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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 1회 외국인 노동자 민속 문화제에 사회를 맡은 개그맨 남희석씨
ⓒ 김진석
제1회 외국인 노동자 민속 문화제가 국제노동재단과 외국인이주노동자대책협의회 주최로 14일 남대문 메사에서 개최됐다. 수도권 지역 외국인 노동자 1000여명이 참석한 이번 행사에 필리핀, 방글라데시, 우즈베키스탄, 중국 등 10개국의 나라에서 13개팀이 참가해 각국의 민속춤과 노래를 선보였다. 국내 연예인으론 P4, 남희석, 장사익, 엄인호 등이 게스트로 참여해 고향에 가지 못하는 외국인 노동자의 스산함을 함께 나눴다.

행사를 기획한 국제노동재단 안성근(36)씨는 "외국인 노동자를 불쌍한 사람으로만 바라보는 편견에서 벗어나 우리와 똑같이 문화를 즐기고 향유할 수 있는 동등한 인격체임을 알리고 싶었다"고 행사 취지를 밝혔다.

이어 안씨는 "명절이 되면 가족을 찾아 정을 나누는 한국 사람의 정서와 외국인 노동자들의 정서가 하나도 다를 바 없다" 며 "한가위 연휴를 맞아 갈 곳 없는 외국인 노동자들이 각기 다른 문화를 즐기고 나누며 서로의 고단함을 달랠 수 있는 축제의 장이 되길 바란다" 고 말했다.

안씨는 "외국인 노동자가 중심이 된 이번과 달리 다음 해부터는 일반인들도 참여해 외국인 노동자와 자연스레 어울릴 수 있는 문화 축제로 만들 것이다" 며 "매해 계획하고 있는 이 행사를 통해 일반인들이 다민족 다문화의 시대를 이해하며 외국인 노동자에 대한 부정적 인식을 버렸으면 한다"고 덧붙였다.

행사 자원봉사자 방정연(21)양은 "과거 가난에서 벗어나기 위해 여러 외국을 전전하며 일했던 우리네 아버지들과 현재 외국인 노동자들이 다를 게 없다" 며 "가족과 오랜 시간 떨어져 타향살이를 하며 돈을 벌어야 하는 것도 서러운데 단지 외국인 노동자라는 이유만으로 인간으로서 누려야 할 기본적 권리를 잃는 것은 잘못된 것이다" 고 생각을 밝혔다.

이어 방양은 "비록 작은 힘이지만 그들이 한국에서 즐겁게 살 수 있도록 보탬이 되고 싶다" 며 "경로 잔치 같이 단순히 우리가 그들을 위로하는 일회적 행사가 아닌 일터에서 벗어나 느끼는 명절 연휴의 넉넉함과 따스함을 다같이 즐길 수 있는 주체적인 행사가 되길 바란다" 고 말했다.

▲ 중국 노동자들이 전통의상을 입고 합동춤을 선보이고 있다
ⓒ 김진석
▲ 태국의 전통 춤을 추고 있는 태국 노동자
ⓒ 김진석
"관객과 공연자가 하나 된 무대"

"마음속으로 보름달을 그리며 한국의 모든 외국인 노동자들이 인간답게 살기를 빌었다"는 외국인이주노동자대책협의회 상임공동대표 최의팔씨의 인사로 막을 올린 무대는 록 밴드 P4의 힘찬 공연으로 오프닝을 열었다.

P4의 열창으로 달아오른 분위기는 본 공연이 시작되기도 전부터 관객들을 무대 위로 끌어올리며 무려 네 시간 동안 이어진 본 막을 유쾌함으로 이끌었다. 3부로 나뉘어진 본 무대는 전통춤과 가요, 외국인 노동자들의 고단함을 담은 연극을 선보이며 흥에 겨운 관객들이 무대의 경계를 허무는 주체적인 놀이판으로 채워졌다.

