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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같이 사건 사고가 많은 시대에 우리는 모두 언제 어떻게 장애인이 될지 모르는 예비 장애인이에요. …비장애인들의 인식이 변해야 장애인들이 사회에서 함께 할 수 있어요. …그간의 오해를 뒤로 장애인과 비장애인 모두 서로의 문제를 함께 공감하는 사회가 됐으면 해요."

방송이 시청률을 올리기 위해 감정을 자극하듯 네티즌을 끌기 위한 음란 및 엽기적인 정보가 판치는 인터넷 공간에 포장 없는 날 것의 '희망' 이 둥지를 틀었다. 가공하지 않은 장애인의 모습으로 '희망'을 전파하겠노라 야무진 꿈을 품고 있는 어느 한 방송국을 찾아 쏟아지는 가을 햇살을 밟으며 무작정 길을 나섰다.

▲ '꾸밈 없는 장애인의 모습을 모여 주고파'. 인터넷 방송 '희망 방송'의 강송진 제작 본부장
ⓒ 김진석
지난 3월 개국한 장애인 인터넷 희망 방송국(http://hmn.or.kr)이 자리한 서울 양평동의 한 건물엔 장애인을 위한 엘리베이터 공사가 한창이었다.

넓은 세상을 향해 닻을 올린 희망 방송국의 선장, 제작 1본부장 강송진(40)씨를 만났다. 자원봉사 운영 체계로 인한 인력난으로 몸이 두 개라도 모자란 강씨였지만, 그의 표정엔 희망 방송에 대한 열정이 뿜어져 나왔다.

"도움을 받는 것이 아닌 도움을 줄 수 있는 '희망' 을 말하고 싶습니다!"

지난 6년간 KBS 라디오 장애인 전문 방송 사랑의 소리 PD를 했던 그는 방송이 없어짐에도 불구하고 그간 만났던 장애인들을 잊지 못해 인터넷에 새 둥지를 틀었다. 함께 일하던 사랑의 소리 스태프들이 자원 봉사자로 다시 모였고 소년소녀가장과 결식아동 등을 돕는 '로이사랑나눔회' 가 재정적 지원을 맡는다.

"단순히 소외된 몇몇 이들의 문제라고 그저 외면해 버릴 수가 없었어요. 특히 장애인 가운데는 대략 70%정도가 후천적 장애인이에요. 사고로 한 순간 모든 것을 잃어버린 후천적 장애인들이 자살하려는 걸 가까이서 많이 보며 그들만의 문제가 아닌 우리가 다함께 보듬어야 할 사회적 문제임을 인식했어요."

ⓒ 김진석
강씨는 "그 누구보다도 방송이 절실히 필요한 사람들은 다름아닌 장애인이다" 며 "사회와 방송은 그들을 외면해서는 안되는 의무와 책임이 있다" 고 강조했다. 이어 그는 시청률에 좌우되는 공중파 방송들이 그 역할을 제대로 못해 희망 방송 및 여타 다른 장애인 전문 방송이 태어날 수밖에 없었다며 공중파 방송의 한계를 토로했다.

"그간 장애인을 보도하는 방송들은 장애인을 불쌍하고 우울한 존재로 고정화시켜 버렸어요. 밝게 정말 열심히 살려고 노력하는 분들도 많은데 그런 분들이 보면 참 화가 나죠. 비장애인인 제가 봐도 불쾌한데 장애인이 보면 오죽하겠어요.

장애인들의 마음을 전혀 헤아리지 못하는 방송이었죠. 재미나고 유익한 정보의 프로그램을 좋아하는 건 누구나 다 똑같을 텐데 장애인을 그저 객체로만 인식해 시청률 올리기에 급급했죠. 심한 경우엔 장애를 이용하기도 해요. 시청자의 감정선 자극을 위해 억지 눈물을 흘리게 만들고 결국엔 불쌍하게 상품화 시켜버리고 말죠."

공중파와 차별되는 방송을 만들기 위해 강씨가 생각한 전략은 있는 그대로의 '날 것' , '연출하지 않은 장애인의 실제' 를 여과 없이 보여주는 것이다. 이에 장애인이 주체적으로 참여해 그들의 일상을 담은 6m다큐엔 강씨의 고집이 고스란히 배어 있다. 비록 시작이라 미미하지만 현재 강씨의 6m다큐는 희망 방송국의 가장 인기 있는 프로그램으로 당당히 자리 매김하고 있다.

