 있다. 노무현 대통령은 지난 13일밤 부시 미국대통령과의 긴급전화통화에서 이라크전쟁을 지지한 바 있다. 이런 가운데 라종일 청와대 국가안보보좌관은 19일 오전 기자간담회에서 이라크 전쟁에 대한 우리 정부의 미국 지지 입장을 재차 확인했다.

특히 라 보좌관은 국내 반전여론에 대해 "그런 것이 없다면 오히려 이상한 나라다. '월남에서 돌아온 김상사', 이런 시대는 확실히 갔다"면서도 외교정책 담당자의 '십자가론'을 폈다.

라 보좌관은 "확실한 것은 (우리 정부가) 미국의 대량살상무기를 제거하기 위한 입장을 지지한다는 것"이라며 "(미국에 대한) 구체적인 지원 계획은 아직 협의중이다. 전후복구, 난민구호, 비 전투병 파병 등 구체적인 내용은 아직 정해진 것이 없다"고 말했다. 그는 '미국의 대 이라크 전쟁 수행을 지지한다는 것인가'라는 이어지는 질문에 "통틀어서 미국이 취하려고 하는 행동을 지지한다는 것"이라고 답했다.

라 보좌관은 국내에서 점점 고조되는 반전 여론에 대해 "조금 장황한 이야기를 해도 되겠는가. 교수 출신이어서 장황하게 이야기하기를 좋아한다"며 약 5분간 근대화와 민주화의 진행에 따른 반전 여론과 정부의 미국 지지 입장에 대해 설명했다.

핵심은 60년대처럼 '월남에서 돌아온 김상사' '검게 탄 얼굴' 하며 전쟁에 대해 지지 여론을 보내던 시대는 갔다는 것. 하지만 국민 여론과 외교정책 담당자의 수행과는 반드시 일치 할 수 없다는 것. 라 보좌관은 이에 대해 "외교를 맡은 사람들의 고민이자 떠맡아야 할 책무이고, 조금 거창하게 이야기하면 십자가이기도 하다"고 말했다.

"지난 걸프전만 해도 국내에서 반전여론이 거의 없었다. 이게 또 민주화와 같이 진행된다. 그래서 반전 여론이 있는 것은 당연하고, 그런 것이 없다면 오히려 이상하다. '월남에서 돌아온 김상사', 이런 시대는 갔다고 생각한다. '검게 탄 얼굴' 어쩌고 하는 시대는 확실히 갔다. 만약 그렇게 본다면 조금 이상한 나라다.

그러나 국민의 여론과 외교정책을 담당하는 사람들의 외교정책 수행 과정과는 반드시 일치할 수만은 없다. 내가 듣기로 고이즈미 일본 총리도 이라크 전쟁을 지지하면 자기 개인 인기가 한 10% 정도 떨어진다고 들었다. 그것을 본인이 알고 있으면서 지지한 것이다. 블레어 영국 총리 같은 분도 (영국에) 반전 데모가 굉장히 강하다. 심지어는 자기 측근, 외무상을 하던 사람이 내각에서 (전쟁에 반대한다며) 사임해버렸다. 그럴 정도로 반전 여론이 강한데도 미국의 입장을 강력히 지지하고 있다.

이것이 외교를 맡은 사람들의 고민이고, 떠맡아야 할 책무이고, 조금 거창하게 이야기하면 십자가이기도 하다."


이 발언은 점점 고조되는 국내 반전 여론에 대한 정부 당국자의 첫 답변인 셈이다.

라 보좌관은 "이 전쟁은 시나리오가 불분명하다. 지금부터 내일까지 무슨 일이 일어날지, 혹은 개전과 동시에 이라크 내부에서 무슨 일이 일어날지, 전쟁이 단기간에 끝날지 장기화될지, 그리고 전쟁 국면이 끝난 다음에 내부 수습 문제는 어떻게 되는지 등이 상당히 유동적"이라며 "우리의 대처도 여러 시나리오들을 염두에 두고 상황을 봐 가면서 대처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미국의 이라크 공격이 남북관계와 북핵문제에 미칠 영향에 대해서도 "예전 베트남 전을 염두에 두고 미국이 다른 곳에서 전쟁을 하면 한반도의 긴장수위가 올라가리라는 예상과, 그보다는 북한도 결국 외교적인 협상을 염두에 두고 있는 한 이런 경우에 긴장 수위를 필요 이상으로 높이지 않으리라는 예상도 있다"고 조심스럽게 양론을 소개한 후 "정부는 양쪽 가능성을 모두 염두에 두고 준비를 하고 있다"고 말했다.

NSC 사무처 24시간 근무 돌입

이라크전이 초읽기에 들어감에 따라 정부의 비상대책 마련을 위한 발걸음이 빨라졌다.

정부는 이라크전이 단기전이 될지 장기전이 될지 확실하지 않다고 보고 여러 가능한 시나리오를 상정, 각각에 따른 대비책을 세우고 있다. 특히 석유 등 에너지 수급 대책 마련에 부심하는 한편, 혹시 있을 수 있는 국내 테러에도 대비하는 모습이다.