한편, 공연 전후로 외국인이주노동자대책협의회 홍보 대사인 남희석씨가 예의 그 재치 있는 입담으로 관객들에게 호탕한 웃음을 선사하며 좀처럼 지루해 할 틈을 주지 않았다.

공연자들은 황금 같은 시간을 쪼개 단기간 연습한 아마추어들이 대부분이었다. 가사를 보고 노래하는가 하면 공연 중 신발이 벗겨지거나 준비한 음악이 끊기는 등 아마추어 공연자들의 아기자기한 실수가 연달았다.

하지만 그들에게 박자나 음정 같은 건 그리 중요하지 않았다. 고국의 문화를 당당히 선보이며 관객의 환호를 받은 공연자들은 한 치의 긴장감도 없이 마냥 즐겁고 행복하기만 했다. 공연하는 것 그 자체를 스스로 즐기는 아마추어들의 풋풋한 열정은 관람하는 이들마저 무대 위로 뛰어 오르게 만들었다.

고향에 가지 못한 외국인 노동자들은 오랜만에 접한 고국의 민속 문화들을 관람하며 그리움에 눈물 흘리고 반가움에 웃음 지었다. 또 그들은 다른 나라의 민속 공연을 진지하게 관람하며 그들의 공통어인 한국말로 서로의 문화에 대해 의견을 나누기도 하였다.

특히, 게스트로 초대받아 '찔레꽃' 을 노래했던 장사익씨는 관객들에게 앙코르송으로 '아리랑' 을 불러 조선족들의 눈시울을 뜨겁게 만들었다. 이어 장씨는 "외국인 노동자들이 한국에서 늘 건강하고 행복하게 일하다 멋지게 고국으로 돌아갔으면 한다" 며 "외국인 노동자들이 좋은 인연과 아름다운 기억만을 가질 수 있길 바란다" 고 말해 관객들로부터 가장 많은 박수와 호응을 얻었다.

마지막 3부에선 악덕 한국 사장을 만나 임금을 못 받은 채 여러 공장을 전전하는 고달픈 외국인 노동자의 사연이 연극화되었다. 이에 연극을 관람하는 이들은 극중 외국인 노동자의 상황에 일희일비하며 제각기 고국의 다른 언어로 같은 얘기들을 나눴다.

피부색과 생김새가 다른 외국인 노동자들이 비록 제각기 다른 공연들을 펼쳐 보여도 그들은 '한국에서 일한다' 는 공통 분모 아래 서로의 고단함을 어루만지며 시나브로 하나가 되어 갔다. 고향을 그리워하며 가족을 찾는 건 국가와 민족을 떠나 모든 사람이 지닌 공통적인 정서 일 터. 한가위 연휴를 맞아 마땅히 갈 곳 없는 외국인 노동자들에게 적어도 14일 하루만큼은 타향살이의 설움을 달랠 수 있는 명절이었다.

간만에 이뤄진 외국인 노동자의 외출은 언제 들어도 신명나는 사물놀이와 인도네시아 노동자들과 남희석씨의 즉석 춤판으로 마무리됐다.

▲ 인도 노동자들의 민속춤
ⓒ 김진석
▲ 게스트로 출연한 장사익씨. 조선족 노동자들과 함께 부른 '아라랑'은 행사장 분위기를 숙연하게 만들었다
ⓒ 김진석
"한 나라에 법이 두 개?"

공연을 관람한 외국인 노동자들의 표정은 오랜만의 나들이로 모두가 상기돼 있었다. 그간 일하느라 만나지 못한 친구나 가족들을 공연장에서 우연히 만나 뛸 듯이 기뻐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한편으로는 11월 단속에 한숨 짓는 사람도 있었다.

한국에서 장애인 시설을 만들어 장애인들을 돕는 게 앞으로의 소망이라는 라흐만(29)씨는 "내일이면 단속 때문에 또 숨어 다니기 시작해야 한다" 며 "이번에 통과된 고용허가제는 결국 한 나라에 법이 두 개인 것과 마찬가지 아니냐?" 고 반문했다.