"잘못된 방송의 보도로 인해 비장애인들은 막연히 장애인들을 그저 고통 받고 불쌍한 사람으로 인식해 버려요. 희망 방송을 통해 장애인과 비장애인 모두 그런 잘못된 고정관념에서 벗어났으면 해요. 장애인도 엄연히 남을 도울 수 있고 자신이 가진 능력과 재능으로 사회에 무언가 기여할 수 있다는 걸 당당히 보여주고 싶습니다."

장애인 60%, 비장애인 40%로 네티즌이 형성되기를 바라는 강씨는 "장애인 문제는 단순히 장애인 혼자 노력해서 되는 것이 아니다" 고 역설했다. 그는 "결국 비장애인이 장애인의 고민을 이해 할 수 있을 때 비로소 더 많은 장애인이 사회로 나와 함께 어울릴 수 있다" 며 장애인 못지 않은 비장애인의 참여를 간곡히 당부했다.

"실질적으로 장애인들에게 가장 필요한 건 취업 할 수 있는 경제적 능력이에요. 교통 사고 등으로 후천적 장애인이 점점 늘어나고 있는데 반해 사회는 그들을 받아들이지 않죠. 특히, 무엇보다도 장애인들의 사회 진출을 막는 건 '우리안의 동물 구경하듯 바라보는 비장애인들의 시선' 이죠.

요즘 들어 자주 발생한 지하철 내 리프트 사고도 결국은 장애인의 문제를 소외시하는 비장애인들의 인식으로 비롯된 것 같아요. 단순히 설치해 준 것만으로 끝나서는 안되죠. 당장 우리 주변만 둘러 봐도 계단 없는 곳이 어디 있나요? 결국 장애인들에겐 나가고 싶어도 갈 수 없는 세상인 거죠.

ⓒ 김진석
어떤 장애인은 휠체어를 타고 화장실을 쉬이 갈 수 없기에 일부러 물도 안 마셔요. 이는 '단순히 힘들겠구나' 라는 생각에서 그치는 게 아니라 비장애인들과 같이 고민해야 할 인권문제와도 같아요."

하지만 강씨는 "장애인을 위해 강한 목소리로 사회 운동을 펼치려는 것은 아니다" 며 "장애인의 정신적 재활을 돕는 역할을 중심으로 모두에게 따뜻한 마음을 전하고 싶다" 고 덧붙였다. 이어 그는 "결코 사회적 운동을 무시하는 것이 아닌 다른 역할을 맡고 있을 뿐이다" 며 "희망 방송이 샘터에서 맑은 물을 마시고 잠시 언덕에 기대 편히 쉬는 느낌을 줄 수 있는 곳이 되길 바란다" 고 전했다.

"아휴, 돈 버는 일이라면 못하죠. 힘들어서 어떡하나요.(웃음) 돈 벌 욕심이라면 좀더 편한 직업을 찾았겠죠. 온전히 보람으로 일해요. 사람들이 우리 방송을 보고 점차 변화된 생각을 전해올 때, 방송을 본 비장애인들이 장애인들을 보고 '나와 똑같은 문제를 안고 있구나' 라고 생각해 줄 때, 또 비장애인들이 '나도 더 열심히 살아야겠구나' 라고 다짐해 줄 때 참 고맙고 큰 보람을 느끼죠."

5인의 상근 직원과 25인의 자원봉사로 구성된 스태프의 애로사항은 '인력난' 과 '시간' 이다. 그 어느 것 하나 소홀히 만들 수 없는 방송이기에 시간과 정성의 투자는 기본. 하지만 이미 다른 직업을 가진 자원봉사자들이 함께 모일 수 있는 날은 고작 주말에 불과하다.

9시 출근 7시 퇴근은 다른 세계의 얘기에 불과하다. 한번 일을 시작하면 밤을 새기도 부지기수. 그럼에도 불구하고 강씨의 의욕은 넘쳐 난다. 11월 개편을 맞아 강씨는 '나도 스타' 라는 새로운 프로그램을 구상중이다.

"장애인들도 성대모사나 노래 춤 등 다양한 끼를 가진 분들이 많아요. 공중파 방송에서는 쉬이 보여 줄 수 없는 것들을 인터넷 공간에서만큼은 더 솔직히 펼쳐 보일 수 있잖아요. 끼를 가진 장애인들에게 기회를 제공하고 싶어요.

자신이 몰랐던 끼를 발굴, 계발해 선보이면서 주인공이 될 수 있다는 시원한 자신감을 얻었으면 해요. 그런 분들에게 희망 방송이 세상과 이어질 수 있는 통로가 됐으면 합니다."