노무현 대통령은 19일 수석·보좌관 회의에서 이라크전과 관련해 "장·단기를 예상해서 경제대책과 해외 거주 한인 체류자 대책, 국내 안팎의 안보 대책 등을 면밀하게 세워서 즉각 대응할 수 있는 체제를 꾸리라"고 지시했다. 노 대통령은 특히 "발발과 함께 석유수급 안정화 대책과 아주 희박하지만 테러 가능성 등도 점검해 대비태세에 만전을 기하라"고 말했다.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사무처는 이미 24시간 근무체제에 들어갔다. 전쟁 발발 즉시 라종일 국가안보보좌관은 노 대통령에게 보고한 뒤 NSC를 소집, 비상대책을 가동에 들어간다. 비상대책반 반장은 이종석 NSC 사무차장 내정자가 맡고 외교부·국방부·통일부·국가정보원 등 관계 부처 비상대책반과 긴밀한 협조체제로 운영된다.

또한 발발 즉시 김진표 경제부총리를 위원장으로 비상경제대책위원회를 설치, 시시각각 변하는 경제상황 변화를 점검하고 대책을 마련할 예정이다. 비상경제대책위에는 청와대 정책수석과 행자부·산자부·건교부·해수부·노동부·기회획예산처 장관과 국무조정실장·금융감독위원장·한은 총재 등이 참여한다.

노 대통령은 19일 저녁 6시 국회 여야 국방위원회 소속 의원들을 청와대로 초청해 만찬을 가지는 한편, 정대철 민주당 대표·박희태 한나라당 대표대행 등 여야 지도부와도 전쟁이 발발하는 대로 회동해 초당적인 대처를 당부하고 대책을 논의할 예정이다.

또한 발발 다음날 민주당에서 정 대표와 당3역 및 정책조정위원장들, 정부측에서 고건 총리와 관계장관들, 청와대에서 문희상 비서실장과 라종일 국가안보보좌관, 유인태 정무수석 등이 참석하는 고위 당·정·청 조정회의를 열어 비상 대책을 논의할 계획이다.
/ 이병한 기자

다음은 청와대에서 열린 라종일 국가안보좌관과의 기자간담회 일문일답 전문이다. 이날 간담회는 보좌관 임명 이후 기자들과의 첫 자리였다.

- 이라크전 지원과 관련해 정부 원칙은 무엇인가.
"미국의 외교적 입장을 지지하고 있다. 구체적인 지원 계획에 대해서는 아직 협의 중이다. 전후복구, 난민구호, 비 전투병 파병 등 구체적인 내용은 아직 정해진 것이 없다.

이 전쟁은 시나리오가 불분명하다. 지금부터 내일까지 무슨 일이 일어날지, 혹은 개전과 동시에 이라크 내부에서 무슨 일이 일어날지, 전쟁이 단기간에 끝날지 장기화될지, 그리고 전쟁 국면이 끝난 다음에 내부 수습 문제는 어떻게 되는지, 이런 문제들이 상당히 유동적이다. 그래서 우리의 대처도 여러 시나리오들을 염두에 두고 상황을 봐 가면서 대처할 것이다.

확실한 것은 미국의 입장을 지지한다는 것이다. 미국의 대량살상무기를 제거하기 위한 입장을 지지한다는 것은 분명하다."

- 그것은 곧 미국의 대 이라크 전쟁 수행을 지지한다는 것인가.
"통틀어서 미국이 취하려고 하는 행동을 지지한다는 것이다."

- 현금 제공 등 경제적 지원에 대해서는?
"그런 논의를 구체적으로 한 일이 없다. 지금 단계에서 생각하고 있는 것은, 난민 구호나 전후 복구 등에 우리가 기여할 수 있는 문제지, 전쟁비용을 현금으로 준다는 것은 들은 바 없다."

- 이라크 전이 남북 관계와 핵 문제에 어떤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는가.
"잘 알겠지만, 지금 여론이 많이 나뉘어져 있다. 예전 베트남 전을 염두에 두고 미국이 다른 곳에서 전쟁을 하면 한반도의 긴장수위가 올라가리라는 예상이 여러 나라의 조야에서 나오는 것도 사실이고, 그보다는 북한도 결국 외교적인 협상을 염두에 두고 있는 한 이런 경우에 긴장 수위를 필요 이상으로 높이지 않으리라는 예상도 있다. 국제관계는 참 예측하기 힘들고, 특히 북한에 관해서는 예측이 힘든 면이 있다. 정부는 양쪽 가능성을 모두 염두에 두고 이에 대비할 준비를 하고 있다."

- 이라크 전과 관련해 북한과 커뮤니케이션이 있는가.
"이라크 전쟁에 관해서는 특별한 커뮤니케이션이 없었다."

- 공식적이지 않은 채널을 통한 의사소통이 있는가.
"비공식적 채널이라는 것은 워낙 적절한 시기가 돼야 발표하는 것 아닌가."