이어 라흐만씨는 "오히려 고향을 더 방문해야 하는 사람도 우리이지 않겠는가?" 며 "오히려 한국인에게 더 도움이 되는 사람은 한국에 더 오래 있었던 4년 이상의 이주 노동자들이다" 고 말하며 한숨 지었다.

한국에 온 지 7년된 김 클라우디아(50)씨는 "고국 우크라이나의 민속춤을 볼 수 있어 너무 반가웠다" 며 "열 번째 본 사물 놀이가 볼수록 새롭고 신기해 가장 기억에 남는다" 고 관람 소감을 밝혔다. 이어 그 또한 "왜 고향에 가고 싶지 않겠는가?" 며 "현재는 아니지만 언젠가 무사히 고향에 다녀 올 수 있도록 하나님에게 기도 드릴 것이다" 고 말했다.

예천이 아버님 고향인 조선족 근로자 현옥채(53)씨는 "추석때 일하면서 다른 가족들이 모여 차례 지내는 것을 보며 고향에 두고 온 아들이 보고 싶어 가슴이 아팠다" 며 "행여 일하는 곳에서 그만 두라고 할까 몸이 아플 때 숨겨야 하는 것이 가장 힘들었다" 고 전했다.

이어 현씨는 "열심히 돈 벌어 반드시 번 만큼 한국 사람은 물론 다른 나라 사람들에게도 베풀 것이다" 며 "우리가 돈을 훔쳐 간다고 생각하며 부정적으로 바라보는 한국 사람들의 인식이 안타깝다" 고 말했다.

"적어도 일한만큼 벌 수 있기를 "
<인터뷰> 외국인 노동자 민속 문화제 사회를 맡은 개그맨 남희석씨

▲ 마지막 무대인 인도네시아 노동자들과 어울려 흥겹게 춤을 추고 있는 개그맨 남희석씨
ⓒ2003 김진석

무대 뒤 공연을 준비하는 외국인 노동자들에게 사진촬영 요청을 받으며 뜨거운 관심을 한 몸에 받고 있는 사람이 있었다. 공연에 참가해 막춤을 선보이며 행여 관객들이 지루해 할까 끝없는 입담을 펼쳤던 개그맨 남희석(32)씨. 공연자들이 무대에 오른 막간을 틈타 무대 뒤에서 외국인 노동자들과 함께 어울리고 있는 그와 5분 가량의 짧은 대화를 나눌 수 있었다.

연신 그에게 사진촬영을 요청하고 악수를 청하는 외국인 노동자들에게 일일이 응했던 그는 한 외국인 노동자와 악수를 나눈 후 "얼마나 일을 했는지 손에 굳은 살이 장난이 아니네요" 라며 말문을 열었다.

"함께 같이 놀러 왔다" 는 기분으로 사회를 본다는 그는 "전문 공연자들이 아닌 일반 외국인 노동자가 공연하는 모습이 뭔가 엉성한 듯하면서도 재미있다" 며 너털웃음을 터뜨렸다.

얼마 전 통과한 고용 허가제에 대해 그는 "일단 그것만이라도 통과돼 다행이다, 하지만 연수제 또한 같이 철폐됐으면 한다" 며 "이왕 펼치는 정책이라면 '눈 가리고 아웅' 하는 식으로 하지 말고 깨끗하고 확실히 마무리하길 바란다" 고 당부했다.

이어 그는 "결코 외국인 노동자가 우리 나라 돈을 거저 빼앗아가는 게 아니다, 같이 벌어 주고 있는 것이다" 며 "외국인 노동자들을 나쁘게만 보려는 분들이 과연 그들의 노동을 아시는지 궁금하다" 고 덧붙였다.

마지막으로 그는 "돈을 벌기 위해 외국에 나갔던 과거 한국의 아버님들과 한국에 돈을 벌러 온 외국인 노동자가 다를 게 없다" 며 "외국인 노동자들이 적어도 최소한 일한 만큼은 벌어 갈 수 있게 되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고 간곡히 전했다. / 김은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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