덧붙여 강씨는 비장애인들이 하는 일을 장애인들도 직접 체험하며 느낄 수 있는 '체험 삶의 현장' 이라는 프로그램도 연이어 구상중이라 귀띔했다.

그간 장애인 인터넷 방송국이 없었던 건 아니다. 초반엔 좋은 취지를 담아 의욕적으로 출발했어도 결국엔 네티즌의 무관심으로 곧 좌초되고 말았다. 이에 강씨도 "아무리 좋은 의미여도 사람들이 보고 듣지 않으면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며 네티즌들의 꾸준한 관심을 부탁했다.

ⓒ 김은성
"큰 방송국이 되려는 욕심은 없어요. 오히려 욕심을 버려야 미래가 더 밝을 것 같아요. 열심히 공들여 차려놓은 음식을 손님이 맛있게 먹어 줄 때 가장 행복한 요리사처럼 그저 꾸준히 사랑받는 방송이고 싶어요. 앞으로 소원이 있다면 전국에 있는 모든 장애인들이 우리 방송을 꾸준히 듣고 봐주시는 거죠!(웃음)"

더 나아가 강씨는 "희망 방송이 장애인과 비장애인을 이어주는 다리가 되었으면 한다" 며 연신 "장애인 문제는 곧 우리 모두의 사회 문제" 임을 당부했다.

"요즘같이 사건 사고가 많은 시대에 우리는 모두 언제 어떻게 장애인이 될 지 모르는 예비 장애인이에요. 장애인의 사회 복귀와 진출 문제는 결코 그들만의 문제가 아니죠. 몰라서 그렇지 등록된 장애인 외에도 우리 주변엔 더 많은 장애인이 방치돼 있어요.

비장애인의 인식이 변해야 장애인들이 사회에서 함께 할 수 있어요. 그간 사회가 준 상처로 인해 본의아니게 열등감과 피해 의식을 갖은 장애인들 또한 당당히 껍질을 깨고 사회 밖으로 나왔으면 해요. 그래서 보란듯이 힘차게 열심히 사셨으면 합니다. 그간의 오해를 뒤로 장애인과 비장애인 모두 서로의 문제를 함께 공감하는 사회가 됐으면 해요."

희망방송 '제 1회 스타 콘테스트' 개최

지난 3월 28일 개국한 희망방송(http://hmn.or.kr)은 장애인과 사회 소외 계층을 위한 라디오 방송인 '사랑의 소리 방송' 에서 각 실무를 담당했던 사람들이 주축이 돼 만든 최초의 장애인 종합 인터넷 방송국이다.

주요 텔레비전 프로그램으로는 장애인들이 직접 배우로 출연한 기독교 음악 뮤직비디오와 장애를 극복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6㎜ 카메라에 담은 다큐 '세상과 함께', 장애인 건강 상식을 전하는 ‘5분 건강타임', 단편 영화 상영 및 행사를 실황 중계하는 ‘희망방송 스페셜’등이 있다.

또, 라디오 프로그램으론 시각장애인 기독교 음악가인 양남규씨가 진행하는 <시시엠 천국>, 라디오 광고음악 작곡가 임형찬씨가 각 장르의 음악을 직접 선곡해 숨은 이야기를 재미있게 엮어 소개하는 <뮤직스토리>, 성우 하성용 DJ의 드라마 클럽 등이 준비돼 있다.

희망 방송은 12월 3일 세계 장애인의 날을 맞이해 오는 12월 1일 서울 목동 방송회관에서 '제1회 희망방송 장애인 스타 콘테스트'(CCM 가요제)를 개최한다.  

희망방송은 이번 행사를 통해 장애인들의 꿈과 재능을 마음껏 펼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고,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함께 어울릴 수 있는 장을 마련할 계획이다.

스타를 꿈꾸는 장애인, 또는 장애인과 팀을 이룬 비장애인 모두 참가 가능하다. 오는 11월8일까지 기존 CCM이나 가스펠, 창작 곡 등을 테이프 또는 CD에 담아 우편(서울시 영등포구 양평동 6가 30의 1)으로 보내거나 MP3 파일의 경우 인터넷 홈페이지를 통해 신청하면 된다.

본선에 진출하는 10팀은 기념 음반 취입의 기회가 주어지고, 특히 대상 수상자에게는 200만 원의 상금과 정식 개인음반 취입까지 제공함으로서 향후 CCM가수로 성장할 수 있는 길을 마련 할 방침이다. / 김은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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