- 있다는 뜻인가.
"나는 그런 이야기를 안했고, 생각은 자유다라고 말하지도 않았다."

- 전쟁 기간 동안 비상경제대책위원회의 설치 배경은?
"여러가지 경제 관련된 문제, 금융문제, 경기변동에 대처하기 위해서다. 가장 시급한 것은 에너지 수급 문제인데, 이런 모든 것이 이라크 전의 가능한 여러 가지 시나리오와 맞물려있다. 상당히 세심한 대비가 필요하다."

- 국내에서도 반전 여론이 상당히 높고 외부 여론도 비판적인 지적이 많은데.
"정부 담당자들은 그런 여론도 충분히 감안을 하겠다. 조금 장황한 이야기를 해도 되겠는가. 교수 출신이어서 장황하게 이야기하기를 좋아한다.

19세기초까지를 보면 예술작품들이 대개 전쟁 행위를 칭송하는 쪽이 많다. 영웅행위라든지 전쟁 중에 발휘되는 자기 희생적인 행동을 칭송하는 경향이 많은데, 19세기가 시작되면서 점점 전쟁을 안 좋아하는 경향이 많아졌다. (피카소의) 게르니카 같은 작품을 보면 (전쟁을) 아주 처참하게 묘사했고, 톨스토이의 작품을 봐도 전쟁의 이상화가 전혀 없는, 오히려 굉장히 싫어하고 혐오하는 것이 많다.

그게 근대화의 진행과 거의 함께 간다. 파괴력, 살상력, 또 전쟁의 유용성. 옛날에는 전쟁이 유용한 정치의 수단이었다. 그런데 이게 점점 허무적인 결론이 난다. 전쟁에 이기고도 이득되는 것이 없다. 반면 인간의 희생은 굉장히 크다. 유용성이 적어지는 반면 파괴력이 증가하는 것과 비례해서 전쟁을 싫어하는 감정이 거의 팽배해진다. 지금은 그것이 굉장히 크다.

지난 걸프전만 해도 국내에서 반전여론이 거의 없었다. 이게 또 민주화와 같이 진행된다. 그래서 반전 여론이 있는 것은 당연하고, 그런 것이 없다면 오히려 이상하다. '월남에서 돌아온 김상사', 이런 시대는 갔다고 생각한다. '검게 탄 얼굴' 어쩌고 하는 시대는 확실히 갔다. 만약 그렇게 본다면 조금 이상한 나라다.

그러나 국민의 여론과 외교정책을 담당하는 사람들의 외교정책 수행 과정과는 반드시 일치할 수만은 없다. 내가 듣기로 고이즈미 일본 총리도 이라크 전쟁을 지지하면 자기 개인 인기가 한 10% 정도 떨어진다고 들었다. 그것을 본인이 알고 있으면서 지지한 것이다. 블레어 영국 총리 같은 분도 (영국에) 반전 데모가 굉장히 강하다. 심지어는 자기 측근, 외무상을 하던 사람이 내각에서 (전쟁에 반대한다며) 사임해버렸다. 그럴 정도로 반전 여론이 강한데도 미국의 입장을 강력히 지지하고 있다.

이것이 외교를 맡은 사람들의 고민이고, 떠맡아야 할 책무이고, 조금 거창하게 이야기하면 십자가이기도 하다."

- 이라크 전이 발발하면 NSC가 바로 열리는데, 대응에서 이전 정부와 다른 점이 있다면?
"이번 이라크 전쟁은 지난 걸프전과 어느 정도 다르다. 우선 반전여론이 다르고, 걸프전은 이라크의 쿠웨이트 침공으로 시작됐고, 유엔에서 (지금처럼) 회원국들 사이에 이견이 없이 시작했고, 거센 여론의 반발이 없었고…. 이렇게 상황이 다르니까 대응의 자세가 조금 달라질 수 있겠지만, 근본적으로 큰 차이가 있을 것으로 생각은 안한다."

- 지금까지 수집된 정보로 볼 때 이라크 전의 전망을 해본다면?
"토인비 이야기가 군사전략의 전문가들이 전쟁이 나면 아마추어가 된다고 한다. 내가 사실 군사문제, 전략문제 전문가다. 그러니까 아마추어가 이런 일에 예측을 하면 위상과 이름에 상당한 손상이 간다.(웃음)"

- 북핵문제가 시급한 현안인데, 이 문제를 풀기 위한 구체적인 움직임이 별로 알려지지 않고 있다. 어떻게 풀고 있는가.
"잘 알려지지 않았다면 외교활동을 상당히 능률적으로 하고 있다고 생각된다. 바깥에 알려지고 신문이 막 떠들고, 나처럼 무능하게 북경 갔다온 사실이 신문에 크게 난다면 활동을 잘못한 것이다. 앞으로는 조심해서 절대로 안들키게 활동하도록 하겠다.(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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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선임기자. 정신차리고 보니 기자 생활 20년이 훌쩍 넘었다. 언제쯤 세상이 좀 수월해질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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